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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4:21-25
성경본문내용 (21)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22)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23)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24)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25)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강설날짜 2015-12-20

2015년 마가복음 공부


등불 비유


말씀:마가복음 4:21-25

 

우리는 지난 시간에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해서 배웠습니다(4:1-20).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모든 비유의 근본입니다. 그래서 13절에 보면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찐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뇨”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시는데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알아듣는 사람은 알아듣게 하시고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아니한 자들이 돌이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11-12).

 

오늘 말씀은 ‘등불 비유’입니다. 오늘 이 비유의 말씀은 지난 시간에 살펴본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이어서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로 교훈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1절을 보면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등불을 가져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두움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등불을 켜서 ‘말’(movdio", 모디오스:건량 측정 단위, 약 9리터) 아래나 ‘평상’(klivnh, 클리네:침상, 식탁) 아래에 두지 않습니다. 등경 위에 둡니다. 이 비유의 말씀도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 안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담아 두셨기 때문에 그 진의를 못 알아 듣는 것입니다. 여기서 못 알아 듣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다 영적인 소경이며, 귀머거리라는 것입니다. 곧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 당시에는 성경을 잘 알고 성경대로 말씀을 지키며 산다고 생각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경이 아니며, 눈을 뜬 자들이기 때문에 빛의 자녀라고 스스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을 죄인 취급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이 전부 소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보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기를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까? 자기 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께서는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하시면서 침으로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른 후에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에 가서 씻었을 때 그 눈이 떠져서 밝은 눈으로 왔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바리새인과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온 자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죄인이 어떻게 눈을 뜨게 하는 표적을 행할 수 있느냐고 하며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소경과 그 부모를 협박하여 예수님을 부인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시키기로 결의하고 소경을 출교시켜 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소경을 찾아가 만나신 후에 “네가 인자를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네가 그를 보았다”고 하자 그 소경은 “주여! 내가 믿나이다”고 하며 절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9:39-41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요한복음 9장의 결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는 자는 보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는 자는 보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평소에 성경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소경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소경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왜 본다는 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숨겨지고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보면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드러내기 위해 숨겼다고 합니다. 나타내기 위해 감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비유로 말씀하심으로 숨기고 감춘 것은 드러내고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시는 의도를 볼 수 있습니다. 비유는 감추는 방식의 가르침이지만 그 최종 목적은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등불을 가져오는 목적이 말과 평상 아래 두려는 것이 아니라 등경 위에 두려함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이 땅에 가지고 오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세상을 비추는 참 빛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오신 것은 그 복음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이는 마치 사람이 등불을 가지고 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8:17절을 보면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감추어지고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나타나는 천국의 비유들이 감추어져 있다는 특징들이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13:44절에 보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3:31-32절을 보면 “천국은 마치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든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3:33절에서는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케 한 누룩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누룩이 가루 속에 숨어 보이지 않지만 그 가루 전부를 부풀케 하듯이 천국은 숨겨지고 감추어진 것이지만 반드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드러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의 복음으로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평소에 빛을 좋아하였는지, 아니면 어두움을 좋아하였는지 복음이 증거 되면 곧 드러나게 됩니다. 복음이란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다 폐기처분해 버립니다. 인간의 선함이나 착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만으로 의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이 이 땅에 찾아오실 때에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곧 등불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빛과 등불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이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이 빛이 사람들의 생명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명이 없기 때문에 이 빛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도리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요한복음 3:18-21절을 보면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려고 하는 것은 어두움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로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옵니다. 빛으로 오는 그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드러내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비유의 첫 번째 기능은 숨기고 감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아니한 자들에게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돌이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막 4:11-12). 그런데 비유의 두 번째 기능은 드러내고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유의 두 기능을 함께 말하면 ‘감추는 동시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드러내려고 감춘다’는 역설로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빛을 사랑하는 자와 어두움을 사랑하는 자를 선명하게 구별합니다. 우리 인생은 빛에 거하든지 아니면 어두움에 거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공동체는 오늘날 교회 공동체와 같습니다. 겉보기에는 그들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전부가 빛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엄중하게 선언합니다. 요한복음 3:19-20절을 다시 보면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라고 했습니다. 본인은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줄 착각할지라도 실상은 어두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실상을 선명하게 알려주면 중간 지대 속에 머물러 적당히 신앙생활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긴장합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사랑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지낼 수 없습니다. 빛을 사랑하는 반응을 보이든지 아니면 빛을 미워하는 반응을 보이든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자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여 숨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어둠 속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조차도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을 깨닫는 이해력이 어둡다는 사실, 곧 들을 귀가 어둡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빛 가운데 사는 줄로 착각하다가 마지막 날에 어둠 속에 있었음이 드러나는 사람일 것입니다. 마태복음 7:21-2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에 보면 등불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9절에서 말씀하신 말씀으로 비유로 교훈하기 시작하신 후에 반복해서 강조하신 경고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들을 귀가 있는 자 있고 들을 귀가 없는 자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죠.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뜻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알아듣는 자가 있고, 알아듣지 못하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제자들과 같이 알아듣는 자도 있었지만 바리새인들과 같이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복음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곧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들을 귀가 있는 자인지, 들을 귀가 없는 자인지 스스로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들을 귀가 있는 자입니까? 들을 귀가 없는 자입니까?

 

2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고 합니다. ‘삼가라’는 말은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너희가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는가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8:18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나의 세계가 무너지고 주님의 세계가 세워져야 한다고 고백합니까? 나의 뜻이 꺾이고 주님의 뜻이 세워져야 한다고 고백합니까? 내가 살고자 하는 것이 죽는 것임을 아십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기가 살고자 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세계를 세워가고자 하지 않습니까? 자기 뜻을 고집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자신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날마다 자기를 살려 달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자신을 축복해 달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다른 가정들보다, 다른 자식들보다, 다른 교회들보다 더 낫게 해 달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영광을 바라고 이렇게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까? 자기 영광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스스로 소경이 되어 있고 귀머거리가 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24b절을 다시 보면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친숙한 격언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격언을 조심하라고 경계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받으리니’라는 말은 서방 사본들에는 빠져 있습니다. 곧 이것은 원문이 아니라 필사자들이 추가한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더 받으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가 ‘prostivqhmi’(쁘로스띠데미)라는 동사인데 마가복음의 다른 곳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으므로 마가의 문체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더 받으리니’는 누가복음 12:31절과 마태복음 6:33절에 등장하므로 이들에 동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격언을 조심하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5절을 보면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예수님께서 이런 격언을 조심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있는 자는 받을 것이지만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누구든지 그가 알고 있는 것으로 처신하는데 따라서 가진 사람은 더 받게 될 것이지만, 가지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가졌다고 믿고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깨달아 이해하여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진리를 수용하는, 그러니까 진리를 순종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해야 그 믿음이 그를 그가 알고 있는 하나님 나라로 인도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분수에 어울리지 않게 자기의 편견된 지식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진리를 배척한다면 그는 자기가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씨앗의 원리입니다. 씨앗이 싹이 터서 열매를 맺게 되면 더 받지만 싹이 트지 못하여 죽거나 싹이 터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오는 새 출애굽의 원리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면 새 출애굽에 참여하여 영생을 얻지만 그렇지 못하면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마가복음 8:35절을 보면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데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서 정 반대의 운명이 정해집니다. 결코 유대인의 속담처럼 주는 대로 비례하여 공평하게 받을 수 있는 원리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의 문제는 생사를 가르는 사안입니다. 곧 구원을 받느냐, 멸망을 받느냐의 문제입니다.

 

사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해 주시는 가르침을 받았지만 배척을 하면서 등불의 빛을 보이지 않도록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아래에 두어 가리우는 일을 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 빛은 세상 속에 감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둠의 세력을 이기고 명확하게 그 모습을 나타내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다한 사람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여 하나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빛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로 나오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하여 주시고, 새 출애굽의 역사에 참예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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