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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10:13-16
성경본문내용 (13)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14)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16)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강설날짜 2016-06-05

2016년 마가복음 공부


어린 아이와 하나님의 나라


말씀:마가복음 10:13-16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을 꾸짖는 제자들에게 분노하시며 어린 아이들이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시는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은 10:1-12절 말씀을 사이에 두고 9:33-50절 말씀과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9:33-50절 말씀과 오늘 본문 말씀은 모두 어린 아이와 같은 자를 존중할 것을 가르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 말씀은 어린 아이와 같은 자가 왜 존중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 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여기서 ‘어린 아이’는 ‘paidivon’(파이니온)으로 유아로부터 12세까지의 아동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속죄일에 어린 아이들을 랍비에게 축복 받도록 데려오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습을 배경으로 볼 때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온 때는 아마 속죄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자들을 꾸짖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랍비에게 데리고 와서 축복을 받는 유대인들의 관습을 고려해 볼 때 제자들의 이러한 반응은 의외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을 꾸짖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행동과 생각을 교정하시는 말씀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행동과 생각을 교정하시고자 어린 아이와 하나님의 나라를 밀접하게 연관시키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4).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제자들은 어린 아이와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이 도리어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는 아마도 그들의 메시아관처럼 군사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시편 2편에서 예언하고 있는 것처럼 이방 나라를 질그릇 깨뜨리듯이 깨뜨리시는 군사적인 메시아관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군사적인 메시아관에 기초해서 예수님께서 가져오시는 하나님의 나라도 군사적으로 성취되는 성격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메시아가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세운다면 이러한 운동에 어린 아이들이 낄 틈이 없습니다. 도리어 방해만 될 뿐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이방인들과의 전쟁에 주역이 될 수 없습니다. 전쟁은 성인 남자들의 몫입니다. 독립전쟁과 정복전쟁을 앞둔 긴장 속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태평스럽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그들을 꾸짖은 것입니다.

 

우리가 마가복음 8장에서 살펴 본대로 베드로는 이미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꾸짖은 바 있습니다(막 8:32). 베드로는 예수님을 군사적인 메시아로 믿었습니다(막 8:29). 따라서 그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런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예수님을 꾸짖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을 꾸짖은 것도 제자들의 신념과 관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앞두고 있는 메시아 되신 예수님과 어린 아이들이 서로 걸맞지 않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독립 전쟁에서 승승장구하여 로마를 무찌르고, 나아가 온 세상을 정복할 군사적인 메시아였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들은 어떤 존재로 보였을까요? 그리고 그런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 어떤 자들로 보였을까요? 제자들의 눈에는 어린 아이들이나 그런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나 다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화가 났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을 꾸짖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14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행동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단순한 분노가 아닙니다. 자신의 정체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제자들의 오해와 관련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오는 것을 금한 이유는 제자들의 지독한 고정 관념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신앙 고백 이후에 자신의 고난에 대해서 거듭하여 가르치셨습니다(막 8:31; 9:31). 그러나 제자들은 이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메시아에 대한 고정 관념 때문이었습니다. 메시아에 대해서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고정 관념은 군사적인 메시아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반복해서 고난 받는 메시아이심을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님께서 군사적인 메시아로서 전쟁의 승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단지 그러한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생각에 토대하여 기대하고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싸웠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어린 아이들을 막은 것입니다. 즉 그들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을 당당하게 꾸짖으면서 데려오지 말도록 막았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틀렸다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고정 관념은 지극히 강했습니다.

 

이러한 고정 관념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되 자신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로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 당시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을 군사적인 메시아로 믿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이 오늘날 교회에서 성공신학과 축복신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말씀의 본의를 가르치며,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를 추구하면 시대에 뒤 떨어진 목회로 생각하고 배척합니다.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교회로 간주합니다. 그로인해 말씀의 본의를 가르치며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를 추구하는 것이 도리어 잘못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들 속에도 예수님을 군사적인 메시아로 믿는 고정 관념이 깊이 쓰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돌아봐야 합니다. 잘못된 메시아관이 우리들 속에 고정 관념으로 들어와 있지 않는지, 그로 인해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는지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도 제자들처럼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진 고정 관념은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관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군사적인 방식으로 도래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이러한 보편성은 제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생각이 옳다고 믿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숫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진리는 아무도 믿지 않아도 진리이며, 오직 한 사람만 믿어도 진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안전할 수는 있어도 진리를 선택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진리의 길은 좁습니다. 그길로 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13-14절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 가운데 종종 틀린 것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사람이 믿으면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는 고정 관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 생명을 얻는 진리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고정 관념이 있습니다. 이러한 고정 관념이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오는 사람들을 책망하는 행위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용납 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14). 오늘 본문 14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했을 때 ‘이런 자’란 어떤 자를 말하는 것입니까? 방금 전에 제자들에게 배척을 당한 어린 아이와 같은 자를 말합니다. 곧 사회 속에서 어린 아이의 지위를 가진 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낮은 자, 권력이 없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런 자들은 대부분 힘이 약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 나갈 수 있는 강한 자들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린 아이처럼 아무런 힘이 없는 자들의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오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런 성격의 것이고, 예수님께 그런 사람들이 오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따라서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막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린 아이들에 대한 단순한 호감에 토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이해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어린 아이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러한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여 어린 아이들이 오는 것을 금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관계를 토대로 하여 어린 아이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 15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막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파악하시고 제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기를 들고 군사적 메시아를 따라 전쟁에 참여하는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힘이 없는 어린 아이들과 같은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겸손히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 한다”고 하셨습니다(15).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받든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라는 뜻입니다. ‘받든다’라는 동사는 헬라어로 보면 ‘devcomai’(데코마이)라는 동사인데 ‘받다’, ‘영접하다’, ‘취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 한다”라는 말은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못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공로나 노력으로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히 받아들이는 사람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15).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힘으로, 즉 사람의 공로나 노력으로는 결코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는 은혜가 베풀어져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져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 허락이 된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이 나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올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기대하며 나오는 사람들을 막지 못하게 하심으로써 나타내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순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긍휼이 하나님이 부르시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베풀어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창세 전에 작정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 받는 메시아! 곧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군사적 메시아관을 가지고 들어가려는 자는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한 자들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습니다.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배척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온 하나님의 나라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의 고정 관념을 고집할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고정 관념을 따르는 것은 안전하게 보이지만 결과는 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멸망 길로 가는 것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소유한 고정 관념을 따르는 것은 안도감을 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믿는 길이지 하나님을 믿는 길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구원할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이 옳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철저하게 항복해야 합니다. 나의 생각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그 시대정신마저도 포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서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처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는 메시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구원의 방도입니다. 이 믿음에 있어야 ‘천국에서 누가 더 크냐?’라거나,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오는 것을 막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16절을 보면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안으시고 손을 그들에게 얹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는 제자들을 향하여서는 분노하셨지만 어린 아이들을 사랑과 온유로 대하셨습니다. 그들을 사랑으로 안아 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이와 같은 예수님의 본을 마땅히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가 문자적으로 순종하여 교회에서 어린 아이들을 사랑으로 영접하고 이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어린 아이는 사회적 약자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사랑과 온유로 대해야 합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사랑을 얼마나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도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막는 제자들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을 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리적 하나님의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이는 힘없고 돈 없는 자들을 무시하지는 않습니까? 오늘날 이 시대 교회는 돈이 있고, 힘이 있고, 지식이 있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자 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직분의 은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직분의 감투를 씌워줍니다. 그로인해서 힘이 없고 돈이 없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 곧 물리적으로 교회에 도움이 되어 보이지 않는 자들을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가 다 이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시대의 많은 교회가 제자들처럼 물리적 수단을 통해서 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며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을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막는 제자들의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이 시대 우리와 우리교회의 모습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는 분노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힘없고 연약한 자들, 사회적 약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을 방해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시간 우리 자신들과 우리 교회를 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린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는 제자들을 향해 분노 하신 주님 앞에서 우리 속에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회개하며 예수님의 본을 따라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어리석고 이기적이고 정치적인 행동으로 인해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막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분노를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행동으로 말미암아 연약한 자들이 실족하면 우리는 주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사랑으로부터 그들을 끊겠습니까? 누가 예수님께서 안아 주시고 손을 얻어 축복하시는 그들을 막아 설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막으려는 자는 제자라 할지라도, 그 누구라고 할지라도 우리 주님의 거룩하고 의로운 분노를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드는 자들의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드는 자들의 것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어린 아이들을 배척하는 제자들과 같은 마음을 버리고,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을 귀히 여기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히 고난을 받으시고 종교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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