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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히 7:26-8:7
성경본문내용 (26)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27)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28)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1)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2)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3)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4)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좇아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5)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6)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7)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강설날짜 2012-10-14

2012년 10월 14일 한결교회 주일예배강설

히브리서 제19강


하늘 성소에 계신 우리의 대제사장


말씀 : 히 7:26-8:13


지난주에는 멜기세덱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서 레위 대제사장보다 얼마나 탁월하신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 26절부터는 이러한 논증을 이어가면서 그리스도께서 레위 제사장보다 탁월한 이유 한 가지를 더 언급하고 있습니다.


(26)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27)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28)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왜 레위 대제사장보다 우월하실 수밖에 없는지 또 하나의 중요한 근거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그분이 온전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죄가 없으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와 동일하게 시험받으시고, 시험의 위력을 경험하시고, 순종의 길이 어렵다는 것을 고난을 통해서 배우심으로써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실 수 있는 분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결단코 죄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시험을 이기셨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 분이 되셔서 또한 우리를 능히 그 죄에서 건지실 수 있는 분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레위 대제사장과의 근본적이 차이점이죠. 레위 대제사장들은 남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릴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레위기 4:3; 16:6). 왜냐하면 대제사장 본인도 하나님 앞에 날마다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 제사 드리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서도 날마다 드리실 필요가 없이 단번의 제사로 모든 속죄를 끝내고 완성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흠 없는(영원히 온전케 되신) 자기 자신을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이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신 영단번의 제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9-10장에 또 다시 언급될 것입니다.

 

그것을 언급하기에 앞서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제 8장에서 앞선 논증을 일단락 지으면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의 우월성과 관련하여 본론적으로 중요한 세 가지 주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약, 성소, 제사라는 3가지 주제입니다.


1) 언약 - 새언약이 옛언약을 대체하였음.

2) 성소(성막) - 하늘성소는 실체이고 땅의 성소는 모형이다.

3) 제사 - 동물제사는 반복적, 육체를 정결케 할뿐 양심을 정결케 할 수 없음.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는 영단번의 제사, 우리의 양심을 정결케 하고, 죽은 행실을 깨끗케 하여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


이 세 가지 주제가 8-10장에 걸쳐서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편에서는 주제별로 체계적으로 다루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에 편한데, 히브리서 저자의 논술방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 주제를 복합적으로 서술하고, 또 반복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이 세 가지 주제를 하나하나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나머지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시킴과 동시에 점층적으로 상승시켜서 논증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회중에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8장은 우선 성막에 대해서, 그리고 언약에 대해서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1)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2)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1절 말씀은 앞선 논증을 일단락 짓습니다.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라는 말의 의미는 “하는 말의 요점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라는 뜻입니다. 즉 히브리서 저자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러한 대제사장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레위 제사장보다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하시고, 영원히 온전케 되신 분이시라는 것이 뭐가 어쨌다는 것입니까? 나와는 무슨 상관입니까? 그러한 분을 바로 우리가 소유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가 정말 거듭난 자라면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편이시고,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서 영원히 하늘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분이 어디에 계신 대제사장이시냐 하면, 하늘의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하늘의 위엄의 보좌 우편”이라는 장소는 2절에서 “성소와 참 장막”으로 표현됩니다.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라고 했습니다. “부리는 자”라는 말은 일군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처럼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왕과 같은 다스리는 일군으로 계십니다.


(21)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히 10:21)


예수님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집, 곧 하늘 성소를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앞서서 하늘에 있는 성소에 대해서 어렴풋이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서는 본격적으로 하늘성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님은 하늘 성소에서 일하신다는 것인데, 그러면 이 하늘 성소라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19)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20)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 6:19-20)


예수님은 하늘 성소의 휘장 안에 우리 앞서 가셨습니다. 이 말은 궁극적으로는 우리도 가게 될 곳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하늘성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라고 초청하신 장소로서, 그것을 3-4장에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11장에서는 이렇게 표현되었습니다.


(10)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10)

(16)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이런 개념들이 각각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늘 성소, 참 장막 = 하늘 보좌 우편 = 하나님의 집 = 영원한 안식의 땅 =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 = 하늘에 있는 본향


여러분 하늘에 올라가면, 하늘에 보좌가 있고 그 우편에 의자가 있어서 예수님이 거기 정말 앉아계신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하늘에 가면 정말 성막이 있고 성소가 있어서 거기서 예수님이 일하고 계신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한 것들은 실제로 물리적으로 있다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표현들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시고, 하늘 성소에서 일하시고 계신다는 것이 히브리서 수신자들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땅에 있는 성소를 의지하지 말고, 하늘에 있는 성소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결국 본문은 이 두 가지를 대조 또는 비교를 해서, 이 둘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초점입니다. 이 하늘 성소는 땅의 성막(성전)과 대조됩니다. 땅의 성막은 사람의 손으로 지었지만, 이 하늘의 성막은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입니다.


(2)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주께서 하늘에다가 친히 베푼 성소인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3)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예수님도 하늘의 대제사장으로서 무언가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렇지만 이 점은 여기서 간단하게만 언급되고 10장에서 가서 주로 언급될 것입니다. 일단 중요한 것은 하늘의 성막과 땅의 성막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하늘 성막에서 일하신다는 것은 그가 지상의 성막에서는 그것을 수행할 자리가 없다는 사실로 나타납니다.


(4)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좇아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예수님이 땅에 속하신 분이시라면, 제사장이 되실 필요가 없습니다. 땅에는 이미 제사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에 의하면 레위지파만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지파에서 나신 분이시기 때문에, 율법에 의하면 예수님은 모든 제사장 직무에서 제외된 평신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땅의 제사장이 되실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되고 싶으셨는데 신분상 될 수 없기 때문에 땅의 제사장이 못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이 땅의 성막의 제사장이 아니라, 하늘 성막의 제사장이시기 때문에 땅의 제사장이 안 되신 것입니다. 그분은 하늘에 속하셔서 하늘의 성막에서 일하시는 참된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그러면 성막이 땅에도 있고 하늘에도 있고, 왜 두 개가 있느냐? 이런 질문을 할 수가 있겠지요. 어느 것이 진짜냐? 하는 것입니다.


(5)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이 땅의 성막, 이 땅의 대제사장, 이 땅의 제사제도 등 율법이 명하는 모든 의식적인 것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고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5장을 보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8)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9)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 25:8-9)

(40)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출 25:40)


즉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하늘에 있는 진짜 성막의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이것을 본 따서 땅의 성막을 만들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깐 중요한 것은 원형이 처음부터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속적으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일반적으로 새로운 차를 만들려고 할 때, 자동차 회사에서 어떻게 합니까? 개발자들이 먼저 신차의 외부 모양이나 내부 부품들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디자인해서 계획안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계획한 모델의 상상도나 축소시킨 모형을 회사 사장들과 임원들에게 보여주어서 허락을 받으면, 그때부터 개발에 들어가게 되어지고, 그리고 한참 후에 완성된 차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모형을 먼저 만들고 그 모형의 실체인 차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진 차를 다른 나라에 수출해서 팔고자 할 때 어떻게 합니까? 처음부터 그 차를 소비자에게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갖다 놓았는데 그 사람이 사지 않으면 곤란하니깐) 먼저 그 차의 외관을 찍은 사진이나 그 차의 외관을 본 따 만든 작은 모형들을 보여주면서, 소비자가 그것을 살 의향이 있으면, 그때 그 차를 그 사람에게 갖다 주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이미 원형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그 원형을 따라 모형을 만들어서 보여주고, 차후에 그 원형을 주는 형식인 것입니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이를테면 하나님의 구속사는 전자가 아닌 바로 후자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즉 처음부터 원형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창세전에 하늘 성막이 있었던 것이고, 창세전에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계신 것입니다.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그리스도는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가 되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창세전에 이미 왕이시고 제사장이시고 선지자로 세움을 받으신 것입니다. 즉 원형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형을 따라 그 원형의 모형으로서 아론 대제사장을 이 땅에 세우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아론 대제사장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놀라운 섭리 가운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을 먼저 아브라함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성막도 마찬가지입니다. 원형이 미리 존재하고, 그 모형과 그림자로 땅의 성막을 짓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막의 원형이십니다. 우리가 요한복음에서 배운 것처럼 예수님 자신이 참 성전, 참 성막이 되십니다. 그러니깐 하늘에 정말 성막이 있고, 거기서 예수님이 정말 일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원형이신 예수님 존재 자체를 본 따 만든 것이 바로 땅의 성막입니다. 그리고 성막에서 드리는 동물의 희생제사와 정결예법들, 여러 가지 의식법들이 다 하늘에 있는 원형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모형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실이 말해주는 두 가지 사실이 무엇입니까?


(6)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7)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먼저는 율법이 명한 성막, 대제사장 제도, 동물의 희생 제사가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형은 그것을 손가락질하여 가리킬 뿐이지, 그것 자체가 무슨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참 성전이시고 예수님만이 대제사장으로서 그분의 제사를 통해서만 참된 구원의 효력을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분의 직분을 유일하게 아름다운 직분, 유일하게 좋은 약속, 유일하게 좋은 언약의 중보라고 하지 않고, 더 아름다운 직분, 더 좋은 약속, 더 좋은 언약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이것이 히브리서의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즉 신약이 더 좋은 언약이라면, 구약도 좋은 것이라고 하는 점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 구약의 대제사장, 구약의 제사제도가 바로 아름다운 직분이고 좋은 약속이고 좋은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그보다 더 좋은 언약의 중보가 되시고 보증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를 읽어보시면, ‘더 좋은, 더 나은’이라는 말이 아주 자주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히브리서의 핵심단어 중 하나입니다. 이를 통해서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은 나쁜 것이고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신약의 바탕으로서 신약을 예견하고 예표하는 모형과 그림자로서 좋은 것인데, 그 구약의 성취요, 모형과 그림자의 실체는 더 좋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실체가 오기 이전에 모형과 그림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결국 원형이 엄연히 있고, 그 원형을 통해서만 구원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면, 처음부터 원형을 보내시지 왜 하필 모형과 그림자를 먼저 보내셨을까요? 그것은 무슨 질문과 같냐 하면, 왜 땅에 씨를 뿌리고 그것이 싹을 내고 자라서 한참 후에 열매를 맺게 하셨는가? 하는 질문과 같은 것입니다. 그냥 하늘에서 열매가 떨어지게 하시든지, 아니면 돌이 떡이 되게 하시든지 해서 먹고 살게 하시면 안 되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심지 않은데서 거두시는 분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심고 자라게 하셔서 결국 완성에 이르게 하셔서 열매를 거두시는 분이시다. 구속사의 경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이미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계획하셨고, 이미 하나님께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시므로). 그러나 그것을 우리 인생들에게 실현하실 때에는 그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짠하고 나타나게 하셔서 처음부터 완성된 상태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구속의 경륜 가운데 원시 상태로부터 시작해서 구속의 경륜과 역사의 흐름과 과정과, 성장의 과정을 거쳐서 결국은 완성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모형을 먼저 보내시고 그 다음에 원형을 보내셔야만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복음이 오기 전에 율법이 와야 하는데, 율법의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술 마신 사람이 비틀비틀 거리면서 걸어가는데도 자기는 똑바로 걸어간다고 우길 때, 어떻게 하면 됩니까? 선을 죽 그어놓고 그 길을 걸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선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길을 똑바로 걸어가게 할 수 있게는 못하지만, 그러나 그가 똑바로 걷지 못하는 술에 취한 사람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역할은 하는 것입니다. 옛 언약과 율법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옛 언약은 율법을 지킬 것을 명하지만, 그러나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인간은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폭로하신 것입니다. 단순히 십계명이나 법조항만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의식법, 제사법들도 바로 우리의 죄인 됨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3)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히 10:3)


구약의 제사는 그 사람의 양심을 깨끗케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죽을 죄인이라는 것은 알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을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목적입니다.

 

두 번째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모형과 그림자로서 실체를 손가락질 하여 가리킵니다. 교육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9장을 살펴보면서 보다 자세하게 살필 것입니다. 성막의 구조와 내용, 동물의 희생제사와 여러 가지 씻는 정결예법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사역과 십자가 대속의 사건을 미리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선행학습을 통해 예습하면서,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러한 실체가 속히 오시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대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율법은 실체가 오면 기뻐 환영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언약은 새언약을 더욱 높여주고 더욱 빛나게 밝혀주는 기둥과 반석과 같습니다.

 

세 번째로 옛 언약과 율법은 단순히 예표할 뿐만 아니라, 이 모형을 통해 장차 임할 실체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구약의 신자들은 거듭남과 죄사함과 구원을 얻었고 영생을 얻었던 것입니다. 모형 그 자체에서 어떤 효과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모형 자체는 아무런 효력을 낼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는 “때가차매” 실체와 원형이 오셨고, 복음의 빛이 밝히 비취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한 이 옛언약과 율법은 새 언약에게 모든 자리를 양보하고 없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이 실체를 버리고 다시 모형과 그림자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실체가 왔는데, 그 실체를 버리고 모형으로 돌아가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옛언약은 눈에 보이지만, 새언약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옛 언약은 땅에 속한 것이고, 새 언약은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땅에 있다는 것과 하늘에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본질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신약의 복음서나 서신서에서 하늘과 땅의 대조가 자주 나타나는데, 그때마다 그 의미하는 바는 바로 하늘이 땅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이 높다는 것이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바로 볼 수 있는 땅과는 반대로 하늘은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다는 것은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저자가 하늘이라는 용어를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의도하고자 하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 하늘에 계십니다. 우리 눈에 안 보입니다. 그분의 십자가 죽으심을 우리는 본적도 없고 말씀으로만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그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우리가 죄 사함 받은 것, 그거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영생을 얻었다는 것,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어떻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장차 부활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까? 다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지난주에 말씀에 지금도 하늘에서 기도하고 계신다고 했는데, 그것을 눈으로 어떻게 확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복음이 말하는 모든 내용과 축복과 약속들은 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육체의 오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우리가 전혀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감지하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전혀 새로운 감각기관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으로만 알 수 있고, 믿음으로만 느낄 수 있고, 감각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2)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3)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1-3)


이 말씀은 믿음이 바로 식스센스라는 말입니다. 식스센스 영화를 보면, 한 아이가 나오는데, 이 아이는 다른 사람들처럼 오감에다가 하나 더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식스센스, 곧 그것이 바로 귀신들을 보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식스센스였습니다. 그래서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의 내용과 약속들은 우리의 오감을 통해서는 결코 감각할 수 없고, 오직 믿음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생활 잘해서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정말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뜨겁게 느껴지고,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것을 내 영혼이 느낄 수가 있는 것이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간절히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수신자들처럼 병적인 유아상태에 머무르고, 게을러서 믿음이 연약해져 있는 상황이 되면, 그런 것들을 느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둔하여져서 성령이 함께 하시는지를 느끼지 못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들어도 무덤덤하고, 그 크신 은혜를 망각합니다. 장차 우리가 기업으로 받을 하나님 나라의 약속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의 주된 관심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뭐가 크게 다가오느냐 하면, 바로 육신의 오감을 통해서 전해오는 눈에 보이는 이 땅의 것들이 크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추구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현실에서 직면하는 고난과 어려움과 핍박이 크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에 대한 두려움과 세상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신앙의 뒷걸음질을 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수신자들의 영적 상황이었습니다.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복음의 내용과 약속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세상과 타협하고, 유대교와 타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왜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했습니까? 옛 언약은 대제사장이 지금 눈앞에 있고, 짐승을 잡아 죽이는 것도 눈으로 보고 만지면서 하는 것이고, 대제사장이 자기 백성들을 위해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중보하는 그 모든 제사의식들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뭔가 확실하고 보장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매력을 느끼고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들을 향해서 히브리서 저자는 눈에 보이는 땅에 꽂혀 있는 그들의 시선을 하늘로 들어 올리어서 하늘을 바라보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이 진짜이고, 눈에 안 보이는 것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야에서 예수님이 사라지신 것은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하늘에 참성막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내용과 약속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답답해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의 눈을 들어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고 믿음의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저자가 수신자들에게 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도 이 신앙의 내용들, 복음의 약속들을 우리의 오감으로 확인하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힘들 때 “하나님 제발 나타나셔서 한번 보여주십시오. 뭔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고, 피부에 와 닿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힘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기도할 때가 있는데, 그렇게 구하면 하나님이 짠 나타나셔서 보여주십니까? 아니죠. 간절히 구해도 묵묵부답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낙심해서 아예 신앙을 자포자기 해버리곤 하는데, 이것이 신앙이 어리면 그런 것입니다. 그런 것은 오직 식스센스로만 감각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오감으로 감각하려고 애쓰는 것이죠.

 

그리고 또한 우리는 자꾸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원합니다. 내 여러 가지 인생문제가 당장에 해결되어지고, 눈앞에 장애물이 없어지고, 앞길이 환히 보이면서 탄탄대로를 걸어가게 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축복하시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 반대이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가? 그렇게 의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하늘에서 일하시고 계시는 데,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지각할 믿음이 없기 때문에, 주님이 내 눈에 안보이니깐 나를 버리셨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내면이 눈에 보이는 이 땅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이 땅에서의 우리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땅을 바라보며 사는 삶인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병적인 유아기에 머물러 있고, 은혜에서 많이 미끄러져 있으면, 결국 이러한 신령한 세계와 복음의 내용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고 거의 감각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십자가 복음을 들어도 무덤덤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 이런 것들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리어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거기에 열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국은 불타 없어질 것이고,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을 사랑하는 것은 멸망 받을 우상숭배이고, 사도요한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우리가 다 들어서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솔직하게 이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며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만큼 우리가 주님이 하늘에 계시고 일하신다는 것을 바라보고 믿는 믿음, 그리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의 귀중함을 알고 소망하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땅에 꽂혀 있는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들어 올려서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하늘의 것을 바라보지 않고, 땅의 것을 사랑하게 될 때 결국 영원히 멸망에 처해진 에서와 같이 될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16)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히 12:16)


에서는 눈앞에 있는 한 그릇의 죽 때문에 그 귀한 장자의 명분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즐거움과 만족, 눈에 보이는 세상의 쾌락을 사랑하고 추구할 때 결국 그것이 비참한 말로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땅에 있는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생각하고 하늘의 것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2)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3)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4)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1-4)


정말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고, 우리를 위해서 하늘 지성소로 우리 앞서 들어가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중보의 사역을 하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다시 영광중에 우리를 위해 나타나실 것이라는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을 믿을 때에 우리는 우리의 눈앞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이 지금도 하늘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낙심하지 아니할 수 있는 것이고, 도리어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을 누리며 상황과 형편과 관계없이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있을 때, 비록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지만, 장차 더 좋은 세상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그런 소망을 갖고, 고난을 인내하고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주님이 지금도 하늘 성소에서 일하심을 우리로 믿게 하시고 바라보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이 하늘을 향한 소망을 갖고, 고난을 인내하고 견디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게 하여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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