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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미 7:14-20
성경본문내용 (14)원컨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하는 주의 기업의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옵소서(15)가라사대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기사를 보이리라(16)가로되 열방이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려서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오며(17)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인하여 두려워하리이다(18)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19)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20)주께서 옛적에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강설날짜 2011-10-23
동영상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b_1byhq_CMg$

2011년 미가서 공부

 

맹세하신 대로

 

말씀:미가서 7:14-20

오늘 말씀은 미가서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살펴본 대로 미가 선지자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을 한마디로 하면 심판과 구원입니다. 선지서의 모든 선지자들이 다 그렇습니다만 미가 선지자도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먼저 선포한 후에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먼저 심판을 선고한 후에 구원을 선포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인간이 범죄하고 난 후에는 자기들의 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죄를 모르는 인간의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입니다. 곧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우주만물이, 천지를 창조한 신조차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선이고,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모든 것들은 악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이후 인간의 본성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기 영광을 위해서만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전에 죄가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죄를 알고 나면 자신들이 구원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자요, 심판을 받고 멸망을 받아 마땅한 자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때 구원이 선포되면 그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자기 맹세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임을 알고, 모든 영광을 주께 돌려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기 맹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우리가 언약적 구속사의 관점에서 성경읽기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도구 삼아 당신의 구속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란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이름으로 언약하신 것을 파기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식언치 아니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23:19절에 보면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식언치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속역사를 언약과 성취라는 방식으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66권을 한 마디로 하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지를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시고 그 언약하신 것을 성취해 가시는 방식으로 당신의 구속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언약과 성취라는 방식으로 당신의 구속역사를 이루어 간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주권적으로, 오직 은혜로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속역사를 언약하시고 그 언약하신 것을 성취하시는 방식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을 자기 맹세로 이루어내시는 중에 인간은 무슨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까? 왜 하나님께서 자기 맹세를 곧 자기 언약을 인간의 도움을 받아서 이루지 아니하시고 홀로 이루어 내셔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이 4대만에 이 땅을 차지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8-21절에 보면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찌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한 명의 자기 후손도 없는 상태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식을 낳지 못하는 아브라함 부부를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그 말씀이 성취되는 일에 아브라함이 왜 도움을 주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홀로 이루어 내셔야 하는지를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사라의 태와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한 후에 이삭을 태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무슨 거들어 드린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함으로 인해 첩 하갈을 얻고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이스마엘은 믿음의 자손 이삭을 괴롭힙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한 것은 불순종의 죄악뿐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도리어 방해한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는 사람의 솜씨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으로 나오게 됨을 분명하게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해서 출애굽하거나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실 때에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출애굽기 3:6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시기 위하여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면 애굽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으로 출애굽 하였다면 이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언약의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따라갔습니까? 아닙니다. 신명기 9:5-7절을 보면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라고 했습니다. 또한 신명기 9:24절에도 보면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오므로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것도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도 그들의 의로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그 맹세를 이루시려고 들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그 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목이 곧은 백성이라 늘 하나님을 격노케 하고 항상 거역할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늘’과 ‘항상’은 ‘가끔’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반복해서’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이라곤 늘 하나님을 진노케 하고 반역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이 일어났다면 그들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까? 자신들의 의로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 맹세를 이루어내신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속역사를 언약과 성취라는 방법으로 이루어 가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원컨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속 살림에 홀로 거하는 주의 기업의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옵소서”라고 합니다. 주의 지팡이로 주의 기업의 떼를 먹여달라고 간구합니다. 외로이 버려져서 갈멜산 산림에 홀로 거하는 주의 기업의 떼를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여달라고 간구합니다. 바산과 길르앗은 아주 좋은 목초지가 있는 곳입니다. 좋은 목초지에서 풀을 뜯는 양떼들과 같이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여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의 이런 간구가 뻔뻔스럽지 않습니까? 그들의 죄악이란 이미 앞에서 봤습니다만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고,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고,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재앙이 임하지 아니하리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심판을 당해야 마땅한데도 그들은 오히려 목자가 양을 먹이듯이 푸른 초장 맑은 물가로 인도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선지자는 무엇을 믿고 이런 간구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15-17절을 보면 “가라사대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기사를 보이리라. 가로되 열방이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려서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오며,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인하여 두려워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그들에게 기사를 보여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열방이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하며 입을 가리고 뱀처럼 티끌을 핥고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주로 인하여 두려워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인하여 열방까지 함께 두려워 떨게 되는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13-16절을 보면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열방이 듣고 떨며, 블레셋 거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방백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거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미치매 주의 팔이 큼을 인하여 그들이 돌같이 고요하였사오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의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홍해바다를 건너고 나서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뜻이나 소원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출애굽으로 인하여 열방이 두려워 떨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출애굽의 구원이 다시 일어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범죄 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70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9:18-19절을 보면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70년의 뜻을 깨닫고서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릎 쓰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처절한 회개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기에 그 언약을 따라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기에 자기들이 간구할 그 어떤 의로움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간구하는데 주의 이름을 위하여, 곧 주님 자신을 위하여 구하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그 언약을 믿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철저하게 자기들의 의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긍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출애굽을 통하여,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옴을 통하여 확인시키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이 일어날 때에 열방이 두려워 떨게 됩니다. 오직 주께만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을 이루심으로 말미암은 역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함을 받은 것은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가 아닙니다. 오직 주의 언약을 따라 그의 긍휼하심으로만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을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전을 쓰는 것입니다.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로운 행위를 자꾸만 보태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사에서 보면 펠라기안이 그러했고, 알미니안이 그러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이 그러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인간의 가능성을 부추킵니다. 긍정의 힘을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약에서부터 구원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분명하게 계시하셨지만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하여 마귀는 이런 활동을 계속할 것입니다.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맹세를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신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18-19절을 보면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에 있느냐고 감탄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어떤 주님이시기에 그렇게 찬양하는 것입니까? 주님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유하다’는 말은 ‘제하여 버리다’, ‘가져가다’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겨버리십니다. 주님께서는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져버리십니다. 죄로 인하여 심판과 저주가 임하는데, 그 죄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에게는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주님께서 옛적에 맹세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맹세가 무엇입니까? 20절에 보면 “주께서 옛적에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옛적에 하신 맹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입니다. 그러면 그 약속이 야곱에게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성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인애를 더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창세기 공부에서 야곱의 인생을 살펴봤듯이 야곱의 생애를 우리가 잘 알지 않습니까? 그가 구원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는 오직 자기 욕심을 좇아 행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은 하나님의 성실 때문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인애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애란 언약적인 사랑입니다. 그 언약적 사랑을 성실하게 지키심으로 아브라함과 야곱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54-55절과 72-73절을 보면 마리아와 사가랴의 찬송이 나오는데, 그 내용이 하나님의 맹세, 즉 아브라함에게 행하신 맹세를 기억하심으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신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됨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눅 1:54-55).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눅 1:72-73). 오늘날 우리의 구원도 하나님께서 자기 맹세를 이루심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너를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신 그 맹세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인 우리까지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오직 주님의 자기 맹세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맹세를 이루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홀로 감당하시는 것입니다. 그 죄와 허물을 몽땅 십자가로 해결하셔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시고 자기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맹세하신대로 구원이 일어난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주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맹세하신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속역사를 언약하시고 그 언약을 성취하심으로 이루어 가심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신실하셔서 그 맹세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위에 굳게 서서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우리 주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자랑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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