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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19:31-42
성경본문내용 (31)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32)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33)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34)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35)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니라(36)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37)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38)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39)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40)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41)예수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42)이 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강설날짜 2011-01-30

2011년 1월 30일 설교


장사 지낸바 되신 예수


말씀:요한복음 19:31-42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영혼이 돌아가신 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서 죽으셨는데 그 죽으신 몸으로 또 이루어내실 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죽으면 끝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죽으신 그 주검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것은 주님의 공생애 사역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과 그 죽으신 몸에 이루어지는 일과 장사지냄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의 오심과 재림까지 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우리가 먼저 예수님께서 죽으신 이후의 십자가에서의 일을 살펴보고 나서 그 다 이루심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31절에 보면 유대인들은 큰 안식일에 곧 유월절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않고 지키기 위해 빌라도에게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 금요일입니다. 토요일이 안식일인데 이 안식일은 큰 날이라고 합니다. 보통 안식일보다는 큰 날이 되는 것은 유월절 다음날부터 일주일간이 무교절이기 때문입니다. 곧 누룩 없는 떡을 먹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보통 안식일도 아니고 큰 안식일인데 십자가 그것도 저주받아서 죽은 자의 시체가 나무에 달려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나쁜 일이겠습니까? 그러니 그들은 자기들의 큰 안식일을 기분 좋게 지키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자들을 그대로 두지 말고 빨리 죽이자는 것입니다. 원래 십자가형이란 십자가에 못을 박아 달아놓고서 말려 죽이는 것입니다. 십자가형은 일찍 죽는 자도 있지만 강한 자들은 때때로 며칠씩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주일 동안 죽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금요일에 못 박았는데 내일이 큰 안식일이니 십자가에 달린 자들을 빨리 치워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자를 빨리 치우기 위해서는 그들로 빨리 죽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빨리 다리를 꺾어 죽게 하라는 것입니다.

 

32-34절에 보면 이에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힌 자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다리를 꺾었습니다. 나무에 다리가 못 박혀 있으니 긴 창으로 주리를 틀듯이 다리를 꺾어버리는 것입니다. 군병들은 강도들의 다리를 꺾어 죽여 버린 후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상태가 어떠하였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고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확인사살을 하는 것입니다. 군병들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자 피와 물이 쏟아졌습니다. 35절에 보면 이를 본 자가 이 사실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그 증거가 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기절설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미 죽어 군병들이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쏟아 졌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여기서 이것을 본 자는 지금 요한복음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 요한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사실을 직접 목격하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이것을 기록함은 자신의 증거가 참인줄 알고 믿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뼈가 꺾이지 아니하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린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36-37절을 보면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뼈가 꺾이지 아니하시고 죽으신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2:46절에 보면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9:12절에 보면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꺽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지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34:20절에서는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꺽이지 아니하도다”고 했습니다. 이 시편 말씀은 유월절 어린 양되신 예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피를 받아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고기는 불에 구워서 먹는 것이 유월절 규례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응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얼마 안 되어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뼈를 꺾이기 전에 죽으심으로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십자가에서 약하신 모습으로 죽으셨습니다. 양편의 강도보다 훨씬 빨리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약하심으로 빨리 죽으심으로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한다”고 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예수님께서 다 이루기는커녕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하고 죽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기적을 베풀더니 죽는 마당에서는 기적도 한번 베풀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36-37절을 다시 보면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꺽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심은 모든 성경을 다 이루심인 것입니다. 그러면 돌아가고 나신 다음의 일들은 어떻게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까? 그것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돌아가시고 난 시체에 대하여서도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뼈가 꺾이지 아니하고 창에 찔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에 찔리심으로 물과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이 물과 피로 임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일서 5:4-8절을 보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곧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으로만 임하신 것이 아니라 온전한 육체로 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물과 피로 임하신 것이고 이를 증거 하시는 분이 성령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진리를 증거 하시는데 진리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물과 피로 임하신 분, 곧 온전한 육체로 임하신 분이 물과 피를 흘리심으로 죽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죽으심이 도대체 무엇을 다 이루었기에 능력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단순히 감상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냉철하게 지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작정하신대로 곧 말씀하신대로 이루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서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는 감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어떻게 처리하시는가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가는 십자가의 모습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롬 3:10). 우리가 감옥에 가지 않는다고 죄인 아닌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을 떠나 자기 자신이 주인인양 여기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사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연하게,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십자가 위의 예수님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대신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예수님에게 죄를 정하셔서 십자가에 죽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모든 죄인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예수님의 모습이어야 함을 인정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전부 불평과 원망과 짜증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도도 찬양도 예배도 헌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자신의 죽음인 것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과 거래하고자 하거나 아니면 자기의 의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님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참된 은혜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사야 선지가가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입니다. 이사야 6:5절에 보면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나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율법으로는 흠이 없다고 생각하고 예수 믿는 이단들을 잡아 죽이려 가던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는 죽은 자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행 9:1-9). 디모데전서 1:15절에 보면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다”라는 고백이 십자가 앞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만난 것이고 자기의 죄를 안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세가 되겠습니까? ‘주여!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십자가를 부적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차 뒤에 ‘익투스’라고 물고기 모양을 달고 다니면 사고가 안 납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날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말을 왜 하였겠습니까? 우리도 바울처럼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따라 죽고자 하지 않는다면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하였다고 합니다(고전 2:2). 그리고 십자가만 자랑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갈 6:14).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엇이길래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입니까? 유월절 양을 잡을 때 그 뼈는 꺾지 말아야 하는 것이 유월절 규례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절기에 잡히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데 다음날이 큰 안식일이라 안식일에 시체를 나무 위에 달아 놓지 않으려고 다리를 꺾어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강도는 다리가 꺾이지만 예수님은 이미 돌아가셨기에 다리가 꺾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다 이루심이란 이러한 유월절 어린 양의 다리를 꺾지 말라고 한 말씀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영혼이 떠나시고 나서 그 주검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찌른 자도 보리라는 말씀은 스가랴서 12:10절 말씀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찔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찌른바 나를 바라보고’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주시면 그 찌를 자를 보고 자기 죄로 인함을 인해 애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여 나의 죄로 인함이니이다’고 하며 십자가 앞에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오순절 성령이 임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와 사도들이 “너희가 십자가에 죽인 그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심으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행 2:36). 그런데 그 복음을 듣고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어찌할꼬’하는 회개가 일어난 것입니다(행 2:37). 자신이 찔러 죽인 자가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애통입니까? 독자가 죽고 장자가 죽은 것처럼 애통하는 것입니다(슥 12:10).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하여 이러한 애통이 나옵니까? 자기의 가슴을 치면서 내 죄로 인함이라는 애통함이 나옵니까? 그러한 애통함이 있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약의 모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 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에서 뼈가 꺾이지 않는 것과, 예수님께서 찔림을 당하시는 것까지 모두가 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지는 없어지나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마 5:18).

이사야 9:1-7절을 보면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했습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던 자들에게 그 흑암과 사망의 권세를 십자가로 물리치시고 빛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전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전쟁을 위하여 한 아기가 나와서 싸우시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로 오신 분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은 결국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열심이, 모든 성경에 나타나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 결과로 오늘 우리가 죄인임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이 우리의 구원이 됨을 알기에, 우리는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장사 됩니다. 예수님을 장사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 나옵니다. 38-39절을 보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장사 지낸 사람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라는 사람과 니고데모입니다. 우선 요셉을 봅시다. 마태복음 27:57-60절을 보면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라고 했습니다. 아리마대의 요셉이라는 사람은 부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보면 공의회 의원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공의회에서 예수를 죽이자는 결의에 찬성하지 않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드러내지 못하였습니다. 은휘(隱諱)하였다고 합니다. 곧 속으로는 인정하지만 겉으로는 숨긴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져와서 함께 장사를 지냅니다. 요셉은 당돌하게 빌라도에게 와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분위기는 어떤 분위기입니까? 예수를 죽였으니 그를 따르는 자도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다 도망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살아 있을 동안에는 드러내어 놓고 나서지 못하였던 그가 죽은 후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예수님을 장사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이루심의 열매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서 세상의 복을 받는다고 하면 우리의 힘과 의지를 가지고 따라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란 단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끌어당기기까지 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마지막 기적이라도 일어날까 하고서 따라나선 자들이 예수님의 물과 피 흘리심을 보고서는 이제 죽었다, 끝났다고 하면서 돌아가고 있는 그 자리에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같은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이요, 십자가의 기적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러한 예수님의 물과 피를 흘리심이 우리에게 효험이 되어서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죽으심을 이사야 53장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야 53:7-9절을 보면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지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악인과 함께 죽으셨지만 그러나 죽고 나서는 부자와 함께 되셨다는 말씀까지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그 대신 고난당하심을 믿는 자는 자신의 고난과 고통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심으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님의 은혜를 알게 하시고 늘 그 은혜 위에서 살아가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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