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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벧전 3:1-7
성경본문내용 (1)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2)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3)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4)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5)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6)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7)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강설날짜 201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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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베드로전서 공부


남편에게 순복하라


말씀:베드로전서 3:1-7

오늘부터 베드로전서 3장을 공부하겠습니다. 3장에는 ‘아내와 남편의 의무’(1-7)와 ‘선을 위한 고난’(8-22)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2:11-3:7절까지 계속되는 성도의 대 사회에 교훈 가운데서 아내와 남편의 의무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결혼을 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결혼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목표와 방향 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기를 어느 정도로 순복하라고 합니까? ‘주께 하듯하라’고 합니다. 남편을 ‘주’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내는 어떻게 된다는 말입니까? 종이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여자가 결혼하면서 남편을 주인으로 모시고 자신은 종으로 살겠다고 하겠습니까? 요즘은 문패도 남편과 아내의 문패를 나란히 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편을 바깥주인, 여자를 안주인 그렇게 말합니다. 종이 아니라 주인이고 싶은 것입니다. 특히 요즈음은 안팎으로 여자가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시대에 누가 남편을 주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성경을 나의 행복의 관점에서 본다면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본성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오해하지 않고 제대로 본다면 결혼생활이나 직장생활이나 간에 우리의 행복과 성공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산다고 할지라도 나의 행복과 기쁨이 목적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2장에서 보았습니다만 왜 성도들이 세상나라의 법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까? 주를 위하여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미 그 사람은 자유인입니다.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를 위하여 자기가 발 딛고 사는 그 나라의 법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행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입을 막게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비난을 받습니까? 이기적이고, 불법을 많이 행하는 사람들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곧 세상 사람들과 똑같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이로 인해 주님께서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주를 위하여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법을 지키고 선행을 행할 때 비방하는 자들의 모든 입을 막고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지난 시간에 배운 대로 종들은 주인을 대하기를 너그러운 주인만이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이라도 범사에 두려워하며 순복하라고 했습니다. 2:18절에 보면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는 종이 자기 상전에게 하는 것을 주께 하듯이 하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눈가림만으로 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6:5-8절을 보면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 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종이 자유 할 수 있지만 그대로 있어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7:20-21절에 보면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 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이미 자유인이기에 종으로 있다고 하여서 주님을 섬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열악한 환경이라도 주를 섬기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제 아내된 자들에게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와 같이’란 무엇과 같이 남편에게 순복하라는 것입니까? 바로 앞에서 말한 종이 주인에게 순복하듯이 아내도 남편에게 그렇게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이 때의 종은 그야말로 노예입니다. 당시 노예는 주인의 재산으로 주인이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었습니다. 주인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 종이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듯이 우리 성도들의 아내들은 남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남편은 믿는 성도인 남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를 순종치 아니하는 남편’ 곧 믿지 아니하는 남편에게도 종이 주인에게 복종하듯이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내는 믿는 사람이고 남편은 믿지 않는 사람인데 그런 남편에게 순복하기를 자신은 종이요, 남편을 주인으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흔히 예수님을 믿는 아내와 믿지 않는 남편 사이의 갈등을 많이들 이야기 합니다. 남편이 자신을 전혀 이해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전혀 다른 세계에 소속되어 있기에 이해를 하지 않고 방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제는 아내가 남편을 ‘주’로 여기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아내는 교회를 다니는데 남편이 교회를 나오지 않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부분의 남편이 자기 아내가 보기 싫어서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너처럼 믿으려면 나는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행동으로는 전혀 믿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행동도 착한 아내, 착한 며느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겠지만 그런 남편이 요구하는 것과 상관이 없이 오늘 말씀에서 남편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그 답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1절을 보면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아니하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남편이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라고 하여도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도를 순종치 아니하는 남편, 곧 말씀을 듣지도 않고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남편이라도 말로서가 아니라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이 아내의 행위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아내를 통하여서인데 아내가 말만 하고 자기 이기적인 모습으로만 산다면 남편은 복음조차 잔소리로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행실을 본다는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아내는 어떤 행실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보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누구를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주님을 생각한다면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삶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편도 두려워할 것입니다. 남편을 두려워하다니 무슨 조선시대 이야기를 하는가 하시겠지만 정말 믿는 여자가 남편을 두려워한다면 백 마디 말보다 그 행동 하나 하나가 더 큰 전도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두려워하는 자는 정결한 행위를 나타내고 그 남편은 아내의 그와 같은 행위를 보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정결한 행위’란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정결한 행위를 통해서 믿지 않는 남편이 은혜를 받고 아내가 전하는 그 복음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아내의 정결한 행위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말하는 아내의 정결한 행위가 어떤 것입니까? 3-4절을 다시 보면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내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패물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단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온유하고 안정이 되어 있으면 남편이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아내가 사납거나 다른 남편이나 가정과 비교하여 우리는 왜 그렇게 되지 못하느냐며 짜증을 내고, 남편을 무시하는 행위를 한다면 남편은 귀가 공포증에 걸릴 것입니다. 아내의 그 어떤 말도 듣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하고 안정된 썩지 아니할 속사람으로 단장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갚진 것입니다. 지금 이 말씀을 듣는 아내들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씀만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모든 말씀이 다 죄 지은 아담의 후손으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이라면, 속사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입은 사람이라면 이런 말씀을 다 실천하지는 못해도 자신이 죄인인 줄 알고 그렇게 하지 못함을 인해 부끄러워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오늘날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 아내들 가운데 이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 가운데 이런 행실이 나타나고 있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도전을 받고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이 시간 이 말씀 앞에서 과연 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에 숨은 온유와 안정이 있는지 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5-6절을 보면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라고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다고 합니다. 아내에게 있어서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은 자기를 단장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실제 예로 사라를 들고 있습니다. 사라는 자기의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고 칭하였습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8:10). 사라가 장막 뒤에서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하시는 이 말을 듣고 자신도 노쇠하고 내 주인도 늙었다고 하면서 속으로 피식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창세기 18:12절에 보면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사라는 자기 남편 아브라함을 ‘주인’이라고 합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사라는 남편인 아브라함이 자기 살고자 아내인 자신을 여동생이라고 속이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라고 했을 때도 아무런 불평 없이 순복했습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그렇게 했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애굽 왕 바로에게 한번 그렇게 했고, 창세기 20장에 보면 아비멜렉에게 한번 그렇게 했습니다. 만약 우리 자매들 중에 이런 남편이 있다면 그 남편을 존경하고 살겠습니까? 그런데 사라는 자기 남편을 주인으로 여겼기에 자기가 다른 남자의 여자로 팔려 가는데도 순복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보호하셔서 무사히 돌아오게 됩니다만 이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둔 여자들의 모습이라고 오늘 말씀은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믿는 여자는 사라처럼 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라가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한 것은 남편을 주인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사라가 얼마나 놀라운 일을 많이 당했습니까? 그러나 남편을 주로 여겼기에 모든 것을 감당하였고, 하나님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음의 여인들이 소망을 하나님께 둔다면 어떤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할 것입니다. 대게 삶에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나면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소망을 하나님께 둔 자는 놀라지 아니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믿음의 딸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7절을 보면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는 남편에게 권면합니다. 남편들에게는 한절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절만 말씀하여도 지금까지 말씀한 모든 원리는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라는 말씀으로 앞과 연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세운 제도나, 사환이나, 남편으로서 모든 일을 주를 위하여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내와 지식을 따라 동거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지식’이란 여자의 특징을 이해하는 지식을 말합니다. 남편이 주인이라고 해서 폭군처럼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따라 해야 합니다. 아내에 대한 지식이란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또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부부가 그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되었으니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 자로 알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야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는 이 말씀은 말라기서를 보면 상세하게 나오는 말씀입니다. 말라기 2:13-16절을 보면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찌기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고 했습니다.

말라기 2:10절부터 보면 유다와 이스라엘이 궤사를 행하기에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도 받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그 궤사란 이방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13절에 보면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려도 다시는 헌물을 돌아보지도 않고 그들의 손에서 받지도 않겠다고 하십니다. 즉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이용하여 이혼증서를 써 주면서 이혼하면 된다고 합법화 하며 살았던 것을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내용을 우리는 잘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나 남자나 자기의 행복을 위한 결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결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생활에서도 나의 만족이나 보람이나 수입이 목적이 아니라 주를 위하여 생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만물이 다 주님에게서 창조되었고 주님을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16-17절에 보면 천지의 모든 것들이 다 예수님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고 합니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렇습니다. 만물이 다 주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결혼도 주를 위하여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2-33절의 말씀을 보면 아내와 남편에게 주시는 말씀이 교회와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아내는 교회의 역할을, 남편은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 믿는 자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전혀 그러하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를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 회개의 열매가 나타나면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 같이 아내를 사랑하는 그런 은혜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아내와 남편의 역할을 통해서 교회와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바르게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해서 남편과 아내의 비밀을 알고 남편과 아내의 도리를 다함으로써 교회와 그리스도의 비밀을 잘 나타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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