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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3:13-19
성경본문내용 (13)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14)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15)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16)이 열 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17)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18)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19)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강설날짜 2015-11-29

2015년 마가복음 공부


열 두 제자를 사도로 세우신 예수님


마가복음 3:13-19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택하여 사도로 세우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 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1:16-19절에 보면 처음 네 명의 제자들을 부르신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13-17절에서는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 본 3:7-12절에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오늘 본문에 보면 제자들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14절을 보면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무대가 바닷가에서 산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 본 대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편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일로 인해서 바리새인들이 헤롯당과 손을 잡고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막 3:7-12). 예수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제자들과 함께 바닷가로 물러 가셨습니다. 그때 유대뿐만 아니라 이방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몰려든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 후에 다시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오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왔습니다. 이에 열 둘을 택하여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로 세우신 사건과 관련해서 누가는 전날 밤부터 다음 날 아침 날이 밝기까지 밤 세워 기도하신 사실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6:12-13절을 보면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둘을 택하여 사도로 세우시기 전에 밤이 맞도록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통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 중에서 누구를 택하여 사도로 세워야 할까 하고 고민하고 하나님께 그 응답을 받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누가 열 두 사도로 세움을 입을지에 대해서 알고 계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후일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목요일에 있은 예수님의 기도를 언급하면서 그 사실을 가리켜 말하기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들을 당신이 받으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7:6-7절을 보면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열 두 사도는 원래 하나님의 것이었는데 자신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하나님 아버지로께로부터 받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누구를 자신에게 보내어 사도로 세우실 것인지를 알고 그 뜻에 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로 세움을 입는 열 두 제자 가운데는 예수님을 팔 자인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어떤 자인지를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6:70-71절에 보면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앞으로 어떻게 자신을 배반할 것인지를 다 아셨습니다. 유다의 배반은 시편 41:9절 “나의 신뢰하는 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유다의 배반은 하나님의 신비하고 거룩한 뜻 가운데 있는 일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서 밤 세워 기도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열 두 제자를 보내셔서 그들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아시는 가운데 그 뜻에 복종하시는 하나님과의 교통으로서의 기도인 것입니다. 이에 동이 터서 날이 밝아오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무리 가운데서 열 둘을 택하여 세우시고는 사도로 임명하셨습니다.

 

열 두 사도는 세상이 새로워져 주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때에 하나님 나라에서 ‘열 두 지파’를 다스리고 심판할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28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22:28-30절을 보면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열 두 사도는 새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 21:9-14절을 보면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열 두 사도는 새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곧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는 옛 형식이 담아내지 못하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담아내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만드신 새로운 형식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 열 두 제자를 부르셔서 사도로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4-15절을 보면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여기에서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신다’라는 것은 제자들을 예수님 곁에 두고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가까이 접촉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기 자신을 다 계시하여 보이십니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께 대한 인식이 점점 깊어지고 밝아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일반인이 가지고 있던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 미숙했던 지식을 고치며, 점점 더 풍성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를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메시아관을 바르게 정립해 나가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 사도들은 예수님의 신성과 성결을 맛보았습니다. 요한복음 17:8절을 보면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하신 이 기도에 보면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전과 달리 바른 그리스도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주어진 은혜입니다. 무리들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부분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부분적으로 주님의 행사를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열 두 사도들은 늘 주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모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주님의 행사를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전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열 둘을 사도로 택하시고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신 것은 열 두 사도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는,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전도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일은 예수님께서 하시던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예수님의 사역의 계승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0:1-2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사람’, ‘심부름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해서 보냄을 받은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주신 말씀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8:18-20절을 보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본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대위임령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며 자신들이 주께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또한 가르치고 지키게 하여서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열 둘을 사도로 세우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이 대위임령은 비단 열 두 사도들에게만 국한시켜서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열 두 사도를 위시하여 앞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모든 제자들에게 이 분부를 주셔서 사명으로 갖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 두 사도를 초석으로 시작해서 그들을 전형으로 하여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교사로 전도자로 나왔습니다. 이 대 위임령에 기초해서 볼 때 열두 사도들은 전도하고 가르치는 일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왕으로서 당신의 나라 백성을 다스리시는 통치를 실증적으로 나타내는 일을 해야 합니다. 통치자로 오늘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그 다스림을 실증하고 또 다스림을 가르치는 증거자로서의 임무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절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전도하고 가르치는 일로서의 예수님의 증인 노릇을 할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다스려 가시는 통치자로서의 예수님을 나타내 알게 하는 증인 노릇을 하는데 있어서도 초석으로 세움을 입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교회를 형성하였습니다. 이들을 통해서 최초의 교회가 탄생을 한 것입니다. 신약의 교회 곧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운 초석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20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하며 교회의 초석을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교회의 기초 노릇을 함으로 해서 온 세상에 교회는 확장되어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부르시고 사도로 세우신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사도들의 이 사명을 이어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택하여 사도로 세우신 열 두 사람은 누구입니까? 16-19절을 보면 “이 열 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고 했습니다. 마가는 열 두 사도들을 자신들의 이름이나 가족의 이름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복음서나 서신서들은 이 사도들 가운데 대부분이 장래에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에 대해서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다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정도입니다(3:19). 반면 성경은 나머지 사도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복음서와 서신서들은 열 두 사도들이 모두 함께 한 사역과 그 중요성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열 둘이라는 숫자가 중요하였기 때문에 유다가 자살을 하자 그를 대신 할 맛디아를 뽑아 사도의 수에 가입시켰습니다(참조. 행 1:15-26).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해서 그의 형제 안드레가 제일 먼저 언급이 됩니다. 그리고는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이 둘에게는 우뢰의 아들이란 의미의 ‘보아너게’란 별명을 더하셨습니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먼저 우뢰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그 사람들의 독특한 성격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실 때가 가까워질 때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시고는 사마리아를 거쳐 가셨습니다. 사마리아라는 동네에 이르러서는 유숙하기 위해 방을 구하려고 사자를 앞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신다는 말을 듣고 그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 일행을 맞아들이지 않겠다고 거절하였습니다. 누가복음 9:54절에 보면 돌아온 사자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는 야고보와 요한이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금방이라도 벼락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불같은 성격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성격에 따라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라 이름을 지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들에 의해 복음이 우뢰와 같이 천지에 진동해 나간다는 의미에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 다음은 빌립과 바돌로매 입니다. 이 둘은 한 동네 사람인데 바돌로매는 벳새다 사람으로서 또 다른 이름인 나다나엘이라고도 불리웠습니다. 그 다음은 마태와 도마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마태를 세리 마태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인 마태가 마태복음 9:9절에 나오고 있는 세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된 그 세리 마태라고 하는 사실을 암시하여 주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그 다음에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입니다. 다대오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가나안인 시몬과 가룟 유다입니다. 가나안인 시몬은 셀롯이라 하는 시몬이라고도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 가나안인 시몬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사도로 임명받은 시몬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두 사람인데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구별하기 위해서 또 다른 한 사람인 시몬은 가나안인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다 같이 ‘가나안인 시몬’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그런 그를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셀롯이라 하는 시몬으로 불렀습니다. 가나안인 시몬과 함께 또 다른 이름인 ‘셀롯이라 하는 시몬’은 누가가 쓴 또 하나의 서신인 사도행전 1:13절에서도 언급되고 있는데 그 뜻은 열심당의 당원인 시몬이라는 말입니다. ‘셀롯’이란 말은 헬라어이며, ‘열심당’, ‘열심당의 당원’이란 뜻입니다. 이런 그를 ‘가나안인 시몬’이라고 기록하고 있음으로 해서 가나안인 시몬이 ‘가나’ 또는 ‘가나안’ 출신이라는 뜻으로 오해되어 시몬의 출생지가 가나이라거나 이방 지역인 가나안 땅의 이방 사람이라는 것으로 오해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인 시몬은 가나안 족속 시몬이라는 의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별명입니다. 그를 셀롯 곧 열심당원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 말과 같은 말로 아람어를 음역한 가나안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이란 말은 열심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카나’에서 유래한 형용사입니다. 히브리말로 ‘카나’라는 말은 ‘아주 열정적인’이라는 뜻입니다. 아주 강한 질투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서의 열정이요, 열광이며, 여기에서 나오는 열심입니다. 그러므로 헬라어 원문에 의하면 가나안인 시몬은 열심당으로 불려지는 셀롯의 당원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가나안인 시몬이 이러한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이전에 가졌던 민족주의적 열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열정이 앞으로는 주님을 위한 열정으로 사용될 것이었습니다. 가나안인 시몬은 그런 사람으로 준비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 다대오와 구별되게 하기 위해서 ‘가룟인’이라는 별칭을 붙이셨습니다. 가룟인이란 유대의 소읍인 ‘게리옷 출신인’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복음서 기자는 모두가 한결같이 이 유다가 후에 예수를 팔 자라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2:22).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담을 새 부대를 만들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주님께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로 세우신 것은 이들과 함께 하시며 교육하시고 훈련하사 그들로 교회의 초석을 이루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세는 개인의 명예와 영화를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온 나라, 온 백성의 왕으로서 어떻게 구원하여 나가셔서 다스리시고 계시는지를 증거 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온전히 나타내 하나님의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파될 수 있도록 하게 하심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열 두 사도를 택하여 세우심으로 새 이스라엘을 세워가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움을 입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로 세우시고 새 이스라엘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비밀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사도들의 터 위에 굳게 세워져 가게 하시고, 사도적 교회로써의 사명을 잘 감당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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