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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도행전 9:31

2004년 8월 22일 설교

                                            든든히 서 가는 교회

말씀:사도행전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오늘 말씀은 한 구절입니다만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기록되지 않는 어떤 사실들을 한데 뭉뚱그려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의 이야기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을 암시하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에서 12장까지는 사울이 역사에서 사라지고 다시 베드로가 역사의 중심 인물이 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사울의 회심에 관한 이야기와 베드로의 사역에 관한 이야기를 갈라 놓는 분기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본문에 보면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든든히 서 가고”라고 했는데 이 표현은 이제까지 사도행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표현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교회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든든히 서 가고”라는 말씀을 통해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31절을 다시 한번 읽어 봅시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대체로 이 구절은 교회가 평안했다는 결과를 알리는 말처럼, 그리고 그 원인을 사울의 회심에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말처럼 생각되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 이상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이 다만 교회가 평안을 얻게 되었다는 결과만을 알리는 내용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러한 평안은 일시적인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교회가 “든든히 서 가는데” 있습니다. 사도행전 역사를 보면 평안은 곧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박해가 다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든든히 서 가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 가는 것은 계속되어서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는 든든히 서 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게 된 원인 가운데 사울의 회심이 일조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보다 더 많은 원인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라는 말이 그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관심은 집사 스데반과 빌립과 다소의 사울이 회심한 사건에 쏠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기록된 이것만이 성령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의 전부가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역사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사건들만이 기록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성령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많은 역사가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박해를 받아 흩어진 많은 제자들을 도처로 보내셔서 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온 세상 가운데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누가는 이 구절을 통해 암시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라는 말은 이와 같은 모든 역사를 총망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기록된 역사가 하나님 역사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사도행전에서 볼 수 없었던 교회에 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든든히 서 가고.” 이러한 표현은 이전에 사도행전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개념입니다. 여기서 “교회”라는 말이 공간적인 의미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집니다. 첫부분은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든든히 서 가고”이며, 둘째 부분은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입니다. 이것은 계시의 두 국면으로서 첫 부분은 교회 그 자체에 관한 계시이며, 둘째 부분은 교회의 사역에 관한 계시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본문 말씀을 살펴 보기 전에 교회라는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서 먼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회(ecclesia, 에클레시아)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불러 낸다’(call out)라는 뜻입니다. 이로 보건대 교회라는 것은 민족들과 종족들 가운데서 불러내어 구별된 집단 곧 전적으로 새로운 집단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낱말이 사용된 것을 사도행전에서 찾아보면 매우 재미있습니다. 사도행전 7:38절에 보면 “이 사람이 광야 교회에 있었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더 정확히 번역하면 “광야의 총회”(assembly)가 있었다라는 뜻입니다. 이 문구는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교회는 히브리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에클레시아를 특별한 백성 곧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이제는 헬라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헬라 말 에클레시아는 전적으로 자유인들로만 구성된 모임을 가리킵니다. 노예는 에클레시아의 회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에클레시아는 통치 기능을 가진 집단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말은 그 두 가지 개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교회(에클레시아)는 하나님께 택함받은 백성들의 공동체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라는 말은 앞서 두 세 번 정도 사용되었습니다. 2장에 보면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시니라”(2:47)고 했는데, 흠정역에서는 그 구절을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교회에 더하게 하시니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구원받는 이들을 더하게 하셨음으로 교회에 더하게 하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좀더 나아가 5장에 보면 “온 교회가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5:11)고 했습니다. 또 8장에 가서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8:2)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이때까지의 교회는 모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교회는 확장된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흠정역에서는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퍼져 있는 교회들”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여기서 볼 때 유대의 교회, 갈릴리의 교회, 사마리아의 교회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퍼져 있는 교회가 하나의 교회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유대인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경멸하여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렀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 사이에는 적대감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십시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퍼져 있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유대만을 위한 교회나 갈릴리만을 위한 교회나 사마리아 만을 위한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 안에는 종족적인 편견도, 영원한 대립도 없으며, 지리적으로 여기다 저기다하는 다툼도 없습니다. “예루살렘이다, 그리심산이다”고 다툰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과의 다툼과 같은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교회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기록 가운데 이 구절에서 최초로 기독 교회의 공간적인 보편 개념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경에서 말하는 보편교회에 대한 올바른 교회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는 하나입니다. 이런 분명한 교회관을 가지고 있을 때 개교회주의로 흐르지 않습니다. 도나투스들과 같이 우월주의에 빠져 분리주의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바로 세워가게 됩니다. 우리가 보편교회로서의 올바른 교회관을 가지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잘 세워 가길 바랍니다.

누가는 사울의 회심을 마무리 하면서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누가가 말한 “교회가 든든히 서 간다”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말은 교회가 불완전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든든히 서 가고 있었습니다. 누가는 교회가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회가 앞으로 진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그는 교회가 최종적으로 완성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 무엇도 교회를 파멸시킬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는 박해와 핍박 속에서도 교회가 ‘주님의 거룩한 총회’가 되기 위해 자란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마다 즉 개개의 교회들마다 서로 연결하여 완전한 성전이 되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엡 2:21). 핍박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흩어져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머무는 곳마다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던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요 4:21-23)는 말씀이 성취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지역성과 상관없이, 모든 지리적인 울타리를 일소해 버리는 보편교회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온전한 교회를 향하여 든든히 서 가고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든든히 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달을 때 보편교회의 부분들을 놓고 비판하지 않게 됩니다.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진보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완성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완전한 교회를 본적이 없습니다. 교회는 세워지지 않았으며, 세워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완성을 향해 든든히 서 가는 중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반쯤 진행된 것을 놓고 다투고 있습니다.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문제 많은 교회를 보고 우리는 비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의 우리 교회는 아직 기초를 놓고, 뼈대를 세우고 있는 중일 뿐 완전한 건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완성된 건물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 때 현재의 부족함을 보고, 현재의 문제점들을 보고, 우리는 교회를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지도 않게 될 것입니다. 완전을 향해서 날마다 지어져 가는 것을 소망 가운데 바라보며, 그 역사에 기쁨으로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부족한 교회의 모습을 보고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더욱 우리는 비판하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완전한 교회를 향해 든든히 서 가는 교회를 소망 가운데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가 든든히 서 가는 교회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의 두 번째 부분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진행한다”라는 말은 단지 삶의 습관 즉 주를 경외하며 성령의 위로를 받아 살아간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진행하여”라는 말은 무목적성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항상 목적이 있음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이 낱말은 예수님께서 지상명령을 내리실 때 사용하셨던 말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의 기록을 보더라도 예수님은 똑같은 낱말을 사용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도 역시 오늘 본문에 이와 똑같은 낱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는 교회의 각개 지체들의 생활 방식을 묘사한 것 아니라 바로 “완전한 교회를 향하여 나아가는” 교회의 사역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란 왕이신 그리스도의 과업을 수행하도록 보냄을 받은 개개인들의 집합체입니다. 이처럼 누가는 교회가 이와 같은 기능, 곧 왕의 과업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성취하고 있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완전한 교회를 향해 나아가는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를 경외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초기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이중적인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님으로서 최종적인 권위를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또한 한편으로 그 분은 모든 종들 중에 가장 크신 분으로서 고난과 수고와 진통의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의 지도자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경외함으로 진행한다”라는 말은 교회의 생명이 주님의 통치와 그 분의 권위에 복종하며 또 그의 권위를 주장하는데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교회의 생명은 세상에 뛰어들어 상처받고 지친 영혼들과 만나고 도처에서 타락한 인생들을 건지기 위해 고난을 받는데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역사는 “성령의 위로로” 가능합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 오시는 보혜사 곧 자기 백성의 곁에서 부르짖는 분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주님이 떠나신 뒤 대신 오셔서 남아 있는 제자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위로하시는 위로자이십니다. 또한 성령님은 위로자이실 뿐만 아니라 권고자 곧 떠나가신 주님께 탄원하시는 변호자이십니다. 헬라말 파라클레토스(보혜사)는 이 두 가지 뜻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구절을 “성령의 위로하시는 탄원으로 나아가며”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교회는 맡은 과업을 수행하였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란 곧 보냄을 받은 이들의 의식 속에 주님이 살아계시게 하여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증거, 전파하도록 하며 모든 사람들로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계시하게끔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말미암아 양적으로 질적으로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교회는 풍성하여졌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볼 때 오늘날 우리의 교회도 그와 같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하심이 충만한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풍성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온전한 교회를 향하여 든든히 서 가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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