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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10:17-22
성경본문내용 (17)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19)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20)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21)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22)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강설날짜 2016-06-12

2016년 마가복음 공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말씀:마가복음 10:17-22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길 가실 때에 달려와 꿇어 앉아 영생을 얻는 길에 대해서 묻는 한 부자 청년에게 영생의 길을 가르쳐 주신 사건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 예수님 앞에 무릎을 끓으며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7). 그의 질문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곧 영생의 길에 대해서 물은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이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9:43절에서는 ‘영생’이 ‘지옥’과 대조가 됩니다. 마가복음 9:43절을 보면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9:47절에서는 ‘지옥’과 대조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마가복음 9:47절을 보면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하나님의 나라’와 동의어인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는다’라는 표현은 무슨 뜻입니까? 마가복음 10:14-15절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다’라는 표현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다’라는 표현이 동일한 의미를 가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14-15절을 보면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는다’라는 표현은 ‘영생에 들어간다’라는 표현과 같은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라는 표현과도 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0:25-26절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다’라는 표현이 ‘구원을 얻는다’라는 표현과 같은 뜻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25-26절을 보면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0:30절을 보면 영생이 내세와 관계있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30절을 보면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한 사람이 영생에 관해 질문한 것은 단지 현세에서 죽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문제를 물은 것이 아니라 내세에서의 구원에 관해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궁극적인 구원을 얻기 위해서 현세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질문에는 내세에서의 구원을 위하여 현세에서의 불편함을 감수할 각오가 어느 정도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한 자는 내세에서의 구원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의문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행해야 하느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행함에 대한 해답을 예수님께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한 그의 확신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데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선한 선생이라고 부르는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1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자신의 선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선생님’이라고 표현한 그 표현에 담긴 전제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을 얻기에 합당한 행함을 제시하시리라는 확신은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의 밀접한 관련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합니다. 질문자는 그러한 밀접한 관련성을 전제하기에 ‘선한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선함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관련된 것입니다. 특히 구원을 얻기 위해서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그 기준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소견대로 구원을 얻기 위해서 선행을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함이 아니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선함의 기준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선한 선생님’이라는 표현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분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만이 선함의 기준임을 명확히 하신 것은 마치 자신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시며, 자신의 뜻을 주장하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 자기 비움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길에 관한 질문에 스스로의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이미 계시하신 말씀으로 답하셨습니다. 19절을 보면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성을 암시적으로 주장하기 위해서 하나님만이 선하시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자신의 신성을 주장하시는 것은 문맥에 잘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선한 선생님’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신 후에 이어서 나오는 대답이 자신의 권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에 토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19). 또한 20절에서 질문자가 ‘선생님’이라고 고쳐 표현한 것도 예수님의 이 말씀이 예수님 자신의 신성에 관한 주장이 아님을 암시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의 길을 묻는 자에게 새로운 길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19절을 다시 보면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계명들은 십계명에 담겨 있습니다. 다만 ‘속여 빼앗지 말라’는 말씀만 예외입니다. 여기서 ‘속여 빼앗지 말라’는 것은 말라기 3:5절과 신명기 24:14-15절에 나오는 비슷한 표현을 참고해 볼 때 ‘임금을 착취하지 말라’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의 적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라기 3:5절을 보면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신명기 24:14-15절을 보면 “곤궁하고 빈한한 품군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19절에서 ‘네가 계명을 아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므로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9:17절은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 이것은 율법을 지키면 산다는 원리를 제공하는 구약성경에 일치하는 말씀입니다(참조. 레 18:5; 신 4:1). 레위기 18:5절을 보면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했습니다.

 

‘계명을 지켜야 영생을 얻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행함을 낳는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26절을 보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방종하며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으로 계명을 지키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행함도 없지만 참된 믿음이 있는 사람은 행함이 있게 됩니다. 살인하는 자, 간음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거짓 증언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 부모를 버리는 자에게 과연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물론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자기들에게 믿음이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서 2:19절은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순종하지 않는 이런 믿음은 귀신들도 가진 믿음입니다(참조, 막 5:7). 그런 믿음으로 구원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야고보서 2:14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계명을 지키라고 하신 것도 야고보서와 같은 맥락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한 질문자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20절을 보면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21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는 그 사람에게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명령은 질문자가 어떤 계명을 지키고 있지 않는지를 암시합니다. 그는 아마도 가난한 자들의 것을 불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2절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 줍니다. 22절을 보면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물’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보면 ‘끄떼마’(kth'ma)라는 명사인데 ‘토지’를 가리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는 대부분의 번역 성경에서 일반 재산을 뜻하는 말로 번역되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본문의 뜻을 재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단어 ‘kth'ma’(끄떼마)는 구약 성경의 헬라어 번역인 70인 역에서 대부분의 경우에 ‘토지’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토지를 많이 가지는 것은 율법이 금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7:17절을 보면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레위기 25:23-28절을 보면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요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거든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지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율법에 따른다면 토지를 매매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임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임대한 토지도 희년이 되면 임대 기간이 끝나므로 토지를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질문자가 토지가 많았다는 것은 율법을 어기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은 단지 토지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토지를 돌려주지 않는 것은 남의 것을 계속 빼앗아 소유하고 있는 것이므로 도둑질입니다. 이것은 십계명을 어기는 일입니다. 질문자는 십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지키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 가지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이 부족함을 채우려면 그는 불법으로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그 토지가 언제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가난한 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질문자가 순종할 경우에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약속합니까? 21절을 다시 보면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는 말씀은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문맥상의 흐름으로 보면 ‘영생을 얻을 것이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불법으로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으면 영생을 얻을 보장이 없다는 말입니다. 율법 준수 대신 토지를 포기하지 않고, 가난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대신 나의 유익과 평안을 택하는 자에게 진정한 믿음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아마도 구원 받지 못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한 것이므로 우리가 그렇게 함부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율법을 준수하지 않는 그러한 사람에게는 구원의 약속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본문에서 구원의 약속은 토지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은 예수님의 약속에 토대하여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질문자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21b절을 보면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나를 좇으라’는 말씀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사역하는 제자로의 초청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토지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이 한 가지만 해결하면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사역을 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를 좇으라’는 예수님의 제자에로의 부르심은 아무에게나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몇 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1:17절과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안드레와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 등 처음 네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2:14절에 보면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실 때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질문자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자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2절을 보면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간절히 영생을 얻기를 원했지만 많은 토지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영생과 재물 사이에서 갈등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재물을 택했습니다. 그만큼 그 사람에게는 재물이 중요했습니다. 그는 내세의 영생과 현세의 재물 둘 다 취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길을 차단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충격을 받고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막 8:34). 오늘 본문의 질문자도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원래 나의 것이 아닌 토지(재물)를 당연히 포기해야 합니다. 남의 토지(재물)를 돌려주지 않고 자기를 부인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결국 오늘 본문의 한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곧 재물을 포기하지 않음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영생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늘 본문의 한 부자 청년과 같은 태도를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두 주인을 섬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24절을 보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부를 축척하는 사람, 그렇게 모인 부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은 재물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재물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은 진정한 믿음이 없으므로 구원이 약속되지 않습니다. 또한 그러한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의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제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사람은 보이는 교회에 소속되어 있으므로 기독교인이라 불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곧 영생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21-23절을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입니까? 아니면 주여 주여 하는 불법을 행하는 자입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오늘 본문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재물을 택하여 간 부자 청년과 같은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영생을 얻는 자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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