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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5:6
성경본문내용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강설날짜 2006-02-05

2006년 2월 5일 설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말씀:마태복음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산상수훈에서 말하는 팔복은 하나인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각각 다른 측면에서 나타내고 있음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팔복 중에서 앞에 나오는 네 가지 즉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한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사람의 내면 상태를 언급한 것으로서 수동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뒤에 나오는 복은 훨씬 적극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복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것은 배부름일 것입니다. 그러면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과 ‘배부르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사 그 의미를 알게 하시고 그 복을 소유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여기서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은 복 있는 자의 욕망을 생생하게 표현 해주는 말입니다. ‘주리다’는 말은 단순히 배고픔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고 할 때 그 주림을 뜻하는 것으로 생사의 기로에 선 그런 극도의 굶주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목마르다’는 말도 단순한 목마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내가 목마르다”고 하신 그 목마름으로써 극도의 목마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은 생사의 기로에 선 절망의 상태가 되어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느끼며 채워줄 수 있는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인식하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은 극도의 간절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죽을 것 같은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을 겪어본 적이 있습니까? 배고파 죽을 지경이 되면 먹으려는 일념밖에 없습니다. 다른 어떤 욕망도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굶주린 사람에게는 명예욕이나 정욕이나 수면욕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굶주림은 체면과 염치와 도덕관념까지 상실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옛말에 ‘삼일 굶어 담을 넘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극도의 굶주림 가운데 있는 사람은 모든 생각이 먹는 것과 연결됩니다. 나중에는 모든 것이 음식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먹고 마시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 ‘주리고 목마른’ 문제는 ‘우리 생애 최대의 의욕이 무엇인가?’ ‘나의 가장 큰 소원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목이 마르십니까? 무엇에 주려있습니까? 사람마다 다양한 목마름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욕에 목말라 있습니다. 어떤 분은 물질욕에 목말라 있습니다. 어떤 분은 지식에 목말라 있고, 어떤 분은 정욕에 목말라 있고, 어떤 분은 게임에 목말라 있고, 어떤 분은 이성에 목말라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웰빙에 목말라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여기서 말하는 배고픔과 목마름은 육신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그만큼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팔복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자연인에게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는 특성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은 하나님 백성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까지 포괄하는 좀 더 넓은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곧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생활양식’을 의미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생활양식에서 파생되는 모든 의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의는 ‘의로우신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 용어입니다. 에베소서 4:24를 보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새 사람은 의롭게 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한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만드실 때 의도했던 바를 충실하게 반영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보이는 공통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알고, 하나님과 누렸던 최초의 그 의의 관계로 회복되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또한 죄의 세력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고 그 세력에서 해방되기를 소원합니다. 죄 지으려는 욕망을 행동에서 제거하려 할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조차 죄가 틈타지 않게 하려고 애씁니다. 뿐만 아니라 아담과 같은 상태로의 회복을 넘어서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가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하나님이 원래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의도하신 목적대로 살아가고 싶어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즐겨 쓰는 표현으로 바꾸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가려고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시편 42:1에서 다윗은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고 했습니다. 사슴이 목마르면 시냇물을 찾습니다. 그래서 요즘 시골에서 보면 밤이나 새벽에 사슴이 물을 먹기 위해 시냇가로 내려왔다가 돌아가다가 차에 치어 죽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슴이 목마르면 시냇가를 찾습니다. 이처럼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 거룩한 열망을 품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의 최고의 열망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항상 그 분과 교제하는 삶을 사는 데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을 알게 되었으며 이미 의롭다 칭함을 받았으나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님을 알기에 더욱 온전해지기를 갈망합니다. 마태복음 5:48절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성품을 덧입으며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우리 모습 이대로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영접해 주시고 사랑하심을 압니다. 하지만 온전하신 하나님 앞에 아무런 흠과 점도 없이 서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행동과 생각들, 그리고 순간순간의 선택까지도 온전히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기를 원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하루 한끼만 굶어도 배가 고픕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 곧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의에 주리고 목마릅니다.

   그러면 항상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누리는 행복이 무엇입니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배부름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배부르다’는 말은 양이나 가축 혹은 어떤 육식 동물이 먹기를 간절히 원하다가 좋은 것을 만났을 때 먹고 먹어서 배불러 거의 질리도록 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배부를 것이다’는 말은 하나님의 의를 간절히 열망하는 자는 ‘참 만족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과 그 분의 뜻을 알고자 하는 식지 않는 강한 열망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으로 배부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으로 신령한 복을 만끽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해도 얻을 수 없는 참 행복을 알게 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이미 복음의 진수를 깨닫고 만족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깨달은 진리가 너무나 놀라워서 진리의 말씀을 좀 더 깨닫기를 갈망합니다. 이미 하나님을 알지만 좀 더 하나님을 알고 싶어 목말라합니다. 이미 인생의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으나 더욱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삶을 살고 싶어 몸부림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하늘나라의 신령한 만족으로 늘 충만히 채워 주십니다.  

   우리는 요즘 진리를 배워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라은성 교수님과 수요 교리 공부를 통해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진리를 배워가며 우리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고 그 기쁨을 누려 가면 갈수록 더욱더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더 깊이 진리를 바로 알아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교회를 바로 세워가고자 하는 열망으로 차오릅니다. 이처럼 의에 목마른 사람은 놀라운 만족을 얻게 되며 그 얻은바 만족이 너무 놀라워서 더욱 목말라 합니다. 이 땅에는 돈과 정욕, 사람의 인정과 칭찬과 사랑에 목마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기자기한 삶의 행복에 목마른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은 항상 채워지지 않는 불만족과 채워진 후의 권태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의에 목마를 때는 채워진 후에 만족감이 있습니다. 권태감 때문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신령한 만족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그 충만한 만족감이 너무 놀라워서 더 큰 목마름을 느낍니다.

   그러면 내가 정말 의에 주리고 목말라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민수기 23:10을 보면 거짓 선지자 발람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나는 의인의 죽음 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 그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의인처럼 죽기를 원하면서도 의인처럼 살기를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진정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의 태도가 아닙니다. 정말 목이 마른 사람은 감정과 말만이 아니라 의지까지도 목마른 사람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 의에 굶주려 있다면 의를 위한 시간을 내게 될 것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분의 뜻을 헤아리고 순종하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기 위해 시간을 구별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더 깊이 알기 위해 바른 교육에 힘쓰게 될 것입니다. 교회사에 등장한 위대한 성도들을 보면 그들은 바쁠수록 더 많이 기도했습니다. 말씀 묵상과 하나님의 진리를 알기 위해 몸부림치는 투쟁을 감당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삶에 있어서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데 우선권을 두었습니다. 우리가 바쁜 세상을 정신없이 살다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더욱 깨어서 기도에 힘쓰고 말씀 묵상과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힘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감정으로는 얼마든지 위대한 교회사의 인물들처럼 살기를 갈망할 수 있습니다. 말로는 순교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사람 속에서 그렇게 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제 삶에서 시간이나 정열이나 재물을 어디에 사용되는지를 늘 확인해야 합니다. 사람이 진정 무엇에 주려 있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이 평소에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그것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드리고, 시간과 물질과 정열을 드리는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의를 갈망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그의 의에 관심이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에 반대되는 것들과 나쁘고 해롭고 사악한 것들을 피합니다. 비록 그 자체로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몰두함으로서 영적인 삶을 좀먹거나 영적인 의욕을 마비시키거나 하나님을 덜 갈망하게 만드는 일들을 피합니다.  

   진정으로 복있는 사람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주림과 목마름이 있습니까? 현재 내 삶 가운데서 진정으로 사모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늘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나라의 신령한 은혜로 충만하여 진정 배부른 자, 행복한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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