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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벧후 2:1-8
성경본문내용 (1)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2)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3)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4)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5)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6)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7)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8)(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강설날짜 201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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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베드로후서 공부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

 

말씀:베드로후서 2:1-8

 

오늘부터 베드로후서 2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멸망’이라는 말이 무려 세 번이나 나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자초하는 자가 누군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지금 멸망을 자초하고 있는 자리에 있지 않는지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1절을 보면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민간에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여기서 민간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세상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났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된 예언의 말씀을 사사로이 풀다가 멸망한 자들과 연결시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민간이란 이스라엘 가운데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나타난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은 한마디로 심판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은 다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곧 그들은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선지자들을 백성들이 좋아할리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백성들의 마음을 충족시켜 주는 자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면서도 늘 평안과 희망과 성공을 이야기한 자들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예레미야서 27장에 보면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쳐들어왔을 때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이 쳐들어오면 힘을 합쳐서 막아낼 생각을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여 적을 물리쳐달라고 해야지 선지자라는 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니 어떻게 미움을 받지 않겠습니까? 예레미야는 매국노 취급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0:7-9절을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보다 강하시기에 하나님이 권하시는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말할 때마다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게 되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미움을 받아 종일 치욕과 모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답답하였습니다. 예레미야 20:14절에서는 자신이 태어난 날이 저주 받았다면 좋았겠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혹독한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자들은 평안을 전합니다. 여러분들 같으면 누구 말을 듣겠습니까? 대부분 평안을 전하는 자들의 말을 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들은 자들은 그들과 함께 심판을 받고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베드로 사도는 “지금도 너희 중에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고 하는 것입니다(벧후 2:1).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선생들은 구약에서만 아니라 베드로 사도가 활동하던 그 당시에도 있었고, 지금도 이 시대도 거짓선생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거짓 선생들이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인다고 합니다. 이단이 확연하게 표가 나도록 나오면 분별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끌어들이면 잘 모릅니다. 더더구나 사단의 일군들은 의의 일군으로 위장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리가 양의 탈을 쓰고 오기에 분별하기가 쉽지 않은 것같이 이들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결국은 행위로 들러나는데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단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이단을 끌어들여서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신 주님을 부인하게 하는 것은 주님의 공로를 무효화시키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사셨는데 우리를 사신 주님을 부인하는 것은 예수님의 공로를 무시하고 그 안에다 인간의 공로를 집어넣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의 공로를 집어넣음으로 그 결과에 따라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하늘에서도 상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임박한 멸망을 자초하는 자들입니다.

 

2절을 보면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여럿이라는 말은 많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7:13-14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고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반면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나 거짓 선생들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들이 따르는 것은 진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호색을 따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호색이란 다만 성적인 것만을 말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모든 욕망을 말합니다. 거짓선생들이 제시하는 것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11절을 보면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왜 그대로 두라고 하는 것입니까? 이미 종말이기 때문입니다. 종말의 특징이 이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은 자기들의 탐심을 따라 호색하는 자들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나 거짓 선생들이 하는 일이란 자기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옵니다. 이들은 성경을 말하지만 교묘하게 자기들이 지은 말로 변개시킵니다. 그 지어낸 말은 결국 자기들의 탐심을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16절을 보면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억지로 푼다’는 말씀이 교묘하게 푼다는 말입니다. 베드로후서 1:20절에서는 사사로이 푼다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의 탐욕을 채워주는 것으로 해석하는 자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인 것입니다. 어떤 성경도 인간의 욕심을 채워주는 말씀은 없습니다. 인간의 탐심이 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면서 자신의 탐심이 죄임을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말하고, 성령님을 말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면서 인간의 욕심을 채워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바로 거짓 선생들입니다.

이런 거짓 선생들이란 결국 탐심을 이용하여 자신들을 따르게 하여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경건도 자신들의 이익을 구하는 재료로 사용합니다. 이런 일들이 한국교회 가운데 팽배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묘히 세상 영광과 성공을 부추킵니다. 그대표적인 말씀이 말라기 3:10절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복을 쌓아둘 곳이 부어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탐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하는 것이 우리를 사신 주님의 피를 부인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피 값으로 사신 주를 부인하게 하는 거짓선생들이 얼마나 교묘하게 우리 안에 침투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거짓 평안을 약속하는 것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영광을 준다는 것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옛적부터 심판이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멸망이 자지 않았습니다. 이제 최종 멸망이 임박한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 선생들에게 속지 말고 더욱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히 12:2).

 

3절을 다시 보면 이런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은 지체되지 않았고, 자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마다 계속된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고, 그런 심판들은 이 말세를 맞이한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본보기가 구약에서도 수없이 많습니다. 출애굽의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보게 되고, 광야에서도,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수많은 심판을 보게 됩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은 세 가지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4절에 보면 범죄 한 천사에 대한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4). 여기서 천사란 하나님의 일을 시중들기 위하여 지음 받은 영적인 피조물입니다. 이 천사들이 어떻게 범죄 하였는지는 자세히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유다서 1:6절에 보면 천사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 한 천사를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쫓겨난 범죄 한 천사가 갇힌 곳이 바로 이 지상입니다. 에베소서 2:2절에 보면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쫓겨난 범죄 한 천사들이 이 지상으로 쫓겨나 인간들을 유혹하여 자기편으로 삼아 하나님을 거역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7-9절을 보면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쫓겨난 사단이 지상에서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유혹할 때 보면 자기에게 절하면 세상의 영광을 준다고 하였습니다(마 4장). 이 유혹이 지금도 온 세상을 미혹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영원한 영광을 이야기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만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에서 선포되는 대부분의 메시지가 주님의 심판과 재림보다 세상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노아 홍수 심판입니다. 5절에 보면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는 아까워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지만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보시고 한탄하시면서 쓸어버리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입은 노아와 그 가족들은 보존함을 받고 하나님의 의를 전파하였습니다. 노아가 어떻게 의를 전파한 것입니까? 120년 동안 배를 만드는 것이 바로 의를 전파한 것입니다. 배를 만드는데 바닷가도 아닌 높은 산에서 배를 만들고 있으니 왜 그러느냐고 물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때 노아의 대답은 하나님은 이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여서 물로 심판을 행하실 것이라고 대답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노아의 말에 관심 가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노아를 미치광이 취급을 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노아의 심판을 예기하며 자신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심판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37-39절에 보면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노아의 홍수 때와 같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얼마나 외롭게 방주를 준비하였겠습니까? 몇 년도 아니고 120년을 만들고 있었으니 사람들은 노아를 조롱하고 멸시하였을 것입니다. 그 당시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똑똑하고 착한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 가족 외에 단 한사람도 하나님의 심판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노아의 가정 외에는 거저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세상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행복하게 사는가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심판과 멸망에 대하여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이 경건치 아니한 자의 모습입니다. 결국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한 사람도 깨닫지 못한 것처럼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누가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깨어 기도하고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의를 전파하고 있습니까? 노아가 전한 의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죄악에 대하여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 믿는 자들이 전파해야 할 의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세상에는 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의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의가 은혜의 선물임을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신 그 의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여전히 관심사는 그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노아 홍수 때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홀연히 임하실 것입니다.

 

셋째로, 6-8절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성의 심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케 하신 것은 후세에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게 본을 삼기 위한 것입니다. 노아 홍수는 전 지구상에 덮친 심판입니다. 그러나 노아와 언약을 맺으실 때에 다시는 물로 심판 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장차 어떻게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소돔과 고모라성이 유황불에 살라진 것으로 본보기를 삼은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은 어떤 곳입니까? 창세기 13장에 보면 마치 에덴동산과 같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아브라함과 롯의 짐승이 많아지자 그 종들 사이에서 싸움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먼저 갈 곳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그 때 롯은 여호와의 동산 같은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이 하나님의 불심판을 받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환경이 좋고 경제적으로 풍부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이 어떤 환경에 처한다 하더라도 개선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당할 때 어떻게 롯이 구원을 받게 됩니까? 7-8절에 보면 의로운 롯을 건지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의 의로운 행위란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 하는 것을 말합니다.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 비록 살지만 그는 그 세상에 완전히 동화하지는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하기 위하여 천사가 소돔과 고모라를 방문했을 때 롯이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소돔과 고모라성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다른 색을 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니 혼자 외톨이가 되어서 성문 입구에 앉았다가 그 성에 들어오는 나그네를 자기 집으로 영접한 것입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그 사람을 이끌어내라고 우리가 상관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곧 남색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롯은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롯이 구원받는 것도 또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듯이 롯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구하여 내신 것입니다(창 19:29). 이런 은혜를 입은 롯의 모습은 그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지는 못하였지만 근심을 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세상이 이래서는 안 되는데, 죄악이 너무 관영하다는 것을 인하여 마음이 상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런 마음이 있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성과 같은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상하십니까? 눈에 보이는 세상의 헛된 영광만을 향하여 달려가는 인생들을 보고서 마음이 상하십니까? 아니면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해서 저런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가 하면서 도리어 원망하고 살고 있습니까?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세상을 향하여 달려가더라도 은혜를 입은 사람은 그런 세상을 보면서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런 롯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내도, 딸들도, 사위들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사위들은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긴 것입니다. 노아 홍수의 심판이나 소돔과 고모라성의 심판 이야기가 여러분은 어떻게 들리고 있습니까? 농담으로 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말세의 특징인 것입니다. 이런 경건치 아니한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은 심판을 지체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17:28-33절을 보고 마치겠습니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생각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주님의 심판은 지체되지 않았고 자지도 아니합니다. 우리는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처를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이 세상이 노아의 홍수 시대와 같고 소돔과 고모라 시대와 같습니다. 이런 시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깨어 하나님의 의를 전파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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