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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5:38-42
성경본문내용 (38)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40)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강설날짜 2006-05-14

2006년 5월 14일 설교


예수와 율법(II)-보복하지 말라!


말씀:마태복음 5:38-42
요절:마태복음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오늘은 다섯 번째 대조법인 “보복하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더 나은 의’가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구약 율법에서 보복에 관한 가르침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였습니다. 곧 구약의 옛 사람들에게는 보복을 하되 보복 행위에 상응하는 보복만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곧 보복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오른 뺨을 때리면 왼편도 돌려 대라고 하십니다. 오늘 보복 법을 통해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더 나은 의’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악한 자들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우리 제자들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배우고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잘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8-39절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1:22-25절에 보면 “사람이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좇아낼 것이니라.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하게 한 것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 지니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24:17-22절에서는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쳐 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 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요,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일 것일지니. 외국인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히 할 것은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고 했습니다. 또 신명기 19:21절에 보면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구약의 옛사람에게는 보복에 대한 원리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에서는 보복을 하되 보복 행위에 상응하는 보복만 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 같은 구약에서의 보복에 대한 계명은 사람의 악함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자들은 악하기 때문에 정확히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그 보복에 상응하는 보복을 시행하지 않습니다. 우리 속담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악한 자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우리가 눈만 상했으면 눈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 죽여 놓습니다. 우리는 가끔 무협영화나 강패 관련 영화를 보면 스승이나 동료가 해를 당해서 다쳤거나 죽임을 당했을 때 무참하게 보복하는 것을 봅니다. 다리가 뿌려졌으면 상대방의 다리만 부러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죽임을 당했으면 한 사람만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완전히 초토화 시켜 버립니다. 무고한 자들까지 무자비 하게 살인을 저지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진 악한 자들의 본성입니다. 깨어진 자들의 이같은 악함을 알기 때문에 보복을 하려면 상한 만큼만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보복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복에 관한 계명도 개인에게 준 것이 아닙니다. 재판관에게 주어진 계명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이 계명을 개인에게 주어진 것으로 생각해서 상해를 입은 개개인이 개인적으로 상대방에게 그렇게 보복해서는 안 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관계가 깨어진 자들의 악한 본성 때문에 그렇게 되면 무법천지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이 보복 법은 재판관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재판정에서 재판관이 그 상황을 정확히 재판하여서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이 같은 보복에 관한 계명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39절에 보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대적하지 말라’는 말은 ‘법적 소송을 걸지 말라’라는 의미입니다. 곧 제자들은 보복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법적인 소송을 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제자라 할지라도 악한 자로부터 오른편 뺨을 맞으면 나도 똑같이 보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보복하지 말뿐 아니라 왼편 뺨도 돌려 대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오른편 뺨을 친다’고 하는 것은 상대방을 손등으로 쳐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손등으로 뺨을 치는 것은 큰 인격모독에 해당되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으로도 이를 아주 엄격하게 다루었습니다. 굉장한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처럼 오른편 뺨을 맞았을 때는 율법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법정에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왼편도 돌려 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른편 뺨을 맞았을 때 왼편도 돌려 대라고 하신 것은 인격적인 자존심을 완전히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을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악한 자가 손등으로 나의 뺨을 쳐서 나를 인격적으로 심히 모독을 하였는데 웃으면서 왼편 뺨도 돌려 댈 수 있을까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오른편 뺨을 때릴 때 온편 뺨도 돌려 댈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자신의 인격적인 자존심을 완전히 포기 할 수 있을까요? 내가 죽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가 살아 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통치는 철저한 자기 부정이 아니고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 있고서는 인격적인 자존심을 완전히 포기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죽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다는 것은 철저한 자기 부정을 의미합니다. 철저한 자기부정이 없이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4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또한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겉옷을 빼앗고자 하면 속옷까지도 주라”고 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속옷보다 겉옷이 훨씬 더 값이 비쌉니다. 물론 요즘은 속옷이 훨씬 비싼 경우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겉옷이 훨씬 더 귀하고 값어치가 나갔습니다. 그런데 왜 송사하는 자가 겉옷을 가지고자 하지 않고 속옷을 가지고자 했을까요? 겉옷은 담보의 가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에서는 겉옷은 해가지면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겉옷은 밤에 이불 역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기본권에 해당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속옷을 담보로 잡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속옷을 갖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율법에 보장된 기본권까지도 집착하지 말고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우리의 힘과 의지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죽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때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41절에 보면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고 하십니다. ‘오리’는 1마일로 약 1.6Km입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의 통치 아래 있던 백성들에게 로마 군인이 오리를 가자하면 꼼짝없이 가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실 때 로마 군병들이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그렇게 할 때 시몬이 꼼짝없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이런 규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할 때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지못해 오리를 가줄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더 해주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바쁠 때 내가 안 해도 될 일을 부탁받았을 때 우리는 짜증이 나고 거절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우리는 기쁨으로 그 부탁받은 일을 들어주어야 합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남아프리카에서 어떤 백인이 여행 중에 흑인에게 자기 짐을 들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랬을 때 그 흑인은 아무 말 없이 그 짐을 들고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백인은 아무 사례 없이 그만 가라고 했습니다. 이 때 그 흑인은 화를 내지 않고 더 시키실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 때 그 백인이 깜짝 놀라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흑인의 바로 이런 행동이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할 때 기쁨으로 십리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우리의 본성과 의지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죽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제자들은 내가 죽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자기를 희생하여 기쁨으로 십리를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42절에서 주님은 또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우리가 이런 삶을 살고자 하면 장래가 염려가 됩니다. 왜냐하면 쌓아둘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도 내가 죽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주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고 채워주십니다. 그러므로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않고 주는 삶을 살면서도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자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염려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재물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24절에서 주님은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재물을 섬기던가, 하나님을 섬기던가, 둘 중에 하나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재물이 있으면 든든하고, 재물이 없으면 염려가 되는 것은 재물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는 우리 인간의 힘과 의지로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오른 뺨을 때릴 때 왼편도 돌려 댈 수 있습니까? 속옷을 가지고자 송사하는 자에게 어떻게 겉옷까지 벗어 줄 수 있습니까?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어떻게 십리를 동행 할 수 있습니까?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어떻게 거절하지 않고 자기가 가진 것을 다 내어 줄 수 있습니까? 이것은 인간의 힘과 의지로 이룰 수 있는 의가 아니고 예수님의 의 곧 하나님의 의입니다. 내가 죽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만 가능한 의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손해를 볼 때도 많습니다. 나의 인격과 자존심이 무시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때 보복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보복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도리어 손해를 보고 희생하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의는 율법이 요구하는 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 수준이 높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자기를 죽이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보복하지 않고 도리어 손해를 보며 기쁨으로 그들을 섬기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더 나은 의를 덧입어 가며,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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