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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1:14-15
성경본문내용 (14)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15)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강설날짜 2015-09-06

2015년 마가복음 공부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말씀:마가복음 1:14-15

 

우리는 지난 두 주간에 걸쳐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행하셨던 두 가지 일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부터는 예수님의 공생애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1:13절과 14절 사이에는 약 1년 정도의 시간의 간극이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사단의 시험을 받으신 후 약 1년이 지난 후에 세례 요한이 잡히고 예수님께서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15절 말씀을 보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세례 요한의 사역이 끝이 납니다. 그와 동시에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복음을 약속하던 시대가 끝이 나고 복음이 성취되는 시대가 열리는 전환점 역할을 합니다. 또한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행하실 사역의 내용과 성격을 보여주는 서론 역할도 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의 내용과 그 성격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마가는 다른 복음서의 저자들과 달리 요한의 사역에 대해서는 매우 짧게 기록하였습니다. 마태나 누가처럼 어떻게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사역 중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소개하지 않습니다.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고 하더니 곧바로 ‘요한이 잡힌 후’(14a)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광야의 소리처럼 한순간 등장했다가 재빨리 사라지게 했습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복음의 핵심이 요한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복음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독자들이 예수님께 ‘관심의 초점’을 집중하도록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것에 관심을 분산하면 할수록 복음은 흐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마가는 단지 갈릴리에서 하실 예수님의 사역을 알리는 신호 정도로 요한의 체포를 언급한 후에 곧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님께서는 살던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에 오셨습니다. 갈릴리는 요한을 체포했던 헤롯 안디바의 통치 지역이었습니다(눅 3:1). 요한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은 그가 풀려나기를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구출 운동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감옥에 두고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요한의 사명이 거기까지임을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구자로써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으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한 요한에게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두는 현상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려면 요한에 대한 기대는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그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복음에 귀 기울이기 어렵습니다. 요한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처음에는 복음 역사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요한의 사역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예수님께 관심을 두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관심과 기대는 이제 신속하게 예수님께로 옮겨져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 지역인 가버나움으로 이동하셨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는 동안 베이스켐프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으로 이동하신 것은 이사야 9:1-2절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이사야 9:1-2절을 보면 “전에 고통 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가 가버나움에 있는 갈릴리 지역인 스블론과 납달리 땅에 빛이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스블론과 납달리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가운데 두 지파였습니다. 갈릴리는 이방의 압제를 많이 당한 곳입니다. 그래서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리웠습니다. 그 정도로 스블론과 납달리는 흑암의 땅이었습니다. 이런 그 땅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심으로 흑암에 행하던 백성들이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들에게 빛이 비취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의 갈릴리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심으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전한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15절을 보면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교훈하신 모든 내용의 핵심입니다. 복음서 전체 주제의 요약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때가 찼고’라는 말은 수천 년 기다려온 예언이 드디어 성취될 시점이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어떤 인간도, 인간의 어떤 시도도 복음이 될 수 없음을 온 인류가 철저히 경험한 이후였습니다. 구약이 확인시켜준 한 가지 진리는 인간에겐 기대할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철저한 절망을 거쳐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때가 찬 상황이었습니다. 인간이 철저하게 절망한 때에 비로소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당신의 뜻을 성취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복음’이라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연상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성경 전체가 인류에게 주어진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그 복음을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으로 요약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거대한 담론이지만 쉽게 풀이하자면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이렇게 요약하심으로써 우리는 성경 전체가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것임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포괄해서 말하면 ‘하나님 나라’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나라에서 영원히 그분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선포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시대가 다가왔다’라는 뜻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항상 다스리십니다. 그렇지만 종말이 오면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을 결박하시고 하나님의 주권을 세우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언은 그러한 종말이 다가왔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악의 세력이 지배하던 시대는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질서가 이제 곧 끝이 나고 모든 질서가 개편되는 새로운 시대가 곧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서 미래에서 현재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는 그 나라가 ‘왔다’라고 단정하는 대신에 ‘가까웠으니’라는 다소 애매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 단어는 마가복음에 딱 한 번 더 나옵니다. 마가복음 14:42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자고 있던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하시는 바로 그 시점에 ‘이미’ 유다는 겟세마네 동산에 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눈에 보이도록 충분히는 ‘아직 아니’ 왔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까움도 바로 이와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이미’와 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도록 충분히는 ‘아직 아니’ 임했습니다. ‘이미’와 ‘아직 아니’ 사이에 있는 독특한 이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입니다. 물론 본문에서는 이미 왔다는 사실에 좀 더 강조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죽은 후 비로소 천국 백성이 된다면 이 땅의 삶은 천국 가기까지 견뎌야 하는 고통의 세월일 뿐입니다. 그런 소식이라면 이 땅에 사는 동안은 복음일 수 없으므로 그만큼 복음의 영광이 훼손됩니다. 복음은 이 땅에서부터 우리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소식입니다. 요한복음 5:24절을 보면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이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순간 이미 영생을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이 말씀을 원어로 보면 ‘얻고’라는 단어는 현재형입니다. 그리고 ‘옮겼다’라는 말은 완료형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이미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천국을 부분적으로 맛보며 살다가 주님께서 재림 하실 때에 곧 하나님 나라가 극치에 이를 때에 눈으로 보고 맛보며 그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3:20절을 보면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 살면서 그 나라를 소망하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2:20절에 보면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를 마무리하면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참된 소망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5). 여기서 ‘회개하고 믿는다’는 의미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회개’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가 어떠한 것인지는 호세아 6:1절이 잘 표현해 줍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회개란 단지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싸매어 주시고 다시 아물게 하실 것을 믿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을 믿고 소망 속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분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나를 신뢰하며 가던 길에서 돌이켜 새 시대를 가져다주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 소망이 없음을 알고 그분께로 돌아가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했을 때 ‘회개’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문을 보면 ‘metanoevw’(메타노에오)라는 단어를 번역한 말입니다. 이 단어는 ‘생각을 바꾸기’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거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서 세계관의 변화내지 사고방식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단순한 감정의 변화가 아닙니다. ‘메타노에오’ 즉 사고방식의 변화는 행함의 변화를 내포하고 있습니다(마 3:8; 눅 3:8). 누가복음 5:32절에 보면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다’라고 했을 ‘회개’(메타노에오)는 단지 잘못을 시인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이 회복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을 암시합니다. 죄인들은 잘못을 시인하고 슬퍼하고 치유 받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회개가 필요하지 않은 의인들 곧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는 달리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때 그들의 생각이 변화되고 그들의 삶이 변화됩니다.

 

회개는 특별히 교회에서 죄인취급 받는 사람들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모두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막 6:12). 하나님 나라 복음은 일부 죄많은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사고방식의 변화, 세계관의 변화를 요청합니다. 사고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많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자신들의 사고방식을 굳게 지키며 변화되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복음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파괴하는 위험한 가르침으로 보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변화를 반대하는 자들로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강조되는 회개에는 종종 세계관의 변화가 빠져 있습니다. 예배중심, 교회중심이 강조되지만 사고방식의 변화, 세계관의 변화가 빠져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이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바리새적인 전통에 그대로 빠져 있으면서 감정으로서의 회개를 강조합니다. 이러한 회개는 눈물을 짜내지만 결국 삶을 바꾸는 힘이 없고, 세상을 바꿀 힘도 없습니다. 이러한 회개는 예수님께서 명하신 ‘생각 바꾸기’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가 은혜의 수단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단순히 지식을 위한 공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의 변화 곧 회개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많은 성경을 공부하지만 진정한 부흥이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 속에서 나의 생각을 바꾸지 않기 때문입니다. 곧 지식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공부를 통해서 말씀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세계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우리는 참된 회개의 모범을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다녔던 바울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바울을 지배해 오던 바리새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드렸습니다. 예수를 박해하려고 가던 길에서 돌이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로 변화되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시고 우리의 생각과 세계관이 변화를 받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들 가운데 진정한 회개의 역사가 있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를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새 출애굽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15절을 다시 보면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를 요청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믿음을 요청하셨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새로운 시대가 동터 온다는 소식은 분명 기쁜 소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쁜 소식을 모든 사람이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시대가 가져다주는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소식이 결코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이 시대가 주는 유익을 맛보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소식이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을 주는 십자가의 도가 이 세상을 좇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기쁜 소식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새 시대가 동터 온다는 것을 믿으면 삶이 변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삶을 살지 않게 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비난하고 어리석게 여겨도 결코 동요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은 행함을 낳게 합니다.

 

믿음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확신입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을 행함과 대조해서 이해하는데 우리 주님께서는 믿음을 두려움과 대조시키셨습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는 자기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막 5:36). 야이로가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죽은 딸을 살리실 것을 믿으면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참된 믿음의 증거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을 오늘날 ‘증거가 없어도 그저 하나님을 믿기만 하라’는 식으로 잘못 가르쳐 지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은 거짓 확신으로 전락시킵니다. 믿음은 행함을 동반합니다. 오늘날 믿음이 행함과 대조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는 믿되 예수의 복음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차고 넘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자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부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부흥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그 나라의 왕이시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그분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나를 위험으로부터 보호 해 주십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통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때로 성도의 삶이라는 것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초라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미 그분의 백성이라는 ‘기쁜 소식’이 마음을 든든하게 합니다. 왕이신 그분은 내 아버지도 되시기에 잠시 잠간 있다가 사라질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나그네처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시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려온다면 그에게도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반드시 회개하고 믿는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각과 세계관과 삶의 변화가 없다면 복음이 임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역사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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