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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도행전 8:14-17

2004년 7월 4일 설교

                                                  사마리아에서의 승리

말씀:사도행전 8:14-17
요절:사도행전 8:15-17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오늘 본문은 사마리아 선교의 후속편입니다. 8장 전반부를 보면 핍박으로 흩어진 성도들에 의해 복음이 사방으로 퍼져갔습니다. 그 중에 일곱 집사 중에 한 사람인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빌립의 선교를 통해 사마리아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가 전혀 생각하지도 않는 역사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빌립에 의해 사마리아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했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들을 급파하여 사마리아 선교를 지원하였습니다. 두 사도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영접한 자들을 안수했을 때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몇 가지 놀라운 하나님의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을 살펴보는 가운데 오늘 사건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을 깨달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사도들을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때까지만 해도 사마리아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께서 이루시는 이 놀라운 역사를 지원하고 협력하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하였습니다. 두 사도가 가서 저희를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성령 받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이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한 사람에게도 성령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들을 위해 두 사도가 성령 받기를 기도한 후 안수 했을 때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그들이 믿는 즉시 성령을 받지 못했을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빌립의 복음 전도가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8:5-13절에 보면 사마리아에서의 빌립의 전도활동을 볼 수 있습니다. 빌립의 전도 활동을 살펴보면 그는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과 예수의 이름을 전파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의 복음 전파에는 아무런 결점이 없었습니다. 분명히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의 전도를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도 받았습니다. 따라서 빌립의 전도가 실패였다고 봐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빌립의 전도는 완벽했습니다. 그러면 빌립의 전도가 완벽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이 성령을 받지 못했을까요? 여기에 대한 답은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곧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사도행전 어디에도 성령 세례가 지연된 이유를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 생각합니다. 빌립은 집사였고, 베드로와 요한은 사도들이었기 때문에 그런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결단코 아닙니다. 요즘 많은 목회자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주의 종이라는 권위를 세우기 위해 성도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권주의적 발상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을 받은 것은 단순한 신자였던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았을 때였습니다. 사도행전10:44절 이하에도 보면 고넬료가 성령을 받을 때 베드로는 그에게 결코 안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세례가 지연된 것은 집사와 사도라는 차이 때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였습니다. 우리는 이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를 다 이해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성령의 자의적인 역사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신비롭습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이 임의로 분다고 하셨습니다.(요3:9) 곧 사람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가서 성령 받도록 기도했을 때 성령이 그들 가운데 임하게 되었다는 것 이 사건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가 빌립과 사도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역사가 아니라, 곧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역사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인해 이루어지는 역사임을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마리아 성도들이 믿었을 때 즉각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은 빌립의 잘못된 전도 때문도 아니요, 또한 그가 집사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였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임의로 곧 주권적으로 역사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 교회의 놀라운 영광입니다. 교회의 생명과 능력은 조직이나 사람의 사역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주 하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령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주권적인 역사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일어나는 복음 역사도 목사나 사모가 이루는 역사가 아닙니다. 집사나 부장이나 교사가 이루는 역사도 아닙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이루는 역사도 아닙니다. 조직을 잘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헌신하고 충성했기 때문에 역사가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 이루어지는 생명의 역사나 능력의 역사는 성령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역사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 역사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이해 할 때 우리는 인간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습니다. 자기 영광이나 의로운 마음에 빠지지 않습니다. 원망과 불평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교회를 떠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을 바라보고 시기하거나 미워하지도 않게 됩니다. 성령께서 이루시는 주권적인 역사를 겸손히 섬겨 가게 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우리와 우리 교회를 준비시켜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역사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성령께서 이루시는 주권적인 역사에 순종하며, 그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사마리아 성도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영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기초로 볼 때 사마리아 성도들 가운데 성령이 임함으로 인해 일어난 일을 우리는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도들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셨을 때와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고넬료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셨을 때도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소의 바울에게 성령님이 임하셨을 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에베소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을 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진실로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실 때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유적 표현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사마리아인들도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습니다. 몸에는 다양한 지체가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은사는 “여러 가지나”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라는 말은 다양하다는 말입니다. 몸에는 다양한 지체가 각각 그 역할이 다르듯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는 은사와 직임과 사역의 다양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또한 한 몸입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시며, 우리는 모두 지체들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성령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었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 그들의 인격은 그리스도의 인격이 된 것입니다. 즉 지적으로는 예수님의 사상을 닮고, 감정으로는 그리스도의 열정을 지니며, 의지적으로는 그들의 삶의 선택이 그리스도의 선택과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들 안에 예수님이 계셔서 생각하고 사랑하고 뜻하는 것이 그리스도와 같이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성령 세례를 받는 순간에 한 몸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지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지체들로서 교회의 모든 은사들, 그것이 사도이든, 전도자이든, 선지자든, 교사든 또는 돕는 자든지 간에 그들을 위해 주어진 은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마리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유일하고도 나눌 수 없는 교회의 신비에 참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사도들에 의해 사마리아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놀라운 진리들을 배웁니다. 먼저 성령을 받아야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누구든지 사마리아인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이며, 주님의 말씀을 좇아 살고자 결심을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완전하심을 닮아 가겠다고 결심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그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권위와 하나님 나라와 구원하시는 그 이름을 전파하는 완전한 복음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 생명의 역사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전의 사도들의 모습처럼 여전히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누가 서로 크냐 시기하고 다투었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경쟁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데 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고 신앙고백을 드리고 그의 말씀을 좇아 살았지만, 심지어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범주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그들이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성령을 받았을 때 그들은 놀라웁게 변화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그렇게 좌우편 자리를 놓고 다투던 베드로와 요한이 아름다운 동역의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라면 하늘에서 불을 내려 태워 버리자고 하던 요한이 그들에게 나아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시기하고 질투하던 인간적인 그들이 빌립을 통해 이루어지는 놀라운 역사를 인정하고 협력하고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이후 사도들은 생명이 충만한 삶, 권능을 삶을 살았습니다. 영적인 참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변화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오순절 성령 감림으로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이처럼 성령을 받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아닙니다. 생명이 충만한 삶, 능력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성령을 받을 때 지식과 감정과 의지가 다 그리스도적으로 변화를 받게 됩니다. 우리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적이어야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8:9).

또한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크리스천의 삶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사도들과 전도자들 곧 베드로와 요한과 빌립이 함께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그것은 멋진 협력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령 안에서 멋진 협력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역사를 완성하였습니다. 성령 충만 안에서 교회의 모든 직분들 간의 완전한 협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사도로서 자존심 때문에 빌립의 역사를 폄하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내려가서 전도자 빌립의 사역을 도와 완전하게 하였습니다. 빌립에게도 베드로와 요한의 사역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사도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도움을 겸손하게 수용하였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빌립과 사도들과 같이 모든 교회 성도들이 서로 협력하여 성령께서 이루시는 역사를 섬기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 가운데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며, 이 교회를 통해서 이루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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