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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벧전 2:1-3
성경본문내용 (1)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2)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3)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강설날짜 2011-12-11
동영상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Wx0O8JaIBcs$

2011년 베드로전서 공부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말씀:베드로전서 2:1-3

오늘부터 우리는 베드로전서 2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고 주의 인자를 맛본 자는 신령한 젖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5:25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마땅히 성령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행한다는 말은 우리가 지난 수요일 갈라디아서 강설에서 배운 것처럼 말씀 안에서 행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 1장에 보면 말씀은 우리에게 전하여진 복음이라고 했습니다(벧전 1:25). 그러므로 베드로전서적으로 보면 성령 안에서 행한다는 말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안에서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고 주의 인자를 맛 보았으면 갓난 아이와 같이 신령한 젖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갓난 아이가 엄마 젖을 어떻게 사모합니까? 전투적으로 사모합니다. 곧 목숨 걸고 사모합니다. 아이들을 키워보신 분들은 아이들이 엄마 젖을 어떻게 사모하는지 다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아이가 엄마 젖을 사모하는 것은 본능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무섭게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고 주의 인자를 맛본 신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면서 오늘 말씀을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의 내용 곧 베드로전서 1장의 내용을 받고 있습니다. 그 받고 있는 내용 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내용이 우리가 지난 시간에 배운 1:23-25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3-15). 이 말씀에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은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거듭난 것이 우리의 어떤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 곧 복음으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거듭난 것이 우리의 어떤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너희들은 오직 신령한 젖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이 말씀은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하면서 반문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거듭나야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썩어질 것이며, 영으로 난 것은 썩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자부 한 니고데모는 거듭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좀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우리가 첫 시간에 살펴본 베드로전서 1:2절의 말씀대로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입은 것이 거듭난 것입니다. 이것을 또 줄여서 이야기를 하면 1:3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거듭난 자는 썩을 소망이 아니라 산 소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거듭난 사람입니다. 이런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젖을 먹는 모든 짐승들은 태어나자마자 눈을 뜨지도 못하면서 어미의 젖을 본능적으로 찾고 빨게 됩니다. 그것이 건강하게 태어난 증거요,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간도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젖을 찾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듭난 자는 반드시 신령한 젖을 사모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사모함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과연 거듭난 사람인지, 아니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인지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심각하게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모이고 있지만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제까지 하나님의 말씀의 본의를 힘써 배워 나가고자 기도해 왔습니다. 그리고 주일 공예배와 주일 오후 강의, 수요 강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우리가 얼마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 앞에 나오고 있습니까? 우리는 갓난 아이와 같이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들을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이 시간에도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사모하고 있다면 강설을 들으면서 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제 모습은 어떠합니까? 예배 시간에 얼마나 많이 졸고 있습니까? 아에 말씀을 강설하기 전부터 졸고 있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몸은 예배당에 와 있지만 마음은 온갖 세상 일에 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주일 공예배 때나 수요 강설 때 외에 평소에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까? 저는 주일 공예배에 수시로 빠지는 분들이나 수요 강설에 참석하지 않는 우리 지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직장 때문에 피치 못할 형편으로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은 주일 공예배 때 강설된 말씀을 한 주 동안 늘 묵상하며, 그 말씀을 순종하여 살고자 힘썼습니다. 가정예배를 통해서 주일 공예배 때 선포된 말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기며, 자녀들에게 그 의미를 더 깊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옛날에 우리는 소감 쓰는 일이 있어서 한 주간 원든 원치 않든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더욱 말씀을 사모하며 묵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배 때 들을 말씀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한주도 지나지 않아 지난 주에 무슨 말씀을 배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거듭난 자인지,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자인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인지를 자문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가 엄마 젖을 사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가 엄마 젖을 사모하지 않으면 그 부모는 심각하게 걱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거듭나지 않았거나 거듭났다면 그것은 비정상적으로 병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목사님이 신학적으로 전공을 하였으니 열심히 사모하시고 우리는 거저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겠습니다. 그 복잡한 성경 언제 다 보고 알겠습니까? 그저 어떻게 하면 저주를 받지 않고 복을 받게 될지 그 방법만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런 생각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뵈뢰아 성도들과 같이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하고서 말씀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공예배 때나 수요 강설에 참석하여 듣고 끝나버린다면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자세가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신령한 젖을 사모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모든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1절을 다시 보면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모든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은 우리가 마땅히 버려야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우리가 마땅히 버려야 할 것들의 완전한 목록은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는 버려야할 옛사람의 모든 성품 가운데 몇몇을 예로 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사람이라면 반드시 신령한 젖을 사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이 다른 것에 관심이 있으면 반드시 일어나는 일들이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과 같은 것들 입니다. 이런 옛사람의 품성을 버리지 않고서 신령한 젖을 사모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령한 젖을 사모하기 위해서는 이런 옛사람의 성품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이 단어들의 의미를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악독이란 말은 남을 헤치기 위한 악의적인 말을 의미합니다. 또한 궤휼이란 남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계략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외식이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곧 속은 그렇지 않는데 겉으로는 그런 것처럼 포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기와 비방하는 말은 남이 잘 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데 방해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령한 젖을 사모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런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과 같은 모든 옛 사람의 성품을 버려야 합니다. 2a절을 보면 “그러므로 거듭난 자라면 이러한 것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육에서 영으로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것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사단의 유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 아니라 떡으로만 살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들을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마귀의 유혹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보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말씀의 능력이 오늘도 햇빛을 주시고, 비를 주시고, 공기를 공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소리 한번 발하시면 천하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망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가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면 사모할수록 자신이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아니하면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줄 알고 자기에게 힘을 더하여 달라고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에게 이익이 안 되고 힘이 안 되는 모든 현실에 대하여 원망과 불평만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이웃이든, 하나님이든 왜 내 신세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느냐며 불평과 불만만 쏟아놓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살았고 항상 있는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모하는 자는 자신의 죄를 알게 되고 그런 자신의 죄를 용서하신 우리 주님의 은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을 다시 보면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신령한 젖을 사모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런 말씀은 아닙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거듭난 자는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입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을 아는 자는 성령이 임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자들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를 알아가라는 것입니다.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먹고 마시며 놀기에 바쁩니다. 그러나 정작 지금부터 제대로 공부를 해야 하는 때인 것입니다. 새롭게 공부할 세계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를 안다면 지금 먹고 마시는 시간이 아까울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서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면 그때부터 ‘이제 놀아도 구원되겠네!’ 하면서 노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 은혜가 어떠함을 알아가게 됩니다. 특히 한국 교회에서는 너무 개인구원을 강조한 나머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곧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자는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배워나가게 되며, 그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깨달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는 반대로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 예수님은 가만히 계시기 바랍니다. 제가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제가 힘이 부족하면 그때 잠간씩만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으로 나올 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후자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자가 신령한 젖을 사모하면 할수록 왜 은혜로 구원이 이루어지는지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말해도 모르는 세계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구원이 무엇인지 왜 은혜인지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는 것입니다. 마치 대학 신입생이 대학에 들어와서 온 세상의 모든 공부를 다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처럼 거듭난 자는 신령한 젖을 사모하면 할수록 모든 것이 주의 은혜로 된 것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간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소변을 편안하게 볼 때는 그것이 은혜인줄 모르고 삽니다. 그런데 갑자기 신장에 이상이 와서 소변을 볼 수가 없으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일반적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고장한번 안 나고 소변이 잘 나온 것에 대한 감사가 나오기보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병이 들었는가 하면서 사람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반응이 나오겠습니까? ‘지금까지 지내온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이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약하고 병들게 하심을 통하여서도 더욱 주를 의지하게 하옵소서!’ 이것이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면 세상에서 성공을 하고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기 아닙니다. 왜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야 하는지를 점점 더 깊게 높게 넓게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서 나오는 고백은 범사에 감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누가 시켜서 될 일이 아닙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만이 그 신령한 은혜를 맛보게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땅함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신령한 젖을 통하여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더욱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인자를 맛보았으면 더욱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주님의 인자로 된 것입니다. 여기서 ‘인자’란 ‘헤쎄드’라는 말로 언약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에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인자를 맛본 사람은 더욱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자하심을 찬송할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를 받은 것은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보배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그리고 그렇게 된 것이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주의 인자함으로 말미암은 것을 아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옛사람의 죄악된 행실을 버리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신령한 젖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나가는 일에 힘쓰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거듭나게 된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알아가게 하여 주시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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