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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벧전 1:8-12
성경본문내용 (8)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9)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10)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11)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12)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강설날짜 2011-11-13
동영상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X4X4ypNTOmw$

2011년 베드로전서 공부

 

믿음의 결국

 

말씀:베드로전서 1:8-12

오늘도 우리는 계속해서 베드로전서 1장을 공부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믿는 자들의 노력이나 애씀의 결과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거듭나게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긍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한량없는 긍휼의 징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긍휼의 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많은 긍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 거듭난 자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오직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삶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 노력에 따른 보상으로 하늘에서 우리의 상도 차이가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은 사단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공로를 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은혜를 갚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하는 생각은 우리 주님의 공로를 파괴하는 행위가 됩니다. 그러므로 사단적인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세상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상이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7절을 보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거부하고 자기 힘으로 살겠다고 나왔기에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은혜를 받는 자리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9절에 보면 믿음의 결국은 우리 영혼의 구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받은 이후에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그 은혜가 얼마나 크고 풍성하고 놀라운지를 알아 가야 합니다. 앞에서 본 갈라디아서 2:20절에서는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3:14-19절에도 보면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많은 긍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구원함을 받은 자들은 그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충만케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왜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무궁한 은혜를 받아야만 되는지, 자신의 죄와 악함과 연약함도 동시에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알고 그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찬송하리로다!’라고 하며 주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3-4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기업은 어떠합니까?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많은 집과 많은 땅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그 돈과 재산이 자식의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또한 그 많은 재산은 자식이 죽어 버리면 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이 상속받을 하늘나라의 기업은 어떻습니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1:3-4). 그리고 그 기업은 받을 자가 연약하여 죽어버리면 받지 못하는 그런 기업이 아닙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능력으로 거듭나게 하셔서 살아있는 소망을 가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분명하고 확실한지 불로 연단한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의 연단을 통하여서도 반드시 만들어 내시고야 마신다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찌 찬양하지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찌 기뻐하지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8-9절을 보면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너희가 보지 못하나 사랑한다고 합니다. 이 편지를 받는 소아시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이 직접 예수님을 보지는 못했을지라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니 보지도 못한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은 보여줘야 믿는 세상입니다. 마치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보고 그 상처를 만져보지 않고서는 결코 믿지 않겠다고 하는 태도와 같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도마는 동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봤다고 하자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직접 손의 못 자국과 허리의 창 자국에 손을 넣어 만져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도마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다시 나타나셔서 손에 못 자국과 허리에 난 창 자국을 만져 보게 하심으로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그때 비로소 도마는 자신의 불신을 회개하며 “나의 주님이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신앙을 고백 하였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도마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한복음 20:29절에 보면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보여줘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보여줘도 믿지 않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 것을 봐도 결코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들은 지금 믿지 아니하는 핑계를 대기 위해서 그렇게 말할 뿐입니다. 그리고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게 되면 바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뵐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믿는 자들은 어떻게 보지도 않고 믿게 된 것입니까? 성령이 임하심으로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의 일인 것이며,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동일한 복음을 듣고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나오는 반응이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즐거움과 기쁨이기에 이런 즐거움과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즐거움과 기쁨인 것입니다. 이것은 받은 사람만이 아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과 기쁨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즐거움과 기쁨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첫 사랑의 감격을 이야기 합니다. 옛날에는 자기도 한 때 그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 말해도 그저 감격이 되고 기쁨이 되었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기쁨이 더욱 풍성하여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현실은 어떠합니까? 냉냉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처음 주님의 사랑을 인해 기뻐하며 감격했던 그런 기쁨이 없어지고 냉냉해 졌다면 그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나의 마음과 생각에 세상의 것들로 채워지고 영적인 눈이 가리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참된 기쁨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서 주님께서는 에베소교회를 칭찬도 하시지만 책망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책망하시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셨습니다(계 2:1-7).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주어진 하늘의 신령한 것들로 인한 기쁨이 사라졌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조사해 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즐거움과 기쁨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들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이라면 다 썩어지고 쇠하여지고 없어질 것들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데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세상의 것들을 붙들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통하여서라도 반드시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이기에 이 썩어질 세상에 물들어 살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성령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시는 것은 믿음의 결국은 우리 영혼의 구원을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결국인 영혼의 구원이 주어지기 위하여 얼마나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겠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생각할 때에 내가 믿어줌으로 무슨 자격증을 얻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은 일단 확보 해놓았다고 생각하고서 그 다음부터 얼마나 노력해서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하늘에서도 상을 받을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쉽게 힘들고 지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치게 되면 구원의 확신이라는 자격증만 챙겨서 천국만 가고 상은 받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은혜도 아니고 사랑도 아닙니다. 구원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10절을 보면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 구원에 대하여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부지런히 살폈다고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우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선지자 그러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책망을 하고 심판을 선포한 것으로만 압니다. 실제로 선지서들을 보면 사실 대부분의 내용이 다 그런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런 심판과 저주의 말씀 중에서도 결론에서는 은혜의 말씀 곧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것을 항상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치 캄캄한 흑암 속에 작은 한 줄기의 빛처럼, 또는 흙탕물이 된 우물 속에 바늘구멍 같은 샘물이 나오는 것처럼 은혜의 말씀들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모스서와 미가서에서도 봤듯이 책망과 심판을 선포하신 후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것으로 마치는 것을 봤습니다. 곧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 회복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와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살펴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늘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저들을 진멸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실 것인지를 살펴보았던 것입니다. 언약의 저주에 의하면 반드시 진멸되어야 마땅한데 진멸하지 아니하는 것을 보면서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이 은혜를 예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느 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들이 율법을 말하고 심판을 말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은혜를 내다보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란 성령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구약시대에 오신 것이 아니라 구약의 끝과 신약이 시작되는 지점에 오셨는데 어떻게 그리스도의 영이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임하여 활동하신 것입니까? 우리의 시간개념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2:41-46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고 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8:56-59절을 보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두 곳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도 다윗도 다 예수님을 증거 한 선지자들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에게 감동을 주셔서 예언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시간 개념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임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야만 이런 말씀에 아멘이 되는 것입니다. 그 영이 임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게 되고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들이 이렇게 섬긴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이 편지를 받는 초대교회 때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전하여진 것입니다. 이 소식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이냐 하면 하늘의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시중드는 천사들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그렇게 반역하고 죄만 짓는 저런 자를 택하시고 자기의 백성을 삼으실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언약의 내용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 하셨지만 그 언약을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하나님이 진멸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실 것인지를 천사들도 굽혀서 살펴본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방법으로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성취하시면서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한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그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의롭다 하셔서 자기의 백성을 삼으신 것입니다. 그런 자기 백성에게 주어진 선물은 하늘에 간직한 영원한 기업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을 누가 이루어내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맹세로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그 결과가 자기 백성들에게는 구원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 믿음의 결국이 영혼의 구원입니다. 이런 은혜를 알아가면 갈수록 말할 수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 한 곳을 보고 마치겠습니다. 베드로후서 3:18절을 보면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자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베드로후서의 결론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있기를 기원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베드로 사도의 권면과 같이 우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그 은혜의 풍성함을 누려가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말할 수 없는 영광과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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