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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출 3:11-22
성경본문내용 (11)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12)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13)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14)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15)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16)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17)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18)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19)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20)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21)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22)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
강설날짜 2014-06-01

2014년 출애굽기 공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말씀:출애굽기 3:11-22

 

우리는 지난 시간에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출애굽기 3:11-4:17절까지 말씀은 하나님과 모세 간의 긴 대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즉각 순종하지 않고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거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세와 대화 하시고 그를 설득하여 출애굽 역사에 쓰임 받게 하십니다. 바로 그 대화가 3:11-4:17절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대화는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나눈 가장 긴 대화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긴 대화 중에서 3:11-22절까지 말씀만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3:11절 말씀을 보면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바로 순종하기보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이 의문에서 방점은 “내가 누구관대”라는 말에 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12절 말씀에 보면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대답에 나타난 방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에 있습니다. 즉 모세가 “내가 누구관대”이런 일을 맡아야 하느냐고 말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네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점이다”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신다는 증거로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출애굽의 역사에서 모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자 모세가 다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이 질문을 풀어서 말하면 “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이 중요한 것이라면 그러면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라는 것입니다. 11절에서의 질문이 모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라면 13절에서의 이 질문은 하나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6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면서 이미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기 위해서 핑계를 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1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계시는 분!’ 이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입니다. 당시 애굽에 수많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들은 스스로 있는 신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시간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 이름의 뜻을 우리가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 속에 하나님을 다 담아 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누구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이름 안에 그 사람의 외모, 그 사람의 직업, 그 사람의 모든 정보와 인격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무나 높으시고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단지 고유명사화 된 하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다 담아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유한한 우리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다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로 설명들이 나와 있습니다만 이러한 이름의 설명도 사실은 하나님에 대한 지극히 일부분에 대한 설명일 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14). 이 말을 좀더 원어로 가깝게 번역을 하면 “나는...이다”입니다. 이것은 고유명사화 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나는...이다’라는 히브리어가 ‘여호와’ 또는 ‘야훼’로 읽는데 유대인들은 이 네 글자를 거룩한 문자라고 하여 발음을 하지 않고 ‘주’라는 말로 바꾸어 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름에 대하여 많은 해석들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것은 어떠한 인간에 의하여 이름 지워 질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있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곧 모든 존재를 있게 하시는 분으로서의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있는 자라는 것은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자신의 언약을 이루어내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름이 어떻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15절 말씀에 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해결해 주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시고 그들에게 언약하시고, 그 언약하신 대로 이루어 내시는 그러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을 모르면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창세기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선택이 되고나니 그들의 삶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들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시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스스로 낮추심으로 인생에게 언약을 맺으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언약을 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출애굽을 지시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 400년 전에 하신 그 언약의 때가 차매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언약을 이루시는 전능한 하나님으로서의 이름이 바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 곧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15-1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서의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하신 그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신 한에서만 우리가 스스로 계시는 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대로 상상한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바로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결국 하나님 자신이 이러한 이름으로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스로 계시는 분 곧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 6:2-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가나안 땅 곧 그들의 우거하는 땅을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은 전능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셨고, 여호와의 이름으로는 알리시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여호와로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란 결국 애굽에서의 구속을 위한 이름이 됩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는 이 이름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전쟁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애굽의 신들을 물리치시고 자기 백성을 어린양의 피로 구속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속을 위하여 전쟁을 하시는 하나님으로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하시는 것이 성경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 이미 나타난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전쟁이 이제 본격적으로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쟁이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6:5-9절 말씀을 보면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찌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역사의 혹독함을 인하여 모세를 듣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시는 것입니다. 모세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호와’로 친히 싸우시는 그 전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내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란 이름 앞에 아주 많이 등장하는 수식어가 ‘만군’입니다. 곧 ‘만군의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만군’이란 말 그대로 군대의 이름입니다. 전쟁하시는 모든 군대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쟁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구하시는 것이 여호와라는 이름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3:1-7절을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애굽을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대신하여 내어 주면서 자기 백성을 만들어 내신 것은 누구의 영광입니까? 모세의 영광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오늘 본문 17-18절 말씀을 보면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라고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아서 하나님의 약속을 말하면 그들이 들으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바로 왕에게 가서 말하면 잘 듣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강하신 손으로 치신 후에 그들이 내어놓을 것이라고 합니다. 19-20절 말씀을 보면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고 했습니다. 결국 여호와께서 친히 전쟁을 하심으로 그들이 곧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나올 것이라고 합니까? 21-22절을 보면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찌라.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애굽에서 강제노역에 대한 대가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 보다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전쟁하신 결과 그들이 졌기 때문에 내어 놓은 전리품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12:35-36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이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란 구약에서 고정된 이름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언약을 이루시는 의미에서 여호와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호와의 이름이 결국 어떻게 우리에게 알려집니까? 이사야 9:1-7절 말씀을 보면 “전에 고통 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푸시면 전에 흑암 중에 고통 하던 자들이 추수하는 날의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탈취물을 나누는 것은 전쟁에서 승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흑암에 눌려있는 자들이 스스로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마치 애굽에서 억압당하던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전쟁으로 이기고 탈취물을 나누어 나오듯이 주님의 약속하신 그 구원의 날이 이르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무엇입니까?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 정사를 매었다고 합니다. 그 이름이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다윗의 위에 앉으시고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 왕위를 이어 가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일을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어 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은 군대의 용어입니다. 여호와란 ‘나는...이다’입니다. 그러므로 이분의 이름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기묘자, 모사,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름으로 오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께서 ‘나는...이다’로 말씀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분이 전쟁에서 승리하셨는데 그 전쟁의 승리가 바로 십자가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의 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여호와를 감히 부르지 못하고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러한 ‘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하나님 아버지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은 아직도 오직 여호와의 이름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4:8-10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합니다. 올라가셨다는 것은 바로 내려오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려오셔서 전쟁을 하시고 위로 올라가시면서 자기 백성들에게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이란 바로 여호와께서 싸우심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구원을 선물을 주시듯이 오늘날 ‘주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전쟁, 즉 주의 이름으로 행하시는 전쟁에 참여된 것이 오늘날 죄와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던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고 영생의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주의 이름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며, 이제 우리가 사는 것은 나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출애굽의 은혜가 우리에게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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