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32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도행전 9:1-9

2004년 7월 25일 설교

                                                     위대한 선택

말씀:사도행전 9:1-9
요절:사도행전 9:3,4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우리는 지난 주 사마리아에서 이루시는 성령의 승리의 역사 중에서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사건을 배웠습니다. 이 사건은 복음이 세계로 뻗어나가게 될 것을 보여주는 사인입니다. 이제 복음은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를 벗어나 전 세계를 향해서 힘차게 뻗어나가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 부터는 복음이 어떻게 땅 끝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에 대한 기술입니다. 오늘은 그 역사에 있어서 가장 핵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울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선택하시는 사건입니다. 이 선택은 위대한 선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께서 이방선교를 위해 핍박자 사울을 선택하신 이 위대한 선택을 통해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사울에게 임한 은혜가 우리 가운데도 충만히 임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이방선교를 위해 사울 한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시고자 하셨습니다. 9:15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사울을 택하신 것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이방에 전하기 위해 사울을 태초부터 작정하시고 때가 되매 당신의 그릇으로 택하여 세우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선택은 이방 선교를 위한 참으로 위대한 선택이었습니다. 사울은 길리기아 다소 출신이었습니다. 다소는 헬레니즘이 지배하는 이방 땅입니다. 그의 부모는 둘 다 유대인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바리새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는 다소 출신이지만 히브리적인 교육을 받으며 철저한 유대인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의 부모들은 사울이 헬라의 문화에 동화되지 않을까 염려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부모들은 사울을 다소에 있는 대학에 보내지 않고 예루살렘에 있는 가말리엘의 문하생이 되게 하였습니다. 사울은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면서 또한 헬라주의자였습니다. 그는 헬라 문화와 히브리 문화 둘 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은 이방 선교를 위해서 가장 접합한 조건을 갖춘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선교를 위해서 사울을 영원전부터 예정하시고 섭리 가운데 준비시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당신의 이름을 이방에 두기 위한 당신의 그릇으로 택하셨습니다.

1,2절을 보면 사울은 주의 제자들을 향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다메섹에 있는 주의 제자들을 잡아오기 위해 대제사장에게 가서 체포 영장을 받아왔습니다. 8장과 9장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향한 적개심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배웠듯이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그는 공회원의 일원으로서 스데반의 죽음에 한 표를 던졌습니다. 그는 스데반이 죽임을 당할 때 그의 옷을 맡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핍박하는데 앞장 섰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줄 알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한 하나님의 원수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와 그의 모든 추종자들을 잔멸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특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여전히”라는 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의 죽임에 가담한 후 그는 여전히, 곧 조금도 구애됨이 없이 주의 제자들에 대한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습니다. 사울의 주의 제자들을 향한 핍박은 감정적이고 갑자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이들에 대한 증오의 정도가 점점더 강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예수와 그를 믿고 따르는 무리들은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들이라는 분명한 신앙의 소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확신 속에서 유대교에 열심이었던 사울은 “교회를 잔멸하기 위해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는 것”을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사명으로 인식했던 것입니다(8:3). 사울은 이제 예루살렘의 핍박을 피해 다메섹으로 이주한 ‘주의 제자들’, 즉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여러 무리들까지도 결박하여 옥에 가두고자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대제사장에게 가서 체포 영장을 받아왔습니다. 바리새파인 사울이 사두개파인 대제사장에게 가서 공문을 받아왔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예수와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는가를 단적으로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같은 유대교 안에 있었지만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는 물과 기름이었습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사두개파는 헬라주의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몸의 부활도 영도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반면에 바리새파들은 헤브라이즘을 표방하였습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유대주의적이었으며 영적이었습니다. 이들은 몸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이처럼 히브리 민족 안에서도 자기 민족의 전통을 수호하기 위해 투쟁했던 바리새파는 문화와 자유에 대한 헬라적 이상을 수용하고 인간의 현세의 삶을 탐닉하며 초자연적인 것을 부인했던 사두개파와는 적대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요, 바리새파인 사울이 사두개파인 대제사장에게 가서 공문을 받아 왔다는 것은 아주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을 잔멸하기 위해서는 이런 자존심도 다 버렸습니다. 적대관계에 있던 자들과도 손을 잡았습니다. 이처럼 사울은 예수와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향한 적개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더 강해졌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고 그의 도를 좇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고 잔멸하고자 하는 일념에 가득하여 다메섹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부활의 주님께서는 이런 사울을 어떻게 당신의 종으로 사로잡으셨습니까? 3,4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부활의 주님께서는 먼저 빛으로 그를 사로잡으셨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가까이 왔을 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그 빛이 구체적으로 어떤 빛이였는지는 우리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빛은 너무나 강한 빛이었습니다. 그처럼 강한 사울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울이 밤낮 삼일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패했다고 한 것을 볼 때 그 빛이 얼마나 강열한 빛이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사울이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계획 가운데서 엄청난 사건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임한 강열한 빛으로 인해 사울은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그는 눈을 떳으나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사울은 초자연적인 역사 앞에 무릎을 꿇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얼마나 기이하며, 얼마나 깜짝 놀랄만한 일입니까! 놀란 사울은 소리쳤습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이 때 사울의 영혼에 더욱 기절초풍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부활의 주님께서 사울을 사로잡아 자신의 택하신 그릇으로 삼으시는 사건은 초자연적이고 극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늘로서 빛이 비추이고 음성이 들리자 사울의 적개심에 나왔던 모든 편견과 증오심이 사라졌습니다. 신적인 임재 앞에 선 사울은 주님이라고 부르며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울이 완전히 깨어지고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로잡히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 사건은 사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뀌어 놓은 사건이었습니다. 예수에 대한 잘못된 모든 생각과 편견이 파하여 지고 온전히 그의 종이 되게 만든 사건입니다. 나중에 사울이 자신의 경험을 간증하는 대목에 보면 “나는 나사렛 예수라”는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려왔다고 했습니다.

다소의 사울에게 예수란 어떤 존재였습니까? 멸시와 미움을 받아 불명예스럽게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 예수가 살아계셨습니다. 그가 멸시를 받아 버리운 바 되었다고 생각했던 그 예수가 하늘의 영광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가 증오했던 그 예수가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음성으로 자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전적으로 예수님께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완전히 예수님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역사였습니다. 이 사건 이후 사울은 결코 돌아서지 않는 굳센 믿음의 소유자가되었습니다. 그는 오직 주님의 포로가 되어 주님께서 원하시고 명하시는 일만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사울을 당신의 종으로 삼으시는 사건은 주님의 절대주권적인 역사였습니다. 이 선택은 개인적이고, 인격적이며, 불가항력적인 역사였습니다. 사울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는 역사였습니다. 사울이 절대적으로 순종하지 않으면 안되는, 결코 거역할 수 없는 신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역사였습니다. 주님은 절대주권적이고 불가항력적인 방법으로 사울을 사로잡으사 당신의 택한 그릇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를 통해 이방에 당신의 이름을 전파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이 선택은 위대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선택은 포행자요, 핍박자요, 주님의 원수로 행하던 자에게 임한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저자 누가가 왜 부활의 주님께서 사울의 택하심을 이렇게 극적이고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주님의 절대주권과 불가항력적인 위대한 선택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역사임을 증거하고자 한 것입니다. 사울은 예수에 대한 적개심에 사로 잡혀 그를 믿고 따르는 무리들을 진멸하고자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울이 알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역사를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사울의 목적과 계획은 주의 제자들을 일망타진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제에 있어서 부활하신 주님의 더 큰 목적과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걸음에 불과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선택과 부르심은 불가항력적인 역사요, 절대주권적인 은혜의 역사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뜻을 이런 불가항력적인 방법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에 선택함을 받고, 쓰임받게 되는 것은 절대적인 주님의 뜻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입니다. 다메섹에서 이 사건은 사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진멸하던 복음의 원수가, 주와 복음을 위해 자신을 산제사로 드려지게 하였습니다. 사울은 주님의 택한 그릇이 되어 이방의 빛으로 세계선교 가운데 귀하게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사울에게 임한 이 위대한 선택이, 이 위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신 줄 믿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임한 주님의 선택은 극적인 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루어진 주님의 선택은 주님의 절대주권적인 역사요, 불가항력적인 역사입니다. 사울을 극적인 방법으로 사로잡으신 주님께서 지금도 당신께서 택하신 자들을 사로잡으사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사울에게 임한 주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도 충만히 임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모든 것이 깨어지고 주님의 종으로 사로잡힘바 되게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택한 그릇이 되어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파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받는 복된 인생들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401 [사도행전 7장] 순교의 면류관 스데반 사도행전 7:54-60 손재호 3535
400 [사도행전 8장] 복음이 사마리아로 사도행전 8:1-13 손재호 2447
399 [사도행전 8장] 사마리아에서의 승리 사도행전 8:14-17 손재호 2202
398 [사도행전 8장] 시몬의 죄! 사도행전 8:18-24 손재호 2798
397 [사도행전 8장] 복음이 세계로 사도행전 8:26-40 손재호 2832
» [사도행전 9장] 위대한 선택 사도행전 9:1-9 손재호 2326
395 [사도행전 9장] 아나니아와 사울 사도행전 9:10-22 손재호 3326
394 [사도행전 9장] 바나바와 사울 사도행전 9:23-30 손재호 2449
393 [사도행전 9장] 든든히 서 가는 교회 사도행전 9:31 손재호 2435
392 [사도행전 9장] 애니아와 다비다 사도행전 9:32-43 손재호 3539
391 [사도행전 9장] 승리와 자유 사도행전 9:32-43 손재호 2208
390 [데살로니가전서 1장] 바울의 감사 살전 1:2-4 손재호 2009-11-15 5101
389 [데살로니가후서 2장] 바울의 감사! 살후 2:13-15 손재호 2010-02-14 5509
388 [여호수아 10장] 여호수아가 기브온 거민을 구원하다 file 수 10:1-14 손재호 2017-03-26 900
387 [여호수아 10장] 아모리의 다섯 왕과 그 땅을 취하다 file 수 10:15-43 손재호 2017-04-02 835
386 [여호수아 11장] 이스라엘이 가나안 북방을 취하다 file 수 11:1-23 손재호 2017-04-09 899
385 [여호수아 12장] 모세와 여호수아가 정복한 왕들 file 수 12:1-24 손재호 2017-04-16 1025
384 [여호수아 13장] 요단 동편의 기업 분배 file 수 13:1-33 손재호 2017-04-23 831
383 [여호수아 14장] 갈렙이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다 file 수 14:1-15 손재호 2017-04-30 1306
382 [여호수아 15장] 유다 지파의 기업 분배 file 수 15:1-63 손재호 2017-05-07 83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41 Next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