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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암 1:1-2
성경본문내용 (1)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2)저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음성을 발하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강설날짜 2011-04-03

2011년 아모스 공부

부르짖는 여호와

말씀:아모스 1:1-2

 

오늘부터 우리는 아모스서를 공부하고자 합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어떤 인물이었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거명되지 않는 것과 목자라는 신분을 근거로 하층 계급에 속한 자일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아모스가 상당한 부를 소유한 재력가요, 상당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1:1절과 7:14절에서 자신이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1절에 나오는 ‘목자’에 해당되는 히브리어가 ‘노케드’(dqenO)인데 이 단어는 구약성경 전체에 단 두 번만 나옵니다. 오늘 본문과 열왕기하 3:4절입니다. 특히 열왕기하 3:4절에 보면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의 털과 숫양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목자’(노케드)는 주인의 양을 돌보는 고용된 목동이 아니라, 가축을 대규모로 소유한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아모스는 상당한 재력을 소유한 지주층에 속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7:14절에 보면 아모스는 아마샤에게 자신은 선지자도 아니고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고 하면서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데 아모스가 살던 드고아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8km 떨어진 곳으로 해발 약 830m 고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뽕나무는 드고아와 같은 고지대가 아니라 해안평야와 사해 인근에서 재배되었기 때문에 아모스는 아마도 그러한 지역에 뽕나무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모스 1:3-2:16절에 보면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라는 표현이 무려 8번이나 반복되어 사용되는데 여기서 ‘서너 가지’라는 표현구는 지혜 문학적 용어에 속합니다. 구약 지혜문학에 속해있는 잠언 30:18절에 보면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서너 가지’라는 표현구를 ‘숫자잠언’이라고 부르는데, 지혜문학이 고대 이스라엘의 학문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고대 문학적 용어를 구사하는 아모스는 상당한 교육수준에 도달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1:3-2:3절에 보면 그는 주변나라들의 정치적 상황을 정확히 알 정도로 당시 세계정세에도 정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모스 선지자는 상당한 부와 지식을 소유한 자였던 것 같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져 있던 때로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크게 번성하던 때였습니다. 남쪽 유다 왕은 웃시야였으며, 북쪽 이스라엘 왕은 여로보암 2세였습니다. 특히 북왕국 제13대 왕 여로보암 2세(B.C.793-753년)는 팔레스틴 북쪽에 위치한 신흥 강대국 앗수르의 계속된 공격으로 국력이 극도로 쇠약해진 아람(수리아)을 공격하여 그 수도인 다메섹을 정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모압까지 정복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던 땅의 북쪽 경계지인 하맛 어귀(민 34:8)에서 남쪽 아라바 바다(사해)까지 그 영토를 넓혔는데(왕하 14:25-27), 이스라엘 역사상 이렇듯 광대한 영토를 차지한 때는 통일 왕국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제외하면 여로보암 2세 치하 뿐이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국가 경영에도 능하여 지리적 여건을 이용한 중계 무역으로 국가의 부를 크게 증진시켰습니다. 이로써 북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 이후 명실상부한 경제적, 정치적 최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나라가 외적으로 크게 번영할 때 보면 항상 그 이면에는 도덕적, 종교적 타락이 함께 따라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 시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외적 번성과 함께 도덕적, 영적타락이 동반되었습니다. 6:1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은 안일에 빠져 있었습니다. 온갖 우상숭배가 만연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도성을 향해 ‘화 있을 진저!’라고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심판의 선언을 볼 때 그 시대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타락해 있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아모스 1:1절에 보면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그 시대의 특징 중에 하나를 여로보암 시대의 지진 전 이년이라고 했습니다.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1:1). 이 말씀을 볼 때 아모스 선지자가 하나님의 묵시의 말씀을 받아서 예언을 하기 시작하고서 이년 후에 지진이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진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아모스 후대의 선지자인 스가랴 선지자도 예루살렘이 받을 하나님의 심판을 이 지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스가랴서 14:5절에 보면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지라. 너희가 그의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아모스 선지자가 하나님의 묵시의 말씀을 받아 선포할 당시는 사회적으로도 혼란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여튼 아모스서는 유다 왕 웃시야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시대 지진이 있기 이년 전에 아모스에게 임한 하나님의 묵시의 말씀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남 유다 출신으로 북 이스라엘에 가서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니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너는 남쪽에나 가서 밥을 벌어먹으라고 합니다. 7:12-13절에 보면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모스는 어떻게 대답합니까? 7:14-17절에 보면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계하지 말라 하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줄띄워 나누일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아모스는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르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부르짖음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증거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3:8절에도 보면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이 시대는 북 이스라엘이 솔로몬 사후 가장 부강한 때였습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부강하여 질수록 북 이스라엘은 사치와 타락으로 치달았던 시대인 것입니다. 곧 영적으로는 타락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 한 시대였습니다.

 

그 타락한 내용이 바로 2:6-8절입니다. 2:6-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도성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 할 정도로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과 자비가 사라지고 온갖 불의와 악행이 행해졌습니다. 은을 받고 의인을 팔고, 신 한컬레로 가난한 자를 팔았습니다.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고,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인에게 들어가 행음을 행하였습니다. 해가 지면 돌려줘야할 가난한 자들의 겉옷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세금 대신 탈취한 포도주로 자신들의 향락을 위해 마셨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르짖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부르짖음을 듣고서 회개하면 살 것이지만 외면하면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외면하고 심판을 당하는 쪽으로 나가게 됩니다. 선지자들의 외침에 귀를 막고 거짓으로 가리며 예언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자기들이 부자로서 잘 살고 있는데 왜 간섭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부도 기득권층이나 누리는 것이지 가난한 자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의 학대당함과 고통에는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은혜의 나라가 자본주의 경제구조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어 간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듯이 오늘날 이 세상도 하나님의 심판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짖음에 관심이 없는 이것이 바로 기근이라고 합니다.

 

아모스 8:11-13절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호황이지만 말씀의 기근입니다. 이 기근이 우리의 상황 아닙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제적 부유함을 추구하고 육신의 안일을 추구하지만 말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들을 보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해 합니까? 우리가 육신적으로는 배부를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말씀이 없는 기갈로 영혼이 시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말씀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부르짖으시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저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음성을 발하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 부르짖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부르짖으시는 것입니까? 시온에서 부르짖으시는 것입니다(참조. 미가서 4:2). 북 이스라엘의 심판을 말씀하지만 그 부르짖음의 출발지는 시온 곧 예루살렘입니다. 이 시온에서 부르짖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르짖음의 대상이 최종적으로 이스라엘이지만 주변국으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주변 국가들을 차례대로 심판하여 오면서 최종적인 표적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안일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안일합니까? 6:1-7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 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거기서 대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그곳들이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토지가 너희 토지보다 넓으냐.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와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고 했습니다. 안일하고 마음이 든든한 것입니다. 심판이 닥치지 아니하리라고 하면서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켜며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한다고 합니다. 다윗이 악기로 여호와만 찬양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여흥을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온 이스라엘의 기득권층이 포도주에 취하고 기름을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중심지파가 에브라임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상관없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입니다. 이러면서도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요엘서에서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이들도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으나 그 날은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도대체 이렇게 하면서도 여호와의 날을 사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계적인 것일 뿐이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여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습관적으로 절기를 지키고 성회로 모이고 번제와 소제를 드리고 살진 희생을 화목제로 드리고 찬양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외식이었습니다. 그래서 5:21-23절에 보면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래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번제와 소제를 드리고 희생의 화목제도 드리며, 비파로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정말로 여호와의 날을 사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사모한 여호와의 날이 심판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공법과 정의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5:24에 보면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라고 했습니다. 사회는 온통 포학과 강포와 부르짖음이 가득한데 종교적인 행위로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시행되어야 마땅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이 이미 가나안 땅에서 이렇게 살다가 망한 나라들의 모습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5:18-20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재림의 날을 소망하고 있습니까? 그 날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사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간 곳이 없고 그저 세상이 주는 것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으면서도 절기도 지키고 헌금도 하면서 예배한다고 자위하며 안일하게 살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그러면서 심판의 소식은 나와 상관없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목표로 하면서 주변국들부터 그 죄와 심판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1:3-2:3절까지가 이방국가에 대한 죄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데, 2:4-11절 말씀을 보면 이방나라의 죄와 심판을 말하면서 그 심판이 이스라엘로 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심판의 메시지를 어떻게 선포하십니까? 부르짖으시는 것입니다. 2절을 다시 보면 “저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음성을 발하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지금 다른 나라의 심판 소식을 듣고서 좋아할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며 긴장하고 회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아모스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 주님의 부르짖음이 들리지 아니합니까? 이 세상 나라들만 이스라엘의 모습을 닮아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마저 그런 모습이 되어버리지 않았습니까? 교회 안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상관없이 자기들의 기호에 따라 모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고 열심히 종교 활동에만 힘쓰고 있다면 이것이 심판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베드로전서 4:16-18절에 보면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라고 했습니다. 아모스서에서는 이스라엘이 최종적으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지만 신약에서는 교회가 먼저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어떻겠느냐는 것입니다.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묵시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특히 이스라엘을 향하여 부르짖으시는 여호와의 음성을 두렵고 떨림으로 듣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말씀 앞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의 죄를 깨닫고 애통히 회개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회복되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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