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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히 4:12-13
성경본문내용 (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13)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강설날짜 2012-08-12

2012년 8월 12일 한결교회 주일예배강설
히브리서 제10강

 

말씀과 성령의 조명하심

 

말씀 : 히 4:12-13

 

히브리서 저자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라고 권면한 후에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서술합니다. 언뜻 읽어서는 4장 전체 논지의 흐름에서 이탈해서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사실 오늘 이 말씀은 앞의 문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원문을 보면 이 12절이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즉 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으며, 모든 마음의 생각과 은밀한 것들을 다 드러내어 심판할 것이기 때문에, 이 엄중하고도 철저한 하나님의 말씀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대충 회개하고 적당히 믿고 순종하려고 하지 말고, 그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서서, 철저하게 이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 것을 지금 히브리서 저자는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앞선 권면의 말씀, 곧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는 권면과 경고의 말씀을 보다 견고하게 하고, 더욱 청중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 경고의 효과를 보다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지금 12-13절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구체적으로 이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십시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게 판단하고 심판한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사람의 말처럼 단순한 발화현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의미하고 무능력한 소리나 죽어있는 글자가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사람들 가운데 살아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오늘 본문에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사람인 것처럼 의인화하고 있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과 동격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문학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여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이제는 성경전체의 문맥 속에서 성령의 의도를 따라 본문을 통해 더 깊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인격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묘사된 것들이 다 예수님께 해당되는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분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말씀이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했는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을 묘사할 때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고, 특히 버가모 교회에 하신 말씀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검으로 대적들을 물리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사람의 모든 은밀한 생각을 다 아시는 분이시고 또한 마지막 날에 모든 은밀한 것들을 드러내시고 재판하시며 심판하시는 분이되십니다. 이것이 억지로 끼어 맞춘 것이 아니라, 본문을 통해서 정당하게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묘사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갖게 되는 질문이,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우리가 이 성경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이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이 성경말씀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성경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신구약성경 66권 전체가 결국 계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말씀은 예수님에 관하여 기록된 책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이 성경 66권의 모든 계시의 말씀이 사실은 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시고 모든 계시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시고, 그분으로부터 파생되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이 성경 66권인 것입니다. 그래서 참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이 성경말씀이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신 것처럼 그분으로부터 나온 모든 말씀인 성경책 역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성경의 글자 하나하나에 그 자체의 어떤 신비한 힘이 있다거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이 성경책을 읽을 수 있고, 연구하고 해석할 수 있고, 이 성경책을 통해서 여러 가지 지식을 쌓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책을 읽었다고 해서 그 자체로 무슨 구원이 주어진다든지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말씀이 택한 자들에게 읽혀지는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면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나느냐 하면, 바로 문자에 불과했던 그 말씀이 정말 살아있는 말씀이 되어서 우리 마음에 강력하게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말씀이 성령의 조명하시는 역사로 말미암아서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게 되어질 때, 바로 참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임하여 오셔서, 우리가 그분과 연합되고 그분 안에서 그분과의 사귐을 통해 그분으로부터 죄사함과 구원을 얻고, 그에 따르는 모든 은혜의 혜택들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창세기로부터 말라기까지 자신에 관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풀어 설명하니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성령의 조명하시는 역사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그래서 그들의 눈이 열려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즉 구약의 말씀은 분명히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책이고 과거에 이스라엘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해 놓은 책이지만, 그 말씀이 풀어 강설되어질 때, 그리고 거기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그것은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고 그로부터 구원과 영생을 얻게 하며, 우리의 삶을 놀랍게 변화시키는, 그런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히브리서 저자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 ‘오늘’이라는 개념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불신앙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기억하면서 다윗이 그 세대 사람들에게 “오늘날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그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명하였고, 히브리서 저자는 그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면서 히브리서 수신자들에게 “오늘이라고 하는 날 동안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다시 말씀하고 있으며, 또 다시 하나님께서는 이 히브리서 강설을 사용하셔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 동일한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가 아무리 흐르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영원히 살아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생명력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다

 

운동력이라는 단어는 ‘에네르게스’라는 단어입니다. 옛날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에서 주인공이 쓰는 장풍이 바로 ‘에네르기파’입니다. 그 단어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이 ‘에네르게스’라는 단어에서 ‘에너지’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운동력이 있다는 말은 힘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힘과 능력이 있느냐 하면 앞에서 언급했듯이 살아서 우리 가운데 역사해서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측면에서 힘과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무슨 말씀이든지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다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도 운동력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에도 이러한 능력이 미약하지만 있습니다. 물을 향해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반복해서 말한 후에 그 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니 물의 결정체가 육각수의 아름다운 결정체로 되어 있었습니다. 반면에 “싫어. 미워해. 죽어버려.” 등과 같은 나쁜 말과 욕설을 한 후에 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니깐 이 물의 결정체가 아주 나쁜 모양의 결정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말이 가진 파워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말을 할 때 나쁘고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이고 좋은 말을 하면서 살아야 그 삶이 윤택해지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입니다. “나는 잘된다. 나는 성공한다. 나는 할 수 있다.” 그렇게 주문을 외우듯이 계속해서 자신에게 반복해서 외치면 정말 그 말한 대로 이루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긍정의 힘』 책이 다 틀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말하는 대로 그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에도 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말 중에는 이런 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대부분의 말들은 다 실없는 말들입니다. 뜬 구름 잡는 말도 있고, 쓸데없는 말도 있고, 그냥 무의미한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무엇이냐 하면, “백 마디 말보다는 한번 실천하는 것이 더 낫다”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말만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소위 우리가 말로는 뭘 못하겠습니까? 말로는 얼마든지 하루에도 전 세계를 몇번씩이나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고, 말로는 얼마든지 우리 국민 5000만 명을 다 먹여 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도 그것이 다 쓸데없는 무의미한 말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말이란 힘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든 그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11)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11)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대로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힘과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는 것들은 그것이 우리의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든지 간에 반드시 주어질 것으로 믿어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와 있는 수많은 경고의 말씀들이 단순히 겁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그 경고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임을 믿어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히브리서를 통해서 계속해서 경고의 말씀들을 듣게 되는데, 그 경고의 말씀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게 판단하고 심판한다

 

12절에 보시면 살아있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주 무기로 묘사됩니다. 에베소서에서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7)고 말씀합니다. 즉 사단 마귀와의 영적 전투에서 그 사단마귀를 무찌를 무기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11)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의 주신바니라(전 12:11)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게 급소를 찌르는 무기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조명하시는 빛이 비추면 사람들이 그 마음에 찔림을 받는 것입니다.

 

(37)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 2:37)
(54)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행 7:54)

 

이렇게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을 찌르고 관통하여서 그 마음의 숨은 죄악들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 앞에서 똑같이 찔림을 받는데 한쪽은 구원을 부르짖는 데로 나아가고 한쪽은 그 말씀을 전한 스데반을 죽이는 데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두 가지로 역사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택한 자들에게 이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케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의 말씀이 되지만, 택함 받지 못한 자들에게 이 말씀은 도리어 거치는 반석이 되어서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고, 그리하여 그들로 멸망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의 능력도 되지만 심판의 능력도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말씀은 악인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도구로 묘사됩니다.

 

(12)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 (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16)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 2:12,15,16)

 

예수님께서 자신의 입에서 나온 좌우의 날선 검으로 싸우신다는 것은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 무엇으로 심판하시느냐 하면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을 다 하십니다. 우리는 말을 하고나서 행동으로 옮겨야 그 일이 이루어지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이 세상 만물을 붙드시고 계시고, 말씀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며, 마지막 심판하실 때도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표현할 때, 그것이 일차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와 싸워 우리를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12절과 13절은 말씀이 어떻게 우리와 싸워서 우리를 심판하는지 그 과정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여기서 찌른다는 말은 관통한다는 말이고, 쪼갠다는 말은 잘라서 나누고 구분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을 찔러 쪼개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혼과 영을 찔러 쪼갠다는 말씀을 가지고서 사람은 영육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삼분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전혀 틀린 생각입니다. 성경적인 견해는 이분설입니다.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 쓰인 ‘영’(프뉴마)이라는 단어와 혼(‘프쉬케’)이라는 단어는 둘 다 인간의 영혼을 표현할 때 구분 없이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물론 단어 자체만 놓고 보면 약간의 온도 차이는 있습니다. 영은 말 그대로 인간의 영혼을 의미하는 단어이고, 혼이라는 단어는 영혼을 의미할 때도 있지만, 때때로 인간의 생각이나 마음, 정신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더라도 여러분의 영혼과 여러분의 마음을 어떻게 구분하고 나눌 것입니까? 나눌 수 있습니까? 그러면 이 말은 무엇이냐 하면 나누고 구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들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은 나누고 꿰뚫는다는 것입니다. 관절과 골수는 그 당시 해부학 기술로는 나누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깐 오늘 본문은 인간의 구성요소가 삼분설이냐 이분설이냐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하나님의 말씀이 좌우의 날 선 어떤 검보다도 날카로워서 나누고 구분하기가 매우 어려운 그런 세미한 부분까지도 정확하게 나누어버리고 구분해버린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판단능력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본성적으로 이런 세미하고 애매모호한 부분에 숨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서 열심히 교회에 헌신 충성 봉사하는데,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자기 인정 영광을 얻고자 하는 욕심이 은밀하게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람이 판단하여 분별해 낼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람은 교회에 헌신하는 겉모습만 볼 수 있을 뿐이지 그 내면에 숨어있는 동기는 구분해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헌금 많이 하기 위해서, 주와 복음을 위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되겠다” 그러한 마음속에는 돈에 대한 탐심이 은밀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는 은밀하게 들어와서 애매모호한 곳에 숨고 자신을 여러 가지 명분으로 포장해서 위장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속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본인 자신도 속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꼼수가 하나님께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검 앞에서는 다 꿰뚫어져서 파헤쳐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은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마음의 뜻이라는 말은 마음의 동기와 의도를 의미합니다. 바로 찔러 쪼개는 말씀의 역사로 말미암아서 우리의 마음의 모든 생각들과 그 마음의 숨은 동기와 의도와 심지어는 잠재의식에 있는 우리의 의향까지도 다 파헤쳐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파헤쳐서 감찰한다고 했습니다. 번역이 조금 매끄럽지 못합니다. 이 단어는 “정확하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재판한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내면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밝히 드러내어서 선악간의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재림의 때에 있을 최후의 심판을 지금 의미하는데, 이점이 13절에서 보다 잘 드러납니다.

 

(13)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최후의 심판의 때에 모든 피조물들이 다 하나님 앞에 드러나게 되어지는데, 특별히 인간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벌거벗긴 채로 서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드러난다’는 단어는 매우 독특한 단어인데, 이 단어는 동물로 희생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의 목을 잡고 젖혀서 칼로 찌르기 전의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레슬링 경기에서 상대의 목을 잡고 완전히 제압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모든 은밀한 것이 다 드러나서 벌거벗긴 채로, 그리고 완전히 제압당해 목이 잡혀 있는 채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재림 이후에 있게 될 최후의 심판의 정황이라는 근거는 이 하나님을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라고 묘사하고 것에 있습니다. 이 상관한다는 말이 어려운 말이고,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데, 이 단어는 “회계하다, 결산하다”는 말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종들에게 달란트를 각각의 재능대로 나눠준 후에 이후에 돌아와서 주인이 종들과 회계하고 결산합니다. 그때 이 “회계하다”는 말이 오늘 본문의 상관한다는 말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재림하시고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모든 은밀한 죄악들은 물론이거니와 우리가 살면서 행한 모든 말과 행동과 생각들과 그리고 그 모든 행위의 숨은 동기와 의도까지도 다 까발려서 그것을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인생을 결산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숨기겠으며, 하나님께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갈 때에는 얼마든지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심지어 자기 스스로도 속는 삶을 살 수 있어도, 결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속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인생의 소위가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마다 남에게 알리기 싫은 치부들을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무덤까지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자신의 은밀한 죄악들이 있을 것입니다. 작년에 있었던 실화인데, 어떤 70대 할아버지와 50대 남성이 부모가 집을 비운 여중생 집을 찾아가 성폭행을 했는데, 그것을 숨기고 있다가, 나중에 그 혐의가 드러나고 사람들에게 소문이 퍼지자 이 두 사람이 자살을 했습니다. 자신의 은밀한 죄가 폭로되었을 때, 그것이 자신의 명예에 치명적인 상처가 되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을 때, 그 두 사람은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은밀한 죄악들이 사람들 앞에 까발려지게 되는 것만큼 치욕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마나 어찌하든지 다 자기 죄를 숨기려고 애를 쓰고, 안 그런 척하기 바쁜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 앞에서 그런 숨기고 있는 죄악된 모습들이 있습니다. 만일 저의 있는 모습 그대로 여러분들이 저를 보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저를 혐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이 세상에는 남들 앞에서 숨기는 것이 가능하고, 안보이게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저를 혐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것을 언제까지 숨길 수 있겠습니까? 그때가 되면 저의 은밀한 죄들이 다 온 천하에 까발려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은밀한 죄악들, 여러분의 숨은 마음의 동기와 의향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검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헤쳐져서 온 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반드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것을 안다면, 우리가 이러한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우리가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차피 다 까발려질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숨기고 있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치부를 하나님과 사람 앞에 드러내놓고 오늘이라고 하는 날 동안 정말 그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대에 가서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의 검의 심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오늘이라고 하는 날 동안에 이 하나님의 찔러 쪼개는 하나님의 말씀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자신의 죄악을 은밀한 가운데 감추고 사람의 눈을 속이고, 심지어는 자신마저 속으면서 그렇게 불신앙과 불순종의 삶을 지속할 때에는 결국 종말의 심판대 앞에서 그 죄악이 다 드러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러한 찔러 쪼개는 하나님의 말씀의 심판을 받으면, 그것은 우리를 죽이고 심판하는 칼이 아니라, 우리를 수술하여 고치는 칼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조명하시는 사역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사역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날마다 받아야 합니다.


물론 이 과정이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나의 치부를 드러내고 나의 죄를 드러내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말씀의 수술대 앞에 나아오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어두움이 드러날까봐 두려워서 빛 가운데 나아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고 믿음으로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고 말씀의 수술대 앞에 올라가야 합니다.


저도 예전에 이빨이 막 썩고, 구멍이 나고, 부러지고, 심각한 처지인데도, 의사 앞에 내 이 이빨 내미는 것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도저히 못 참아서 치과에 갔는데, 돈만 더 들고, 치료하는 고통만 더 가중되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참 어리석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말씀의 수술대 앞에 나아가기를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더 큰 고통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왜 망설입니까? 말씀의 검으로 우리를 수술하시는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긍휼과 자비가 한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시되 자기 목숨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시기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에게 나아온 자에게 죄를 무한히 용서해주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을 동정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이러한 우리를 향한 긍휼의 마음으로 은혜의 보좌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우리를 말씀의 수술대 앞에 눕힐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의 수술대 앞에,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매일 받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것이 일명 죄죽이기 교리와 연결되는 것으로서, 그것은 우리 신앙과 경건의 핵심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오직 말씀의 수술대 앞에 서서 주님의 말씀의 칼에 의해 우리의 은밀한 죄들이 다 드러내어짐을 당하고, 그래서 나의 악하고 더럽고 추한 마음의 모든 동기와 의도와 의향이 다 드러나서, 말씀 앞에서 찔림을 받고, 자신이 정말 절망적인 죄인임을 깊이 깨달아야, 비로소 내가 십자가의 은혜 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는 자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십자가만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십자가 복음만을 굳게 붙자고 믿고 의지하는 삶 속에서만 오직 진정한 회개와 믿음이 나오는 것이고, 거기서만 진정한 순종의 삶이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이 철저하게 무능력한 죄인이라는 것을 매일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십자가를 내팽겨 쳐버리고 우리 자신의 의를 붙잡고 의지하게 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지독한 율법주의자들입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사실은 그렇게 자기 의를 의지하고 불순종과 불신앙의 삶을 지속하면서 본인이 정작 자신의 신앙의 심각한 문제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불신앙의 삶을 살고 있는데도, 본인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그렇게 주일예배도 빠짐없이 잘 나오고, 누가 보더라도 반듯하게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헌금도 하고, 교회에 와서 북적북적 바쁘게 봉사하는 것을 가지고서 부족하지만 그런대로 안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죄의 속임입니다.


죄는 우리 내면에 은밀한 곳에 숨고 스스로를 위장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과 영혼과 나의 기질과 성품 속에 스며들어가서 결국은 나와 일체를 이루기 때문에 절대로 본인 스스로 그것을 찾아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는 자기 자신을 직접 공격하지 않으면 다 참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교회 와서 열심히 섬기고 그래도 그것은 죄 자체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 아닙니다. 죄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그렇게 하지 않는 한 죄는 가만히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죄는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게 되고 결국에는 뼛속까지 파고들어서 우리와 온전히 일체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에 지배를 받는 상태이고, 성경은 그러한 상태를 패역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상태로는 결코 자신의 심각한 처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말씀이 내 마음에 쾅하고 깨달아지면서 성령의 밝히 비추시는 역사가 일어나고 계속해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 은혜의 빗자루가 내 마음을 쓸고 지나가면, 그렇게 한참 쓸고 지나가면,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시커먼 죄의 덩치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영적 각성입니다. “아니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그러면서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동안 자기가 어두워서 못 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혹시 이런 영적 어두운 상태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정말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주일예배 빠지지 않고 교회 나오고 헌금하고 적당하게 믿고 순종하는 것으로 안심하지 말고, 정말 날마다 말씀의 검으로 자신의 심령을 파헤쳐서 밝히 비추는 성령의 조명하시는 역사를 날마다 받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특별히 교회의 공적인 가르침에 집중하기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은혜의 방도로 사용하실 때 특별히 말씀을 풀어 가르치는 이 교회의 공적 가르침을 중요한 방도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바로 이 말씀 강설을 듣는 시간에 성령의 조명하시는 역사가 있기를 위해 기도하면서, 집중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강설 시간에 성령의 조명하시는 역사가 우리에게 충만히 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말씀의 수술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늘 자각하면서, 늘 십자가만을 믿고 의지하여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게 하여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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