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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도행전 9:23-30

2004년 8월 15일 설교

                                                        바나바와 사울

말씀:사도행전 9:23-30
요절:사도행전 9: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사로잡으셨습니다. 그 후 그를 당신의 종으로 빚으시기까지 두 명의 제자, 곧 아나니아와 바나바를 사용하셨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아나니아를 통해 사울을 도우시는 주님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바나바를 통해 사울을 도우시는 주님을 통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사울은 아나니아의 도움으로 눈을 뜨고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그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교제를 나누며, 공식적으로 주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이렇게 된 데에는 바나바의 도움이 컸습니다. 이 시간 바나바를 통해 사울을 도우시는 주님을 배우고 은혜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사울이 아라비아로 갔다가 거기서 돌아와 다메섹을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그의 고향 다소로 돌아가는 일년의 사건입니다. 사울은 바나바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관계성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사울은 교회로부터 자신의 직분 맡은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까지 경과된 시간은 약 3년이었습니다. 23절 첫 머리에 보면 “여러 날이 지나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 날이 지났다”라는 말은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아나니아의 도움으로 변화를 받은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것을 말해 줍니다. 갈라디아서를 참조해 볼 때 약 2년 정도의 기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여러 날 동안에 과연 사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우리는 그에 대한 해답을 갈라디아서 1:16-17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사울은 이 불명확한 “여러 날” 동안 주님의 부르심을 감당하기 위해 주님과 개인적인 교제와 성령 충만함을 덧입기 위해 아라비아의 한적한 장소로 갔습니다. 그 장소는 사울이 이미 잘 알고 있던 장소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울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사도된 자들과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그 부르심을 주님 앞에서 감당하기 위해 아라비아로 갔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주님과 개인적인 깊은 교제와 성령의 능력을 덧입기 위해 기도하기를 원했습니다. 사울은 헬라문화의 영향 아래에 놓여있던 다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었습니다. 그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어릴적부터 히브리 전통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종교적인 확신 곧 유대교의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와 그의 무리들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예수와 예수 믿는 자들의 씨를 말리고자 작정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닥치는대로 잡아 옥에 가두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자신이 멸시를 받아 죽었다고 생각했던 예수가 살아서 영광 중에 나타나 자신을 사로잡는 기이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이 부활의 주님으로부터 이방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그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먼저 주님과 깊은 개인적인 교제를 갖고자 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울을 사로잡았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청천벽력과 같은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신이 확신해 왔던 종교적인 신념과 이제까지의 모든 삶이 온통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핍박하는 이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였지만 홀로 그 분과 교제하며 의논할 시간을 갖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한적한 곳에 나아가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의논하는 사울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서 그가 그리스도께 받은 일들을 얼마나 자주 언급하고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고린도서를 쓰면서 “내가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하나의 예에 불과할지모르지만 사울의 아라비아 생활에 대해 충분한 의미를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사울은 아라비아에 있는 동안 그리스도와 밀접하고 친밀하고 인격적이며, 결정적이면서도 분명한 교제와 대화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사울은 그곳에서 자신을 충만케 하신 성령님의 조명을 통하여, 옛것 곧 율법을 새 것 곧 복음의 빛에 비추어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것을 통해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복음 안에 구원과 자유가 있음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온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복음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라비아에서의 생활은 바울이 이방의 사도로서 사는데, 곧 주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좇아 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그 시간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확신과 성령 충만함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이방의 사도로서의 부르심이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사울은 그리스도의 종이요, 이방의 사도로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새롭게 태어난 사울은 무엇을 했습니까? 아라비아의 한적한 곳에서 주님과 교제하며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울은 다메섹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사울은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생명의 위협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그가 어떻게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습니까? 처음 다메섹에 올 때 그가 잡아 가두고자 했던 그들, 곧 예수 믿는 성도들이 그의 탈출을 도와 주었습니다. 그가 죽이고자 했던 바로 그들의 도움을 통해 사울은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사울을 광주리에 실어 성벽으로 달아 내려 다메섹을 탈출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빌립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놀라운 기적의 방법으로 사울을 탈출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회오리 바람으로 그를 구출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법으로 그를 구출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도리어 인간적으로 볼 때 굴육적인 방법으로 그를 탈출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주는 놀라운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제자들의 자애로운 사랑을 계시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논의하는 기간을 보낸 사람도 가장 평범한 방법으로 자신의 일을 행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때때로 불명예스러운 상황 속에 빠질 수도 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어려움에 빠질 때 빌립처럼 극적인 방법으로 구출해 주기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역사해 주지 않으면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방법은 극적인 놀라운 방법으로 역사하기도 하지만 또한 때로는 가장 평범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인식할 때 시험에 들지 않게 됩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항상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다메섹에서 빠져 나온 사울은 어디로 갔습니까?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바울은 그곳에 도착하여 제자들을 찾았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그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이 찾고 있는 것은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제자들은 사울을 두려워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사울을 두려워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과거 그토록 예수를 미워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잔멸하고자 했던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은 변화를 받은 후 제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공식적으로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과 교제나누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무서워하여 함께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는 누구를 통해 사울을 돕도록 하셨습니까?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는 일찍이 사울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나바는 레위인이었습니다. 또한 사울이 출생했던 시실리아 만에 가까이 위치해 있던 구브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어떻게 잘 알고 있었는지는 우리는 잘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도움으로 사울은 제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27절에 보면 바나바는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설득하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으며,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담대하게 예수의 이름으로 말했던 것을 상세히 증거했습니다. 바나바의 설명을 들은 제자들은 경계심을 풀고 사울을 형제로 받아 드렸습니다. 사울은 바나바의 도움으로 베드로의 손님이 되어 40일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며 제자들과 교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를 통해 사울은 공식적으로 주님의 종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참으로 섬세하시고 신실하신 주님이십니다. 사울을 택하시고 그가 당신의 종으로 살기까지 당신의 종들을 준비하셔서 그를 섬세하게 도우셨습니다. 핍박자 사울을 두려워하던 예루살렘 제자들에게 사울을 소개하고 보증하기에는 바나바가 합당한 인물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우리가 앞에서 공부했듯이 자신 소유의 밭을 팔아 그 값을 다 사도들 앞에 갔다 놓은 인물입니다. 그 일로 그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과 사도들로부터 존경과 신임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로서 인품이 훌륭하고, 어떤 자도 품고 섬기는 내면성이 있는 자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런 바나바를 준비하시고 그를 통해 사울을 돕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를 통해 사도들과 교제하며, 공식적으로 주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참으로 우리 주님은 섬세하신 분이십니다. 바나바를 통해 사울을 도우시는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주님께서 택하신 우리들과도 항상 함께 하시며,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 때를 따라 도우실 줄 믿습니다.

바나바의 도움으로 제자들과 교제하게 된 사울은 무엇을 했습니까? 29절을 보면 사울은 예루살렘에서도 담대하게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였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과 변론하였습니다. 여기서 “변론했다”라는 말은 행 6:9절을 제외하고는 이곳에 꼭 한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6장에서 스데반이 헬라파 유대인들과  변론했다고 했는데 그 때 사용된 말과 동일한 말입니다. 스데반이 헬라파 유대인들과 변론할 때 사울도 그 변론을 들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것도 봤습니다. 그는 스데반이 죽는 것을 마땅히 여기며 지켜보았었습니다. 이제 바울 자신이 그의 죽음을 만족하게 여긴 사람, 곧 스데반의 사역을 그대로 대신 짊어지고 감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사울은 과거 어리석은 자신의 죄과를 보상이라도 하듯이 스데반이 변론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스데반이 했던 그대로 그들과 변론하기를 계속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경우와 똑같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유대인들은 스데반을 죽이고자 한 것처럼 사울을 죽이고자 혈안이 되었습니다. 22장에 보면 이 때 주님께서는 사울에게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방향을 주셨습니다(22:17-18). 사울은 다시 한번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예루살렘을 빠져 나갔습니다. 예루살렘을 빠져 나간 사울은 가이사랴를 거쳐 고향 다소로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부활의 주님께서 사울을 놀라운 방법으로 선택하시고, 그를 당신의 종으로 준비시키심을 살펴봤습니다. 사울을 부르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준비시키셔서 사울을 돕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사울을 당신의 종으로 빚어가셨습니다. 사울을 택하시고 당신의 종들을 통해 사울을 당신의 종으로 세우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종들을 택하시고, 섬세하게 도우십니다. 우리가 이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겠습니다. 우리가 이 주님을 바라 볼 때 낙심치 아니하며, 주님의 종들을 통해 당신의 종으로 준비되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울과 같이 주님 앞에서 부르심을 감당하며, 주님의 도움을 통해 당신의 종들로 잘 준비되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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