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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로마서 1:16-17

2005년 4월 3일 설교
                                                      진리의 발견
말씀: 로마서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는 루터하면 종교개혁을 떠올립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위대한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비결은 새로운 진리의 발견이었습니다. 루터가 발견한 새로운 진리는 “이신칭의”의 진리였습니다.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입니다. 루터는 이 진리를 발견하고 구원의 감격에 사로잡혔습니다. 모든 죄책과 두려움과 불안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복음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종교개혁을 감당하였습니다. 우리는 루터가 발견한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워진다는 “이신칭의”의 진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주의 일을 열심히 하고 은혜가 있으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죄에 넘어지고 자기문제에 빠져있고 은혜가 없으면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면서도 늘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우리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신칭의”의 진리를 단순히 지식적으로만 알기 때문입니다. 루터가 깨닫고 느꼈던 “이신칭의”의 진리를 체험하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루터가 누렸던 이신칭의의 진리와 감격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신칭의의 진리를 깨닫게 된 배경을 깊이 이해하고 체험적으로 이 진리를 깨닫고 느껴야 합니다. 루터는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 사이의 관계를 깊이 깨닫고 체험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루터가 깨달은 이 이신칭의의 진리를 우리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확신과 감격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선포합니다. 이것은 당시 로마의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하기 쉬웠음을 말해줍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는 로마인들에게는 수치의 상징이었습니다. 당시 십자가 형벌은 반역죄와 같은 중죄인들에게 행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상한 철학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게 보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무력하게 나무에 달린 예수님은 저주의 표시이지 구원의 표시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복음은 가는 곳마다 배척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로마는 세계의 중심으로 도로와 군대와 건축과 법과 제도를 자랑하는 화려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너무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도리어 그는 복음을 자랑했습니다.

   그는 왜 세상이 비웃고, 조롱하고, 외면하는 부끄러운 십자가를 자랑했습니까?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울의 체험적 고백입니다. 바울은 그가 가는 곳마다 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25년의 선교사생활은 한마디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이 거부하고, 비웃는 복음 속에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에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을 변하여 새사람 되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철학도, 정치, 경제, 문화도, 심리학도 사람을 변하여 새사람이 되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복음만이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그 사람이 지식이 있건 없건, 지위가 높건 낮건,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구원이 임합니다.

   그러면 복음에는 무엇이 있기에 이런 놀라운 능력이 있는 것입니까? 거기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복음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죄를 우리 주님께서는 온 몸으로 담당하셨습니다. 그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의 죄를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나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이 의롭다하시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의는 다만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의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된 자들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복음을 자랑스러워 합니다. 복음 속에 있는 능력을 자랑합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자랑스런 복음을 가졌습니다. 이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바울처럼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이신칭의의 진리를 깨닫고 그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까? 우리는 루터에게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루터는 지식적으로 이신칭의의 진리를 알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이신칭의의 진리를 깊이 체험적으로 경험하고 느겼습니다. 루터는 깊은 고뇌와 갈등 가운데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 사이의 상관관계를 깊이 체험하고 깨달게 된 것입니다. 루터에게는 큰 갈등(guilty)이 있었습니다. 루터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에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을 을 의식하는 몇 번의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단검이 칼 집을 뚫고 나와 동맥을 찔러 거의 죽을 뻔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은 엘푸로트로 가는 도상에서 만난 천둥 번개 사건이었습니다. 엘푸로트로 가는 도상에서 갑자기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작열하였습니다. 그는 사색이 되어 땅에 엎드렸습니다. 루터에게는 그 뇌우가 하나님의 심판의 표현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땅에 엎드려 맹세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성 앤이여, 그러면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그런 일을 겪은 후 루터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 피눈물나는 영적인 투쟁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20년 동안 기도, 금식, 철야, 수도원의 엄격한 규율을 준수했습니다. 세인트 존의 스칼라 상타(빌라도의 계단)를 무릎으로 오르기도 하고 주기도문을 암송하고 입을 맞추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죄책과 두려움과 불안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중 2년 동안 시편을 강해하는 중에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시편 22:1절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라는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도 하나님께 버림받으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죄책, 불안을 주님께서도 나처럼 당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은혜의 빛이 비추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루터가 깨달은 이신칭의의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루터가 가지고 있던 하나님께 버림받는 자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루터는 시편 말씀 이후 로마서를 강해하며 복음의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로마서 1:16-17절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I am not ashame of the Gospel). 루터는 이 말씀을 보면서 자기는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복음 안에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는 ‘공의’(Justice)와 ‘의’(Righteousness)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선악을 판별하는 것이 ‘공의’입니다. 곧 죄짓는 자에게 심판이 임하고, 죄를 안짓는 자에게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루터는 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 많은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노력으로도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책으로 인해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에서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의로 여겨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루터는 성경에 있는 ‘의’가 믿는 자들을 의롭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믿는 자들에게 의롭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을 향하여 공의를 다시 행하여 너는 죄가 없다고 선언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에 나타난 의는 ‘공의’(Justice)가 아니라 ‘의’(Righteousness)입니다. 이 의는 내가 공덕을 쌓아서 얻을 수 있는 능동적인 의가 아니라,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수동적인 ‘의’입니다. 루터는 이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자신 속에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게 여기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루터는 이 진리를 발견한 후 죄책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두려움과 불안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은혜와 감격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항상 신뢰(trust)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에게 공의를 만족시키셔서 의롭다고 여겨 주십니다. 그가 비록 다윗과 같이 간음 죄를 짓고 넘어진다 할지라도,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 실의에 빠져 낙향한다 할지라도 변함없이 주님을 신뢰하기만 하면 주님은 그를 의롭다 여겨 주십니다. 찬송가 133장을 찬양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항상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의로 여겨주십니다. 루터는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이신칭의”의 놀라운 진리를 깨닫게 되었을 때 마음의 모든 불안이 사라졌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차고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믿는 자를 의롭다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동이 되어 일주일 밤낮을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지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루터는 이 때의 경험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내내 나는 로마서의 저자에 대해 보다 잘 알기 위해 열정적인 희망을 가지고 몰두했다. 연구 주제에 대해 깊이 파고 들어갔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에 관한 말씀들(로마서 1:17)에 채여 비틀거렸다. “하나님의 의”에 대한 개념이 특히 나에게 혐오감을 주었다. 스콜라 철학에 따라 또는 “공적이나 실제적인 의”의 견지에서 보면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죄인을 불의한 사람으로 징벌하신다는 것이다…주야로 수일을 보내면서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한 후, 마침내 하나님은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나는 두 가지 표현, 즉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다” 그리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라는 표현들간의 내적 관계를 완전히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의”를 완전히 알기 시작했고, 그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의인들은 하나님에 은혜에 의해서,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복음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수동적 의미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사람을 의롭다 하신다. 기록된 것처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중생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었고, 넓게 열린 문을 통과해서 낙원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믿었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공의를 행하셔서 그를 의롭다 여겨 주십니다. 우리가 이 이신칭의의 진리를 깨닫고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구원의 확신과 감격을 누리며, 복음을 자랑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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