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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21:18-25
성경본문내용 (18)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19)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20)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21)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22)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23)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24)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25)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강설날짜 2011-03-27

2011년 3월 27일 설교


너는 나를 따르라


말씀:요한복음 21:18-25

 

하나님께서 지난 2년 가까이 요한복음 말씀을 통해 우리들 가운데 놀라운 은혜를 허락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과 같이 우리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생명을 얻는 역사가 충만케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오늘로써 요한복음 공부가 끝이 납니다. 여러분들은 이때까지 요한복음을 공부해 오면서 어떤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나의 심령과 나의 삶을 사로잡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시간에 우리는 지난 시간 동안 요한복음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마지막 부분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랑고백을 받으신 후 자신의 양무리를 맡기시는 사건을 공부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베드로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제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은 자라면 누구든지 주님께서 맡기우신 양무리들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제자 된 자의 마땅한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은 주님께서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신 후 그 고백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실 것을 약속하신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6:15-18절에 보면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갈릴리 바닷가에 제자들을 찾아와 주시고 사랑고백을 받으신 후 이제 그에 대한 좀더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제 천상으로 승천하시게 되면 이 땅에 세워지는 주님의 교회는 그의 제자들에게 맡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성령 하나님을 교회 가운데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도우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보존하시며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에 오시고 베드로에게 사랑고백을 받으신 후 ‘내 양을 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주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말씀을 성취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에게 사랑고백을 받으신 후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시는 말씀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신 후 그 고백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신 말씀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사랑고백을 받으시고 자신의 양무리들을 맡기신 후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8-19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부터 베드로의 삶은 아니 모든 제자들의 삶은 오로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한 삶이어야 한다고 선언을 하시는 것입니다.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은 베드로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베드로 자신이 원하는 삶과는 무관한 곧 자기가 원치 아니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베드로와 제자들은 자기 개인의 목적을 위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자기들 원하는 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젊었을 때는 자기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남이 띠를 띠우고 베드로가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이 말씀은 바로 이제부터 베드로는 자기 마음대로 이 세상을 살아가지 못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주님의 장중에 전적으로 붙잡힌바 된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는 죽을 때도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베드로와 제자들의 이 세상에서의 삶이 결코 평탄치 않고 환난과 고난의 인생이 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을 통해 이미 봐서 잘 알지만 사도들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주와 복음을 위해 죽도록 고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직 그들은 주님께 붙잡힌바 되어 주님의 양무리를 돌보고 희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수많은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환난을 당했습니다. 사도 야고보를 필두로 모두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하게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똑바로 달려 죽으셨는데 나는 그런 은혜를 받을 수 없다고 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사도들뿐 아니라 교회사를 보면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복음을 인해 고난의 길,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히브리서 기자는 복음을 위해 순교의 길을 간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당하고, 결박과 감옥에 갇히고, 칼에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와 같이 유리하고,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고, 광야와 암혈과 토굴에 유리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이들의 믿음의 행보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 땅에서 한결같이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참된 제자들은 고난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한복음 15:18-25절에 보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에서 주님께 택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주님께 속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그러나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곧 자기 원하는 대로, 자기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제자 된 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제자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전에는 자신의 힘과 능력과 의지적 결단으로 다녔으나 이제는 남이 나에게 띠를 띠우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리고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곳에 가고 싶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제2의 르네상스와 같은 시대입니다. 인간이 우선이 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이 우선이고, 자기 만족이 우선인 시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메인바 된 주님의 제자들은 자신의 삶이 우선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우선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이 원하는 일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에게는 오히려 자기가 원하지 않던 일들이 닥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자신의 뜻을 꺾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고자 기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36-46절에 보면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사건입니다. 이 주님의 기도에 보면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시기를 세 번이나 반복해서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다고 하셨습니다(눅 22:44).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십자가를 순종하시기 위해 이처럼 자기를 쳐 복종시키시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신 후 십자가를 향해 담대히 나아가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 된 자의 마땅한 기도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곧 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성도란 이제부터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는 자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는 자입니다. 성령에 메인바 되어서 우리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곧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가야 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주님을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묵묵히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뒤를 따라 갈 수없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가 주님의 뒤를 따라간다는 것은 내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따라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과 의지와 노력으로 주님의 뒤를 따라 갈 수 없습니다.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위해 죽을지언정 결코 부인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결국 실패했던 것처럼 우리는 근본적으로 주님의 뒤를 따라 갈 수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로 당신의 뒤를 따라 오게 하셔야 따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곧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야만, 우리 주님께로 인도해 주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제자의 삶이 어떤 길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24-25절에서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이처럼 우리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간에 우리가 주님의 제자들이라면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습니까?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지 않고서는 결코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죽는 길 외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죽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죽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죽게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으로부터 요구받고 있는 것은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닙니다. 능력 행함도 아닙니다. 커다란 예배당을 짓고 많은 사람을 끌어 모우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과 큰 업적을 남기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신 것처럼 주님의 제자들도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의 마땅한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19절에 보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19a). 그런데 죽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까? 그것도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죽는다는 것은 실패하는 것이요, 망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는다는 것은 저주 받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죽음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죽음인 것입니다. 양을 치는 일로서, 주님의 분부대로 살다가 죽는 죽음이기에 하나님께 영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말씀하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결국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이 베드로에게도 그대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곧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베드로는 말없이 주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직도 남과 비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20-21절을 보면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하고 물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주님께서는 이제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돌이켜 요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22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왜 엉뚱한데 신경을 쓰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자세에서 아직 제자들이 주님과 일대일 관계 속에서 따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들에게 주님께서 보내신 성령이 임하시게 되자 모두 주님의 뒤를 따르게 되는 것을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제자들이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 자신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자세는 남이 어떻게 되든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주님을 따르는 우리 자신들의 자세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늘 곁눈질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남과 비교하지는 않습니까? 신앙이란 주님 앞에서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를 잘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요한복음의 결론이 “너는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상은 어떠합니까? 늘 주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실상은 세상의 것들에 매여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를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주님을 따르게 하시고야 마십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의지가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우리 주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우리 주님의 은혜로운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오직 주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께서 맡기신 양무리를 섬기며,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하나님 앞에 복된 인생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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