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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20:1-10
성경본문내용 (1)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2)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3)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4)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5)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6)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7)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8)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9)(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10)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강설날짜 2011-02-06

2011년 2월 6일 설교


부활하신 예수님


말씀:요한복음 20:1-10

 

오늘부터 요한복음 20장을 공부하겠습니다. 20장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곧 궁극적인 표적의 완성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이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요 2:18). 이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요 2:19). 이 표적은 성전인 자신의 몸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삼일만에 다시 부활하셔서 자신의 몸으로 참된 성전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0장에서 바로 이 표적이 궁극적으로 완성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전인 주님의 몸은 주님께서 친히 헐라고 하신대로 파괴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것으로 끝이났다면 아무런 표적이나 권세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그 표적이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요한복음 2장에서 말씀하신 표적이 온전히 성취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20장 말씀을 통해 표적의 온전한 성취! 곧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나오는 이야기는 8일 동안의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1-23절까지 말씀이 안식 후 첫날 곧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첫날에 대한 기록입니다. 첫째날에 대한 요한의 기록은 새벽 미명에 있었던 일(1-18)과 저녁에 있었던 일(19-23)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침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요한과 베드로가 빈무덤을 살펴본 이야기(1-10)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 주신 사건(11-18)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녁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아걸고 있던 다락방에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시는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24-25절은 두 번째 날로 첫째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있던 다락방에 나타나셨을 때 없었던 도마에 관한 이야기고, 26-29절까지는 여드레 날 곧 부활하신 주님께서 두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야기입니다. 특히 이 두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도마에게 자신의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 보게 하시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곧 도마를 위한 나타나심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일어난 일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의 부활을 다루면서 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일어난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장면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을 떠나실 때 아무도 예수님을 본 사람이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장면을 봤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자들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장면을 못봤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무덤에 장사한 후 군병들을 파수꾼으로 세워 무덤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군병들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장면을 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사랑하여 따르던 여인들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장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장면을 기술하지 않고 다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기술하고 있을 뿐입니다.

 

1절에 보면 안식 후 첫날입니다.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지났으니까 십자가에서 죽은지 3일째 되는 날입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왔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서와 달리 많은 것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 외에 다른 여인들이 무덤에 함께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8:1절에 보면 다른 마리아도 함께 왔다고 했고, 마가복음 16:1절에 보면 야고보의 어머니와 또 살로메가 함께 왔다고 했고, 누가복음 24:1절에서는 그냥 여자들이 왔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요한복음에서 기술하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외에 여러 명의 다른 여인들이 함께 온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인들이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에 무덤에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16:1절에 보면 이들이 무덤에 온 이유는 향품과 유향을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기 위하여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이 금요일 오후 3시쯤됩니다. 마가복음 16: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제구시에 십자가 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며 큰 소리를 지르신 후 운명하셨습니다. 제구시란 오후 3시를 말합니다. 금요일 해질 때부터 다음날 해질 때까지가 안식일입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장사를 치를 시간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과 향유를 바르다가는 안식일을 어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과 유향을 바르지 못하고 그냥 무덤에다가 장사를 지낸 것입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두는 것을 보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새벽 미명에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과 유향을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달려 온 것입니다.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가 혼자 무덤에 달려 온 것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과거 일곱 귀신에 들렸던 여인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고 주를 위해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마리아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특별하였습니다. 새벽 미명에 무덤으로 달려온 것을 볼 때도 그녀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무덤에 와 보니 어떤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까? 무덤 문을 막고 있던 돌이 무덤에서 옮겨져 있는 것입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돌이 굴러졌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돌은 바위에 만들어놓은 무덤 입구를 굴려서 막아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빌라도의 인봉이 쳐졌으며, 군병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돌이 입구에서 치워져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마리아는 어찌된 일인지 조사해 보지 않은 것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여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여튼 마리아는 무덤 문을 막고 있던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곧장 베드로와 요한과 다른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2절에 보면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랐지만 죽은지 삼일만에 부활한다고 하신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무덤을 떠나신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단지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체를 어디로 옮겨간 것으로 생각하고 베드로와 요한과 제자들에게 달려와서 이 사실을 고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있던 곳과 예수님의 무덤과의 거리가 얼마나 되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무덤이 예루살렘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같습니다.

 

마리아의 소식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3-7절에 보면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요한이 먼저 무덤에 도착하였습니다. 아마 요한이 베드로보다 더 젊었던 것같습니다. 요한이 무덤에 도착하여 들어가지는 않고 구푸려 무덤 안을 살펴보기만 하였습니다. 그는 무덤 안에 세마포만 놓여 있을 뿐 예수님의 시체가 없는 것을 봤습니다. 늦게 도착한 베드로는 무덤에 들어가 그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베드로가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여 있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져 있었습니다. 8절에 보면 그때서야 요한이 용기를 내어 함께 따라 들어와 그 사실을 보고 믿었습니다. 9절에 보면 그러나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는 못했습니다. 무덤에 예수님께서 안계시고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개켜져 있는 것을 본 후 베드로와 요한은 다시 아무 말없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요한은 마리아와 자신과 베드로가 각자의 눈으로 보았던 것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이 각자 어떻게 보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는 각기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마리아가 돌이 옮겨진 것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 자신도 도착하여 ‘세마포가 놓인 것을 보았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세마포가 놓인 것과 머리를 쌌던 수건이 따로 개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다시 요한 자신이 무덤에 들어가서 그 상황을 보고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리아가 본 것을 나타내는데 쓰인 헬라어는 ‘블레포’(blevpw)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그냥 본다’는 말로 아주 평범한 단어입니다. 또한 요한이 와서 몸을 숙여 들여다보았다고 했을 때도 같은 단어 ‘블레포’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와서 보았다는 사실을 묘사할 때 쓰인 단어는 다릅니다. ‘테오레오’(qewrevw)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의 의미는 그가 ‘섬세하게 비판적으로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베드로에게 어떤 의미를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 베드로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요한이 무덤에 들어와서 보고 믿었다고 했는데 그때 보았다는 말에 사용된 단어는 또 다릅니다. ‘에이도’(eijdw)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본 바를 이해하고 파악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곧 요한이 무덤에 들어가서 그 상황을 보고 이해했고 그래서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본 바가 무엇입니까?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마리아는 돌이 치워진 것을 보았습니다. 요한은 그것보다 좀 더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안을 들여다보고는 세마포가 떨어져 놓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한은 시체가 거기 없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그냥 거기 놓여 있는 대로만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무덤에 들어와서 살펴보았습니다. 시체를 감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따로 개켜져 있는 것을 봤습니다. 여기서 의미심장한 것은 예수님의 머리를 쌌던 수건이 따로 개켜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머리를 쌌던 수건이 개켜 있었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수건을 착착 접어서 두었다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쌌던 형태 그대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마포도 몸을 쌌던 그대로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몸만 싹 빠져나간 것입니다. 마치 이불을 덮고 있다가 몸만 싹 빠져 나가면 그 안에 사람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듯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 사실을 보고서 믿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무덤에 들어가서 이 사실을 보고 이해했습니다. 그 무덤 안에는 아무 것도 손을 댄 흔적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무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세마포를 찢어놓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거기에 둔 시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조차도 만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한은 그것을 보고 믿었습니다. 주님은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 두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아, 다시 살아 나셨구나’하고서는 그것으로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상한 내용입니까? 8-10절을 보면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믿더라’ 하고서는 ‘저희가 아직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냥 자기 집으로 가버리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들은 빈 무덤을 보았습니다. 세마포가 놓여 있고, 머리를 쌌던 수건은 따로 개켜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가 세마포나 수건을 풀어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누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갔다면 세마포가 놓여 있고 머리를 쌌던 수건이 개켜져 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분명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모습은 무덤덤한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무덤에 와서 굴러진 돌과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개켜져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가 없는 것을 봤습니다. 빈 무덤! 그리고 제자들이 본 모습! 이것들은 주님의 부활을 증거해 줍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로써 궁극적인 표적이 완성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요체요, 핵심입니다.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교회라는 역사적 사실은 베드로와 요한이 보고 믿은 일의 결과입니다. 돌을 굴려낸 천사는 주님께서 무덤을 떠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깜짝 놀라면서 보게 된 광경의 의미를 지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곧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훔쳐 간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과 세마포와 수건이 개켜져 있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본 것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지만 왜 그냥 가버린 것입니까? 9절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그들은 아직 성경에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말씀을 아직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말씀에 기초한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제자들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1장을 참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20:19절 이하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고 있던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처음 나타났을 때는 도마가 어디 갔는지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26절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난지 여드레 만에 다시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손가락을 내밀어 옆구리에 넣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친히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부활하신 것을 믿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21:3-4절을 보면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보고서도 나는 고기 잡으려 갈란다 하고 간 베드로와 거기에 우리도 함께 가겠다고 따라나선 자들이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의 모습이라고 상상이나 가십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알았다면 당장에 뛰쳐나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꿈도 아니고 분명히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서도 나는 고기 잡으러 갈란다고 하면서 옛날로 돌아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이고 내일 당장 먹고 사는 문제나 해결하여 주소하는 식입니다. 그동안 삼년 동안 따라 다니느라고 사업도 하지 못하였는데 다시 사업이나 하러 가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자들이 도대체 왜 이런 반응이 나타났을까요? 오늘날 우리도 부활의 소식을 듣고 있으면서도 왜 다른 염려들이 더 많은 것입니까? 제자들의 모습을 봅시다. 이들이 메시아로 알고 예수님을 따라 다닌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영광입니다. 자기 민족의 영광스러운 회복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셔도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부활하셔서 40일을 땅에 계셨는데도 그것으로 무슨 큰 일을 이루어 내시지 않았습니다. 살아계실 때에는 기적을 얼마나 많이 행하였습니까? 그래서 이 예수님만 따라 다니면 자신들이 한자리 하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이 그렇게 수천 년을 기다리고 기다린 메시아의 왕국이 세워지리라는 기대로 따라 나섰는데 십자가에 죽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 나셨다고 하여도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기 잡으러 가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절을 보면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하고 묻는 것입니다. 주님은 승천하기 직전입니다. 그때의 관심사도 오직 이스라엘의 회복이었습니다. 우리도 제자들과 같지 않습니까? 이런 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해도 무덤덤한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이 부활의 권능을 덧입고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산 것은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고서는 부활의 권능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돌이 굴려진 것과 세마포와 개켜진 수건과 빈 무덤이 이를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온전한 표적이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참 성전이 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자는 참된 성전되신 주님께 붙어 함께 성전으로 지어져 갑니다. 이런 자는 세상에서 죽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실패하여도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제자들이 본 증거를 통해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부활의 능력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참된 성전되신 주님께 붙어 함께 성전으로 지어져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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