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448
  • 어제방문자 : 
    1,063
  • 전체방문자 : 
    1,419,718
조회 수 279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2:2
성경본문내용 (2)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강설날짜 2006-12-24

2006년 12월 24일 설교


유대인의 왕!


말씀:마태복음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성탄의 은혜와 기쁨이 우리들 가운데 충만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성탄의 의미를 살펴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성탄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려 경배를 드렸습니다. 이 시간 우리들에게도 동방박사들과 같이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영접하고 그 분께 나의 보배합을 열어 온전한 경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탄의 기쁨이 충만하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동방에는 큰 별이 나타났습니다. 발해의 건국자 대조영이 태어날 때 큰 유성이 나타났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도 큰 별이 나타난 것입니다. 민수기 24:17절에 보면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동방의 박사들은 어느 날 이상한 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별이 구약에 예언된 바로 그 별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이 탄생한 것을 깨닫고 그에게 경배하고자 그 별의 주인공을 찾아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이시니까 왕이 있는 예루살렘에 나실 것으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으로 온 것 같습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은 그리스도 곧 메시아를 의미합니다. 4절에 보면 동방에서 온 박사들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 대한 소식을 들은 헤롯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유대인의 왕이란 바로 그리스도(메시아)를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란 당시 이방인들에게는 유대에서 탄생할 메시아를 의미하여 부르는 별칭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9:6절에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8:37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빌라도 총독 앞에서 자신이 왕이라는 사실을 증언하였습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왕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태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으로 임하였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임마누엘 하신 예수님은 왕이 되십니다. 마태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오, 모든 인생들로부터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마태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왕으로 참으로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 왕과 같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다윗 왕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최고의 왕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평화와 번영과 구원을 가져다 준 왕이었습니다. 선한 목자와 같은 왕이었습니다. 마태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다윗 왕과 같은 메시아가 속히 오셔서 자신들을 진정으로 다스려 주시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러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님은 어떤 왕이 되십니까? 6절에 보면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마가서 5: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이같이 예언하셨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미가 선지자에 의하면 베들레헴에서 나실 메시아는 다스리는 자인데 목자와 같이 다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목자는 양을 어떻게 다스립니까? 양들을 앞서서 인도합니다. 목자는 푸른 초장이 어디 있는지, 맑은 물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독초가 있고 위험한 곳이 있는지 잘 압니다. 또한 목자는 양이 방향 감각이 없고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것도 잘 압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는 양들을 앞서서 푸른 초장 맑은 물가로 인도합니다. 또한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다윗은 양이 사자에게 물려갔을 때 목숨을 걸고 싸워서 사자의 입을 찢고 양을 구해냈습니다. 이처럼 선한 목자는 양떼들이 이리나 사자나 어떤 위험이 닥쳐도 목숨을 걸고 양을 보호하고 지켜냅니다. 그러므로 양들은 목자로 인해 구원을 받으며, 생명의 꼴과 맑은 물을 얻으며 평안히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의 왕은 세상의 왕들과 같이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목자와 같이 섬기는 왕이십니다. 그는 왕이시지만 이 세상에 속한 왕이 아니라 진리의 왕이었습니다. 폭군이 아니라 겸손과 사랑과 평화의 왕이었습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멸망 받을 백성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여 구원하시는 구원의 왕이시었습니다. 사탄을 정복하실 승리의 왕이십니다. 유대인의 왕은 참으로 선한 목자와 같이 우리 인생들의 진정한 왕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왕 곧 그리스도가 나셨다는 것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새로운 임금이 와서 새로운 통치가 이루어짐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까지 우리 인생은 다른 왕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그 왕은 우리 인생의 진정한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유대인의 왕 곧 그리스도는 우리의 진정한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이제 이 분의 통치가 이루어집니다. 유대인의 왕은 우리 인생을 목자와 같이 다스려 주시는 진정한 왕이 되십니다. 이 왕의 다스림을 받을 때 구원함을 받습니다. 이 왕의 다스림을 받을 때 진정한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이 왕의 다스림을 받을 때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이 왕의 다스림을 받을 때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왕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곧 우리 인생이 누구의 다스림을 받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생사와 행복과 불행이 달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헤롯의 다스림을 받았습니다. 헤롯 왕의 다스림을 받은 유대 백성들은 큰 고통 가운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헤롯은 이두메 사람으로 성격이 포악하고 탐욕스러운 왕이었습니다. 10명의 아내에 15명의 자식을 둔 왕이었습니다. 그는 왕권에 대한 과대망상증으로 왕권을 잃지 않을 까 두려워하여 아내와 두 아들을 죽인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두 살 아래의 사내 아이들을 다 죽인 잔혹한 왕이었습니다. 이런 왕의 다스림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우리는 오늘날 존경받지 못하는 대통령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헤롯왕의 다스림을 받는 이스라엘백성들은 흑암에 행하는 인생이었습니다. 참으로 우리 인생은 누구의 다스림을 받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합니다. 누가 우리 인생의 왕인가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는 우리 인생의 그리스도시오, 선한 목자와 같이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다스리시기 위해 만왕의 왕으로 나시고 우리 인생의 왕이 되셔서 목자와 같이 다스려 주심을 감사 찬양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셨습니다. 우리 인생을 목자와 같이 다스려 주시는 진정한 왕이 되십니다. 성탄이 기쁘고 즐거운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경배’(proakunevw)라는 말은 마태복음에 무려 13회나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입맞추다’라는 뜻 ‘퀴네오(kunevw)’와 ‘…에게로 가까이 가다’라는 뜻 ‘프로스 (pro")’의 합성어로 ‘입맞춤으로 존경을 표하다’, ‘엎드려 절하여 존경심을 표하다’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4:9절의 ‘경배하다’, 요한복음 4:20절에 ‘예배하다’ 그리고 마가복음 5:6절의 ‘절하다’는 내용과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한 이 말은 단순한 인간적인 존경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용어는 종교적 용법으로 유대인들이 큰 명절에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정통적 예배를 가리키고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요 12:20, 행 8:27). 그러므로 단순한 인간적인 존경심을 초월하여 성육신하여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곧 세상 만민의 왕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온 목적은 메시아이신 유대인의 왕을 환영하고 기뻐하며 그에게 최고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온 것입니다. 그들은 별의 인도함을 받아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을 만난 그들은 인생에 최고의 기쁨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고대세계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나 왕 앞에 나아갈 때 존경과 사랑과 신뢰의 표로, 여기에 나타난 세 가지 예물과 같은 것을 가지고 가는 풍습이 있었습니다(삼상 9:7-8, 왕상 10:2). 또한 구약에는 이방의 왕들이 오실 메시아에게 예물을 드리며 복종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시 45:8; 사 60:5,6 등).

박사들이 왕께 경배하면서 드린 황금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의 왕권을 상징합니다. 왕으로서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신뢰와 그 통치에 대한 완전한 순종과 복종과 감사를 나타냅니다. 유향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장직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제물을 가지고 연결하여 주는 폰티펙스(pontifex), 곧 가교입니다. 예수가 하시는 결정적인 사역 중에 하나가 그가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이 됨에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의 무죄하신 신성을 상징합니다. 몰약은 대속주로서의 예수의 수난을 상징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는 우리의 대속의 주가 되십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우리가 완전한 순종과 경배를 드릴 참된 왕이 되십니다. 동방박사들은 이 왕되신 예수님께 최고의 경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들이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며 경배를 드렸을 때 그들의 심령에는 말할 수 없는 감격과 만족과 기쁨과 평강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러나 헤롯과 온 예루살렘 백성들은 유대인의 왕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큰 소동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불안하여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자신의 왕으로 영접하여 드리고 그 분께 경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성탄이 기쁜 날이 아니라 두렵고 고통스러운 날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소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영접하여 드리지 않고 그 분께 최고의 경배를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에게 다른 왕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물질을 자신의 왕으로 섬깁니다. 자신의 명예와 권력과 자존심을 왕으로 섬깁니다. 이런 자들은 소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이번 성탄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셔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분에게 나의 보배합을 열어 최고의 경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탄의 기쁨이 충만하길 바랍니다.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623 [마태복음 18장] 한없이 용서하라! 마 18:15-35 손재호 2007-06-24 3947
622 [마태복음 19장] 이혼에 관한 교훈 마 19:1-12 손재호 2007-07-01 5083
621 [마태복음 19장] 재물과 영생! 마 19:13-30 손재호 2007-07-08 4767
620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마 20:1-16 손재호 2007-07-15 8423
619 [마태복음 20장] 인자가 온 것은! 마 20:17-34 손재호 2007-07-22 4539
618 [마태복음 21장] 왕의 예루살렘 입성 마 21:1-17 손재호 2007-07-29 4784
617 [마태복음 21장]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 마 21:18-22 손재호 2007-08-05 6405
616 [마태복음 21장] 왕의 권위에 대한 논쟁 마 21:23-46 손재호 2007-08-12 4263
615 [마태복음 22장] 혼인 잔치 비유 마 22:1-14 손재호 2007-08-19 6499
614 [마태복음 22장] 종교지도자들의 올무 마 22:15-46 손재호 2007-08-26 3577
613 [마태복음 23장]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죄 마 23:1-12 손재호 2007-09-02 4394
612 [마태복음 23장] 일곱 가지 화! 마 23:13-39 손재호 2007-09-09 6185
611 [마태복음 24장] 예루살렘과 성전의 심판 마 24:1-35 손재호 2007-09-16 4492
610 [마태복음 24-25장] 재림을 맞을 준비! 마 24:36-25:30 손재호 2007-09-23 3821
609 [마태복음 25장] 왕의 마지막 심판 마 25:31-46 손재호 2007-09-30 5531
608 [마태복음 26장] 마지막 유월절 마 26:1-30 손재호 2007-10-07 4093
607 [마태복음 26장] 배반 당하시고 잡히신 왕 마 26:31-56 손재호 2007-10-21 4821
606 [마태복음 26장] 심문 당하시는 그리스도 마 26:57-75 손재호 2007-10-28 3934
605 [마태복음 27장] 사형선고를 받는 왕 마 27:1-26 손재호 2007-11-04 4067
604 [마태복음 27장] 십자가에 못 박히신 왕 마 27:27-56 손재호 2007-11-11 535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41 Next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