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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암 2:6-12
성경본문내용 (6)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7)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8)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9)내가 아모리 사람을 저희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지 아니하였느냐(10)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로 차지하게 하였고(11)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시르 사람을 일으켰나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2)그러나 너희가 나시르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강설날짜 2011-04-24

2011년 아모스 공부


이스라엘의 죄악


말씀:아모스 2:6-12

 

1:1-2:5절까지 말씀에서 아모스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주변 이방 국가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심판을 선포하여 왔습니다. 다메섹을 시작으로 가사와 두로와 에돔과 암몬과 모압, 그리고 유다까지 그 죄악을 고발하고 심판을 선포하여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죄악의 고발과 심판의 선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과 상관없이 행하는 포학과 잔인한 행위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율법과 연관하여 죄악을 고발하고 심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있는 자는 율법으로 심판을 받고, 율법이 없는 자들은 율법 없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이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이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율법 없이 심판을 당하는 죄악의 특징 중에 두 번이나 반복해서 나오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인신매매입니다. 1:6절과 9절에 보면 블레셋과 두로는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팔아 버렸다고 했습니다. 블레셋과 두로는 인신매매를 한 것입니다. 인신매매는 반인륜적인 범죄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1:12-17절에 보면 사형에 해당하는 네 가지 범죄 중에 하나가 바로 인신매매 입니다.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사람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2-17). 이 말씀에 보면 율법에서는 사람을 쳐 죽인 자와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와 사람을 후린 자 곧 인신매매를 한 자와 아비나 어미를 저주한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했습니다. 인신매매는 반드시 죽여야 하는 죄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문제 중에 하나가 사람을 납치하는 문제입니다. 2008년도에 초등학교 두 여학생을 납치하여 토막 살해 한 사건이 한참 동안 이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여대생 납치 살해 사건, 보험 설계사 납치 살해 사건 등등. 하루가 멀다 하고 납치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전에 일어나는 이러한 죄악이 지금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죄악은 이 두 가지가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율법 없이 행하는 포학과 잔인함과 함께 율법을 범하는 죄악까지 한꺼번에 고발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죄악의 목록을 보게 됩니다. 물론 그 목록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죄악이 가득하여 그 열매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라고 했는데 이것은 뇌물을 주고받으면서 불의한 재판을 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의인이나 가난한 자나 빚을 지게 되면 무조건 팔아넘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나라가 하나님의 은혜를 유지하기 위하여 주신 율법을 이들은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이스라엘의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율법 없이 범죄 한 자들보다 더 큰 책망과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또한 “신 한 켤레 값에 가난한 자를 판다”라는 이 말씀을 보면 가난한 자들이 빚을 지게 되면 도저히 갚아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도 고리의 이자를 물어야 하는 형편이 되면 아주 조금만 빚을 내어도 갚을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이자만 자꾸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가난한 자는 노예로 팔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23:19-20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서는 이자를 받지 말라고 율법으로 명하여 놓았습니다. “네가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찌니. 곧 돈의 이식, 식물의 이식, 무릇 이식을 낼만한 것의 이식을 취하지 말 것이라. 타국인에게 네가 꾸이면 이식을 취하여도 가하거니와 너의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얻을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신 23:19-20). 그러나 이미 그러한 율법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순종하지 않고 자기 탐욕을 따라 행한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를 이용하여 치부하는 자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정도 상황이 되면 가난한 자들은 빚을 갚지 못하고 헐값에 저당 잡힌 물건이 넘어가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집도 땅도 그렇게 넘어가고 나면 나중에는 빚 대신에 사람이 종으로 팔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느 정도 가격에 팔리는가 하면 신 한 켤레 가격에 가난한 자를 팔아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만큼 공의와 사랑이 무너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써 특별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과 긍휼을 나타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카드빚 몇 백 만원 때문에 사채를 빌렸다가 갚지 못해 몸이 팔려갑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고리의 사채 문제가 사회 문제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율법대로 행했다면 이러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보다 눈앞의 이익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보다 눈앞의 이익을 좇아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세상과 다를 바가 없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실 예가 열왕기하 4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열왕기하 4:1절에 보면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은 엘리사 시대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의 왕은 아합 왕이었습니다. 이 때에 한 선지자의 생도 중의 한 아내가 엘리사에게 부르짖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엘리야의 후계자가 엘리사인데 이들을 따르는 선지학교의 생도들이 얼마나 가난하였는지 도끼도 한 자루 없어서 빌려와서 나무를 찍다가 연못에 빠지고, 먹을 것이 없어서 들 외를 따다 국을 끓였는데 써서 먹지를 못하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궁중선지자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왕궁의 호의를 받아 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엘리사를 따르던 선지자가 죽어버렸으니 그 아내와 두 아이가 빚에 쪼들린 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그러자 그 빚 때문에 채주가 자기 아이들을 종으로 삼으려고 한 것입니다. 먹고 살려고 하다가 빚을 진 것이지 무슨 투기를 하다가 빚을 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 빚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 얼마 되지 아니하는 빚인데 그것으로 아이들을 종으로 잡아 가려고 하는 현상이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모습입니다. 엘리사가 기적을 일으켜 빚을 갚게 하였습니다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 나라의 꼴이 어떤지 알만하지 않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7a절에 보면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들의 탐욕이 극에 달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22:22-27절에 보면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자의 머리의 티끌까지 탐내는 모습에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보호하고 돌보라는 말씀은 이미 아무 상관이 없는 나라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잊어버린 모습입니다. 가난한 자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까지 힘 있고 능력 있는 자들이 다 빼앗아 가버리는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 죄를 숨기기 위해 우리아를 살해하고 난 뒤였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와서 한 비유로 그의 죄악을 지적했습니다. 무슨 비유였습니까? 사무엘하 12:1-12절에 보면 아주 큰 부자 집에 수많은 양이 있는데 그 많은 양들을 다 놓아두고 가난한 자의 집에 가족처럼 지내는 한 마리 양을 빼앗아 왔어 손님을 대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이 어떻게 내가 다스리는 나라에 그런 놈이 있는가 하며 화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있는 장본인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다윗 왕 자신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나단 선지자가 지적하기 전까지 다윗은 그가 바로 자기 자신인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 모습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자기는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7b절 말씀에 보면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한다’는 것은 단지 가난하여 힘없는 자들만의 길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온유하며 겸손하여서 바른 길을 가고자 하는데도 그들의 길마저 굽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악한 짓을 하기에 바르게 살고자 하는 자들조차 바르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헌신하기 싫기에 다른 사람이 헌신하는 것조차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죄가 들러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참으로 하나님 앞에 악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부자(夫子)가 한 젊은 여자에게 다녀서”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아버지와 아들이 한 창녀에게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창녀란 단지 몸을 파는 창녀이기보다는 그 당시 바알을 섬기는 이방의 제단에 참여하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방의 제사란 그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음란히 먹고 마시며 뛰어노는 것입니다. 마치 시내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먹고 마시며 뛰어노는 것처럼 놀면서 신전의 여사제들과 집단 혼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신들을 흥분시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한 창녀에게 아버지와 아들이 들어가는 것보다 더 심각한 범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죄악을 인하여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런 죄를 짓지 않습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창녀에게는 가지 않는다고 하여도 바알을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곧 세상의 부와 성공을 좇아 살지 않습니까? 바알숭배가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주님께서 약속한 나라는 간 곳없고 바알에게 지배당하고 싶어 애를 쓰고 있는 것이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나 무엇이 다릅니까?

 

8절을 보면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는 포도주를 마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우상을 섬기는 단들이 얼마나 많은지 조금 이상한 나무만 있어도 그곳에 단을 쌓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단에서 전당 잡은 겉옷을 돌려주지 않고 깔고 앉아서 벌금으로 거두어들인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율법에서 가난한 자들이 겉옷을 전당 잡히더라도 저녁에는 반듯이 돌려주라고 했습니다(출 22:26). 왜냐하면 겉옷은 밤에는 이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은 밤에는 춥기 때문에 겉옷은 생명과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그들의 행위는 율법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이정도가 되면 선지자가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귀를 막고 고함을 지르며 저런 놈을 없이하라고 외치지 않겠습니까? 마치 스데반의 설교를 들으면서 귀를 막고 돌로 치는 것처럼 이들도 선지자의 외침을 틀어막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11-12절을 보면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시르 사람을 일으켰나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나시르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들의 외침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왜 이렇게 사느냐는 것입니다. 곧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하여 그들 가운데 선지자와 나시르(나실인) 사람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시르 사람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 선지자들의 입을 막으려고 예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모스 7:10-17절을 보면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하고,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계하지 말라 하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줄띄워 나누일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궁중 선지자 아마샤가 여로보암 왕에게 아모스를 고발하면서 예언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샤를 향하여 저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괴롭고 힘들더라도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면 그것이 살 길인데 예언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마저 없애버리는 아마샤를 향해 아모스는 저주를 하는 것입니다. 아모스의 저주는 엄청난 저주입니다. 아마샤의 아내는 창기가 되고, 그의 자식들은 칼에 죽을 것이며, 그 땅은 다른 사람에게 나뉘어질 것이고, 아먀사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왜 아모스는 이렇게 엄청난 저주를 선포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시는 것은 아직도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시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막아버리는 아먀샤를 그대로 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끝까지 거절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9-12절을 다시 보면 “내가 아모리 사람을 저희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로 차지하게 하였고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시르 사람을 일으켰나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나시르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령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백향목처럼 높고 상수리나무처럼 강한 아모리 족속을 가나안 땅에서 쫓아내고 애굽에서 인도하여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심어 놓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너희 자녀들 가운데 나시르 인과 선지자를 일으켰으나 그들조차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 선지자들로 하여금 예언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너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인데 무얼 그렇게 심하게 말하느냐며 듣지 아니한 것입니다. 결국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것을 상기시키는 선지자들에게 예언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좋은 말만하고 심판이나 재앙을 선포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다 아는 사이끼리 왜 그러는가 하면서 예언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함께 망하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좋습니까?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이 과연 좋은 말씀으로 들립니까?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와 회개의 메시지가 좋게 들립니까? 아니면 그런 예언을 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까? 자기에게 좋은 이야기는 듣지만 싫은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로 듣지 않습니까?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혜가 되고 위로가 되는 말만 해 주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오늘날 이 땅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본의를 들어내어 가면 인기가 없습니다. 재미없다고 합니다. 망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해 주는 것을 좋아 합니다. 예수 믿고 복 받고, 예수님 믿고 승리하자고 하는 말씀이 인기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긍정의 힘과 축복의 메시지를 좋아 합니다.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좋아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복음,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 희생, 헌신과 같은 말을 싫어합니다. 그러니 자기가 어떤 죄인이었는지,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소망이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주님의 말씀을 통해 회개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주님의 예언을 금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주님의 예언의 말씀을 금하는 죄를 범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겸손한 마음을 주사 주님의 예언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그 말씀 앞에 회개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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