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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출 9:1-7
성경본문내용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2)네가 만일 그들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 두면(3)여호와의 손이 들에 있는 네 생축 곧 말과 나귀와 약대와 우양에게 더하리니 심한 악질이 있을 것이며(4)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생축과 애굽의 생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5)여호와께서 기한을 정하여 가라사대 여호와가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시더니(6)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생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7)바로가 보내어 본즉 이스라엘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니라
강설날짜 2014-08-10

2014년 출애굽기 공부


다섯 번째 재앙-생축의 죽음


말씀:출애굽기 9:1-7

 

우리는 지난 시간에 네 번째 재앙 곧 파리 재앙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다섯 번째 재앙인 생축의 죽음에 대한 재앙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출애굽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였습니다(출 3:12 등). 단지 자기 구원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예배 하며, 섬기는 것이 출애굽의 목적입니다. 이것을 잘 알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여 주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아도 우리 인간의 구원이 최고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목적인 것을 알지 못하면 성경을 이용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을 섬기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일 뿐입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1:10절에서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당시 갈라디아 교회가 다른 복음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가 구원을 받았는데 왜 다른 복음에 그렇게 쉽게 빠져드는지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6-9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함과 공로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오직 은혜로 구원 얻는다는 것이 기쁜 소식인데 왜 다른 복음으로 쉽게 빠지는가 하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은혜로만 구원이 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도대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람에게 가능성이 없으면 오직 은혜로만 구원하여 내시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이 싫은 것입니다. 자기 자신들에게 아무런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기분 나쁜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가 바울이 전하는 오직 은혜의 복음을 거절하고 인간의 행함과 공로가 드러나는 다른 복음을 쫓은 것입니다. 출애굽기 말씀은 우리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음을 증거 해 줍니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보면서 바로는 적, 모세는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미국 영화를 볼 때 언제나 미국은 우리 편, 미국에게 당하는 편은 우리의 적으로 보았습니다. 정의와 승리는 언제나 우리 편, 불의와 패배는 언제나 적의 편이라는 공식이 우리 생각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 말씀을 볼 때도 이런 식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출애굽기를 읽을 때 나를 바로의 입장에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가 얼마나 강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가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로가 당하는 재앙을 보면서 자기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저러한 재앙을 당하는구나 하고서 눈여겨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 역사가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기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 것을 명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출애굽의 역사는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위한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이라면 곧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의 재앙을 내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갖 재앙을 이스라엘이 받았습니다. 이것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로가 당하는 재앙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고집이 세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이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무리 고집이 센 바로 왕이라도 결국은 자신의 뜻을 이루어내고야 마시는구나 하는 것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다섯 번째 재앙입니다. 지팡이가 뱀이 되는 것을 서론으로 본다면 피 재앙,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고대의 신의 개념이란 그 나라가 얼마나 크고 강하냐에 따라서 그 신의 위대함이 드러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대한 애굽의 신이 히브리 노예의 신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바로가 알만큼 알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피 재앙과 개구리 재앙은 흉내를 내었지만 세 번째 이 재앙부터는 흉내도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는 신의 손가락이라고 말하기까지 하였습니다(출 8:19). 그리고 파리 재앙에서는 드디어 바로가 항복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파리 떼가 사라지자 곧 그 마음이 강퍅하여져서 하나님께 제사 지내러 가라고 한 것을 취소하는 것입니다. 바로는 자신이 다급할 때에는 여호와의 요구를 듣겠다고 하다가도 그 위기가 지나가면 또다시 그 마음이 강퍅하여져서 옛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속담에는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합니다. 사정이 긴박하고 다급하면 무슨 말을 못합니까? 그러나 어느 정도 여유만 생기면 자기정당성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바로에게만이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지만 섬기지 않는 이유를 사람들마다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고, 어려움을 주시며 몰아치면 그제서야 ‘하나님! 제가 이제 하나님을 잘 섬기겠습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도 자기에게 닥친 그 위기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금방 그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몇 번 재앙을 내려도 안되면 그만 내버려두시면 되실 텐데 왜 그만 두시지 않는 것입니까? 자신의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믿음의 조상들에게 출애굽을 언약하셨습니다(창 15:12-21). 출애굽을 언약하신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바로가 아무리 거절하여도 바로를 꺾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가 거절하면 할수록 그 재앙의 강도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시 모세를 바로에게 보냅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하라고 했습니다. 만일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 두면 여호와께서 손을 들어 들에 있는 모든 짐승들에게 악질이 생기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2-3절을 보면 “네가 만일 그들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 두면 여호와의 손이 들에 있는 네 생축 곧 말과 나귀와 약대와 우양에게 더하리니. 심한 악질이 있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가축은 애굽인들에게 있어서 신으로 섬기는 존재인 것입니다. 출애굽 때 애굽의 왕을 아멘호텝 2세로 추정을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동물숭배자로 특히 소를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집트에 남아있는 벽화에 아멘호텝 2세가 소 밑에서 젖을 빨고 있는 그림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소가 신이니 신의 젖을 빨아 먹는 자신도 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짐승을 신으로 섬기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로마서 1:23-25절을 보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짐승을 섬기는 것입니까? 죄로 인해 그렇게 된 것입니다. 마땅히 창조주를 섬겨야 할 인간이 사람을 섬기고, 피조물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신 결과 이들은 짐승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찬양 받으실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피조물을 섬기고 있는 자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좇아오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왜 소를 섬겼을까요? 소가 얼마나 큰 재산입니까? 우유를 공급하고, 퇴비를 공급하고, 우리나라는 농사를 짓고, 나중에 고기까지 공급하고, 가죽까지 공급하는 그야말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큰 재산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옛날에는 소가 농촌에서는 가장 큰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를 귀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구제역으로 가축이 죽어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구제역이 발병하면 기르던 모든 소를 땅에 묻습니다. 그러면 그 농부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한두 마리가 아니라 모든 기르던 소를 땅에 묻어야 하기 때문에 큰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애굽에 임한 재앙은 조금 불편하였지만 재산이 날아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조금 불편하여도 견딜 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가축이 다 죽는 재앙은 자신들의 커다란 재산이 날아가는 것입니다. 신처럼 섬기던 귀한 존재들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점점더 재앙의 깊이가 더하여 가는 것은 그만큼 바로의 고집이 꺾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 사람만 소를 섬긴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그것을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신”이라고 하였습니다(출 32:1-6). 이스라엘 백성들이 짐승을 섬기던 나라에서 구원받아 나왔는데 광야에서 소를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리므로 오늘날 우리도 다 소를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소가 재산이기에 우리가 재산을 믿고 사는 것이 바로 소를 섬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하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바쁘다는 것입니다. 먹고 살만하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예수 믿는 것은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모이는 사교단체쯤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당신이 먹고사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여도 그들은 코웃음을 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은 들을 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러한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과연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피조물을 섬기고 있습니까? 주님 외의 모든 것이 다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사가 늘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 것들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택하신 자라면 그러한 피조물을 섬기는 것을 보고서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우리가 계속하여 피조물을 하나님보다 더 섬기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손을 쓰시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입니까? 항복할 때까지 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한편으로는 무섭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감사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언약하신대로 이루어 가시는데 바로가 당하는 재앙과 택함 받은 자가 당하는 재앙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바로가 당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여 심판을 당하는 것입니다. 거역하면 거역할수록 재앙의 강도가 점점 더 심하여 가는 것입니다. 가축의 재앙 다음에 사람의 몸에 독종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우박입니다. 그 다음에는 메뚜기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두움입니다. 그리고 장자의 죽음까지 재앙을 더하여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는 그러한 재앙에 결국 항복을 하지만 어떤 항복입니까? 심판을 당하는 항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떤 항복을 받아내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로 나아가는 항복을 받아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가 당하는 재앙과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당하는 재앙의 차이점입니다.

 

바로가 열 번이나 하나님을 거역하였는데 이스라엘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들 역시 열 번이나 거역한 것입니다. 민수기 14:22-24절을 보면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열 번이나 광야에서 반역을 하였습니다. 사건적으로 열 번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늘 반역을 한 것입니다. 반역한 이들이 가나안에 들어갑니까? 못 들어갑니다. 그러나 누구 들어갑니까? 갈렙만 들어갑니다. 갈렙은 온전히 하나님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좇은 자만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당장 이렇게 질문할 것입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으니 구원받지 못했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도 자기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모세가 나중에 변화산에서 엘리야와 함께 예수님의 별세를 말씀합니다(막 9장).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 받았나, 못 받았나 하는 그런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바로가 거절하자 계속하여 재앙의 깊이를 더하여 결국 항복을 시키십니다. 그런다고 바로가 천국 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동일하게 하나님을 반역하는데도, 재앙을 받는데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불만이 있습니까? 있다면 아직도 자신이 어떤 자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닥치는 환난이나 고난이란 심판의 재앙이 아니라 세상의 것을 끊어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과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더욱 회개하며 주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 주님의 말씀에 경성하여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사건들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의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그런데 이 다섯 번째 재앙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네 번째 재앙 때와 같이 애굽과 이스라엘을 구별한다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생축과 애굽의 생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애굽의 생축과 이스라엘의 생축을 구별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5-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기한을 정하여 가라사대 여호와가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시더니. 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생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튿날에 애굽의 모든 생축을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사실이 말해 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이 재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음을 나타내 줍니다. 애굽의 재앙들을 자연 현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개구리의 시체가 썩어 가면서 오염된 흙에서 자란 풀을 뜯어 먹어서 이런 재앙이 임했다고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스라엘 자손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이 재앙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재앙에서 애굽의 생축과 이스라엘의 생축을 구별함으로써 이를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7절에 보면 이 사실을 보고도 바로는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볼 때 바로의 강퍅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오는 강퍅인 것입니다. 이 강퍅으로 인해 바로가 망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더하셔서 우리로 여호와 앞에 강퍅한 자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므로 멸망의 자식들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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