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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출 7:8-13
성경본문내용 (8)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9)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명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가져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10)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졌더니 뱀이 된지라(11)바로도 박사와 박수를 부르매 그 애굽 술객들도 그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되(12)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13)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강설날짜 2014-07-06

2014년 출애굽기 공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신 하나님


말씀:출애굽기 7:8-13

 

출애굽기 7:8-12:36절까지 말씀은 출애굽의 역사를 위해서 본격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10 가지 재앙을 내리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10 가지 재앙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10 가지 재앙을 살펴보는 가운데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배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그 서론격인 7:8-13절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다시 바로에게 보내시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7:3-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표징과 이적을 많이 행하지만 바로가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이스라엘 자손을 거기서 이끌어 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8-13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로가 너희에게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명하여 너의 지팡이를 바로 앞에 던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뱀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9). 이에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 하였습니다. 아론이 바로와 그 신하 앞에 모세의 지팡이를 던지자 그 지팡이가 순식간에 뱀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바로도 박사와 박수를 불렀습니다. 애굽의 술객들도 그 술법으로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어떤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까? 아론의 지팡이가 애굽 술객들의 지팡이를 다 삼켜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가 결코 하나님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본 바로의 마음이 어떠하였습니까? 그 마음이 강퍅하여져서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아마 바로는 자기들의 술사들도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자 모세와 아론을 보낸 하나님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여튼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지팡이가 뱀이 되는 이적을 보고도 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졌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출애굽기 7:3-4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애굽에 자신의 손을 더하여 10 가지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출 7-12장).

 

그러면 바로가 왜 이런 큰 재앙을 받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보다 악해서 입니까? 아니면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아서 입니까?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아서 입니다. 모세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의 말을 듣지 아니함이 곧 심판인 것입니다. 만약 바로가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악해서 10 가지 재앙을 받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날마다 10 가지 재앙보다 더한 재앙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로 보다 선한 것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사실 보통 사람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는 왕입니다. 물론 다른 나라 백성들을 노예처럼 학대하기는 하였지만 어느 나라치고 그렇게 하지 않는 나라가 있습니까? 힘 있는 나라가 약한 나라를 이용하여 자기들의 부를 더 확대시키는 일이란 인류 역사상 끊임없이 이어져 온 현실입니다. 이것은 기업이나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바로가 다른 사람보다 더 악해서 재앙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 인해서 재앙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강퍅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는 것이 강퍅입니다. 이 걍퍅으로 인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로마서 1:28-32절을 보면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인생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온갖 죄악이 사형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들이 행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자를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시니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버리는 것입니다.

 

애굽의 우상들을 보면 강, 개구리, 이, 파리, 메뚜기, 태양 등 이런 것들이 모두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지 않은 상태가 바로 강퍅인 것입니다. 이러한 강퍅한 마음은 그 어떠한 인간의 윤리나 도덕이나 선한 교육으로 바꾸어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를 알면서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짓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죄된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남을 정죄하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보고서 저 나쁜 놈이라고 하여도 그러나 막상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 처하였다면 우리라고 별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상실한 대로 버려두신 모든 인간이 다 강퍅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바로를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적용을 해야 합니까? 우리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 그것이 바로 강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에게 하나님의 재앙이 내린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에 과연 하나님이 거하시기를 즐거워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려 주시기를 정말 소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은 눈감아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로마서에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는 말씀을 그 지식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 우리의 생각, 우리의 계획, 이 모든 것에 하나님 두기를 좋아합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지금 강퍅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난 시간에 본 3절 말씀에 보면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출 7:3).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일부러 바로를 강퍅케 하신 것이라면 바로의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대항합니다. 그 대표적인 질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괜히 선악과를 만들어 놓아서 죄를 짓게 만들었다고 하며 죄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에 대하여 일일이 대답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만 그러나 한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로마서 9:14-18절 말씀을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바로가 강퍅케 됨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오히려 더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강퍅의 그릇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누가 나에게 불의가 있다고 항의를 할 자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자기의 소용대로 만들 권한이 없느냐고 이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9:19-24절을 보면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찌라도 무슨 말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였다고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9:13-14절을 보면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어떠한 선행적인 조건이 있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서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께 공평치 못하다고 항의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죄로 인하여 모두가 하나님께 항의할 처지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께 불의가 있는 양, 강퍅케 된 것이 하나님의 책임인 양, 선악과를 따먹은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양 하는 것이 다 자신의 죄를 인정치 않는 죄악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강퍅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알고 오직 주님의 긍휼을 바라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 주님의 크신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나의 마음이 강퍅한지 아닌지를 늘 점검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불합리하게 들리고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이 더 옳아 보인다면 그것은 강퍅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긍휼을 입지 못한 자들이 강퍅케 되도록 내버려 두시니 계속하여 강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데도 강퍅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계속하여 강퍅하여지는 것은 자신도 하나님처럼 행할 수 있다는 교만 때문입니다. 여호와가 누구관대 감히 나를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냐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무엇입니까? 모세만 지팡이로 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의 신하들도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10 가지 재앙 사건에서도 강물을 피로 만드는 것을 자기의 신하들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구리를 올라오게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세 번째 재앙에서는 이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만 그러한 일로 인해서 자기가 하나님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바로도 박사와 박수를 부르매 그 애굽 술객들도 그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되”라고 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행한 그러한 일쯤은 우리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12절 말씀을 보면 아론이 던진 지팡이가 애굽의 술사들이 만든 뱀을 삼켜버립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에 놀랄 바로가 아닌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출애굽기 7:22절 말씀에도 보면 “애굽 술객들도 자기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고 했습니다. 강물을 피로 만드는 일을 애굽의 술사들도 하는 것입니다. 또 출애굽기 8:7절 말씀을 보면 “술객들도 자기 술법대로 이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의 마음이 더욱 강퍅하여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없이 하나님처럼 살 수 있다는 인간의 발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과거만이 아니라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였다는 현대에는 더한 것입니다. 뱀을 못 만들어냅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송아지도 복제하고, 개도 복제하여 내는 것입니다. 이제 곧 사람도 복제하여 낼지 모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창조한다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강퍅인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나일강이 피로 변하면 무엇을 하면 됩니까? 하숫가를 파서 물을 구하면 됩니다. 오늘날은 물이 오염되면 어떻게 합니까? 정수기를 만들어 먹으면 되는 것이지 하늘을 바라볼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강퍅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신화시대의 이야기이지 그것을 과학적인 사실로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지식이 그들의 신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것을 이겨내고자 ‘창조과학회’가 나와서 창조가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과학적으로 증명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됩니까? 아마 나중에 과학적으로 증명한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짓들이 모두가 마음이 강퍅하여진 모습입니다. 교만하여 자신이 결국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강퍅함입니다. 그러니 바로만 강퍅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강퍅한 것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착하거나 악하거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강퍅인 것입니다.

 

이렇게 강퍅하게 되도록 바로에게는 애굽의 술사들이 부추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이 별 것 아니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대의 술사들은 누구이겠습니까? 과학자들이고 그러한 과학만능주의를 추종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있다고 하는 자들도 결국 애굽의 술사와 같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 바로 강퍅인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애굽의 술사와 같은 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우리가 가장 주의하여야 할 것이 종교적으로 애굽의 술사와 같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있는 종처럼 행사하면서 나타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바른 신앙으로,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는 일들을 얼마든지 흉내 내는 것입니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광명의 천사처럼 나타나는 것입니다. 가짜 보석이 진짜 보석보다 더 멋있게 만들어내는 것같이 말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모습들이 어떻게 나타나는 것입니까?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 애굽의 술사의 이름이 구약에는 없는데 신약에는 나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9절을 보면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 그러나 저희가 더 나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의 된 것과 같이 저희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보면 모세를 대적한 자들이 얀네와 얌브레였습니다.

 

경건의 능력이란 바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이러한 능력을 부인한다는 것은 선교를 잘하면 교회가 부흥되고 나라가 부자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선교를 이용하여 자기 교회 성장과 자기나라 부자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교니 구제니 전도니 봉사니 하는 것이 다 진리를 대적하는 수단으로 사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하면서 오히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를 대적한 얀네와 얌브레가 결국 그 거짓됨이 드러나듯이 진리를 위장하고 가장하여 종교적인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일인 양 위장하는 것들이 결국에는 다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단은 모세 때와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진리를 거역하도록 하는데 어떻게 거역하게 하는가 하면 모방을 하는 것입니다. 가장 하나님의 일꾼 같고, 가장 하나님의 일을 잘하는 것 같이 위장합니다. 가장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같이, 가장 바른 교회인 것같이 위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 안에 주님을 사랑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말씀의 본의를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욕심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자긍하고 교만하여진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을 가지고 장사한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우리의 마음이 강퍅하게 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로 겸손히 죄인 됨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마음 첫 자리에 모시고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멸망의 자식이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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