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1,017
  • 어제방문자 : 
    982
  • 전체방문자 : 
    1,418,137
조회 수 558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20:19-23
성경본문내용 (19)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0)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21)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2)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23)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강설날짜 2011-02-20

2011년 2월 20일 설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


말씀:요한복음 20:19-23

 

오늘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첫 번째로 나타나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안식 후 첫날 저녁 때 있었던 일입니다. 곧 주님께서 부활하신 첫날 저녁에 있었던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꼭꼭 잠그고 있던 다락방에 찾아오셔서 평안을 선물로 주신 후 그들에게 자신의 사명을 위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 안식 후 첫날 아침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보고 갔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하라고 하셨습니다(17).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시고 평강을 선물로 주신 후 제자들에게 자신의 사명을 위임하시는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다루면서 누가복음에 기록된 사건들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습니다(34). 그리고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사람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사람 중에 한사람이 글로바였는데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아마 이들은 70인에 속한 제자였거나 아니면 500인에 속한 제자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은 열두 제자들에게 속한 자들은 아니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이런 사건들을 생략하고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안식 후 첫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안식 후 첫날 저녁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두려워 모인 곳의 문을 잠그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 간신히 피신을 했었습니다. 그들은 위험한 선동자로 간주된 예수님의 제자들로 요주의 인물로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성전 치안관이나 로마 관리들의 눈을 피해 예루살렘을 빠져 나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체포하기 위해 보낸 군사들이 언제 들어닥칠지 몰라 두려워 문을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여 있던 방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마 크게 놀라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을 열고 들어 온 것도 아니고 문이 닫힌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갑자기 그들 앞에 쑥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닫힌 문의 방해를 받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것을 볼 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보통 우리가 입고 있는 이런 육신의 몸과는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몸은 영체와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공생애 때 가지셨던 육체적인 몸과 부활의 새 몸 사이에는 분명한 연속성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두 손과 옆구리는 여전히 상처 자리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20절에 보면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난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 주셨습니다. 손과 옆구리의 상처는 바로 이 분이 제자들이 믿고 따랐던 예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이 지상에 계실 때의 몸과 다른 점이 있었지만 분명히 연속성을 띠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평강이 있을지어다’는 말은 헬라어로 ‘에이레네’(eijrhvnh)라는 단어인데 히브리어로는 ‘살롬’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일반적인 인사말입니다. 제자들은 이 인사말을 듣고서 주님께서 최근에 자신들에게 하신 말씀이 기억났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7절에 보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수 년 만에 듣는 말 같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인사 하신 후 상처난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이를 본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20b절에 보면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 앞에 서 있는 분이 부활하신 주님인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들 마음 속에 있던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기쁨이 충만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6:22절에 보면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이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인해 기쁨이 충만케 된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다시 보게 되어 기뻤습니다.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음으로 인해 기뻤습니다. 다시 살아나신다고 하신 주님의 그 주장이 옳았음을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의 이 기쁨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참된 기쁨입니다.

 

21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다시 한번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인사하신 후 무엇을 하셨습니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인사말을 반복하신 것은 자신의 실제적 임재를 재확인 시켜 주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나타나심은 제자들의 신앙과 헌신과 소망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이 받은 제자들로서의 사명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만일 부활이 없었다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교 하는데 있어서 원동력이 될만한 것이 있었을까요?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4-19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주님의 이름으로 선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명은 보다 더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b). 이 말씀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요한복음 17:18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대로 이제 실제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시어 자신의 말씀을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자신이 행한 일보다 더 큰 일을 행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2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 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게 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가지셨던 모든 특권과 모든 보호와 모든 책임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로써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담당하셨던 사명이 이제 제자들에게 위임이 된 것입니다.

 

22-23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신 후 주님께서는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방안에 모인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그 시점에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을까요?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주님으로부터 위임된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이 말씀은 해석하기에는 매우 난해한 말씀입니다. 과연 주님께서는 자기의 내쉬는 숨을 통해 제자들이 성령을 받을 것을 요구하셨을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시면서 숨을 내쉬셨던 것일까? 어느 방식을 따라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우리는 문맥상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전체적인 상황 속에서 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면서 말씀하신 그 순간에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라기보다는 앞으로 있게 될 오순절 성령 강림에 대한 약속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앞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내노라”고 하신 말씀도 즉각적으로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곧 나중에 생성될 교회를 포함한 모든 성도들을 세상에 보내신다는 말씀은 나중에 일어날 일에 대한 언약입니다. 실제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주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는 주님의 말씀도 즉각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나중에 있게 될 사실과 연관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말씀은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이 말씀은 부흥사들이 이상한 바람소리를 내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장면은 무엇이 생각이 납니까?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모습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성령이 예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승천하신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게 됩니다. 이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성령을 받으라’는 말은 인간의 힘과 의지로써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리며, 영원한 구원의 사역을 담당하고,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며, 인간들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 일은 인간적인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일은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의 영감을 받기 전에는 이 일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 혀를 다스려 주시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습니다(고전 12:3). 어느 누구도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제자들은 오순절 날 주님께서 보내어 주신 성령을 받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승천하신 후 오순절 날에 약속하신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1-4절에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했습니다. 오순절 날에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홀연히 하늘로부터 성령이 감림하였습니다. 급하고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고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이 제자들에게 보였습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성령이 제자들 위에 임하여 있었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 나라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제자들 가운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보내신 성령을 덧입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주님의 보내심을 받는 모든 자들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보내시는 성령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 충만함을 덧입고 주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23절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놀라운 권능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23). 참으로 이 말씀은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16장에 기록된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고백하였습니다. 그 후에 주님께서는 교회의 설립과 더불어 그 위에 허락하실 놀라운 권능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6:16-20절을 보면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특히 19절에 보면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들을 주겠다.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어져 있을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져 있을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베드로 개인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8:18절에 보면 그 권한이 제자 집단 전체에 부여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 제자들을 대표해서 베드로에게 주어지는 ‘열쇠’란 집에 사람의 출입을 관장하는 문지기의 권한이라기보다는 집안의 재정과 물품 출납을 관장하는 집사의 권한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고 푼다’는 말은 사람을 하나님 나라 안으로 받아들이는 권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권의 위임에서 나오는 역할과 권한으로 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신앙 고백 후에 하신 이 말씀이나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하신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는 말씀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이 말씀도 그와 동일한 의미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는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죄의 권세를 제자들에게 양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사하는 권세는 오직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이 권세는 전적으로 예수님께 귀속된 권한입니다. 그러므로 이 권세를 제자들에게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죄를 선언해서 사람들을 하나님께 화해시킬 수 있도록 할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사제의 귀에다가 죄를 고백하기 전에는 죄를 용서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을 통해서 죄를 용서 받도록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단적인 생각입니다. 결코 사람에게 사죄의 권세가 위임되지 않았습니다. 사죄의 권세는 오직 주님께 있습니다. 제자들은 단지 복음의 선포자로 위임을 받았을 뿐입니다. 복음의 전도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는다는 그 사죄의 은혜를 전파할 뿐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증거 하면 그 말씀을 믿는 자들이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그고 있던 제자들 가운데 오셔서 평강을 주시면서 세상을 향하여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주님의 명령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한 줄 믿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힘써 전파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442 [요한복음 18장] 내가 왕이니라 요 18:28-40 손재호 2011-01-02 4675
441 [요한복음 19장] 유대인의 왕 예수 요 19:1-16 손재호 2011-01-09 4557
440 [요한복음 19장] 내 옷을 제비뽑나이다 요 19:17-27 손재호 2011-01-16 4637
439 [요한복음 19장] 다 이루었다! 요 19:28-30 손재호 2011-01-23 4964
438 [요한복음 19장] 장사 지낸바 되신 예수 요 19:31-42 손재호 2011-01-30 4921
437 [요한복음 20장] 부활하신 예수님 요 20:1-10 손재호 2011-02-06 5031
436 [요한복음 20장]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 요 20:11-18 손재호 2011-02-13 5324
» [요한복음 20장]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 요 20:19-23 손재호 2011-02-20 5581
434 [요한복음 20장] 도마의 신앙 고백! 요 20:24-29 손재호 2011-02-27 5536
433 [요한복음 20장]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요 20:30-31 손재호 2011-03-06 4866
432 [요한복음 21장] 디베랴 바다에 오신 예수 요 21:1-14 손재호 2011-03-13 6553
431 [요한복음 21장]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 21:15-17 손재호 2011-03-20 4778
430 [요한복음 21장] 너는 나를 따르라! 요 21:18-25 손재호 2011-03-27 4903
429 [아모스 1장] 부르짖는 여호와 암 1:1-2 손재호 2011-04-03 4853
428 [아모스 1장] 이방의 죄와 심판(1) 암 1:3-12 손재호 2011-04-10 5229
427 [아모스 1-2장] 이방의 죄와 심판(2) 암 1:13-2:5 손재호 2011-04-17 4590
426 [아모스 2장] 이스라엘의 죄악 암 2:6-12 손재호 2011-04-24 4694
425 [아모스 2-3장] 이 말씀을 들으라! 암 2:13-3:8 손재호 2011-05-01 4363
424 [아모스 3장] 야곱족속에게 증거하라 암 3:9-15 손재호 2011-05-08 4449
423 [아모스 4장]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암 4:1-13 손재호 2011-05-15 550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41 Next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