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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도행전 9:10-22

2004년 8월 8일 설교
                                                   아나니아와 사울
말씀:사도행전 9:10-22
요절:사도행전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오늘 말씀은 사울에 대한 두 번째 단계로서 앞으로의 사역을 위해 아나니아를 통해 사울을 도우시는 사건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께 사로잡힌 사울은 앞을 보지 못한채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조용히 다메섹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삼일 밤낮 식음을 전폐한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울을 위해 주님께서는 아나니아를 준비하시고 그를 통해 사울을 돕게 하셨습니다. 아나니아의 도움으로 사울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고 변화를 받았습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자가 이제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증거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아나니아를 준비하시고 그를 통해 사울을 당신의 택하신 그릇으로 빚어가시는 주님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사렛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은 무론 남녀하고 잡아 가두기 위해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기세 등등하게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을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강한 빚으로 사로잡으셨습니다. 주님께 사로잡힌 사울은 그 당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나약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직가라는 거리에 있는 유다라는 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는 식음을 전폐한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울을 당신의 종으로 빚으시기 위해 주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10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준비하셨습니다. 아나니아는 본문의 기록과 22장에서 사울의 간증 때 잠시 이름이 언급되는 정도의 평범한 제자였습니다. 그는 공식적인 직임을 맡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집사도 아니었고, 사도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22장 사울의 간증에 보면 그는 유대인으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인품과 신앙이 굉장히 성숙한 제자였습니다. 바울은 아나니아를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22:12). “율법에 의하면”이라는 말을 볼 때 그는 헬라인이 아니라 히브리인이었습니다. 히브리인으로서 히브리 민족의 종교 교육을 받았지만 헬라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란 사울을 인도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아나니아는 히브리인이었습니다. 주님은 사울을 돕기 위해 히브리인으로서 모든 유대인들로부터 칭찬을 듣던 성숙한 아나니아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를 통해 사울을 당신의 종으로 빚으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역사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과거나 현재에나 성령님께서 사도들과 상관없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8장에서 보았듯이 성령님께서는 집사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 선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또한 집사 빌립을 통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선교와 세계 선교 역사를 사도들이 아닌 집사 빌립을 통해서 이루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당신의 절대주권으로 복음역사를 이루어가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성령님께서는 집사들조차도 상관없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주님의 이 역사 방법은 오늘 날에도 매우 유익한 교훈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사도도 집사도 아닌 평범한 제자를 도구로 삼아 장차 이방의 개척자적인 선교사가 되어 당시 소아시아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헬레니즘 자체를 그의 깊고 성령 충만한 사역을 통해 새롭게 탄생시킬 사람에게 충만한 영적인 축복을 주도록 하셨습니다. 곧 이방 선교의 주인공이 될 사람을 무명의 신자를 통해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이루시는 역사는 직분과 상관없이 당신께서 주권적으로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아나니아는 평범한 무명의 제자로서 이방선교의 빛으로 쓰임받을 사울을 세우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이 주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주권적으로 사람을 택하여 쓰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에 쓰임받는 것이 큰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아나니아를 통해 어떻게 사울을 도우셨습니까? 10-18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환상 중에 아나니아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아나니아야!” 그 때 아나니아가 대답했습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아나니아의 반응 즉각적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을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11-12). 예수님은 아나니아에게 다소 사람 사울을 찾아 안수하여 그의 눈을 뜨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때 아나니아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3-14절에 보면 아나니아는 다소 사람 사울이라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나니아는 다소 사람 사울에 대해서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에게 많은 해를 끼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다메섹에 온 것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을 결박하기 위해 온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반발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에게 가서 안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반문했습니다. 아나니아의 반발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아나니아의 항변을 인내심 있게 들으며 그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하시고 복종할 것을 권하셨습니다. 15-16절에 보면 “주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사울에게 두신 주님의 계획을 들은 아나니아는 즉각 순종하였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이 머물고 있는 집으로 갔어 그에게 안수하며 말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이 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18절에 보면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아나니아의 말대로 눈에서 비늘이 벗겨져 다시 보게 되었으며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사도의 손도 아니요, 집사의 손도 아닌 일개 평범한 제자의 손에 의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평범한 제자 한 사람을 보내어 이방인과 임금들 앞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할 자신의 택한 그릇 위에 안수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손을 얻고 주님께 복종하는 자세로 “형제 사울아! 주 ・・・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즉시 보게 되었고,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성령 충만함을 받은 뒤에 아나니아는 계속해서 그가 세례를 받아 죄를 씻어 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물세례로서 과거의 죄와 결별을 선언하고 자기 안에 일어난 영적인 변화에 동의한다는 외적인 표시였습니다. 이에 사울이 일어나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졌습니다. 사울은 아나니아의 도움으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원수가 담대하게 예수를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하면 치를 떨던 자가, 예수 믿는 자라면 남녀를 무론하고 씨를 말리고자 하던 자가, 도리어 예수를 증거하는 선봉장이 되었습니다(20-22).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모든 유대인들을 굴복시켰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참으로 놀라운 주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해 위대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핍박자 사울을 사로 잡으셔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 일에 아나니아가 귀하게 쓰임받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역사에 이름없는 한 평범한 제자를 사용하셔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듯이 지금도 이름없는 자들을 택하셔서 당신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이름없는 우리가 주님의 절대 주권 가운데 이루어 가시는 구속역사에 쓰임받게 된 것이 큰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름없는 자들을 택하사 당신의 역사에 쓰시며, 당신의 놀라운 구속역사를 주권적으로 이루어 가심을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우리도 아나니아처럼 언제든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 주님께서 이루어가시는 구속역사에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2절의 이야기는 아나니아와 사울이 대면한지 적어도 2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눈을 뜨고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울은 아라비아로 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갈리디아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시내산에서 2년 동안 주님과 인격적인 사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기간은 사울이 주님의 종으로서 부르심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2년 동안 주님과 개인시간을 가진 사울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습니다. 과거에는 예수 믿는 자들을 결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왔지만 지금은 나사렛 예수를 통한 생명의 도를 전파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는 핍박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위대한 사도로 다메섹에 돌아온 것입니다. 그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였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출발이었습니다. 즉 복음이 이방땅으로 확장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사울의 모습을 보십시오. 과거 예수 믿는 자들을 결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오던 사울의 모습과 현재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사울의 모습을 비교해 보십시오.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얼마나 은혜로운 변화입니까? 참으로 우리 주님은 위대하신 주님이십니다. 위대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몇 가장 중요한 영적인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본문은 살아계신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다스리시고, 또한 그 백성들을 통하여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시며, 그를 통하여 사람을 인도하시어 세상을 향한 당신의 역사하심을 확장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나니아에게 보인 환상과 사울에게 보이신 환상, 그리고 그들을 만나게 하시는 이야기들을 볼 때 살아계신 주님, 곧 부활의 주님께서는 지금도 자신의 사역을 행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리스도께서 멀리서 계시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가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할 것처럼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맡기신 후 우리가 굽어 살펴 달라고 설득하기 전에는 결코 내려다보지 않는 분으로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본문의 이야기를 명심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살아계시며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적당한 장소에 적당한 사람을, 적당한 사람에게 적당한 메시지를 보내십니다. 우리는 이 주님을 바라보고 믿어야 합니다.

둘째로,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성령이 임의로 불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주권적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께 어떤 특별한 행위를 해 달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권적으로 이루시는 성령님의 역사에 겸손히 순종하면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사도도 아니고, 집사도 아닌 평범한 제자의 손이 사울에게 놓여지자 성령 충만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주권적으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주권적으로 이루어가시는 성령님의 역사에 겸손히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귀하게 쓰임받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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