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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2:23-28
성경본문내용 (23)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24)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희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25)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26)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27)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28)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강설날짜 2015-11-08

2015년 마가복음 공부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말씀:마가복음 2:23-28

 

지난 시간에 금식에 대한 논쟁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계시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자른 것을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의 비난에 대한 예수님의 변호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3절에 보면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앞서 나가며 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뒤를 따라 지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밀 이삭을 잘랐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왜 밀 이삭을 잘랐는지에 대해서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2:1절에 보면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었다고 했고, 누가복음 6:1절에 보면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었다고 했습니다. 이 병행구절들을 통해서 볼 때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 비벼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24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희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리새인들이 문제를 삼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장하여 남의 밭의 밀 이삭을 잘라먹었다는데 있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즉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가난한 자들에 대한 규정이 있습니다. 신명기 23:24-25절을 보면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 마음대로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가하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 말 것이요,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의 밭에 낫을 대지 말찌니라”고 했습니다. 이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가난한 자들이 이웃의 밭에 들어가서 포도와 이삭을 마음대로 먹어도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낫을 대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이웃의 밭에 들어가서 포도를 따먹거나 이삭을 비벼 먹는 것은 먹을 것이 없어서 곧 배가 고파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율법에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서 가난한 자들이 이웃의 밭에 들어가서 포도나 곡식의 이삭을 배불리 따먹어도 된다고 허락한 것은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겨서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가난한 자들을 돕고 섬기는 선한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포도를 그릇에 담거나, 이삭에 낫을 대어 베는 것은 남의 것을 훔치는 도둑질에 해당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죄가 됩니다. 그래서 이런 행위는 금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이 문제를 삼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남의 밭에 들어가서 주인의 허락 없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리새인들이 문제를 삼는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이 무엇입니까? 추수를 하고 타작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 곧 안식일 법(신 5:12-15)을 원형으로 하여서 안식일에 하지 못할 금령을 39개나 만들었습니다. 이 법을 히브리어로 아보트(부법:父法)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서는 거기에서 다시 많은 금령을 정했습니다. 그것을 부법에서 나운 후예(後裔)라는 뜻에서 히브리어로 톨레도트(자법;子法)라고 불렀습니다. 이와 같은 결정은 율법학자들의 모임인 ‘대회당’ 또는 ‘대집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대회당’은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선지자 에스라 때부터라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여기서 결정된 이 금령에 따라서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여 지켰습니다. 이 금령에 의하면 안식일에 할 수 없는 일로 추수기에 곡식을 추수하는 일과 타작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안식일에는 곡식에 낫을 대어서도 안 되었고, 베어 낸 곡식을 훑든지 아니면 도리깨질을 하여 곡식을 떼어 내어 모으는 일을 해서도 안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바로 이 점을 문제 삼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빈 것은 추수기에 할 수 없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삭을 잘랐으니까 추수한 것이요, 그것을 손으로 비볐으니까 타작을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수하고 타작해서는 안 되는 금령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 곧 안식일 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어떻게 변호해 주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서 있었던 한 일을 예로 들어서 변론해 주셨습니다. 25-28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다윗이 먹은 사건을 예로 들어서 제자들을 변호 해 주셨습니다. 사무엘상 21:1-6절에 보면 대제사장 아비아달이 아니고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입니다. 그런데 마가는 아비아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착에 의한 기록이 아닙니다. 사무엘하 8:17절을 보면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로 보건대 아히멜렉은 그 아버지 아비아달을 계승하여서 제사장직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도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라고 말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여튼 예수님께서는 아비아달 제사장 때에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서 제자들을 변호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비아달 대제사장 곧 아히멜렉이 제사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에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서 제자들을 변호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사무엘상 21:1-6절을 보면 다윗이 사울 왕의 박해를 피해서 예루살렘 북쪽 아나돗 근처의 제사장들이 살고 있는 놉 땅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거기서 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갔습니다. 아히멜렉은 떨면서 다윗을 영접하며 말하기를 “소년들은 다 어디에 가고 어째서 혼자 오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자기에게 일을 맡기며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명하였기 때문에 부하들은 은밀한 곳에서 만나기로 서로 약속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부하들에게 먹일 떡 다섯 덩이나 아니면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으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아히멜렉은 지금 자기 수중에 떡은 없지만 하나님 앞에 차려 놓은 거룩한 떡은 있다고 말하고 다윗과 그 일행이 왕의 명령에 의해 긴급한 일을 수행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서 다윗의 부하들이 부녀를 가까이 하지만 않았다면 드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다윗은 비록 보통 여행이더라도 그들이 떠날 때에 성결하였는데 삼일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서는 더 성결하지 않겠는가라고 하며 그들의 성결을 맹세 하였습니다. 그제서야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전에 있는 거룩한 떡 곧 진설병을 내어 주었습니다. 진설병은 안식일마다 새 것으로 갈았습니다. 그리고 그 물려 낸 진설병은 거룩한 곳에서 제사장과 그 식구들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전에 있는 거룩한 떡 곧 전설병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사장들과 그 자손들만이 성소에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레위기 24:9절을 보면 “이 떡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소년들에게 거룩한 떡을 먹도록 허락하였습니다. 그런데 아히멜렉이 그와 같이 한 것은 모세에게 명한 영원한 규례를 어긴 것이 아닙니다. 문자적으로만 보면 아히멜렉은 분명 모세의 율법을 어겼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지금 다윗은 주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그가 수행하고 있는 사명이 거룩한 자의 사명으로서 성전의 의식법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소년들이 성결하기만 하다면 이웃을 사랑하라는 보다 높은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아히멜렉은 긴급한 처지에 있는 그들에게 거룩한 떡에 대한 성전의 의식법을 어길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9:18절을 보면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했습니다. 아히멜렉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의 근본 정신에 따라서 위기에 처해 있었던 다윗과 그 일행들에게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었던 거룩한 떡을 내어 주어 먹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히멜렉은 보다 더 큰 율법의 정신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상회법에 하회법이 굴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하나를 예로 들어서 제자들을 변호 해 주셨습니다.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율법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안식일에 성전에서 매 안식일의 번제를 드립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는 그 행위만 보면 이것은 분명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 행위는 일반 개인이 할 수 없는 오직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안식일을 더럽히는 행위가 무마되는 것은 아닙니다. 안식일에 제사 행위 그 자체가 안식일을 더럽히는 행위가 된다고 할지라도 제사장들은 무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하는 일은 거룩한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의식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2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비아달 제사장 때에 있었던 일 곧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었던 진설병을 먹었지만 죄가 없던 다윗을 예로 들어 설명 한 후 안식일의 존재 의미를 통해서 제자들을 변호 해 주셨습니다.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27).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면서 그 날을 구별하여 복 주셨습니다. 이것이 안식일의 기원입니다(창 2:2-3). 하나님께서는 안식일부터 만드신 후에 그것을 지킬 사람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을 먼저 만드셨고 구별하여 복 주신 안식일을 사람의 생애 첫날로 맞이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처음부터 사람을 위해 마련된 날입니다. 인간 편에서 보면 창조되자마자 여섯째 날이 끝났습니다. 어떤 노동도 하기 전에 안식부터 한 셈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안식일은 단지 노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 쉬는 날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활동도 하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과 교제부터 했는데 그 날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와 교제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있겠습니까? 인간은 안식일에 그토록 영광스런 복을 값없이 충만히 누린 후에 엿새 동안 하나님의 뜻을 따라 힘써 일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속하신 사건과 연관해서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신명기 5:12-15절을 보면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 같이 안식하게 할찌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출애굽한 후에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과 교제하는 의미에서 구속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의미를 추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구별하신 제7일을 여호와의 안식일로 선포하시고 본인과 아들과 딸, 종들과 육축과 손님들까지도 아무 일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출 20:10).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생명이 끊어지리라고 엄중히 경고하셨습니다(출 31:14). 그러므로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한 것은 단지 일하지 않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일을 철저히 중단함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구속주이신 하나님과 충분히 교제하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있다’는 진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점점 희미하여져 갔습니다. 아모스 8:5절을 보면 아모스 시대의 사람들은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라며 탄식했습니다. 안식일 준수가 장사하는데 지장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엄중한 율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안식일을 지키기는 했지만 그 마음은 전혀 일터에서 떠나지 못했습니다. 안식일 준수는 형식화되었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마음은 사라져버렸습니다. 결국 안식일을 위해서 사람이 존재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마음 가짐이 이 모양이라면 나머지 날들에 대한 마음 가짐이 어떠했겠습니까? 안식일조차 먹고 사는 일에 마음을 빼앗긴 인간은 쉼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영광스러운 복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안식일에도 장사하고 싶어 했던 사람들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진리를 변명거리로 삼아 ‘안식일에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교제가 사라진 안식일은 전혀 사람을 위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욕망을 앞세우는 순간 안식일은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날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과의 충만한 교제를 누리지 못한 채 안식일을 보낸 사람은 다음 날부터 먹고 사는 일에 더욱 치열할 것입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활동은 사람으로 일의 노예가 되도록 하며 인간성을 상실하게 합니다. 바리새 운동은 하나님과의 교제보다는 안식일을 지키는 형식에 초점을 두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영광스럽고 복된 안식에서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제자들을 변호 해 주신 후 결론적으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28절을 보면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직역하면 ‘그러므로 인자는 또한 안식일의 주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준수를 안식일의 주인 되신 예수님과 연관시키도록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있는 자가 진정으로 안식일 법을 가장 잘 지키는 자인 것입니다. 안식일과 예수님의 관계는 바리새인들의 마음엔 전혀 없었던 주제입니다. 하지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그 복된 날을 주신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안식일보다 안식일을 주신 분이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님을 생각하지 않는 안식일 준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율법의 조항을 지키는데는 열심을 내었지만 안식일의 주인되신 예수님은 무시했습니다. 그러한 행동은 자기들이 정한 규정을 잘 지켜냈다는 뿌듯한 만족감 외에는 아무런 영광스러움도 복됨도 없습니다. 그렇게 안식일을 지킬수록 자기 의만 쌓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기능을 성취하신 분입니다. 신약의 성도는 이제 안식일이라는 어떤 특정한 날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쉼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참조. 마 11:28). 언제 어디서든지 예수님을 통해서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에는 안식일이라는 옛 형식 대신 ‘예수님과의 교제와 그분이 주시는 참된 쉼’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던 옛 형식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을 지키는 새 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이렇게 형식을 바꾸어 안식을 누리게 할 권한이 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 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날도 안식일 준수는 유대인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신약의 성도가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신약성경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비판받을 이유가 없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16절을 보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약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새 출애굽의 역사가 이루어진 이 신약시대에는 날과 달과 절기가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날이 주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일 준수라는 이 새로운 형식도 주님과의 교제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예배가 기독교인의 삶에 습관이 되기도 해야 하지만, 주님과의 교제가 없는 습관성 예배라면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주님과 교제하지 않는 주일 준수는 사람을 위한 것이 되지도 못합니다. 주일은 복되고 영광스러운 시간이기보다 아모스 시대의 사람들처럼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날이 될 것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처럼 주일도 사람을 위해 있습니다. 만일 이날이 정말 나를 위한 날처럼 생각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주님과의 관계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식일에 주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을 위해 밀밭 사이로 길을 내고 있는 제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안식일의 성취된 의미를 누구보다 잘 지키고 있었습니다. 비록 배는 고팠을지라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서 영광스러움과 복됨을 풍성히 누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복을 우리도 누리길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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