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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시편 17:1-15

2003년 시편공부
제 17 편
                                                      나는 주의 형상으로
말씀:시편17:1-15
요절:시편17: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얼마 전 현대 아산 정 회장의 자살 사건은 우리에게 큰 충격과 함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한국 최고의 기업의 회장이었지만 자살로 그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가 닥친 어려움은 우리가 다 헤아려 알 수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자살로 그 생을 마감했겠습니까? 그의 자살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특히 그의 자살 원인에 대해서 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이유는 그의 분깃이 금생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금생의 분깃을 얻고 지키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그 분깃을 얻지 못하고 결국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생명의 위험 가운데 있었지만 주의 형상으로 만족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15) 그가 그 환난 가운데서도 만족한다고 고백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그의 분깃이 금생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4절에 보면 시인은 여호와께 금생에서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왕권에 대한 집착으로 다윗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곧 그는 금생에 분깃 때문에 다윗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는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 결국이 비참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분깃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분깃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인해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분깃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 분깃에 따라 우리의 생이 달라집니다. 여러분들의 분깃은 어디에 있습니까? 금생에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인해 만족합니까? 다윗의 기업이 나의 기업이 되게 하시고, 다윗의 만족이 나의 만족이 되게 하시길 바랍니다.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자들은 많은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적중에 뛰어난 자가 다윗의 목숨을 노리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위협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다윗을 에워싸고 그의 죽음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다윗이 마온 황무지에 있을 때의 상황과 비슷합니다(삼상 23:25). 이때에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그를 추격한 사울과 그 군사들로 인해 거의 죽을 뻔한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자신의 완전함을 고백하고, 영광스러운 미래를 기대하며 대적들로부터 지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시편은 여러 가지 면에서 16편과 유사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16편에서 다윗은 배후에 있는 위험을 느끼면서 자신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고 있으나, 17편에서는 현재 위험 앞에 서서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17편에서 바로 지금 주님의 도움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정직함을 변호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정직함”은 ‘의로움’을 말합니다. 곧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의로움을 변호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사울과 그의 측근들은 다윗이 사울을 몰라내고 왕이 되려고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에게 정직한 마음으로 충성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기의 무죄함을 변호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기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달라고 호소합니다. 부르짖음은 “울부짖음”을 말하는데 이것은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 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다윗은 거짓되지 않은 입술로 드리는 자기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은 생명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그런 위급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의로움을 변호 해 달라고, 자신의 울부짖는 기도를 들어 달라고,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신실성과 간절함은 기도 응답에 필요한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이제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재판을 열어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공정하신 눈으로 정직하게 자기를 판단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급 법원에서 내린 결정이 부당하다고 생각될 때에 이에 불복한 피고인이 상급 법원에 항소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그 신하들이 내린 판결이 부당함을 호소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공정하게 자기를 판결해 주시기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명예가 손상되었다며 야당 정치인과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노대통령과 같이 부당하게 자기를 비난하는 자들과 맞대응하여 싸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들과 맞대응하여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공정한 판결을 구하였습니다. 우리도 사람들로부터 부당하게 비난을 받을 때 즉시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쉽습니다. 비난하거나 보복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인간들이 부당하게 자기를 비난할 때에 즉시 분노하여 그들에게 보복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더 공정하고 더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께 그 판결을 구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지 않고 감정적으로 맞대응 할 때 올무에 걸리기 쉽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정직함을 살펴보기 위해서 그의 마음을 시험해보셨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시험했다”는 말은 사물의 속성이나 순도를 결정하기 위해 시험하는 것을 말합니다(슥 13:9). 하나님은 다윗이 죄가 있는 지 알아보기 위해서 마치 불로 금을 연단하는 것처럼 다윗의 마음을 시험해 보셨습니다. 불로 금을 연단하면 불순물이 있을 때에는 그 찌꺼기가 나올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이 사울을 해치거나 반역할 생각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그 죄를 찾아내셨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밤에 자기를 방문하여 권고하시고 감찰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권고했다”는 말은 ‘시찰하다’, ‘방문하다’는 말입니다. 아마 다윗은 밤 새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자기의 죄가 없는지 반성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가책을 받을 일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앞으로 입을 굳게 지켜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대개 무고하게 공격을 받을 때에는 분노하여 입으로 대적들을 공격하며 비난하는 죄를 짓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자기 입으로 그들을 정죄 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은 일상적인 삶에 있어서도 정결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매사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리고 의도적인 폭력을 행사하여 남을 해치지도 않았습니다. “강포한 자의 길”은 의도적으로 폭력을 써서 남을 해치는 살인이나 강도 행위를 말합니다. 다윗은 권력과 힘을 갖고 있었지만 이러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이러한 죄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소극적으로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적극적으로는 주의 길을 굳게 지켰습니다. “주의 길을 굳게 지켰다”는 말은 다윗이 율법의 말씀을 따라 살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극심한 고통과 원수의 비난 속에서 자기를 반성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무고히 원수들에게 비난을 받을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기를 정직하게 돌아보고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감정적으로 맞대응할 때 사단의 올무에 빠져 실족하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무죄함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하나님께서 정직한 마음으로 드리는 자기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께 자기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자비를 보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는 고로 내가 불렀사오니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 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여기서 “인자”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을 향한 신실하신 사랑을 말합니다. 다윗은 자기의 정직함을 고백했지만, 이것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한번 선택하고 언약을 맺은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들을 그 대적들로부터 구해 주시는 구원의 주가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에게 피하는 사람들을 반드시 대적으로부터 보호해 주십니다. 다윗은 이것을 믿었기에 하나님께서 능력의 오른 손을 들어 자기를 대적의 손에서 구해주시기를 호소할 수 있었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다윗은 자기를 압제하는 악인과 자기를 둘러싼 극한 원수에게서 자기를 눈동자 같이 지켜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눈 속에 있는 작은 동자에 비유합니다. 눈동자는 마치 눈 안에 또 하나의 눈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눈동자를 눈에서 태어난 눈의 딸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표현은 눈동자가 눈과 매우 긴밀한 연관이 있으며, 특별히 보호받아야 할 대상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눈 속에 있는 작은 소녀, 즉 눈동자와 같이 보호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러한 보호는 매우 세심하고 각별한 주의를 요하는 보호입니다. 이러한 보호는 사랑과 애정을 갖는 보호입니다. 또한 다윗은 자기를 주님의 날개 그날 안에 숨겨달라고 호소합니다. 이 기도는 신명기 32:10-11의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으며, 그 날개 아래 숨겨주셨다.”는 말과 일치합니다. 다윗은 독수리가 그 새끼를 그 날개로 덮어 보호해 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 대적들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덮듯이 지켜 주셨습니다. 다윗은 바로 그 하나님께서 폭력을 사용하여 자기 생명을 해하려는 악인들과, 자기를 해치려고 둘러 서 있는 원수들로부터 구해 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사울과 그 부하들은 지금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굶주린 야수처럼 둘러서서 다윗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다윗의 원수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10-12절을 보십시오. 다윗의 원수들의 몸은 기름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들이 온갖 불법을 통해 부당하게 모든 재물로 살이 쪄서 지방으로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둔해져서 가난한 자에 대한 동정이나 숭고한 감정에 무감각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무고한 자를 해치면서도 아무런 마음의 가책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가 승리할 것이라고 교만하게 지껄여대고 있었습니다. 사울과 그 부하들은 다윗을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원수들의 눈은 다윗과 그 부하들을 메어칠 곳을 찾기 위해 땅을 쳐다보며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사울과 그 군사들은 마치 먹이를 잡아 찢으려는 사자와 같이 다윗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굴속에 숨어 먹이를 노리는 젊은 사자와 같이 은밀하게 다윗을 치기 위한 행동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과 그 추종자들을 사자에 비유한 것은 그들이 힘이 세고, 모략에 뛰어나며 잔인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사자와 같이 덤벼드는 사울 일행으로 인해 다급하게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 아이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자기 앞서 가서 악인들을 굴복시켜 달라고 호소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칼로 적들을 치고 그들로부터 자기 영혼을 구해 달라고 외칩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인을 위해 악인과 싸우는 전능한 군사로 묘사합니다. “주의 칼”은 하나님께서 악인에 대항해서 싸우실 때 사용하시는 심판의 칼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을 들어 이 세상에서 기업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구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누리는 쾌락과 재물밖에는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사랑하였으며 결코 내세에 대해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재물을 주셨으며, 그들은 그 재물을 가지고 자기 배를 채우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자녀들로 만족해 하다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자기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줍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그들의 인생은 끝나게 됩니다. 그들은 내세에서 더 이상 아무 소망과 기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기업은 그들의 기업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기업이 무엇이었습니까? 15절을 보십시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주님이 다윗에게 주신 기업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얻으려는 사람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악을 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으려는 사람은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처럼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는 사람은 세상 사람이 즐기는 재물과 자녀와 명예가 없다고 해도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은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은 사람은 그가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그 기업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물질을 기업으로 삼은 사람은 세상을 떠나는 날 그 기업이 종료되지만,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은 사람은 죽은 후에도 그 기업은 계속됩니다. 다윗이 원수들의 극심한 핍박과 생명의 위험 가운데서도 그는 주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기업은 이 세상의 기업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기업은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다윗이 만약 그의 기업을 세상에 두었다면 그는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원수들이 끊임없이 다윗을 죽이고자 한 것도 이 세상에 기업을 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기업을 추구할 때 그것을 잃지 않고자 끊임없이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울이 끊임없이 다윗을 죽이고자 한 것도 그의 기업이 이 세상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 때문에 자기의 기업을 잃어버리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기업은 이 세상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업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주의 얼굴을 소망하였습니다.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욕심에 사로잡혀 악을 행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재물이 없고 자녀가 없고 명예가 없어도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기업들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재물은 삼대를 가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번 정몽헌 회장의 자살 사건으로 이 사실을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기업은 죽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업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업을 구하는 자는 영원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윗의 기업이 나의 기업이 되게 하시고, 다윗의 만족이 나의 만족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윗과 같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항상 주의 얼굴을 사모하며,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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