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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시편 16:1-11

2003년 시편 공부
제 8 강
                                                      나의 보호자
말씀:시편16:1-11
요절:시편16:1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여러분 한국에서 일년에 버림 받는 아이들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일년에 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들에게는 보호자가 없습니다. 보호자 없는 아이들의 인생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끔찍합니다. 우리에게 보호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육신의 부모도 진정한 보호자가 되어 주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보호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본시의 머리말에 보면 [다윗의 믹담]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믹담”이라는 말은“신비”, “비밀”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이 시에 영적으로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시편은 아마 다윗이 반역이 일어났거나, 황무지에서 위기에 빠졌을 때에 쓴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대해 변치 않는 신앙의 확신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죽음의 위험에 빠져있었지만 불평하거나 갈등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는 축복과 희망이 그 어두움을 삼켜버렸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보호자 되시며, 기업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평안과 즐거움, 그리고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님께 피하나이다.”다윗은 하나님께 자기를 보호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보호가 필요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시인에게 닥친 위험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생명의 위험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 시편 전체로 볼 때 두 가지 위험을 당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2-4절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혼합주의 위험이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10절 말씀을 기초로 볼 때 죽음의 위협이었습니다. 시인이 이 시편을 읊조릴 때 위험 중에 있었는지, 혹은 위험에서 벗어난 후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우리는 이 시편을 신뢰의 시로 봄으로 후자가 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이미 1,2절에서 그는 구원을 감사하며, 기뻐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그가 지금 현재 위험 가운데 있었는지, 위험에서 벗어난 후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보호자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호자이신 하나님께로 피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인이 말한 하나님은 엘”로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또한 “보호한다”는 말은 “사메레니”로서 “지킨다”,“구원한다”,“호위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경호원들이 왕을 에워싸거나, 목자가 양을 지켜 주듯이 보호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오직 전능하신 여호와만을 자신의 보호자로 고백하고 의지하였습니다. 그는 오직 전능하신 여호와만이 자기를 완전히 지켜주고 보호해 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님께 피하나이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 고백대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보호자가 되어 주셔서 그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사울로부터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의 생명은 사망과 한걸음 사이였습니다. 다윗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떨 때는 한 성에 갇혔는데 그는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사람행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떨 때는 적군에게 망명하기도 하였고, 어떨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먹기도 하였습니다. 오랜 시간 어두컴컴한 동굴에 숨어 지내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정처 없이 산과 들로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다윗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그는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보호자가 되어 주셔서 생명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의 보호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의 생명을 생명 싸개로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사울의 손에서 털 하나 다치지 않게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이 하나님이 자신의 보호자이시요, 유일한 피난처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피한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들의 보호자가 되어 주십니다. 그를 의지하는 자들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우리 인생에는 많은 환난과 위험이 있습니다. 특히 신앙생활에서도 항상 넘어지게 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건강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물질의 위험 가운데 있기도 합니다. 실직의 위험도 있고, 물질과 세상 쾌락의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파선할 위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십니다. 이 하나님을 나의 보호자로 믿고 그에게 피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저는 지난 3년 동안 사울에게 쫒기는 다윗과 같이 사선을 넘나드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단은 저를 넘어지게 하였습니다. 끝없는 인간갈등과 사단의 송사에 시달렸습니다. 저의 영혼은 고갈되어 갔습니다. 오아시스 없는 사막에서 헐떡이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망의 골짜기와 한걸음이라는 다윗의 고백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단은 순간순간 포기하라고 유혹하였습니다. 저는 이 때마다 하나님께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보호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나를 모든 시험과 유혹에서 파선하지 않게 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나의 보호자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다윗은 하나님이 그의 주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주님께만 복종하고 주님만 섬기겠다는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에게 축복과 은혜를 주실 수 있으며, 주님만이 그에게 선이 되실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오직 여호와만이 진정한 하나님이시며, 온갖 선한 것의 근원이 되실 수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다윗은 오직 여호와 외에는 참된 행복을 줄 수 없으며, 그 분 안에서만 선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만을 그의 경배의 대상과 축복과 은혜의 주로 인정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주시니, 주 외에 나의 복이 없나이다.” 참으로 이 고백에서 우리는 다윗의 성숙한 신앙, 아름다운 신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왕으로서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 수도 있었습니다. 자기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과 권력과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따라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주로 고백했습니다. 주 외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세상의 권세와 명예, 물질과 쾌락이 그의 복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주 여호와 하나님만이 그의 복이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주로 섬기며, 주님만을 복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여호와 주님만이 소망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도 그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3절에 보면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이 땅에서도 시인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들은 바로 성도들이었습니다. 다윗은 성도들을 이 땅에 있는 존귀한 자들 곧 왕족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왕 같은 제사장들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생각할 때마다 그의 마음 안에 새로운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와 같이 다윗의 희망과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었습니다. 다윗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을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배교자들을 철저히 멸시하고 무시하였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다윗은 신앙의 절개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은 괴로움이 배가(증가)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잠시 박해를 피하려고 세상과 타협하여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은 평안 대신 심각한 양심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배교자들의 앞길에는 고통으로 가득 찬 미래가 놓여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배교자들이 드리는 피의 제사 술을 제물 위에 붓지 않을 것이며, 우상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도 않겠다고 서약합니다. 그들이 드리는 제사 술이 피의 술인 이유는 어린아이의 피를 섞은 포도주였거나, 아니면 피를 흘린 손이나, 피로 얼룩진 양심으로 드리는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들이 부르는 가짜 신의 이름을 입에 담지도 않겠다고 서원합니다. 다윗은 이와 같이 배교자들과 그들이 하는 행위와 자신을 철저하게 분리시켰습니다.

   다윗은 이제 하나님이 자기에게 분배된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여기서“산업과 소득”(메낫 헬렉)은 어떤 사람에게 할당된 토지를 말하며, “잔의 소득”(메낫 코스)은 아버지에 의해 분배된 잔의 몫을 의미합니다. 레위 지파는 성막과 종교적인 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경제 활동을 할 토지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업을 분배할 때에 아무런 토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레위인들에게 아무 토지도 주지 않는 대신 자신이 그들의 기업이 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의 기업은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공무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에게 드려진 음식과 예물 중에서 레위인의 음식과 기업으로 쓸 양을 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왜 레위 자손이 아닌 유다 자손 다윗이 하나님이 자기의 기업이라고 고백했을까요? 다윗은 지금 자기 개인을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놓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중에서 제사장 나라로 선택된 민족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은 전 세계 중에서 뽑힌 레위 족속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기업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의 제사장 역할을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기의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소수의 선택된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교회를 바로 세워 주시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모든 성도들은 다 제사장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택함 받은 민족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백성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벧전 2:9). 모든 성도들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해야 할 선택받은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의 기업은 바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길 것을 결심하고, 다른 신 곧 우상이나, 다른 종교, 물질, 명예 등을 섬기거나, 그 이름을 부르는 일도 거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으로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만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분배된 기업이 참으로 아름답고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에서 각 지파 별로 제비를 뽑아서 땅을 분배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명령을 따라 각 지파 별로 제비를 뽑아 기업을 분배했습니다. 이 때에 어떤 사람에게는 농지가 분배되었고, 어떤 사람에게는 산지가 분배되었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광야나 해변이 분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기업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와 각 지파 대표들이 제비를 뽑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결과를 주장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신 땅을 팔지 못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그들은 소작인에 불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가 받은 땅이 사막이든지, 옥토든지, 아니면 골짜기든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기업으로 알고 그 곳에서 기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일정한 기업을 주셨습니다. 성도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기업과 달란트가 많든 적든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알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도 각 사람에게 합당하게 하나님은 기업을 주셨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선생의 기업을 주셨고, 어떤 분에게는 공무원의 기업을 주셨고, 어떤 분에게는 간호사의 기업을 주셨습니다. 또 어떤 분에게는 대기업의 기업을 주셨고, 어떤 분에게는 중소기업의 기업을 주셨습니다. 또 어떤 분에게는 선교사의 기업을 주셨습니다. 또 어떤 분에게는 많은 물질의 기업을 주셨고, 어떤 분에게는 적은 물질의 기업을 주셨습니다. 최상범 형제는 풍물과 예능에 은사를 주셨습니다. 김영환 형제에게는 찬양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조진호 형제에게는 섬김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런 은사들은 각 사람에게 합당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입니다. 그러므로 그 기업을 아름다운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나 재물보다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기쁘게 생각하고 감사히 여깁니다. 자기가 받은 기업 곧 직업이나 직장, 은사를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분배한 기업을 다른 사람들이 해치지 못하도록 지켜 주십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보십시오.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이 탐이 나서 그것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그 포도원을 하나님이 주신 기업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거절했습니다. 후에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나봇을 거짓 증인을 세워 죽여 버리고, 그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이로 인해 아합과 그 가족은 멸족하게 되고 개가 그 시체를 핥게 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의 가장 큰 기업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말씀을 통해 그를 훈계하시고 마땅히 가야 할 길로 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윗은 성령을 통해 이렇게 자기를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낮에도 말씀을 묵상하며 진리를 배웠고, 밤에도 성령을 통해 영감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감사와 영원한 즐거움의 근원과 마음의 허영을 물리치고 바른 길을 걸어가는 길을 안내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기 앞에 계신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오른 편에 계셔서 자기와 함께 동행 해 주시며 보호해 주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떠한 환난과 어려움이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극한 고통과 죽음의 위협 앞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9절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마음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그의 육체도 소망 안에서 편안히 안식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쁨은 성령께서 주시는 내적인 확신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이러한 기쁨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 영혼이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그가 죽음의 위협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안식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혼을 ‘스올’ 곧 죽음과 음부에 버려두지 않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시체가 썩도록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제 주님께서 그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여기서 말하는‘생명의 길’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그는 부활과 그 이후의 영생을 바라보면서 이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까지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고 기뻐하였습니다.

   나의 보호자가 되시며, 나의 복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산업이요, 나의 잔의 소득이 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항상 나의 우편에서 나를 지키시며,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종이 날마다 나의 보호자 되신 주님께로 피하길 원합니다.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며, 주님만을 나의 복으로 삼고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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