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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딤전 6:1-2
성경본문내용 (1)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2)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강설날짜 2014-01-19

2014년 디모데전서 공부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말씀:디모데전서 6:1-2

 

오늘부터 우리는 디모데전서의 마지막 장인 6장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2절, 그리고 3-21절입니다. 1-2절에서는 5장부터 교훈되고 있는 성도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권면의 말씀의 연속으로 상전에 대한 종의 자세에 대해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21절 말씀은 디모데전서의 종결 부분으로서 성도 개개인과 목회자 자신의 신앙생활과 관련된 결론적인 교훈과 끝맺는 인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조금 자세히 나누어 보면 3-10절 말씀에서는 성도 개개인의 경건과 물욕에 대한 절제의 교훈을 말씀하고 있고, 11-16절에서는 바울 사도가 디모데 개인에 대한 권면의 말씀을 하고 있으며, 17-19절 말씀은 부자들의 재물 사용에 대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20-21절 말씀은 끝맺는 인사 말씀입니다. 오늘은 1-2절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상전에 대한 종의 자세를 권면하는 말씀인데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절에 보면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찌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들이 자기 상전들을 어떻게 공경해야 하는가에 대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라고 합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왜 이렇게 권면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이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훼방을 받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종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훼방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선듯 이해가 되십니까? 아니 종이라면 빨리 그 종의 자리에서 벗어나서 자기도 주인이 되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까? 종업원이 평생 종업원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승진하고 사장이 되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까? 이런 생각이 우리 인생들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종들에게 속히 종의 신분을 벗어라고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기 상전에게 범사에 마땅함으로 공경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훼방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바울 사도의 권면의 말씀은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선듯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이 편지가 쓰여질 당시 종이란 노예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노예로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상전 곧 주인에게 잘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2절 말씀에 보면 믿는 상전이라면 같이 형제로 부름을 받았다고 해서 가볍게 대하지 말고 더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2). 바울 사도가 이렇게 권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그 형제를 잘 섬김으로 그가 유익을 받는 것이요, 또 사랑을 받는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12-13절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네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에 착념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몇주 전에 자세히 살펴봤습니다만 바울 사도가 이 말씀을 디모데에게 하는 이유는 디모데 자신의 권위를 세우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곧 자신이 삼가 주의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업신여김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5장에서 늙은이나 젊은이나 과부나 간에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을 권면한 것도 역시 영적인 유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고, 또한 그들을 함부로 송사하거나 세우지 않도록 명한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 종이 상전에 대해서 가져야 할 자세를 권면하는 이 말씀도 역시 하나님의 이름과 그 교훈이 훼방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의 이 가르침이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들에게 육신의 상전에게 범사에 마땅히 공경하라는 것은 천국 시민권을 소유한 성도는 자신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갖는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에 얽매이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초월하여 자신이 어떤 신분과 지위를 가졌든지 간에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실현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교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노예 상태로 그대로 있어도 상관이 없다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종으로서 주인을 더 잘 섬기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이 오늘날과 같이 민주주의가 꽃이 피어 있는 세상에서 통할 수 있는 말씀입니까? 자유와 평등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싸워왔습니까? 우리나라의 역사만 보더라도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습니까? 제가 대학교를 다닐 때는 하루도 데모가 없는 날이 없을 정도로 독재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데모를 하였습니다. 계엄령이 내려져서 학교가 탱크와 군인들로 인해 폐쇄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속되고 피를 흘리며 죽어 갔습니다. 외국에서도 왕과 성직자와 귀족의 계급들을 무너뜨리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얼마나 엄청난 피를 흘리면서 싸워 왔습니까? 그래서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가 실현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종이 주인에게 더욱 순종하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한번도 사회변혁 프로그램을 제시하거나 그런 운동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1-2절을 다시 보면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찌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예수님과 다른 노선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바울 사도의 모든 가르침과 권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른 것입니다. 즉 성령의 지시를 받아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가르침이 이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수긍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가르침은 성령이 임한 자라야만이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0:42-45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누가 서로 높으냐며 다투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세상은 집권자들과 대인들이 권세를 부리지만 그러나 너희 중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과 완전히 다른 질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회변혁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어떻게 타락된 세상인지 얼마나 하나님의 창조의 모습과 거꾸로 되어 있는 세상인지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세상을 갱신하고 개혁하고 바르게 세워서 될 일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악한세대에서 자기 백성을 건져 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건짐을 받기 보다는 이 세상에서 높은 지위와 권세와 부귀를 가지는 것을 구원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이 영접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따라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이 주님의 말씀이 들리며, 믿어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20-24절 말씀을 보면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 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실제 예로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7장에서 여러 가지 예를 들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고 난 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일부러 할례 받은 흔적을 지우려고 하지 말고, 할례를 받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할례 받지 않은 그대로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하여 아내와 메여 있다면 놓이기를 구하지 말고, 어떤 경우로 이혼을 하였든지 아니면 사별을 하였다면 다시 아내를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고 해서 억지로 그 신분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유 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고 합니다. 곧 자유 할 수 있다면 그 자유를 사용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자유 할 수 있어도 그대로 지내라”는 말씀으로도 번역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7:22-23절 말씀을 다시 보면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면 종이라도 자유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자라도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주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자다, 자는 종이다’고 하는 그런 구분이 주님 안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 자체를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아래 있다고 본다면 종이든 자유자든 모두가 마귀의 종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작 중요한 자유란 주님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어야 하고,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신분적으로 종이나 자유자나 그런 구별이 예수님 안에서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지금 가난하냐, 부자냐, 종이냐, 주인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흔적은 다 지나가기 때문입니다(고전 7:31).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지나가는 세상의 흔적에 목숨을 걸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하다보니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면서도 결국은 세상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되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하고, 그러한 말들을 우리가 믿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영광을 가지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속이고 속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그런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승진을 하면 복 받았다고 하고, 전세 집에서 자기 집을 사서 이사를 가면 축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도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이 너무나 좋아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이 시간 우리 자신들을 말씀 앞에 비춰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가 진정으로 어떤 자인지를 알고 거기서 돌이켜 오직 주 안에서 자유 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에베소서 6:5-9절 말씀을 보면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육체의 상전에게 대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이 하라고 합니다. 눈가림만으로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처럼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은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그 상태에서 신분과 상황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역시 세상은 지나가며 내세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종이나 자유자나 모두가 주님 앞에서 판단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에서는 종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상전에게도 말씀합니다. 자기 종들에게 공갈을 그치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체제 순응적인 것 같고 자기 신분의 상승이나 자아실현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 자기가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눈가림만 하지 말고 모든 일을 주님께 하듯이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종이라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라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역사들이 사람들 안에 나타나기 시작하자 구체적인 변혁프로그램이나 노예해방운동을 한 것이 아닌데도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노예 해방이 일어나고, 신분적 차별이 철폐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모습의 발전이 그대로 천국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이렇게 발전 개념으로 본다면 민중 신학이나 해방신학이 말하는 세상이거나 여호와의 증인들이 말하는 세상 왕국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러한 변화와 변혁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맛보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통치를 맛보는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 나라는 주님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기대하는 것은 우리의 힘과 노력과 지혜로 만들어내는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이상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바로 우리 주님의 재림을 통해서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를 보고 오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빌레몬과 오네시모는 주인과 종의 관계였습니다. 빌레몬서 4-7절 말씀을 보면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빌레몬은 성도들을 사랑하고 바울을 사랑하여 여러 가지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는데 그가 어떻게 하다가 도망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감옥에서 오네시모를 만나 복음을 전했는데 그가 복음을 받아 들여 바울에게 중요한 일군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그를 형제로 맞이하라고 합니다. 당시는 노예가 도망갔다 잡히면 죽여도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자기를 영접하듯이 사랑하는 형제로 맞이하라는 것입니다(몬 16-17). 바울은 얼마든지 빌레몬에게 명령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몬 22). 그러나 빌레몬서 14절에 보면 바울은 억지로 하지 않고 자의로 하게 하려고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이렇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편지를 받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어떻게 영접하였을까요? 바울이 부탁한 것보다 배나 더 잘 하였을 것입니다(몬 21). 그러면 원래 종이었던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어떻게 하였을까요? 건방지게 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같이 형제가 되었다고 해서 함부로 행한 것이 아니라 더 주께 하듯이 하였을 것입니다. 전에 노예로 있을 때는 억지로 마지못해 시키니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 안에서 다시 옛 주인에게 돌아갔지만 전과는 전혀 다르게 단 마음으로 주인을 섬겼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관계가 주 안에서 어떻게 변화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모든 인간관계입니다. 이렇게 함을 통하여 결국 하나님의 이름과 그 가르침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더 약아빠진 사람이 되거나, 신세타령이나 하거나, 상사를 욕하거나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거나 보지 않거나 간에 모든 일을 주 앞에서 주께 하듯이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종이나 자유자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자유 하는 자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위치에서 모든 자들에게 주께 하듯 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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