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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10:46-52
성경본문내용 (46)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47)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48)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49)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50)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51)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52)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강설날짜 2016-07-03
2016년 마가복음 공부

소경 바디매오를 고치신 예수님
 
말씀:마가복음 10:46-52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소경 거지 ‘바디매오’(디매오의 아들이라는 뜻임)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8:22-26절 말씀 곧 벳새다 소경을 고쳐주신 사건과 함께 감싸기 구조(inclusio)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8:22-10:52절까지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었던 일들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길이 어떤 길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로인해서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실 것을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책망했습니다(8:32).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권력의 자리를 향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누가 더 크냐며 논쟁했습니다(8:34).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자를 보고는 자기들을 따르지 않는다며 귀신 쫓아내는 일을 금지시켰습니다(9:38). 또한 그들은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사람들을 꾸짖었습니다(10:13). 이런 모습들은 다 약자를 무시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그들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마침내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요구했습니다(10:37). 이처럼 권력을 추구하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십자가를 향하여 가는 고난의 길이 권력을 향하여 가는 승리의 길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마치 눈먼 자와 같이 영적인 소경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46-47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 일행이 여리고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들과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사람들로부터 나사렛 예수시라는 말을 듣고 소리 질러 말하기를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다윗의 자손’이란 메시아의 칭호입니다. 예레미야 23:5-6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고 합니다. 그가 왕이 되어 지혜를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예언의 말씀을 따라서 ‘다윗의 자손’은 메시아의 칭호로 불리웠습니다(참조. 솔로몬의 시편 17장).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을 때 그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한 것입니다. 물론 그는 당시의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군사적인 메시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로 고백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소경 거지였던 그가 어떻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라는 사실을 알고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그는 소경으로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직접 눈으로 본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믿음은 아마도 들음에서 났을 것입니다. 그는 눈으로 보지 않고도 단지 사람들로부터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에 관해 듣기만 하고도 예수님이 메시아시다는 믿음에 도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바디매오의 믿음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많은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목격한 사람들의 그 믿음보다도 더 크고 놀라운 믿음입니다. 52절에 보면 그의 이러한 믿음은 예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게 됩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52).

바디매오는 사람들로부터 나사렛 예수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이와 같은 그의 요청은 자신의 눈을 뜨게 해 달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5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런 바디매오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그는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볼 때 바디매오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한 그의 외침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눈을 치유하여 보게 해 달라는 간구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외침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자신의 눈을 치유하여 보게 하실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그가 이러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소경을 치유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께서 언제, 어떤 소경을 치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는 마가복음 8:22-26절에 나오는 벳새다 소경의 치유 사건이나 그 외의 마가복음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소경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소경을 치유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사야 35:5-6절 말씀에 입각하여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이사야 35:5-6절은 메시아가 오셔서 이루실 일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사야 35:5-6절 말씀을 보면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경의 눈이 밝게 될 ‘그 때’는 언제입니까? ‘그 때’는 이사야 35:4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35:4절을 보면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소경을 치유하는 표적은 구원의 시대에 등장하는 구원자인 메시아의 표적입니다. 그러므로 바디매오는 소경을 치유하신 표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던 것입니다. 이 메시아 되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눈을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눈을 치유해 달라고 요청함으로써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자신의 믿음을 나타내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디매오에게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이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디매오의 믿음이 표출되자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48절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바디매오를 꾸짖어 “잠잠하라”고 하였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바디매오로 하여금 잠잠하라고 꾸짖었을까요? 바디매오의 믿음에 동의 할 수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그의 고함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였을까요? 아니면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와 같은 거지를 상대하실 수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는 바디매오의 믿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었지만 바디매오처럼 고함을 침으로서 예수님께 실례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행동은 군중들로부터는 인기가 없습니다. 믿음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 거슬리고 귀에 거슬립니다. 세상은 믿음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믿음을 몰아냅니다. 예수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 곁에 있던 사람들이 바디매오의 갑작스러운 믿음의 외침을 불쾌하게 생각했듯이 오늘날도 예수님 가까이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면 불쾌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을 말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을 먼저 만난 사람들이 예수님 가까이 서 있으면서 참된 믿음을 가진 자가 예수님께 가까이 오는 것을 막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이런 장애물 앞에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굴복하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48b절을 보면 그는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바디매오의 반응은 그의 믿음의 진정성을 보여줍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자신의 눈을 치유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바디매오는 이 확신에 입각하여 행동으로 옮겼던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그의 행동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바디매오는 물러서지 않고 집요하게 행동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더 강력하게 도전하였습니다.

4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물러서지 않고 더욱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는 바디매오를 보시고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저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소경 거지 바디매오를 부르며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고 하였습니다. 바디매오는 크게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내심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디매오의 불안의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불안은 무리들에 대한 불안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잠잠하라고 꾸짖은 그들이 이제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안심하라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부른다고 하였던 것 같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초청에 바디매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그는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50절을 보면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겉옷을 버려두고 예수님께로 달려 나왔습니다. 거지 바디매오에게 겉옷은 자신의 전 소유와 다름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바디매오의 모습은 재물이 많으므로 예수님을 따르라는 요청에 선듯 따르지 못하고 고민하며 예수님을 떠나간 부자 청년의 모습과 대조를 이룹니다(막 10:17-22).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말에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는 부르심에 마지못해 나온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부자 청년은 즉시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지만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참조. 막 10:31).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나아온 바디매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51a절을 보면 “네게 무엇을 하여 주시기를 원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에게 부자 청년 때와는 달리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단지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으셨습니다. 이에 바디매오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51b절을 보면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에게는 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소원을 말했습니다. 바디매오의 대답 중에 ‘선생님이여!’라는 호칭은 ‘라부니’를 번역한 것입니다. 아람어 ‘라부니’는 히브리어 ‘랍비’의 강조형인데 ‘라부니’는 ‘랍비’보다 더 존칭어입니다. ‘라부니’는 심지어 랍비들 자신들이 하나님을 부를 때 사용한 단어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라부니’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께서 직업적인 랍비에 해당한다고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로 생각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서 그렇게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의 요청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52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가라’라는 이 말씀은 ‘평안히 돌아가라’는 뜻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축복해 주시고 구원을 선포 해 주셨습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52). 여기에는 두 가지 함의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그의 육신의 눈이 치유가 되어서 밝히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의 믿음을 축복하시고 그의 눈을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시고 만물을 밝히 보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의 눈을 치유해 주신 것은 그의 믿음에 있음을 확인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52).

그러면 바디매오에게는 어떤 믿음이 있었습니까? 그에게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로서 이사야 35:5-6절의 말씀대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실 것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믿음은 너무도 확실하여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하며 외쳐 불렀습니다. 사람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더욱 크게 ‘다윗의 자손이여!’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보기를 원한다’는 간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소경을 치유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는 믿음이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지식에 그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행동으로 드러나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해서 그는 소경의 눈이 뜨여 세상을 밝히 보게 되는 치유의 은혜를 맛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믿음으로 치유 받았다고 선언하심으로써 그의 믿음의 행위를 인정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치유를 선언 하시자마자 바디매오는 눈이 치유가 되어 보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메시아가 되심을 입증하여 보여 주셨습니다. 소경 치유는 이사야 35:5-6절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메시아의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죄사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았음을 말해 줍니다.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디매오가 눈을 치유함 받고 보게 된 후에 그는 길에서 즉시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디매오는 치유함을 받은 후에 즉시 길에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소경됨의 치유 자체를 기뻐하는 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소경을 고치는 표적을 행하신 예수님의 정체를 확인하고 메시아 되신 예수님을 길에서 따랐던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 ‘길’, ‘따르다’라는 표현들은 제자도를 표현하는 말들입니다. 그러므로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길에서 따랐다”라는 표현은 그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따라갔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바디매오의 믿음은 단순히 치유를 위한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믿음이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따르는 믿음이었습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죄사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바디매오의 믿음은 단순히 자신의 병을 고침 받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바디매오의 믿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이었습니다. 곧 바디매오의 믿음은 예수님의 제자로 따르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그의 믿음은 인정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고상한 믿음은 대제사장 같은 권력자도 아니고, 율법학자나 바리새인들처럼 종교 지도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소유가 많은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거지 소경이었습니다. 믿음은 신분과 관계가 없고, 권력에 비례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은 부와도 무관합니다. 건강과도 무관합니다. 믿음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아무 보잘 것 없는 소경 거지에게서 발견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인정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눈 앞에는 보잘 것 없는 그래서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무시하는 그런 거지 소경이 보인 것이 아니라 담대하고 위대한 믿음을 가진 고귀한 믿음의 사람이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을 보시는 예수님의 눈 앞에서는 큰 자도 작게 보이고, 보잘 것 없는 자도 크게 보이시는 것입니다. 이 불꽃같은 눈 앞에서는 권력자도 미약하며, 부자도 빈곤하며, 종교지도자도 천박하게 보일 뿐입니다. 오직 믿음을 가진 자만이 고귀하게 보일 뿐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보잘 것 없는 가난한 거지라도 예수님께서 보실 때는 그는 믿음에 부요한 자였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는 소경 거지는 보잘 것 없는 자였지만 예수님의 기준으로 볼 때는 참으로 진리를 보는 선견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의 주이시므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결코 불행한 자가 아닙니다. 가장 복 받은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소경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이 사건은 눈먼 자의 비참하고 불행한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겨 치료해 주시는 자비를 베푸는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이적은 치료의 목적으로서 행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계시의 목적으로 행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소경 거지 바디매오의 믿음을 축복하시고 그의 눈을 치유해 주신 이 이적은 앞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상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의 상태와 상관이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종교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죽임을 당하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고 승리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의 영광스러운 나라가 임할 때에 주의 곁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서로 누가 크냐며 싸웠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에게 바디매오의 눈을 치유해 주시는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서 제자들이 영적인 눈을 뜨기를 원하셨습니다.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진정한 의미를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고난 받고 종교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삼일 만에 살아나는 자신을 메시아로 믿는 믿음에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바디매오의 믿음을 축복하시고 그의 눈을 치유해 주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믿음을 우리에게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그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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