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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겔 9:1-11
강설날짜 2018-03-18

2018년 에스겔서 공부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환상

말씀:에스겔 9:1-11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온갖 우상숭배로 가득한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환상을 살펴봤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로 가득한 예루살렘을 향해 분노하시며 심판하시는 환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환상 중에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에게 성중에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마에 표가 없는 자들은 늙은이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다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 계시하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스겔 8장에서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 온갖 우상숭배가 가득함을 봤습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여인들조차 성전에서 여호와를 등지고 태양신과 담무스와 온갖 가증한 것을 경배했습니다. 이런 우상숭배는 여호와께서 성전을 떠나시도록 하는 반역이었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의 성전에 대해 하나님은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스겔 8:18절을 보면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 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로 가득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 심판이 집행되는 환상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육 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육 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 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고하신 대로 온갖 우상숭배로 가득한 예루살렘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는데 그 상황을 보면 각기 죽일 무기를 든 여섯 사람이 북향한 문에서 나옵니다. 이들은 성을 관할하는 자들인데 이제는 성을 심판하는 자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천사들로 보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출애굽 때 10번째 재앙에서 어린 양의 피를 바르지 아니한 집의 장자를 치던 그런 모습과 흡사합니다. 또 이사야 시대에 산헤립의 군대를 치던 그런 모습과도 같습니다(왕하 19장).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이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섰습니다.

 

3-4절을 보면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그룹에 머물러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러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서 이릅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성읍에 돌아다니며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기 직전에 그 심판에서 제외될 사람들을 표시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 표는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wT;’(타브)인데 히브리어 알파벳에서 제일 마지막 글자입니다. 그러므로 이마에 표시조차 마지막이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5-7절을 보면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마에 표가 없는 자들은 불쌍히 여기지 말고 긍휼을 베풀지 말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죽이라고 합니다. 그 심판의 집행은 여호와의 성소에서부터 시작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전의 늙은 자들로부터 심판이 집행됩니다. 여기서 ‘늙은 자’란 백성의 대표인 장로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에 앞장선 자들입니다. 그리하여 그 시체를 성전에 채우라고 합니다. 성전은 시체로 더럽히면 안 되는 곳인데 시체로 채우라고 하는 것은 이제 성전도 버림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8절을 보면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 될 때에 에스겔 홀로 있었습니다. 그때 에스겔이 여호와께 엎드려 “오호라.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라고 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의 이러한 중보적인 간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일방적으로 선포만 전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보고 중보의 역할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의 이러한 간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심판만 선언하시고 집행하십니다.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아모스 선지자도 심판의 소식에 중보 하지만 결국은 심판이 일어났습니다. 아모스 7:1-9절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황충을 지으시매. 황충이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가라사대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이에 내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청컨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가라사대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베풀고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훼파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남 유다 출신으로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아모스가 여호와께서 보여주시는 심판을 환상으로 보게 됩니다. 그 첫째 환상이 메뚜기 재앙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설 수 있느냐고 하며 중보기도 했을 때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심판을 연기하십니다. 두 번째 환상은 불심판입니다. 역시 아모스가 간구하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십니다. 그러나 마지막 다림줄 환상에서는 더 이상 중보기도가 없습니다. 이것은 이제는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도 우상숭배로 인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9-10절을 보면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은 그대로 집행이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9). 그런데 예루살렘 백성들은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고 돌보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9). 이들은 자신들이 언약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를 하고서는 하나님의 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시고 돌보시지 아니하셨기 때문에 자신들이 우상에게 절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주께서 명령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성읍에서 일어나는 가증한 일을 보고서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시를 하는 일입니다. 바로 그 일을 명하신 대로 다 마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마에 표를 받은 사람이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여인들과 백성의 장로들과 제사장과 대제사장까지 다 여호와를 등지고 태양신과 담무스와 온갖 우상에게 절하는 그 예루살렘에 과연 몇 사람이 이마에 표를 받았겠습니까? 예레미야 5:1절을 보면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성을 사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비춰보면 이마에 표를 받을 자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된 것은 이미 여호와를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배불리 먹였더니 그 힘으로 우상숭배를 하고 간음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어찌 이런 나라를 심판하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이유는 예레미야와 에스겔 두 곳의 말씀을 보면 아주 분명합니다. 예루살렘에 일어나는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롯이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구원함을 받은 것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도 있었지만 롯이 그 성읍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하여 마음이 상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베드로후서 2:6-8절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 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롯이 비록 소돔과 고모라에 살았지만 그의 심령이 상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롯을 하나님께서 그 심판 가운데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는 이러한 탄식과 마음의 상함이 있습니까? 이 시간 우리 자신들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몸이 성전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의 마음에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성전인데 우리의 마음에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입니까? 예레미야와 에스겔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 안에 우상이 가득 하였듯이 우리의 마음에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자기 인정, 자기 영광으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영광을 사모하는 것으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평소에 탄식하며 우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들 때문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지 아니함을 인하여 탄식하십니까? 대부분 전자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심각하게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과 심판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아브라함의 복을 이야기 합니다. 갈라디아서 3:1-10절을 보면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브라함의 복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방인으로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복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보면 예배 잘 드리고 십일조 잘하고 순종을 잘하면 복 받는다는 설교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것을 잘해서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모든 율법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말을 듣고서 열심히 노력하여 자신이 받아낼 수 있는 복을 말하는 것은 아브라함 언약도, 모세 언약도 모르고 거저 내 잘 되고 내 집안 잘 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설교를 들으면서, 이 땅의 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탄식하며 울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런 설교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하고 그것도 열심히 하기만 하면 온갖 세상의 복을 다 준다고 하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설교를 듣고 그런 말을 따라 열심히 해 보니 병이 고침을 받고, 부자가 되었다는 간증이 간혹 있습니다. 그런 자를 세워 간증을 하게 하니 그런 사람이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복을 받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아직 충성과 헌신의 잔이 채워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런 말에 목을 매면서 달려가는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해서 입니까? 아니면 자기를 사랑하여 자기가 원하는 축복을 받고자 함입니까? 거의 다 후자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신앙에 익숙해 있지 않습니까? 우리교회가 지난 오랜 기간 동안 이런 신앙에서 벗어나고자 말씀의 본의를 배우는 일에 힘써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기 영광을 구하는 아상(我想)이 무너지는 아픔이 컸습니다. 아니 아직도 자기인정, 자기 영광을 구하는 아상을 부여잡고 복음을 대적하는 요소가 우리 속에 가득합니다.

 

베드로전서 4:12-19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상의 복을 받는 것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 이 세상의 영광이라는 것들은 다 불살라 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진정 성도라면 무엇을 즐거워해야 합니까? 세상에 대하여 부요한 자들은 울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고난 받는 자는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거꾸로 살아가고자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 영광을 받으시고서 보내신 영이 영광의 영입니다. 그 영광의 영이 어디에 계십니까? 베드로전서 4:14절을 다시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는 자 위에 함께 하시는 것이 영광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악행으로 고난을 받지 말고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심판받을 이 세상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어 섬기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와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우리의 모습과 우리교회의 모습과 이 땅의 교회들의 모습을 보면서 탄식하며 울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7-18절을 보면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라고 합니다. 에스겔서에서 이마에 표 받은 자 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진멸을 당하는데 어디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성전에서 장로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마지막 시대도 심판이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하나님의 집이라는 교회로부터 시작됩니다. 에스겔서에서 인치는 작업이 끝났다고 합니다. 이미 하늘에서 인치는 작업이 끝났습니다. 그러면 인침을 받은 자가 누구겠습니까? 내 안에, 가정 안에, 교회 안에 가증한 일을 보면서 탄식하며 우는 자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가증한 모습이 가득한 우리 자신과 가정과 이 시대 교회를 보며 탄식하며 우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멸망의 자식들이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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