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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창 50:15-26
성경본문내용 (15)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16)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17)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18)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19)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21)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22)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 십세를 살며(23)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24)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25)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26)요셉이 일백 십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강설날짜 2009-07-26

2009년 7월 26일 설교


요셉의 죽음


말씀:창세기 50:15-26

우리는 지난 1년 반에 걸쳐서 창세기를 살펴봤습니다. 우리는 창세기를 살펴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비밀을 배웠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언약을 통해 당신의 구속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을 봤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창세기 말씀을 통해 세상의 모든 일들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창세기 45:5-8절을 보면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찌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형들을 만난 요셉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하는 말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하는 말의 핵심이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 인생은 다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형들이 동생을 죽이려하고, 동생은 형들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였지만 결국 노예로 팔려가게 되고, 남의 집에서 종살이하며, 유혹을 뿌리치다가 감옥에 가고, 감옥에서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의 모든 역사의 결론을 지금 요셉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창세기의 마지막 말씀으로 요셉의 죽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요셉의 죽음을 통해서 두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요셉의 형들이 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의 용서를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주님의 용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요셉이 죽기 전에 유언을 하였는데, 그 유언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먼저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 요셉의 형들이 용서를 믿지 못하는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50:15-17절을 보면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찌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고 나자 혹시 요셉이 다시 자기들을 보복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합니다. 과거 자신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종으로 팔아버린 그 잘못에 대해서 보복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입니다. 형들의 생각에는 요셉이 효자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아버지를 의식하여서 자신들에게 잘해 주었지만,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나면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까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마치 에서가 동생 야곱을 미워하여 아버지가 죽을 때가 다 되었으니 ‘죽고 나면 보자’하는 것처럼(창 27장), 지금 요셉의 형들이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이제 아버지가 죽었으니 요셉이 보복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면서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상기시키면서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요셉의 형들만의 모습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용서를 얼마나 믿지 못하는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만나기 전에는 양심에 어느 정도 가책은 있었을지라도 이 정도로 자신들의 죄악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노예로 팔아버린 그 요셉, 자신들이 죽인 것과 다름없는 그 요셉이 지금 모든 권력을 가진 자로 나타나 있으니 늘 자신들의 죄가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용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안해하고 염려합니다. 그래서 요셉의 안색이 조금만 달라져도 벌벌 떠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하여 형들이 다시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서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18).

사실 우리도 주님 앞에서 내가 어떤 죄인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바로 예수님을 죽인 자라는 사실을 잘 알 때 비로소 주님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용서하소서’라고 하는 진정한 죄용서의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죄라는 것을 죄로만 여기고 있으면 그런 죄는 다른 선행으로 대신 갚아 낼 수 있으려니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내가 죄인임을 아는 것은 오직 십자가 앞에 직면하여야 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 앞에 직면하여서야 자신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앞에 직면해야 합니다. 그때 내 죄가 진정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과 우리의 욕심과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모든 것들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입니다. 이러한 주님 앞에서의 죄를 알지 못하면 우리가 주님의 용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합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 이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용서받아 본 사람만이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들은 용서를 받았지만 확신이 없었습니다. 용서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형들의 모습을 보면서 요셉이 울었습니다. 용서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는 형들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운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용서를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자기 앞에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라고 하는 형들에게 무엇이라고 합니까? 19-21절에 보면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요셉은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세 가지로 위로 합니다. 여기에 요셉의 신앙이 잘 드러납니다.

그러면 요셉이 형들을 위로하는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9절을 다시 보면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형들이 자신을 애굽에 판 것을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사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형님들을 용서하지 않고 모든 악을 갚는다면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주님께 용서를 받은 성도들의 마땅한 자세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용서를 받은 자라면 적어도 이러한 자세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모든 잘못을 바로 잡는 길은 결국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손을 써서 어떻게 고쳐보려고 하면 더욱 일이 틀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러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라는 말입니까?’하며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20-21절 말씀을 보면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사 섭리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고 하는 요셉의 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까? 내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양도함 없이 움직이려하는 것입니다. 내 가정을 내가 하나님처럼 하고자 합니다. 내 자녀를 내가 하나님처럼 키우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교훈과 훈계는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대신하고자 하는 교만함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목사가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할 수도 있고, 장로나 집사가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이 말씀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입니다. 로마서 12:19절을 보면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합니다. 원수 갚는 것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교회 안에서 판단하고 분별하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 훈계하고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곧 치리가 있어야 합니다. 치리가 없는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치리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지, 나의 감정이나 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요셉은 20절을 보면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악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선으로 바꾸셨다고 합니까?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다’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도 나를 헤치려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하더라도 주님의 약속을 믿고 원수를 내가 갚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인내를 요구하는지 모릅니다. 요셉은 이렇게 되기까지 몇 년이 걸렸습니까? 17세에 팔려서 30세가 되어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풍년이 7년, 흉년이 들어 2년이 되기까지 무려 22년을 지나서 형들이 양식을 구하려 왔을 때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눈앞에 닥치는 조그마한 경제적 손실, 또는 인격적인 모독을 얼마나 참고 견디지 못합니까? 그러나 그 억울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요셉을 보면서 우리가 배우는 바입니다.
  
뿐만 아니라, 21절에 보면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지금 요셉이 이렇게 된 것이 자신의 꿈을 가지고 자기의 야망을 이루어 내었다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도구였음을 알고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전 생애를 통하여 보여주는 계시의 절정이 바로 이것입니다. 곧 죽임당한 자가 죽인 자를 살려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용서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셉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예수님의 용서를 미리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34절을 보면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새 언약의 내용입니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용서를 받고서도 두려워 한 것은 다시 그 죄를 기억하고 우리를 벌하지 아니할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이 정말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면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나에게 무슨 안 좋은 일만 닥치면 내가 죄를 지어서 그렇지 않은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였다는데도 그렇게 벌벌 떨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의 형들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용서를 받고 그 용서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형들처럼 여전히 두려워 떨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용서의 사랑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레미야 50:20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찌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찌라도 발견치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나의 남긴 자를 사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날 그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발견치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를 짓지 않아서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놀라운 용서라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용서를 우리가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서도 용서의 삶이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러한 용서 곧 죄사함의 용서를 맛보고 또 우리 가운데서도 진정한 용서를 맛보는 것이 천국을 지금 맛보는 것입니다.

창세기 50:22-26절 말씀은 요셉의 임종에 관한 말씀입니다. 22-23절에 보면 요셉은 그 아비 야곱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 십세를 살았습니다. 요셉은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요셉을 대신하여 자신의 아들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요셉이 임종을 앞에 두고 자식들에게 무엇을 부탁했습니까? 24-25절을 보면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출애굽 할 때 자신의 해골을 메고 올라갈 것을 맹세하라는 것입니다. 요셉 역시 야곱의 임종에서처럼 자신의 뼈를 가나안땅에 묻어 달라고 합니다. 요셉은 야곱보다 애굽에서 훨씬 오래 살았습니다. 제2의 고향이라는 말이 있듯이 요셉은 애굽에서 총리가 되기까지 한 사람인데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아무 것도 아니게 여기는 것입니다. 애굽에서의 어떠한 부귀와 영화도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마지막 소원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묻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셉의 마지막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들은 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가는 것이 정말 우리의 소원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사는 것이 정말로 우리의 소원입니까? 24절을 다시 보면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리니’라고 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너희를 권고하사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약속하신 출애굽의 언약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권고하시는 날에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25절에 보면 요셉은 이와 같은 유언을 남기고 백십 세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애굽의 그 부귀와 영화를 누린 곳에 묻히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에 묻히기를 소원하였습니다. 그는 애굽 땅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렸지만 그곳에 소망을 두고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에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요셉의 유언이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3:18-19절을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죽은 지 수백 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출애굽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을 할 때, 곧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무엇을 들고 나옵니까? 요셉의 해골을 메고 나오는 것입니다.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라고 합니다. 사실 출애굽의 역사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간섭하심으로 극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그런 출애굽의 역사 때 그들이 얼마나 바쁘고 정신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의 해골을 취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빈틈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요셉의 해골도 함께 출애굽을 합니다.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너서 드디어 가나안땅에 도착을 합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정착을 함과 동시에 요셉의 해골이 가나안에 묻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24:3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이끌어 낸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 금 일백 개를 주고 산 땅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의 해골이 가나안 땅에 묻히는 것으로 여호수아서가 끝이 납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얼마나 빈틈없이 이루어지는지를 우리의 눈으로 확인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마치면서 우리의 소망을 다시 점검하고, 주님의 약속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인생인지 마음에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요셉과 같이 하나님이 지으시고 경영하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주님 오실 그날을 사모하며, 언약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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