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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18:28-40
성경본문내용 (28)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29)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30)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31)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32)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33)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3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35)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무엇을 하였느냐(36)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37)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38)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39)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40)저희가 또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
강설날짜 2011-01-02

2011년 1월 2일 설교


내가 왕이니라


말씀:요한복음 18:28-40

 

요한복음 18:28-19:16절까지는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시는 사건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18:28-40절 말씀을 통해 ‘내가 왕이니라’고 선언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을 잠시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결박하여 안나스에게 갔다가 그 해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갑니다. 그리고 빌라도에게 사형 허락을 받기 위하여 빌라도의 관정으로 몰려갔습니다. 이 빌라도가 바로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나오는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이 빌라도는 로마의 총독으로 유대 땅에 와 있습니다. 유대의 왕은 헤롯이라고 따로 있습니다. 이 헤롯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그 헤롯은 아니라 그 헤롯의 아들입니다.

 

빌라도가 로마의 총독으로 유대 땅에 와 있었습니다. 총독은 자기가 다스리는 땅에서 민란이 일어나면 자신의 책임이었기 때문에 늘 민심을 살펴야 했습니다. 몇 십 년 전에 터키에 있는 성 소피아 사원에서 빌라도가 시저 황제에게 보내는 보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진위 여부는 논란이 있지만 그 당시의 배경을 충분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빌라도의 보고서’라고 해서 작은 책자로도 나왔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빌라도가 치안을 담당할 만큼 많은 군대를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무조건 힘으로 유대민족을 억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적당하게 타협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산헤드린 공회와 같은 유대의 기득권층과 서로 결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빌라도는 예수라는 사람이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늘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정탐을 보내서 보고를 받는 것입니다. 정탐들을 통해 예수가 ‘죽은 자도 살렸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였다’는 보고들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수많은 군중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열열히 환영받은 것도 보고를 받았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이 예수가 만약 민중들의 지지를 입어서 반역을 일으키면 자신의 힘으로 감당을 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늘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가 자기에게 끌려 온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33절을 보면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이 네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서 묻는 거냐?”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들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유대 땅을 로마가 다스리고 있는데, 네가 유대인의 왕이라면 어떻게 네 나라 백성들이 나에게 넘겨줄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대답이 36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 넘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볼 때에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한다고 고발을 받았는데도 예수님의 대답은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보는 나라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뿐입니다. 이것이 빌라도의 진리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37절에 보면 빌라도가 다시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이때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은 왕인데 어떤 왕이라고 합니까? 이 세상에 속한 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해서 증거하러 왔다고 하십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38절에 보면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빌라도가 이렇게 진리에 대해서 물은 것은 진리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묻고는 그 진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아니합니다.

 

그러면 빌라도의 심문 결과 어떤 결론을 내렸습니까? 38b절에 보면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나아가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겠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39절에 보면 유월절 특사로 풀어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빌라도도 한편으로는 예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9:8절을 보면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고발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다고 하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아내도 예수에 대하여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7:19절을 보면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빌라도의 부인까지 이런 이야기를 하니 빌라도가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보다 빌라도의 진리는 무엇이었습니까? 결국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진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무엇이냐 하고서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으라고 그러면 바빠서 교회 못 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진리란 우선 내가 먹고 사는 것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나가는 것은 사치스러운 취미생활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관이란 결국 자기 몸에 한하여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진리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무슨 도움과 이익이 되는가를 따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철학적으로 실용주의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오늘날 교회들도 진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인간의 죄의 심각성과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사람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입니다. 희망의 메시지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느 나라 왕입니까? 오늘 말씀에 의하면 진리에 속한 자들에게 왕이라는 것입니다. 곧 진리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속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을 왕으로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똑똑하지 못해서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로마의 총독입니다. 지혜도 있고 권세도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직접 진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빌라도의 진리란 손에 만져지고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진리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나라는 허상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이 세상에 보이는 것들이 허상이고 주님이 약속하신 세상 곧 지금 그 세상이 눈에 보이거나 드러나지 않았다 하여도 주님의 약속의 말씀만이 진리임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고, 진리의 말씀을 듣는 것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구하고 찾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내 마음의 위안이나 받고자 하는 사교단체가 아닙니다. 자기의 힘과 능력을 과시해보는 곳도 아닙니다. 오직 이 세상이 불타 없어질 세상임을 알고서 주님의 피로 만들어진 그 나라와 그 의를 사모하는 곳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우리의 왕이라고 하면서도, 이 세상의 임금이 줄 수 있는 것을 구하고 있다면 이것이 진리에 속한 자녀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주기기 위함이 아닌 것입니다.

 

다시 36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 넘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속한 나라를 위하였다면 오늘도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싸움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온갖 세상의 우상들을 부수어 내어야 하고, 예수 믿지 않는 세력들을 힘으로라도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러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는 것입니까? 함께 떠나자는 것입니다. 이미 심판을 받아 마땅한 곳에 무얼 그리 애착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시작 전에 세 가지의 유혹을 받았습니다(마 4장). 이 세 가지를 공중권세 잡은 자가 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도 부자 되고 잘된다고 하면 그러면 예수 믿지 않는 자는 모두가 가난하고 저주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훨씬 잘되는 것 같습니다. 육을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들을 거두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무엇을 심는 것입니까? 성령으로 심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거두는 것입니까?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생을 얻는 것을 사람이 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단의 세 가지 제안을 거절하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단이 줄 수 있는 그러한 것을 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로마 황제가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로마의 황제가 줄 수 있는 것을 진리로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힘없이 잡혀있는 예수가 준다는 진리는 진리로 여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빌라도뿐이겠습니까?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원하고 바라는 것들이 사실 빌라도가 원하고 있는 것들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진리이신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세상의 것들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죄로 인하여 자신의 살과 피를 주셔서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이 주님의 일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결코 이 세상의 것들이나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5:18-19절을 보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대접을 받고, 세상의 사랑을 받고 살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 그러면 교회가 세상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누가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구하려면 교회에 나오지 말아야 합니다. 진리가 밥 먹여 줍니까? 오히려 고생을 합니다. 그런데도 진리가 좋다고 따라나서시겠습니까?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면 그 사람은 진리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우리가 알고 받았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세상 것을 주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진리에 속한 사람이고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십니다. 요한복음 14:6절에 보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것이 다 없어져도 예수님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진리에 속한 사람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여 보아도 로마를 반역할 정치적이 범죄가 아니라 그들의 종교적인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풀어 주려고 합니다. 자기 아내가 그 옳은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말라는 말도 듣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두렵기도 하여서 무죄 석방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누가 복음을 한번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3:13-25절을 보면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을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어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러라.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저희에게 말하되 저희는 소리 질러 가로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 대.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저희의 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예수를 고소하면서 갈릴리에서부터 유대까지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고 자칭 왕이라고 하면서 고발을 하자 빌라도가 갈릴리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헤롯에게로 보냅니다. 헤롯이 갈릴리 지역의 분봉 왕인데, 그때 마침 예루살렘에 있었기에 빌라도가 예수를 헤롯에게 보냈습니다. 그러자 헤롯이 예수의 소문은 들었지만 직접 만나지는 못하여 궁금하여 했는데 직접 보게 되어 기뻐하였습니다. 헤롯이 기뻐한 이유는 무슨 기적을 한번 볼까 하였는데 예수님은 헤롯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자 화가 난 헤롯이 예수를 업신여기고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서 빌라도에게 다시 보냅니다. 그러자 그 날에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는 서로 친구가 된 것입니다. 공동의 적이 생기게 되니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란 이렇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에 앉아 있어도 어떠한 이해의 문제에 부닥치면 당장에 나타날 현상들입니다. 누구든 진리편이 아니라 자기 이익 편에 서게 되어 있습니다. 어제까지 서로 원수처럼 지내더라도 그 원수 간에 공동의 적이 생기면 당장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된 현실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음을 알고 때려서 놓아주겠다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데 왜 태장을 가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민중들의 욕구를 채워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15-26절을 보면 “명절을 당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저희가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가로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이는 저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멸하자 하게 하였더니. 총독이 대답하여 가로되 둘 중에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 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고 했습니다. 빌라도의 최종적인 제안이 예수냐, 바라바냐 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죽일 만한 죄를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라바는 어떤 사람입니까? 유명한 죄수입니다. 이 죄수는 민란을 주도한 사람이요, 살인한 강도입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시기심으로 예수를 넘긴 줄을 알고서 유월절 특사로 예수냐 바라바냐로 제안을 한 것입니다. 설마 살인강도를 원하겠는가 하는 생각이었겠지요?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들을 충동질 합니다. 바라바를 달라고 하고 예수를 멸하자고 합니다. 오늘 본문 40절에도 보면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바라바를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는 어떻게 하려는가 하니 그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계속 고집을 하다가는 민란이 일어날 것 같으니 나는 책임이 없다고 하면서 손을 씻으면서, 이 사람의 피에 나는 무죄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처형 판결은 빌라도가 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라도에게 진리란 무엇입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던 권세와 지위가 진리였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무어라고 대답합니까?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라고 합니다. 결국 살인강도 바라바는 살리고 예수는 죽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선택이요, 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예수님입니까? 바라바입니까? 우리는 근본적으로 진리를 택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의 이익을 택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나의 이익이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우리 앞에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는 예수님을 선택할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를 선택할 사람들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진리 되시고,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도 빌라도와 무리들과 같이 바라바를 택할 수밖에 없는 자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할 수밖에 없는 자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위해 잡히시고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게 하시고, 이 예수님을 나의 왕, 나의 주로 영접하며, 그 분의 통치를 온전히 받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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