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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도행전 8:26-40

2004년 7월 18일 설교

                                                   복음이 세계로

말씀:사도행전 8:26-40
요절:사도행전 8: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지난 주에 우리는 성령을 받게하는 능력을 구한 시몬의 문제를 통해 오늘날 우리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이야기로 집사 빌립이 성령에 이끌리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도한 사건입니다. 사마리아 선교역사를 기록하면서 시몬 사건과 함께 이 사건을 기록한 목적이 무엇일까요?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도한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고자 하는 뜻이 무엇일까요? 이 시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도한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음성을 듣고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가 사마리아 성도들을 위해 안수했을 때 성령이 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역사를 보고 마술사 시몬은 사도들에게 돈을 주고 성령을 받게 하는 능력을 구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시몬의 죄악을 지적한 후 책망하셨습니다. 그 후에 두 사도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사마리아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마리아 교회는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이런 때에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나타나 무슨 방향을 주었습니까? 26절에 보면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였습니다. “일어나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천사는 빌립에게 사마리아를 떠나 가사로 가는 길까지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길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광야였습니다. 빌립의 입장에서 볼 때 이방향은 순종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사마리아를 떠나 광야로 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종이면 누구나 성령의 역사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창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을 떠나 광야로 가라는 명령을 하나님의 뜻으로 영접하고 곧바로 순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빌립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즉각 순종하여 광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광야길로 갔을 때 어떤 역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마침 그 광야길로 마차와 함께 많은 수행원을 거느린 큰 무리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7절에 보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내시가 예루살렘에 경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중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에디오피아’는 이집트 남쪽에 있는 나라로 오늘날 수단에 해당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구스’라고 불렸는데 ‘함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에디오피아의 왕은 태양의 아들로 숭배되었으며 너무나 신성시되었기 때문에 세상사를 맡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사는 그의 어머니인 여왕이 맡아보았는데, 그 여왕의 이름을 ‘간다게’라고 불렀습니다. 빌립이 만난 내시는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재무부 장관’에 해당되는 직책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도중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유대교의 가르침에 동의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율법의 명령을 따라 중요한 절기에 예루살렘 성전에 직접 예물을 드리려 나온 순례자였습니다. 그는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병거 곧 수레에 앉아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29절에 보면 이 때 성령이 빌립에게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은 순종하여 달려가서 “읽는 것을 깨닫느뇨?”라고 물었습니다(30). 그러자 그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31절에 보면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빌립에게 청하여 병거에 올라 앉게 하였습니다. 그 때 에디오피아 내시가 읽고 있었던 성경구절은 32-33절에 보면 이사야 53:7-8절이었습니다.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내시는 이사야서 중에서도 가장 위대하고 심오한 ‘고난의 종’에 관한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가 승리한다는 이상하고도 신비로운 기록을 담고 있는 장을 읽고 있었습니다. 내시는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묵상하고 묵상하였지만 도저히 그 뜻을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33절의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참으로 알기 어렵습니다. 원문을 그대로 직역하면 “그가 낮을 때에 그의 판단이 치워졌다(빼앗겼다)”가 되는데, 이 역시 알송달송합니다. 칼빈은 이 구절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낮아졌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켜서 영화롭게 하셨다’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우리는 33절 끝의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는 문장을 살펴볼 때, “낮을 때에 그 판단이 치워졌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고난 당하실 때 의로운 판단을 받지 못하시고 불의를 당하셨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산헤드린 앞에서와 빌라도 앞에서 합당한 재판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죄인들에 의해 불의를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내시의 관심은 이 말씀의 뜻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고난 당하시고 결국에는 승리한 그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점에 대해서 빌립에게 물었습니다. 34절에 보면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사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구약의 이 고난의 종에 대한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과연 누구를 가리켜 말하고 있는지 정말 알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베드로전 1:10-1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상고하니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내시는 고난 당하지만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하나님의 종이 이사야 자신을 말하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이에 빌립은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리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사야의 글 중에서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선지가가 가리킨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후 부활승천하사 승리하신 사실을 증거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 및 빌라도에 의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며 제자들에게 부활신앙과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심으신 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오순절 날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그를 믿고 세례받으면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빌립은 이같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했습니다.

이 때 내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36-38절을 보십시오. 내시는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으로 복음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자 했습니다.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내시는 병거에서 내려 빌립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멀리 에디오피아에서 온 이방인 내시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복음이 아프리카로,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생명보다 귀한 복음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39절을 보십시오. 빌립과 내시가 물에서 올라올 때 주의 영이 홀연히 빌립을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내시는 흔연히 자기 길을 갔으며 다시 빌립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빌립이 어떻게 되었나 어리둥절해하며 길가에 멍하니 서 있는 내시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시는 굶주린 영혼에 만족을 얻었기 때문에 빌립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흔연히 길을 갔다”고 했습니다. ‘흔연히’라는 말은 ‘기쁘게’라는 말입니다. 내시는 복음을 영접하고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는 말씀을 깨닫고 새생명의 감격을 느끼며 새로운 사랑에 벅차 기쁨이 충만하여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그는 예루살렘과도, 심지어 이사야 선지자와도 상관없는 새로운 진리를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님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마리아선교 역사 중에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도한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세계선교 역사는 승리하신 주님의 주권적인 역사임을 알게 하고자 하심입니다. 시편기자는 시편 68:18절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을 인간에게서 또는 패역자 중에서 받으시니” 그리고 31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 이 말씀들과 연관시켜 볼 때 높은 곳으로 오르신 분, 사로잡은 자를 이끌고 오시는 분,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든 에디오피아를 보신 분, 그는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게 하셨던 것입니다. 빌립이 그에게 다가가기 이전에 벌써 그리스도께서 에디오피아 내시의 마음에 성령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빌립에 앞서 그 마음에 불만족스럽게 하셨으며, 자신의 무지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준비시키시고 자신의 종을 도시를 떠나 광야로 보내어 이와 같은 만남을 주선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이사야의 글 중 고난의 종에 관한 글을 읽은 것도 하나님의 섭리요, 빌립이 이 내시에게로 보내어진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를 떠나 광야로 간 것도, 내시에게 다가가 복음을 증거한 것도 빌립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역사였습니다. 천사가 빌립에게 사마리아를 떠나 광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빌립에게 병거로 다가가라고 하셨습니다. 빌립은 다만 성령께서 이루시는 역사에 순종했을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빌립에 앞서서 이방인인 에디오피아 내시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시고 주권적으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세계 선교 역사는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주권적으로 이루어가시는 역사입니다. 우리는 그 역사에 다만 은혜로 쓰임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주권적인 뜻과 섭리가운데 세계 선교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둘째로, 이 사건을 통해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게 될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전도자 빌립이 에디로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사건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례적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저자가 이렇게 자세히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에 저자의 의도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복음이 이제는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저 멀리 에디오피아에서 온 이방인에게까지 전파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이를 통해서 사도행전 1:8절에서 주님께서 예언한 대로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미라아와 땅 끝까지 전파될 것을 보여주고자 함입니다. 이것은 사도들과 복음 전도자들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 위로와 확신을 가져다 줍니다. 사마리아에서의 승리의 역사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땅끝까지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게 합니다. 앞으로 사도행전의 모든 역사는 이 역사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주권적으로 세계선교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앞서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세계선교 역사를 우리 앞서 이루시고 계십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과 형편을 바라볼 때 세계선교와는 무관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 하나 추스르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형편과 소원과는 상관없이 주권적으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성령께서 이루시는 이 주권적인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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