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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3:13-17
성경본문내용 (13)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14)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15)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16)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17)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강설날짜 2005-11-13

2005년 11월 13일 설교


하나님의 인증


말씀:마태복음 3:13-17
요절:마태복음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 서 올라 올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이는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이 말하는 주는 바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의미가 무엇이며,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인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13절에 보면 “이때에”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이 단락과 바로 앞의 단락을 연결시켜 주며, 또한 세례 요한의 사역 결과로 말미암아 온 지역에 커다란 도덕적 각성이 일어나 죄에 대한 자각이 널리 퍼져 있을 때에 이 사건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은거해 계시던 왕께서 이때 비로소 사람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빈들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이제 주의 길이 예비 되었고, 그의 대로가 평탄케 되었습니다. 이제 왕 되신 예수께서는 정해진 때에 대중 앞에 자신을 나타내시며, 자신의 일과 자신의 직임을 수행하기 위해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요단강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님은 죄 없으신 왕이 되십니다. 그런데 왜 죄 없으신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우리는 그 의미를 요한과 예수께서 나누신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 받기 위해 나오는 수많은 무리들 중에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금방 그가 일반 무리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요한은 세례 받기 위해 나오는 무리들의 얼굴에서 회개를 열망하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얼굴은 달랐습니다. 요한은 그가 자기가 예비할 왕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14절에서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라고 말하였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감히 그분에게 손을 대어 세례를 베풀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이 때 예수께서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5절에 보면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 ‘모든 의’가 무엇일까요? 이사야 53장에 보면 하나님의 종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게 나타납니다. 여기에 보면 여호와의 종이 멸시를 당하며 징계를 받으며 버림을 당합니다. 곧 고난당하시는 메시야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그리고 11절에 보면 궁극적인 승리를 보게 됩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여기서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요한에게 하신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는 말씀의 의미를 설명해 줍니다. 예수께서는 죄와 고난에 있어서 자신을 많은 사람들과 동일시하심으로써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죄 지은 그들과 동일하게 여기사 몸소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으셨습니다. 이사야 53:12절은 말합니다. “범죄 자 중에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왕께서는 이처럼 그의 성육신과 탄생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그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은 그의 신비한 십자가 수난에서도 자신이 이제 다스리실 그 백성들과 자신을 동등하게 여기사 그들의 깊은 궁핍과 비참한 실패를 함께 맛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나의 의로운 종이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지식이며, 아울러 그에 대한 처방까지 알고 순종하시는 지식입니다. 곧 십자가에서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왕께서 당면한 문제는 바로 그의 왕국을 획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그는 가장 먼저 사람들의 죄와 마주쳤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자신이 친히 취하심으로써, 곧 그러한 상징적인 행동을 통하여 자신을 죄 된 그의 백성들과 동일시하신다는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행동은 죄를 없이하고,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의 세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죄 없으신 분이 죄 지은 자들과 동일시되는 것이었습니다. 회개할 죄가 없으신 분이 회개하여야 할 죄인들의 위치로 몸소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무죄하신 분이 죄인들에게 해당되는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자신을 그들과 동등한 위치로 낮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 물로 내려가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하나의 동의시요, 예언이었습니다. 곧 그러한 주님의 행동은 자신이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즉 십자가에 달리심에 대한 동의였습니다. 또한 주께서 공생에 기간 동안 줄곧 목표로 삼으신 최후의 세례, 곧 십자가 수난의 세례를 예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에 기간에 세례에 대해 두 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과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두 제자가 예수께 와서 자기들 중에 하나는 하나님나라에서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구한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주께서는 그들을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을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이 때 두 제자는 “할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두 제자의 대답을 미루어 볼 때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례를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받으셨던 세례를 생각했던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례는 자신이 받으실 십자가 수난이라는 세례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수난이야 말로 주님께서 받으실 최후의 세례였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주님께서 자신의 세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라.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의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 12:49-50).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예수께서는 불로 세례를 베푸시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불로 세례를 베푸시기 전에 그 자신이 먼저 죽음이라는 물로 세례를 받으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왕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대중들로부터 숨어서 조용히 공생애를 준비하셨습니다. 그 동안은 평범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이제 큰 전환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그는 이제 그 나라의 법을 선포하며 그가 그 나라의 왕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결정적인 사역이 바로 십자가에 달려 죽는 일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죄 문제를 깊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직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길밖에 없음을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강물로 들어가는 것을 보시고서 그들과 함께 들어가셔서 요단 강물에 몸을 담그심으로써 자신이 장차 감당하셔야 할 죽음을 미리 보여 주시고 또한 그 죽음을 예언 하신 것입니다. 죄가 없으신 그가 이렇게 하신 것은 모든 의를 이루시고, 죄를 멸하시며, 의에 기초한 자기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머릿돌을 놓으신 것입니다(슥 4:7).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받으신 세례를 우리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베푸실 생명과 불세례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의 세례를 받으시므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이 생명과 불세례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이 생명과 불세례는 오직 주께서 심판과 죽음의 세례를 몸소 당하심으로써, 즉 십자가의 신비를 통하여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생명과 불세례에 동참하는 복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직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올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6-17절을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처럼 성령이 내려온 광경은 예수와 요한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성령의 기름 부음이 예수의 생애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께서는 이때 처음으로 성령을 받으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와 하나님의 영 사이에는 영구한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는 성령으로 나셨습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성장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실 때 이미 영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내려오심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생애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예수께 특별히 기름을 붓는 상징적이고도 의식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런 식으로 나타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성령께서 오로지 예수에게만 이와 같이 외적이며 가시적이며 상징적으로 임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셨습니다(마 10:16). 비둘기는 양과 함께 온순하고 흠이 없는 짐승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짐승들은 희생을 예표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속죄제를 드릴 때 수송아지와 양과 비둘기로 드렸습니다. 이처럼 비둘기는 인내와 온유함과 순결함을 나타내는 새인 동시에, 가장 가난한 자들이 드리는 속죄 제물이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비둘기와 양에 대해 들을 때마다 항상 속죄제를 연상시켰습니다. 가장 낮은 자들을 위한 속죄 제물인 비둘기 형상으로 성령께서 내려오신 것은 예수로 하여금 가장 깊은 희생 제사의 목적을 이루시도록 그를 구비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방금 요단 강물에 몸을 잠기심으로써 자신의 죽음에 동의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형상으로 그의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구약 율법에서 속죄 죄를 위한 새였던 비둘기가 하나님의 유일하시고 완전하시며 최종적이신 속죄 제물이신 예수님 위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비둘기는 약함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비둘기 모양을 띤 하나님의 영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희생 제물이 되신 하나님의 온유하신 능력의 상징입니다. 이 성령의 강림은 죽음을 위하여, 속죄를 위하여 기름을 부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재하신 것은 하늘이 예수님에게 죽음을 위한 능력을 덧입히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히 9:14).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신 것은 바로 그러한 목적을 위함이었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한 후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그 음성이 무엇입니까? 7절에 보면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왕에 대한 하나님의 인증이었습니다. 이 신적 인증의 말씀은 시편 2편을 통해 해석해야 합니다. 시편 2편에 보면 아들과 그리고 왕이 “하나님의 거룩한 산 시온에서” 기름부음을 받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 2:7절에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을 통치하는 왕으로 묘사하는 것으로서 구약에 나타난 말씀 중에 가장 영광스러운 말씀에 속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에게 열방을 구하여 그들을 소유하며 그들을 유업으로 받으라고 하십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그가 아들이시라는 성경 사상은 옛 히브리 예언들과 제사 의식과, 그들의 사고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요단 강가에서 드디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은 선지자들이 오시리라고 예언한 “내 사랑하는 아들” 곧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 이십니다. 사람들은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그들은 기다리다 못해 산 위의 파수꾼들을 불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사 21:11)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그의 오심이 지체되는 것이 이상하여 날마다 ‘빨리 오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하나님은 그 왕을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왕을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르셨습니다. “내 기뻐하는 자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예수께는 요한복음 10: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그러므로 ‘내가 기뻐하노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세례 행위를 만족히 여기신다는 하나님의 선언이었습니다. 이는 곧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목적을 이루시는데, 하나님과 그 아들이 완전한 연합을 이루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모든 구속의 과정을 통하여 그 목적과 그 정신에 있어서 완전한 연합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그 모든 고통을 몸소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 자신과 함께 하시는 분으로서 그 모든 환난을 감당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를 사랑하신 것은 그가 이 모든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연합하여 십자가로 향하실 때에, 하나님은 침묵을 깨뜨리시며 “내가 기뻐하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심으로 죄 지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맡으셨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써 능력을 덧입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산 시온에 서신 하나님의 왕이심이 입증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왕이십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수난의 세례를 받으실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왕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는 자가 가장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며, 그 분을 나의 왕으로 모셔 들이며, 그분을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복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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