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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호 9:1-9
성경본문내용 (1)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행음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 하였느니라(2)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저희를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3)저희가 여호와의 땅에 거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이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4)저희가 여호와께 전제를 드리지 못하며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할 것이라 저희의 제물은 거상 입은 자의 식물과 같아서 무릇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나니 저희의 식물은 자기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 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이니라(5)너희가 명절일과 여호와의 절일에 무엇을 하겠느냐(6)보라 저희가 멸망을 피하여 갈지라도 애굽은 저희를 모으고 놉은 저희를 장사하리니 저희의 은 보물은 찔레가 덮을 것이요 저희의 장막 안에는 가시 덩굴이 퍼지리라(7)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임한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8)에브라임은 내 하나님의 파숫군이어늘 선지자는 그 모든 행위에 새 잡는 자의 그물 같고 또 그 하나님의 전에서 원한을 품었도다(9)저희는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패괴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강설날짜 2013-06-23

 
2013년 호세아서 공부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말씀:호세아 9:1-9

 

오늘부터 우리는 호세아서 9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9장 말씀에서도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호세아 선지자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형벌을 선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보다 타작마당과 술틀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행음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 하였느니라. 타작마당이나 술틀이 저희를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저희가 여호와의 땅에 거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이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 것은 그들이 타작마당과 술틀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1절을 다시 보면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행음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고 합니다. 이방 사람들이 기뻐하고 뛰노는 것은 언제입니까? 그들의 수입이 늘어났을 때입니다. 곧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나, 포도를 수확할 때나, 또는 양털을 깎을 때입니다. 그들은 그 때 큰 잔치를 합니다. 그들이 잔치를 하는 것은 이러한 수확물을 준 자신의 신에게 감사하며 축제를 벌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이방인들처럼 기뻐 뛰노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뻐 뛰노는 것이 이방인들과 같이 되어버렸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음행하였다는 것입니다.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 하였느니라”(1b). 여기서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했다’는 말은 돈에 유혹되어 음행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창기와 같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고 음행한 사실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의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을 의지한 것입니다. 2절을 다시 보면 “타작마당과 술틀이 저희를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타작마당과 술틀을 의지한 것은 그들이 이방인과 같아져 버린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살리시는 것은 하나님이신데 그들은 타작마당과 포도를 생산케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방인의 사상이요, 바알을 섬기는 것과 같은 음행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로부터 포도주와 곡식을 제하여 버리심으로써 그들에게 형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이미 2장에서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떠나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이런 형벌을 내리시는 것은 그들에게 건전한 정신을 회복시켜 주시고, 최소한 그들에게 변명할 수 없도록 만드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창기가 궁핍에 빠지고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어 봐야 남편을 버린 것이 얼마나 얼빠진 행동인지 인정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형벌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창기와 같은 착각에 빠져서 스스로 즐거워하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타작마당이나 술틀이 저희를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다”라는 말은 타작마당이나 포도주 틀이 그들을 먹여 살리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가 그들에게 거짓말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곧 새 포도주가 그들을 실망시킨다는 것입니다. 결국 포도원이 기대를 채워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거짓 신들을 숭배한 것이 허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바치는 것을 재거하여 버리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보상을 바라는 것에 대해서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풍부한 물질을 통하여 스스로 기뻐하기 위해서 거짓 신들을 따라 가기에 바빴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에게서 양식을 다 빼앗아 버리겠다. 그들에게 포도주도 주지 않고 곡식도 주지 않겠다. 이러한 굶주림이 결국 그들을 회개하게 만들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따라 간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인하여 기뻐합니까?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기쁨입니까? 아니면 나의 수입이 늘어가는 것이 기쁨입니까? 물론 사람마다 추구하는 기쁨이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 인간들의 싸움이란 ‘하나님이냐? 돈이냐?’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6장에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눅 16:13). 그렇습니다. 두 주인을 동시에 공평하게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에 치우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모습이 바로 구약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스라엘에게서도 그대로 다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에 대하여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의 수확이 많아서 창고를 늘리고 이제 편안하게 살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이방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그 많은 재물들이 자기의 생명을 연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그 재물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이방인의 사고방식에서 구원하신 것은 이제 그러한 것을 목숨처럼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바로 인도하지 않고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양식도 없고 물도 없는 광야로 인도하신 것은 그들이 사는 것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애굽의 사고방식은 양식만 있으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방인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떡이 없다, 물이 없다는 원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한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떡과 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무엇이 없었습니까? 자유가 없었습니다. 진리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의 종이 되어 살아도 내 배만 부르면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곳에서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기보다 그들의 타작마당과 술틀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떡과 포도주만 있으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하여 형벌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형벌이 무엇입니까? 추방입니다. 약속의 땅에는 비약속의 백성들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하여 토하여 내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은 이스라엘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이미 그 사상은 이방인이 되어 버렸기에 그들은 이방의 땅으로 추방을 당하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저희가 여호와의 땅에 거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이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땅에 거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에브라임이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애굽과 앗수르는 떡과 포도주만 있으면 살아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그곳에 가서 더러운 떡을 먹고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땀과 노력이, 그들의 섬기는 우상들이 준다고 생각하는 떡과 포도주는 더러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식물 자체가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더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상이 더러운 사상이기에 더러운 떡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앗수르로 추방을 당하는 것입니다.

 

4-5절을 보면 “저희가 여호와께 전제를 드리지 못하며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할 것이라. 저희의 제물은 거상 입은 자의 식물과 같아서 무릇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나니. 저희의 식물은 자기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 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이니라. 너희가 명절일과 여호와의 절일에 무엇을 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전제를 드리지 못하며,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여도 드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명절과 절기에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그들은 이방의 땅에서 부정한 것이기에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그것을 초상당한 집에서 먹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저희의 제물은 거상 입은 자의 식물과 같아서 무릇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나니. 저희의 식물은 자기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 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이니라.” 여기서 거상 입은 자의 식물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부정한 음식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에 의하면 초상집에 들어가는 자와 그곳에 거하는 자, 그곳에 있는 그릇이나 시체를 만진 자 등은 7일 동안 부정케 되었습니다. 민수기 19:14-22절을 보면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의 법은 이러하니 무릇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무릇 그 장막에 있는 자가 칠일 동안 부정할 것이며, 무릇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도 부정하니라.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이운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취하여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정한 자가 우슬초를 취하여 그 물을 찍어서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그 정한 자가 제 삼일과 제 칠일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제 칠일에 그를 정결케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하리라. 사람이 부정하고도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총회 중에서 끊쳐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케 하는 물로 뿌리움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 이는 그들의 영영한 율례니라. 정결케 하는 물을 뿌린 자는 그 옷을 빨 것이며, 정결케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고 했습니다. 초상집에 들어가서 먹는 것은 일주일간 부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어떤 포도주나 떡을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용납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로 말미암아 그를 힘입어 드려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독단적으로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6절을 보면 “보라. 저희가 멸망을 피하여 갈찌라도 애굽은 저희를 모으고 놉은 저희를 장사하리니. 저희의 은 보물은 찔레가 덮을 것이요, 저희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퍼지리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이 이방 땅에 흩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재난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을 갈지라도 그리고 애굽에서 그들을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그곳이 무덤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난하면서 그들이 살아남고자 가져간 은 보물에는 찔레가 덮일 것이요, 그들의 장막에는 가시덩굴이 자랄 것이라고 합니다. 황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형벌을 받게 된 이유는 하나님보다 타작마당과 술틀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형벌을 받게 된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들의 경고를 듣지 아니한 것입니다. 7절을 보면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임한 것을 이스라엘이 알찌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그들은 선지자를 향하여 ‘어리석은 자요, 미친 자’라고 한 것입니다. 선지자들을 어리석은 자요, 미친 자라고 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어리석은 자요, 미친 자라고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7절을 다시 보면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임한 것을 이스라엘이 알찌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미쳤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그러하였지만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들은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리석고 미쳤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후자의 경우를 보면 뒤의 문맥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들의 죄악이 많고 그 원한이 크기에 하나님의 선지자를 어리석다고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8절도 선지자가 새 잡는 그물과 같이 되고 하나님의 전에서 원한을 품는다고 되어 있는 말씀도 오히려 선지자를 핍박하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8절에 보면 “에브라임은 내 하나님의 파숫군이어늘 선지자는 그 모든 행위에 새 잡는 자의 그물 같고 또 그 하나님의 전에서 원한을 품었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부패하기를 마치 사사시대에 기브아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9절에 보면 “저희는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패괴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사시대 기브아에서 일어난 비참한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사기를 공부할 때 살펴봤습니다만 사사기 19-20장에 보면 레위인이 첩을 취하고 기브아인들은 그 레위인의 첩을 밤새도록 욕보여 죽게 하였습니다. 참으로 심히 패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사사시대의 캄캄한 암흑처럼 지금 왕이 있는 시대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결국 선지자가 있건 없건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고발인 것입니다. 자기들의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을 의지할지언정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증거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6:26-27절을 보면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마리아 성이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의 일을 이야기합니다. 열왕기하 6:24-7:20절에 보면 적에게 포위된 사마리아 성에 물가가 치솟아 오른 것입니다. 평소에는 부정하다고 먹지도 않던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나 하였습니다. 그러니 돈 없는 사람은 굶어 죽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자 어떤 두 여인이 자기들의 아이를 삶아서 먹자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아이를 삶아 먹고 나서 다음날 다른 아이를 내어 놓으라고 하니 숨기고 내어 놓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에게 재판하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 왕의 대답이 “여호와께서 돕지 아니하시는데 내가 무엇으로 도우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데 어찌 우리가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기다리겠느냐며 엘리사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자 엘리사 선지자가 내일 이맘때면 고운 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에 사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에 살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이며 미친 말입니까? 지금 굶어서 죽어가는 지경에, 자기 아이를 삶아서 먹는 지경에, 나귀 머리 하나가 은 팔십세겔이나 하는데 어떻게 고운 가루 한 스아가 달랑 한 세겔을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운 가루가 있었다면 나귀 머리보다 값이 더 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물가가 하루아침에 팔십 배도 더 하락한 것입니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왕의 식물을 담당하던 장관은 하늘의 창고 문을 연다고 하여도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이 장관의 말이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엘리사가 어리석고 미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엘리사가 너는 그것을 보기는 하되 먹지는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의 말대로 이 장관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다음날 문을 지키다가 사람들에게 밟혀 죽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이방인의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애굽과 앗수르로 추방이 됩니다. 또는 애굽이 살길인줄 알고 스스로 그들에게로 도망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은 어떤 곳입니까? 이스라엘이 탈출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으로 다시 간다는 것은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고 난 후 다시 오물에 뒹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애굽이란 사람들의 땀과 노력으로 먹고사는 나라입니다. 관개수로가 잘되 있기 때문에 사람이 노력만 하면 먹고 살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비가 흡수하는 땅이라서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내려 주셔야 합니다. 모든 수확은 하나님의 손에 달린 곳입니다. 그러므로 비가 오지 않으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방인이 보면 얼마나 어리석고 미친 짓입니까? 댐을 건설하고 저수지를 만들고 관개시설을 만들어 농사지어야지 무슨 짓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날 이 땅에 살면서 어떤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는가를 오늘 본문 말씀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이방인의 모습인가, 아니면 약속의 백성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자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타작마당과 술틀을 의지하고 살고 있습니까? 시편 4:7-8절을 보면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함으로 기뻐할지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주시는 의로 인하여 기뻐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이스라엘과 같은 자임을 알게 하시고 우상에서 돌이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며 우리 주님이 주시는 의로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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