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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5:5
성경본문내용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강설날짜 2006-01-29

2006년 1월 29일 설교


온유한 자



말씀:마태복음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산상수훈에서 말하고 있는 팔복은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나타내줍니다. 그런데 이 특성들은 각각 독립된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인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각각 다른 측면에서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팔복의 각각 그 특성을 이해해야 하지만 전체적으로 하나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두 주간에 걸쳐서 ‘심령이 가난한 자’와 ‘애통한 자’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특성인 ‘온유한 자’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온유하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입니다. 주의 성령께서 이 시간 우리와 함께 하사 ‘온유한 자’의 의미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의미를 깨달아 알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땅을 기업으로 받는 행복한 자가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여기서 ‘온유하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온유하다고 하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품, 곧 천성적으로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팔복은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온유한 자라는 말은 천성적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온유하다’는 것은 구원을 얻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코 소유할 수 없는 하나님 백성들만의 성품을 언급한 것입니다. ‘온유하다’는 말은 구약과 신약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아나브’라는 말인데, 이 말은 ‘아나’라는 말 곧 ‘고통스럽다’는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온유하다는 말로만 번역되어 있지 않고 때로는 겸손하다, 겸비하다, 궁핍하다, 곤고하다는 말로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말들의 어원을 따져보면 다 동일한 심적인 상태에서 출발함을 알 수 있습니다. 헬라어로 ‘프라우스’인데, 이 말은 허세를 부리지 않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을 의미하며, 자제심이 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온유를 길들여진 야생마에 비유했습니다. 로데오 경기를 보면 길들여지지 않은 말은 아주 작은 자극에도 펄쩍펄쩍 날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납던 말이 잘 길들여지면 주인의 뜻에 절대 복종하는 온순한 말이 됩니다. 이처럼 온유는 성령님에 의해 잘 길들여져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제력 있게 순종하여 움직이는 성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온유하다는 말을 고통스럽다, 환난을 받는다는 말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까? 보통 평화로울 때는 온유하다는 심적인 상태가 잘 분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화로울 때, 조용히 가만히 있을 때는 그 사람이 온유한 사람인지, 사나운 맹수와 같은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그 사람이 온유한지, 사나운지는 환난을 당하고, 고통스러움을 당할 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환난을 당하고 고통을 당할 때에도 부드러움과 마음의 안정된 심령을 잃지 않습니다. 그러나 온유하지 못한 사람은 곧 그 마음이 사나운 사람은 환난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면 마음의 평정을 잃고 혈기를 드러내 버립니다. 그러므로 온유하다는 말은 괴로움이 있고, 환난과 압제가 있고, 마음 가운데 슬픔과 고통이 있을 때 그것을 느끼면서도 전능하신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가 나타나셔서 신원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드러운 심정, 맑고 안정된 심정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시편 37편은 온유한 자의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시편 37:7절에 보면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악인이 들레고 악인이 형통하고 무성한 푸른 나무같이 일어날지라도 너희는 그것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잠잠히 참고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악인이 형통하고 번성하고 잘되는 것을 보면 불평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마음의 평정을 잃고 물결 따라 요동치는 파도처럼 우리의 심정도 요동합니다. 그러나 악인이 형통하고 푸른 나무처럼 일어날지라도 불평하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사람, 이러한 마음을 가진 자가 온유한 자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마 11:29). 예수님의 온유는 베드로전서 2:23절에 보면 이렇게 나타납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예수님은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는 마음의 불안정과 불평을 가지는 일이 없으셨습니다. 곧 마음이 수정과 같이 맑은 것을 상실하는 일이 없으셨습니다. 또한 고난을 받으시되 그 고난을 가지시고 마음 가운데 투기를 해서 ‘네가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하겠다’고 위협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공의로운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그 심판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온유한 태도이셨습니다.

   온유라는 것은 유약과 비겁이 아닙니다. 유약하고 비겁해서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니까 그냥 참고, 그러다가 시간이 가면 망각해서 흐지부지 없어져 버리는 그러한 것이 온유가 아닙니다. 끝까지 불의는 불의로 알고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야 할 일은 심판 받아야 할 일로 알고 전능하신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손에 맡겨 가장 적절한 때에 원하시는 대로 심판을 내리시기를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온유한 태도입니다. 이처럼 온유는 연약함이나 비굴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온유하신 분이었지만 결코 나약하지 않으셨습니다(마 11:9). 그분은 성전에서 채찍을 휘두르신 적도 있으셨고(요 2:25), 회개치 않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는 독사의 자식들아 하며 맹렬히 분노하기도 하셨습니다(마 3:7).

   온유라는 말을 진일보 더 들어가면 원수에게 대해서도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20절에 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또 베드로전서 3:9절에 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온유는 원수에게까지도 선을 행하고 복을 비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생활에서 어떻게 표현되는 것이 온유한 것일까요? 온유한 사람은 자기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타인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보일까요? 온유한 사람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라는 견해를 가진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에 보면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이 죽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 민감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는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민감합니다. 자기의 권리와 자기 몫은 철저하게 챙겨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자기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손상되면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오해가 있으면 어찌하든지 풀어야만 잠이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절망과 연민에 잘 빠지는 사람도 많습니다. 물론 그들도 스스로는 허물과 죄가 많은 사람이라 고백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자기를 죄인취급하거나 허물을 들추어내면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느낍니다. 스스로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소개하지만 다른 사람이 못난 사람 취급하고 얕잡아보면 자존심이 상해서 마음에 독기가 서립니다. 서열의식이 강해서 서열을 무시할 때 굴욕감을 느껴 자기 연민에 빠집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기에 대해서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자신을 함께 못 박힌 것이 아니라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자기에 대해 민감한 것은 아직 온유하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방어하거나 정당화하는 일에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의 관심이 자기 영광에 있지 않고 오직 주님의 영광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리와 대의명분과 장래 전체를 하나님의 손에 맡깁니다. 부당하게 고통당했다고 생각되는 일에 대해서도 그 판단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따지고 덤볐다가는 더 큰 손해를 볼 것이라는 계산에서 참고 그냥 지내는 것은 온유가 아닙니다. 말해봤자 나만 더러운 놈이 되기 때문에 속으로 삭히는 것도 온유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을 온유한 마음으로 대한다는 것은 모든 악의와 보복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보복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까지 생겼겠습니까? 온순한 사람도 계속 당하고만 살다보면 자기가 얼마나 성깔 있는 사람인지 한 번 본때를 보여주고 싶어집니다. 사회악과 부당한 횡포에 대해서 눈감고 있는 것이 정당한 태도는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입 다물고 있으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자기 스스로 정의의 사도가 되어 심판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그에 대한 심판을 온전히 맡기라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비록 다른 사람이 그의 허물과 약점을 부당하게 드러내거나 과장해도 스스로 원수 갚지 않습니다. 마음의 고통과 슬픔을 느끼며, 불의한 것을 알지만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어떤 반격도 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울에게서 온유의 실례를 보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0:1절에 보면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를 본받아서 겸비와 온유와 관용으로 권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가장 온유한 자로 평가한 사람은 모세였습니다. 모세는 출애굽 때 백성들로부터 수많은 불평과 원망을 들었고 리더십과 인격에 대한 공격을 당했습니다. 그 때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괴로움을 내려놓았을 뿐 스스로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12:3절에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역시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조카 롯에게 좋은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양도했습니다. 다윗 역시 피난시절 사울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엄청나게 많이 받았지만 스스로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온유한 사람은 눈앞의 작은 유익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궁극적인 상급이 되시는 것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오해를 받고 누명을 쓰고 모욕을 당해도 보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재판장이시며 복수 자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런 온유한 자가 받는 복이 무엇입니까?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시편 37편에 보면 ‘차지한다’는 말이 9, 11, 22, 29, 34절에 나옵니다. 여기서 ‘차지한다’는 말은 상속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가 땅을 상속한다,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는 누가 땅을 차지합니까? 돈 많고 권세 잡은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온유한 자가 받을 땅은 이 세상의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가 행복한 자입니다. 우리가 온유한 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복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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