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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빌 1:12-21
강설날짜 2017-07-23

2017년 빌립보서 공부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말씀:빌립보서 1:12-21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문안 인사를 하며, 그들을 위해서 기쁨으로 항상 기도하는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사모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일에 증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의 이 심장으로 주 안에서 한 형제가 된 자들을 사랑하며, 항상 기쁨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 사도가 옥중에 있는 자신의 형편을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알리며, 자신의 소망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바울 사도는 “살든지 죽든지 자신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여기서 ‘나의 당한 일’이라는 말은 바울이 처한 일들 곧 그의 형편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이 어떤 형편에 있는지, 자신의 주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인하여 사슬에 매인바 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소식을 들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처지에 대해 몹시 궁금해 하고 염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자신이 처한 형편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가 처한 형편이 도리어 복음에 진보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12). 바울 사도는 자기가 당한 어려운 일보다도 복음이 어떻게 진보가 되었는가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당한 일들과 자신이 처한 형편들로 인해서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이 사실을 알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을 알 때에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 사도의 성숙한 신앙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도 바울 사도와 같은 성숙한 신앙을 소유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복음의 진보를 보며 도리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강과 감사로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13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자신의 매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복음의 진보가 되었는지를 말합니다.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13). 바울은 자신의 매임이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히 알려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매임’( desmούς, 데스모스)은 원어로 보면 복수인데 원래는 ‘묶는 것들’, ‘사슬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사슬에 매여 있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의 어느 가정 집에서 사슬에 매여 구금된 상태에 있었습니다(참조. 행 28:16, 23, 30). 그리고 여기서 ‘나타났다’(fanerov", 네이로스)는 말은 ‘분명해졌다’, ‘분명히 드러났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은 바울이 사슬에 매인 것이 자기의 죄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매인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온 시위대와 기타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났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위대’라는 말은 4:22절에서 말하고 있는 ‘가이사 집 사람’이라는 표현과 함께 생각해 볼 때 로마에 주둔해 있던 ‘황제의 시위대’나 또는 ‘총독의 보병대’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매임이 온 시위대 안에 알려졌다”는 말은 곧 로마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자신의 매임이 기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 되었다고 합니다.

 

14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14). 여기서 ‘형제’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들 중의 다수가 자신의 매임에 대해서 주 안에서 신뢰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곧 바울 사도가 사슬에 매인 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인 것을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바울이 사슬에 매인 것을 볼 때에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도 돌아보지 않는구나’, ‘복음은 과연 진리구나’, ‘목숨을 바쳐서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구나’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의 매임으로 인해서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감사하며 더욱 담대히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5-17절 말씀을 보면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가운데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 두 부류의 사람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첫째는, 투기와 분쟁으로 전하는 사람들 입니다. 15절을 다시 보면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을 말합니까? 이들은 순전하지 못하게 곧 불순한 동기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바울의 옥중 생활에 괴로움을 더하게 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소요와 불법 집회를 중대한 범죄로 다루었습니다(참조. 행 19:40, 눅 23:5, 마 27:24). 그러므로 그들의 복음 전파로 인해서 소요와 분쟁이 일어나면 현재 재판 중에 있는 바울에게 불리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바울이 매여 있을 때에 복음을 열심히 전파하여 바울보다 더 성공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바울이 힘들어 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바울에 대한 시기심에 사로잡혀 불순한 동기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둘째는, 착한 뜻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15절을 다시 보면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착한 뜻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착한 뜻’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선한 뜻’를 의미합니다. 즉 이들은 선한 뜻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곧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전파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바울이 복음을 변증하기 위해 세움을 받은 줄로 알고 사랑으로 전했습니다. 16절에 보면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움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변명’으로 번역된 단어는 원어로 보면 ‘아폴로기아’(ajpologiva)인데 이것은 적극적인 변호, 변증, 증명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세움을 받았다’라는 말은 어떤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아 그 일을 위해 종사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랑으로’라는 말은 그들의 동기가 순수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곧 시기심이나 분쟁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변증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도 있는 반면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들 두 부류에 대한 바울의 태도가 어떠합니까? 18-21절을 보면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먼저 18절을 보면 바울은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외모로 한다’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곧 얼굴과 속 마음이 다른 것, 속 마음은 따로 있으면서 겉으로 꾸미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 ‘참으로 한다’는 말은 참된 마음, 순수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겉과 속이 같은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관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전파되든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으로 인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바라봤습니다. 바울이 만약 인간적으로 바라봤다면 자신을 시기하여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인해 너무나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들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기뻐한 것입니다. 참으로 바울은 놀라운 믿음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18절에서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한다”라는 표현은 관용적인 표현으로 확고하게 기뻐하겠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즉 바울이 기뻐하는 태도는 변치 않을 것이라고 하는 그의 확고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참으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바울의 이 기쁨을 우리에게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으로 인해서 기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로를 중심으로 보고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으로 인해 기뻐하며,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19절을 보면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18절에서 바울 사도가 기뻐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가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을 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구원’은 미래적 의미와 영혼의 구원을 포함하여 넓은 의미에서의 구원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꼭 바울이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을 포함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20절과 21절에서 죽는 것도 각오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20-21). 어쨌든 바울 사도는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잘 될 것이며, 구원을 가져 올 것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구원에 이르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19절을 다시 보면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라고 합니다. 여기서 ‘너희의 간구’란 빌립보교회가 바울 사도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을 위해서 곧 그의 안전과 풀려남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이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말합니다. 여기에 바울 사도는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를 덧붙입니다. 20절을 다시 보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라는 말은 원문 구조에 의하면 19절의 “구원에 이를 것이다”에 연결되는 부사구입니다. 즉 바울이 빌립보교회의 간구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은 또한 바울 자신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는 것이었습니다. 20절을 다시 보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어떤 어려운 일이나 위협을 당하여서도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부인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오히려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살든지 죽든지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존귀히 된다’는 것은 크게 되는 것, 곧 위대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오직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곧 그리스도가 크고 위대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여기서 ‘내 몸 안에서’라는 말은 ‘바울의 몸을 통해서’라는 말입니다. 즉 바울 자신의 몸이 그리스도를 존귀히 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리스도가 그의 주인이요, 그리스도가 그의 전부였습니다. 그는 오직 자기 몸 안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만을 바랐습니다. 할렐루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사도 바울의 이 믿음을 오늘날 우리에게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복음 때문에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어떤 위협을 당하고 어떤 손해를 보고 세상에서 찌기와 같이 된다고 할지라도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요, 전부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몸 안에서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그러면 바울이 그렇게 소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1절을 보면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이 말은 바울 자신에게서 사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울의 삶은 그리스도가 전부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바울에게는 그리스도가 전부였고, 그리스도가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살든지 죽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자신은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여겼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사를 초월한 바울 사도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삶과 그리스도를 향한 전적인 헌신된 삶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으로 인해서 만족하고 기뻐합니까? 오늘날 우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내 몸 안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바울 사도의 이 믿음과 소망을 우리에게도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살든지 죽든지 오직 그리스도를 존귀히 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 가운데 복음의 큰 진보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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