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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호세아 14:3
2005년 7월 31일 설교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으라
말씀:호세아 14:3
요절:호세아 14:3b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우리는 지난번 강의에서 진정한 회개는 우리의 삶을 개혁하는 것, 곧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이 다 우상입니다. 3a절에서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의지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우리가 우상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시간 긍휼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긍휼을 덧입혀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3a절에서 이스라엘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우리는 말을 의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고백한 것은 앗수르가 진정 자신들의 구원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이 헛된 도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강대국 앗수르와 말을 의지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앗수르와 말이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되었을까요? 그 대답은 3b절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이스라엘은 피조물을 의지해봐야 아무 도움도 되지 않지만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고아는 자기 스스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연약한 자입니다. 성경 곳곳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고아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긍휼하심은 하나님의 속성 중에서 가장 감미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전능하심, 공의로우심, 거룩하심, 긍휼하심 등 여러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속성 중에서 긍휼하심은 하나님의 다른 모든 속성을 감미롭게 해 줍니다. 만일 긍휼하심이 없다면 하나님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다만 두려움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공의롭지 못한 우리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우리를 두렵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의 불결함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거룩하심도 우리에게 두려움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엄두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거룩하심을 보았을 때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했습니다(눅 5:8). 선지자 이사야도 하나님의 탁월한 영광을 보았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탄식했습니다(사 6:5). 긍휼하심이 없다면 하나님의 능력도 우리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엄도 우리를 놀라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긍휼하심 때문에 이 모든 것의 두려움이 누그러집니다. 지극히 엄위하신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위엄의 광채를 발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상숭배와 같은 비참한 형편 가운데 높여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 긍휼하심으로 인해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범죄한 죄인들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가증스러운 우상숭배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긍휼함이 없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며, 엄위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온갖 우상을 사랑한 비참한 죄인들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만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세리 마태를 보십시오. 그가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 올 수 있었을까요? 세리장 삭게오를 보십시오. 그가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까? 사마리아 여인을 보십시오. 창기와 같이 비참하게 살던 여인이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원수요, 죄인 중에 괴수 였던 바울을 보십시오. 그가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 올 수 있었을까요? 우상숭배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받은 고아와 같은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 올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모든 선한 일의 시초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아래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며, 구원을 받으며,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 절정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나 범죄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구원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 사랑의 근본적인 속성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범죄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동정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입니다. 십자가 사랑은 범죄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다른 많은 속성들이 있지만 본문에서 바로 그 긍휼하심을 언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는 것은 피조물에게 비참함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 비참함은 현재적인 비참함이거나 아니면 잠재적인 비참함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에는 예방하는 긍휼이 있고, 구원하는 긍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큰 죄를 범한 사람에게만 긍휼을 베푸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 많은 몹쓸 죄를 짓던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하며 부러워합니다. 자신도 그런 극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합니다. 반면 하나님 안에 있으면서도 극적인 경험이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은혜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적게 범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곧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고 계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다면 심각하게 범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셨기 때문에 심각하게 범죄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독한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타락과 범죄로부터 예방하셨기 때문입니다. 긍휼은 비참함을 전제로 합니다. 그 비참함은 우리가 현재 빠져있는 비참함일 수도 있고, 앞으로 빠질 비참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생각할 때 먼저 하나님의 긍휼은 죄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에는 죄에 대한 용서의 긍휼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긍휼은 비참함을 전제로 합니다. 곧 하나님의 긍휼에는 비참함에 대한 구원의 긍휼이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에는 피조물의 결함이나 결핍을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긍휼에는 결함이나 결핍에 대한 공급의 긍휼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긍휼이 있는 곳이면 대부분 어디서든지 그곳에는 죄와 비참함과 결함과 결핍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을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비참함에 처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죄인됨을 아는 사람,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사람,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기 위해서는 자신의 비참함을 깊이 인색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악됨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이 부족한 자임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이요, 비참한 자요, 부족한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본문에 나오는 ‘고아’라는 단어는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이라는 의미 그 이상의 더 넓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자기들 스스로는 아무런 힘도 없는 소외된 사람들, 이런 사람들도 본문에 나오는 ‘고아’라는 단어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아’라는 것은 자기들 스스로 아무런 재산이나 지혜나 능력이나 수완도 없으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깊이 숙고해야할 중요한 진리는,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풍성한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긍휼을 절실히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을 가장 기쁘게 생각하고,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은 피조물에게서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하고 기진맥진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의뢰합니다. 우리가 피조물이나 다른 즐거움에서 떠나 하나님과 교제를 더 많이 나누면 나눌수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더 많이 나타내 주십니다. 우리가 불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따뜻함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께서는 모든 면에서 당신의 선함과 은혜로움을 더 많이 보여 주십니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도록 만듭니까? 비참함입니다. 비참함이 극에 달했을 때, 바로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도록 만듭니다. 극도의 비참함에 빠지면 우리는 다른 모든 은신처로부터 나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붓고 그 머리털로 발을 씻기신 여인을 보십시오. 이 여인은 귀신들려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의 극도의 비참함은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긍휼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 임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이 너무나 크고 놀라웠기 때문에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려 주님께 헌신한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를 보십시오. 그는 유산을 받아 먼 타국에 갔어 허랑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다 탕진하였습니다. 돈이 있을 때 자기를 따르던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는 돼지 치기가 되었습니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 돼지가 먹던 쥐엄열매를 훔쳐먹는 비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아버지와 하나님께 죄를 얻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집의 풍족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장 비참한 처지에 처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아들로 모든 권한이 회복되었습니다. 이 모든 은혜가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호세아 5:15-6:1절에 보면,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라. 저희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여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 선하심과 은혜로움을 나타내십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인정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는 사람, 이런 자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이런 자가 하나님의 긍휼을 덧입게 됩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에게 극도의 슬픔과 어려움에 빠지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시편 130:1절 “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심연과 같은 깊은 비참함에 떨어지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불치의 병으로 극도의 슬픔에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실패로 인해 극도의 어려움에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유산으로 인해 슬픔에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에게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즉 비참함의 심연보다 더 깊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보여 주고자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겪는 비참함은 아무리 깊다 해도 그 깊이는 끝이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치 못할 시험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 곧 하나님의 긍휼하심에는 한이 없습니다. 그 분량과 그 시간에 있어서 끝이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1). 할렐루야! 긍휼하심이 한이 없으신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질병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간파하고 계십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곤경이나 극한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본성적으로 피조물을 의지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이런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극한 곤경을 통하여 우리를 피조물에게서 빼내어 자기에게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피조물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로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시편 기자는 왜 그렇게 간구하는 것입니까? 시편 60:11절은 말합니다.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사람의 구원이 헛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구원이 헛될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도움이 베풀어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상숭배의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힘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깊이 깨달을 때 우리는 우리가 의지하던 우상들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을 때만이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와와 긍핍한 사람들을 향하여 참으로 은혜롭고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시편 10:18절은 말합니다. “고아와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시편 146:9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또한 시편 145:14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압박당하는 자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심판하시기 위해서 늘 귀를 기울이시는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시 46:1). 우리를 도울 사람이 없을 때,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우리를 위해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비참함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긍휼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비참함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우리의 도움이 되지 못함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힘입고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오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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