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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19:17-27
성경본문내용 (17)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곳에 나오시니(18)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19)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20)예수의 못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21)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하니(22)빌라도가 대답하되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니라(23)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24)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25)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26)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27)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강설날짜 2011-01-16

2011년 1월16일 설교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말씀:요한복음 19:17-27

 

요한복음 18:28-19:16절까지의 말씀이 예수님께서 체포당하신 후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 사형 언도를 받으시는 사건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19:17-42절까지 말씀은 예수님께서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시는 사건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밑에서 예수님의 옷을 차지하기 위해 제비뽑는 사건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19:16절에 보면 예수님을 심문한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는 줄 알았지만 무리들의 요구에 굴복하여 결국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군병들은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지워 해골 곧 히브리말로 골고다라는 언덕으로 데려갔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군병들에게 채찍에 맞는 장면이 기술되지 않지만 공관복음에 보면 사형 언도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군병들로부터 많은 채찍을 당하십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아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시는 것입니다. 1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좌우편에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십자가형을 당하셨습니다. 이 두 사람을 누가복음에서는 자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3:39-43절을 보면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시고 좌우편에 두 행악 자가 함께 달립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예수를 조롱합니다. “네가 구원자냐. 그렇다면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 보라”고 합니다. 함께 힘없이 십자가에서 달려 죽는 주제에 무슨 구원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 강도는 예수님께 전혀 다른 반응을 나타냅니다.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마땅한 보응을 받는 것이지만 이 분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강도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은혜를 구하는 강도에게 하나님 나라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도대체 강도짓을 하다가 사형당하는 사람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곧 주님께서는 강도에게 하나님 나라, 구원의 은혜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이 사람이 무슨 선한 일을 많이 한 것입니까? 예수님을 비방한 강도는 악한 강도이고, 예수님께 은혜를 구한 강도는 착한 강도입니까? 둘 다 사형당하는 죄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면 큰 죄, 작은 죄를 구별합니다. 더 착하냐 덜 착하냐로 구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큰 죄의 삯은 사망이고 작은 죄는 사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합니다. 큰 죄든, 작은 죄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둘 다 똑같은 죄인입니다. 이 두 강도가 바로 인류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의 인생들 모두가 누가 누가 더 잘났는가 하고 살지만, 그러나 모두가 사형에 처해져야 할 마땅한 죄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한편 강도는 끝까지 예수님을 조롱하고, 한편 강도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믿은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실 때 무슨 커다란 기적을 행하셨습니까? 조롱하는 자의 말처럼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기를 십자가에 못을 박는 자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무 일도 행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자로 믿어 줄만한 그 어떤 능력도 나타내지 아니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강도 둘 다 욕을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16:32절을 보면 “이스라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찌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고 했습니다. 두 강도가 처음에는 함께 욕을 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편의 강도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이것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옆에서 함께 죽어가는 자를 보고서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고통을 느끼지 않거나 기적을 일으키지 아니하시고 동일하게 고통 중에 죽어가는 예수님을 보고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자신은 죽어 마땅한 죄인이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죄가 없음을 인정하고 자신을 그의 나라가 임할 때에 생각하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 속하여 있습니까? 구원 받은 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욕하고 있는 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구원 받은 강도라고 생각 하겠지요? 그러면 다시 질문을 합니다. 정말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인정하십니까?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한편 강도처럼 ‘죽어서 마땅합니다’라는 고백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조금만 어려움을 당하면 왜 날 구원하여 주지 아니하는가 하면서 원망을 합니다. 마치 예수님을 끝까지 조롱하는 강도처럼 우리는 늘 예수님이 왜 이 문제를 해결하여 주지 아니하는가 하고서 원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능력이 그렇게 많으시다면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시라면서,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라면서 왜 나의 이 질병을,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느냐는 항의가 생기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큰 능력을 행하셔서 사람들에게 내가 믿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라고 큰소리 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라 왔는데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보니 어떤 모습입니까? 자신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시고 자기 옷도 하나 챙기지 못하시고 벌거벗고 죽임당하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서 죽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런 예수님께 무엇을 기대하여 여기에 모였습니까? 아직도 한편 강도의 요구가 우리에게 있다면 예수님을 욕하고 돌아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안다면, 죄로 인해 버림받고 저주받아 죽어 마땅한 자임을 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렇게 죽으신 것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어야 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강도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우리에게 나오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죄인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고난 받으시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시고 계시는데 그 밑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23-24절에 보면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 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고 했습니다.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밑에서 서로 예수님의 옷을 차지하고자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겉옷은 두루마기처럼 되어 있는 옷이기에 군인 네 명이 네 조각으로 나누어 가지고, 속옷은 통으로 짜서 만들어진 옷이라 찢지 말고 서로 제비뽑아 나누어 가지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편 22편에 예언된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고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시편 22편은 메시아의 고난에 관한 내용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찌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찌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찌어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대회 중에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찌어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에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와서 그 공의를 장차 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이 시편은 다윗의 시편인데 예수님의 십자가 상의 고난을 눈으로 보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고, 6-8절에서는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고 합니다. 15-17절에서는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라고 합니다. 특히 18절에 보면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들이 얼마나 세밀하게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증거하고 계시는 이러한 예수님에게 무엇을 달라고 하시겠습니까? 한 벌 뿐인 옷과 속옷까지도 군인들이 나누고자 제비뽑아 가져 가버린 그러한 예수님께 무엇을 달라고 하시겠습니까? 이러한 주님을 우리가 모르면 십자가가 높이 세워져 있는 예배당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실상은 서로 서로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가지려고 하는 자들과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 모인 자들이 서로의 영광이나 자신의 자존심이나 챙기려고 한다면 어찌 이들과 다르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5:4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자기들의 영광을 서로 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땅의 수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면서 거창한 일들을 이루어 내고 있지만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큰 성전이라고 짓고,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을 모우지만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까?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자기들의 영광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수 없는 자입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십자가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우리가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구하게 됩니까? 한편 강도처럼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위력인 것입니다. 강도라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이 사실이 복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십자가의 현장까지 따라 왔습니다. 이 요한에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군인들은 옷 조각이라도 챙기려고 하였는데 요한은 오히려 마리아를 평생 모셔야 하는 짐을 지게 된 것입니다. 25-27절을 보면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미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요한을 아들이라 하시고, 요한에게 네 어머니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 가정이 어떠한 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의 새 가정은 혈통적인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들의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모든 것을 이루셨기에 그러한 새 가정이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어머니를 모시는 일을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요한은 마리아를 모심으로 그의 인생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요한은 성격이 불같은 자였습니다. 마가복음 3:17절에 보면 ‘보아너게’라는 별명을 가진 자입니다. ‘보아너게’란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받은 별명입니다. 누가복음 9:49-54절에 보면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저희가 가서 예수를 위하여 예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고로 저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면 요한과 야고보의 불같고 천둥 같은 성격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쫒는 것을 보고서 자기들을 따르라고 하자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 주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도록 금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사마리아 성으로 지나가게 되었는데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저희를 멸하라고 할까요”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천둥과 벼락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요한에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부탁으로 마리아를 모시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요한이 그때로부터 마리아를 모시면서 자기 성질대로 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성질대로 하였다면 아마 제일 먼저 순교할 그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를 모셔야 하니 결국 제일 오래 산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서신서 요한일서와 이서와 삼서를 보면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서신들을 공부할 때 봤습니다만 ‘서로 사랑하라’는 말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이단은 그 발걸음도 들여 놓지 못하게 하는 엄격함 역시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둥의 아들이 이렇게 사랑의 사도가 된 것은 결국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한 것을 통하여 이루어 내신 것입니다. 요한은 십자가 밑에서 자신의 이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멍에를 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멍에가 오히려 자신을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1:28-30절을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가는 인생은 쉼을 얻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 놓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멍에를 메게 됩니다. 이것은 주인이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는 주님이 주시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가 무겁고 힘이 드는 것이 아니라 쉽고 가볍기에 마음에 쉼을 얻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쉼이 십자가 안에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 있는 것입니다. 강도처럼, 군병들처럼 자신의 이익과 욕심을 따라 살던 우리에게 주님께서 십자가를 주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에게 십자가를 주신 주님의 은혜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강도처럼, 군병처럼 자기 이익과 욕심을 따라 살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따라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 참된 쉼을 얻는 복된 인생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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