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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창 49:1-7
성경본문내용 (1)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2)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3)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4)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5)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6)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7)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중에서 흩으리로다
강설날짜 2009-06-28

2009년 6월 28일 설교


르우벤, 시므온, 레위에 대한 예언


말씀:창세기 49:1-7

창세기 49장 말씀은 야곱이 요셉에게 유언을 한 후 자신의 열 두 아들들을 불러 후일에 당할 일을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곧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갈 것인지를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야곱의 열두 아들들에 대한 예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는 야곱의 열두 아들들에 대한 예언을 단지 야곱의 가족사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펼쳐지는가 하는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 차원에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야곱의 자식들에 대한 예언을 삼주 간에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야곱이 이제 생의 마감을 앞에 두고 그 아들들을 불러 모아 예언하는 내용을 보면 그 아들들의 평소의 행실을 가지고 장래를 예언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과율적인 면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런 모습을 다만 인과율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르우벤은 그가 나쁜 짓을 하여 벌을 받고 요셉은 착한 일을 하여 복을 받았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게만 보게 된다면 성경에서 나타내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곱의 이 예언을 너무 인과율적으로만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벌하시고 의인을 상주시지만 그러나 성경에서 악인이 오히려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너무 권선징악적 차원에서 성경을 보면 의인의 고난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사야 53장에 보면 고난 받는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메시아가 고난 받는 것을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고난 받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죄인을 위한 대속적 고난이었습니다. 노아의 세 아들 중에 보면 함은 저주를 받고,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아비의 허물을 가려주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과율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리시는 계시로 보는 것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가지고 ‘남의 허물을 잘 가려 주자’ 그렇게 적용하는 것은 너무 좁은 적용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성경 외에도 얼마든지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의 구원은 허물이 가리움을 받는 것이구나!’하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아무도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행함대로 갚으신다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시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구원에 이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야곱의 예언은 단지 인과응보적인 개인의 유언이 아니라 앞으로 이스라엘에 나타날 하나님의 일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된 일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 내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가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보고자 합니다.

49:1-2절에 보면 야곱이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열두 아들들을 불러 모아 놓고 그들이 후일에 당할 일을 예언하였습니다. 오늘은 열두 아들들에 대한 예언 중에서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야곱은 먼저 장자 르우벤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장자 르우벤에 대한 야곱의 예언이 무엇입니까? 3-4절을 보면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렵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로서 굉장한 능력을 가진 자였습니다. 야곱은 르우벤이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고 했습니다. 르우벤은 장자로서 격조와 품위가 높고, 가문을 지도하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과 영예와 권능이 탁월하였지만 아비의 침상에 올라간 것으로 인하여 탁월치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네가 아비의 침상이 올랐다’라는 것은 르우벤이 자기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창세기 35:22절에 보면 야곱은 라헬이 죽은 후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치고 거기 거할 때였습니다. 장자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통간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르우벤은 장자로서 그 능력이 뛰어 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잘못 사용하므로 오히려 장자권이 요셉에게로 넘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창 48장).

르우벤에 대해 예언한 후 이제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이 어떠합니까? 5-7절을 보면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찌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찌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34장에 보면 이들은 자기 누이 디나가 세검에게 강간을 당한 사건에 대해 지나친 복수를 했습니다.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장난삼아 한 것이 아니라, 정말 연애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하면서 어떤 대가를 요구하더라도 응할 테니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 그들은 할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할례를 받으면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무서운 계략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할례로 인해 고통하고 있을 때 가서 그들을 다 죽여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그들이 고통 중에 있을 때 칼을 가지고 가서 부지중에 하몰과 그 아들 세겜과 모든 남자들을 죽여 버린 것입니다. 창세기 34장에서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지만 오늘 말씀에서 보면 소의 발목 힘줄까지 다 끊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분노와 혈기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자신들의 자존심에 관한 분노와 혈기였습니다.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의 이와 같은 잔혹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참예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런 그들의 잔혹함으로 인해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야곱 중에서 나누이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지리라”고 예언했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시므온은 유다 지파 중에 부속되거나 북쪽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민수기에서도 가장 적은 족속으로 나타납니다. 결국 시므온과 레위 족속은 야곱의 예언대로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레위 지파도 이스라엘의 전역에 흩어져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시므온 족속과 레위 족속의 흩어짐의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레위 족속은 시므온 족속과는 달리 제사장으로서 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다 같이 흩어지리라고 했는데 레위지파는 제사장의 직분으로 흩어지게 된 것입니까? 출애굽기 32:25-29절을 보면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인바 된지라.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출애굽 후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절한 사건 때의 입니다. 이 금송아지 사건 때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들을 진멸할 자를 모세가 불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금송아지를 섬기는 진 이문에서 저 문까지의 사람을 다 죽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레위 지파가 칼을 차고 나가서 그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도륙하였는데 그날에 삼천 명 가량이나 죽었습니다. 이것을 모세가 보고 “오늘날 너희가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레위 지파는 질투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 대한 헌신이 특별하였습니다. 이 헌신으로 말미암아 시므온 족속과 같이 흩어지지만 레위 족속은 제사장으로 흩어지는 것입니다.

민수기 25:6-13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비느하스가 음행하는 이스라엘의 남자 시므리와 미디안 여인 고스비를 창으로 찔러 죽인 것을 여호와의 질투로 질투하여 백성이 진멸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비느하스를 축복하는데, 그에게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 지파가 세겜에서 자신들의 자존심에 대한 지나친 분노와 혈기가 흩어짐의 저주를 받았지만 그러나 금송아지 사건에서 여호와께 헌신하여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저주와 모세의 축복이 함께 성취되는 것이 레위 지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는 일에 있어서는 얼마나 무덤덤합니까? 교회와 성도가 주님의 이름 때문에 욕을 얻어먹는 것이라면 그 자체가 영광스럽고 복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혀 성도답지 아니한 행동으로 욕을 얻어먹으면 누구에게 욕이 돌아가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도란 거룩한 무리입니다. 곧 세상과 구별된 무리입니다. 땅의 것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 위의 것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난번 뉴스 후에 보면 대형 교회의 온갖 문제들이 방영되었습니다. 대형 교회의 부자(父子) 세습문제, 재산을 자신의 아들 회사에 투자한 문제, 일부 지도자들의 호화로운 생활 등. 교회의 어두운 면이 세상 가운데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로 인해 교회가 얼마나 비난을 받고 하나님이 욕을 먹게 되었습니까? 이제는 세상의 사람들이 교회와 성도들에 대하여 전혀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문제들 앞에서 우리 가운데 거룩한 분노가 일어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자신의 명예에,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가 갔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만히 있겠습니까? 시므온과 레위처럼 끓어오르는 분노와 혈기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겠습니까? 물론 직접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얼마나 이를 갈며 미워하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이를 갈면서 미워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살인이라고 했습니다(마 5장). 그런데 나로 하여금,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받고 있는 일에 참으로 분노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가 가리워지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분노가 일어납니까? 교회가 주님의 피 흘리신 공로가 사라지고 사람들의 인위적인 경영방법이 동원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기쁘게 하는 프로그램에 분노가 일어나십니까?

여호수아 22장에 보면 어떤 사건이 있습니까? 요단 동편으로 돌아가는 두 지파 반이 커다란 돌단을 쌓습니다. 요단 서편의 아홉 지파 반이 이 소식을 듣고 현장을 보러옵니다. 만약 이방신을 섬기는 단이라면 이들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단을 쌓은 것은 우리가 이스라엘중의 기업이 있음을 증거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적용이 된다면 ‘당신 이제 교회 오지 말라’고하는 것이 가장 큰 치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지파 반이 단을 쌓으면서 ‘우리도 이스라엘입니다’고 하는 증거를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안 됩니다. 살려 주세요.’ 그렇게 말합니까? 아닙니다. ‘여기 없으면 교회 없나?’하며 도리어 씩씩거리며 떠나갑니다. 이것은 교회가 진리를 따르는가, 아닌가가 문제가 아니라, 나의 자존심을 채워주는가 아닌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 대하여 우리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헌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우리는 시므온과 레위를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동시에 우리가 바로 시므온과 레위처럼 자기의 이름에 목숨을 걸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이름에 목숨을 거는 것 이것이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저주가 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저주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난 것은 레위지파의 헌신이었습니다. 이들의 헌신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진멸되지 않는 것입니다. 비느하스 사건 때도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 지파의 제사장 직분이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범죄를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림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는 것이 제사장의 역할입니다. 이것을 레위지파가 감당함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어떻게 하여야 피하여 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 지파가 금송아지 사건에서 헌신하여 형제들을 죽인 사건과 비느하스가 그 음행하는 자를 죽인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질투로 질투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킨 것입니다. 구약에서 레위 지파의 역할이란 하나님의 진노를 제사를 통하여 돌이키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신이 빠져버리면 제사란 또다시 우상숭배와 같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야곱의 레위지파에 대한 예언을 통해 레위 지파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나와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레위지파의 제사장이 영원하지 못한 것을 히브리서에서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7:1-10절을 보면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레위 지파가 아직 나기도 전에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을 때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보다 멜기세덱이 높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레위 지파의 후손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짐승의 피도 아니요, 죽어버리면 대제사장이 바뀌는 그런 제사장이 아니라,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히브리서 8-10장에 걸쳐서 계속 이어집니다.

이 시간에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행하신 일들을 보면 어떻게 행하시는 것입니까? 질투하는 분이십니다. 곧 하나님의 질투로 질투하시는 것입니다. 그 질투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다른 사람에게 갚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 받으심으로 자기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이 유언 속에서는 단지 레위지파가 자신의 분노와 혈기가 넘쳐서 흩어짐을 저주로 받는 것만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레위지파의 모습을 보면 야곱의 이 저주가 그대로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모세의 예언대로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들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시는 계시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일에 분노하시며, 어떤 일에 그 분노를 돌이키시는가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자기의 이름과 자기의 명예와 자기의 자존심에 대하여 질투를 하고 있기에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레위 지파에서 헌신 자가 나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킨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몸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오는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라면 나의 이름에 대하여, 자기 자존심 상하는 일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는 것이 죄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사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에게 있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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