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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이사야 11:1-9

2004년 12월 12일 설교

                                                        물이 바다 덮음같이

말씀: 이사야 11:1-9
요절: 이사야 11: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오늘 말씀은 이사야에게 임한 성탄 메시지입니다. 11장을 기록할 당시 이사야는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라는 앞을 보나 뒤를 보나 위를 보나 아래를 보나, 온통 나라가 썩을 대로 썩어서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절망 가운데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꿈이 무엇입니까? 1절에 보면, 앙상한 줄기에서 싹이 나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이었습니다. 이 새의 줄기에서 날 한 싹은 다윗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날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놀라운 희망의 역사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라본 희망의 역사가 무엇입니까? 공동체에 있던 모든 상처와 고통이 치유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시간 이사야의 꿈이 나의 꿈이 되길 바랍니다. 이사야의 희망이 나의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탄을 통해 이루어질 놀라운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탄의 은혜와 기쁨이 충만하길 바랍니다.

     이사야가 예언하던 시대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된 절망적인 시대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베가 왕과 아람(시리아)의 르신 왕은 초강대국 앗수르와 전쟁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두 나라는 남유다를 전쟁에 강제로 끌어들이려고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남유다의 아하스 왕은 공격해 오는 동맹군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앗수르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왕이 앗수르의 종이 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유다를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 왕은 앗수르왕 디글랏빌레셀에게 공물을 보내고 스스로 그의 종이 되었습니다. 유다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앗수르에 대한 예언이 이사야 10장에 나옵니다. 이사야 10:34을 보면, 앗수르는 ‘빽빽한 삼림’과 같은 강대국이었습니다(사 10:34). 웬만한 바람이 불어 와도 삼림은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에스겔 31:3에 보면, 앗수르는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삼림의 그늘 같으며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 같았다고 했습니다. 앗수르가 백향목과 빽빽한 삼림 같았다면, 유다는 어떤 나무와 같았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새’는 다윗 왕의 아버지입니다. 이새의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난다는 표현에서, 지금은 뿌리만 빼고 윗둥치는 모두 날라가버린 나무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뿌리만 있는 나무를 보고 열매를 기대할 사람이 있을까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새의 뿌리’만 남았다면 뿌리 외의 것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새’는 시골에서 양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아들 다윗도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이런 이새의 가문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아름답고 풍성한 나무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새 가문은 이스라엘 왕국을 통치하는 왕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나무를 풍성하게 해 주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유다를 징계하셨습니다. 유다는 앗수르와 이집트의 포로가 되었다가, 앗수르를 정복한 바벨론에게 잘려 나갔습니다. 이사야는 자신이 살고 있던 때의 아하스 왕이 앗수르를 의지하는 것을 통해, 앞으로 앗수르에게 시달리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유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동시에, 이사야가 잘려 나갈 유다의 모습과 함께, 죽은 것 같은 뿌리에서 한 싹이 나와 줄기가 되고, 줄기에서 다시 싹이 나와 가지가 되고, 가지에서 열매를 맺게 될 것도 보았습니다. 그는 엄청난 생명력을 지닌 뿌리를 보고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그러면 이새의 뿌리에서 난 한 싹은 어떤 일을 합니까?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보잘것 없어 보이던 줄기에 여호와의 신이 임했습니다. ‘여호와의 신’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한 싹’은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메시야는 이전의 왕들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3-5절을 보면,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시대에 예언했던 아모스 선지자는 당시 사회상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팔고, 신 한 켤레 값에 빈민을 팔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 처넣어서 짓밟고 힘 약한 사람들의 길을 굽게 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자에게 드나들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암 2:6-8). 참으로 그 시대는 뇌물과 거짓말과 죄악이 날뛰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메시야가 오시면 지혜와 총명을 받았기 때문에 세상을 정직하고 정확하게 심판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강림했기 때문에 그의 즐거움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메시야는 바로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누가복음 4:18-19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이사야 61장을 인용). 이사야 11:2에서 ‘여호와의 신’이 임한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누가복음 4장에서 바로 자신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성령이 임하셨을 때, 예수님은 백성들을 죄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잘못된 길로 가던 백성들의 신앙을 회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써 비로소 세상은 희망을 회복했습니다. 강대국들에게 의해 잘려 나간 이스라엘의 생명은 예수님으로 인해 살아나고 풍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예수님의 탄생이 던져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예수님은 가장 절망적인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중에는 죄로 인해 자존심과 비전이 잘려 나간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의 실패로 인해 뿌리처럼 땅 속에 얼굴을 처박고 우울하게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다가도 비참하게 시간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내게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뿌리만 남았다는 것은 사실상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뿌리만 남은 것 같은 우리 인생에게도 새로운 싹을 낼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이 희망이요, 생명의 싹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것 같았던 희망이 살아납니다. 예수님이 연약한 싹이셨지만 세상의 희망이 되신 것처럼, 예수님이 나를 다스리시면 내가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성탄절을 통해 희망의 싹이요, 생명의 싹되신 예수님을 통해 내 인생의 희망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 공동체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3절을 보면, 예수님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 교회의 머리와 뿌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성탄절은 그런면에서 예수님이 우리 교회의 머리되시고, 우리 교회의 기초가 되심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머리와 기초가 되실 때 우리 공동체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으면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회개를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이 찔리고 죄가 드러날 때 비통한 마음이 생기지만 그때 마음이 즐겁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헌신하고자 할 때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아픔이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행복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즐거움을 회복하는 신앙 생활입니다. 이 세상에 발을 딪고 사는 우리들은 하나님 외의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유혹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회복하는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6-8절을 보십시오. 메시야가 오시면, 자연 세계도 회복됩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여기서 ‘그 때’는 메시야가 오시고 성령께서 임하신 때입니다. 그 때에는 적자생존의 질서가 사라집니다. 그 때가 되면, 창조의 질서가 회복하게 됩니다. 곧 만유가 회복됩니다. 타락하기 전의 에덴 동산처럼 만유가 아름답게 회복됩니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고 독사와 장난칩니다.

       이처럼 창조 때의 질서가 회복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9절을 보십시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메시야가 임한 곳에는 피흘리는 적자 생존이 없으니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습니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주님을 아는 지식이 이 땅에 가득하게 됩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이 땅에 가득하게 될 때 남을 해치거나 상처를 주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올바른 지식을 얻습니다. 그 때는 해됨도 상함도 없게 됩니다. 여기서 ‘해됨과 상함’은 ‘상처’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주님이 오셔서 물이바다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할 때 모든 상처가 치유됩니다. 슬픔의 눈물은 그치고 감사의 눈물이 흐릅니다. 마태복음 12:17-22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이사야 61장의 예언을 성취한 메시야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61장에는 메시야가 상처를 치유하시는 분으로 나옵니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 화관을 씌어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사 61:1-3, 표준새번역). 할렐루야! 예수님은 이 땅에 메시야로 오셔서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과는 싸우셨지만, 상처받은 민중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의 모든 상처를 싸매어 주셨습니다. 세리의 착복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사람, 율법적인 신앙교육으로 죄의식에 짓눌린 사람, 너무 가난한 집에서 자라 병들고 굶주린 사람, 불안정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비참하게 살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와 상처를 치유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의미는 세상에서 상처받은 영혼이 치유받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 눈물로 통곡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미움으로 서로 마주하기가 껄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줍니다. 이로 인해 내 영혼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방황할 때가 많습니다. 심령에 은혜와 기쁨을 상실하고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불 때도 있습니다. 이런 상처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치유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릴 때만이 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통치를 받을 때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상처와 아픔과 고통이 치유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실 때 우리에게는 더이상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습니다. 이것은 먼 훗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천국에서만 이루어지는 얘기가 아닙니다. 현재, 지금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자에게 이루어집니다. 과거도 그랬고 지금도 예수님을 믿으면, 현재 내가 예수님의 통치를 받으면 모든 상처가 치유됩니다. 성탄의 계절을 맞아, 상처받은 분들이 모두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통치를 받음으로 치유되는 희망을 갖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상처와 아픔과 고통이 치유함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누우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고 노는 것과 같이 온전한 치유의 역사, 회복의 역사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충만히 이루어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내 옆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보십시오. 모두 상처받은 사람들입니다. 용서와 치유,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내 형제, 자매입니다. 상처를 주거나 받기에는 너무 연약한 싹들입니다. 우리가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여도 살기 힘든데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오셔서 목숨을 버려 살려 내신 새 싹들입니다. 너와 나는 예수님의 치유를 믿는 한 형제, 자매입니다. 성탄의 계절을 맞아, 우리 공동체가 먼저 치유함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을 치유하는 치유의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이 땅에서 치유의 역사를 이루신 것처럼, 지금도 치유의 역사를 이루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이 예수님의 통치를 받을 때 우리는 서로 상처를 치유받을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치유자로 임하신 예수님의 탄생을 감사 찬양합니다. 이 세상 가운데 주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바다 덮음같이 충만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든 해함도 상함도 치유함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이 세상 가운데 충만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탄의 은혜와 기쁨이 우리 공동체 가운데 충만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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