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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15:1-20
성경본문내용 (1)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2)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3)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4)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5)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6)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7)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8)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9)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10)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11)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12)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1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14)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15)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16)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17)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18)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19)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20)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강설날짜 2007-04-22

2007년 4월 22일 설교


진정한 더러움


말씀:마태복음 15:1-20
요절:마태복음 15:11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오늘 본문은 왕 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부터 파견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유전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사건입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파견을 받은 종교 지도자들은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것을 보고 장로들의 유전을 어겼다며 예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시며, 사람을 더럽게 하는 진정한 더러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사람을 더럽게 하는 진정한 더러움이 무엇이며, 예수님께 대한 반대 세력의 정체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바다 위로 걸어오신 사건 이후에 예수님에 관한 명성과 가르침의 영향력은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매료당하여 그에게로 나아왔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세리들이 종종 함께 어울려 주님께 나아왔으며, 지배자와 피지배자, 부자와 가난한 자, 학식 있는 자와 무식한 자, 병든 자들이 함께 무리를 지어 주님을 따라와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 열광하였습니다. 주님의 명성과 영향력이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이와 동시에 주님께 대한 적대 감정도 커져 갔습니다. 마침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로 이루어진 대표자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명확한 문제를 들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판하고 정죄하기 위해 꼬투리를 잡고자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비판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도를 숨긴 채 예수님께 나와 따져 물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 무엇을 따져 물었습니까? 1-2절에 보면 “그 때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질문은 청결에 관한 질문이 아닙니다. 순전히 의식적인 규례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즉, 음식을 왜 깨끗하게 먹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먹느냐고 힐책하는 질문이 아니라, 왜 손을 씻고 먹으라는 규례를 지키지 않느냐는 질문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사귐을 나누는 주님의 제자들이 의식적인 규례를 소흘히 하는 사실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들은 의식적인 규례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의 그와 같은 행동, 곧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행동이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장로들의 유전’은 바리새인들의 구전 율법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구약에 보면 제사장들이 특별히 제의(祭儀)를 위해 손을 씻는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0:17-21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회막에 들어갈 때나, 화재를 여호와 앞에 드릴 때 물로 씻으라고 했습니다. 또한 신명기 21:6절에도 보면 장로들은 목을 겪은 암송아지 위에서 손을 씻으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제사장들에게 적용되는 이 손 씻는 규정을 일반 음식을 먹는 상황에도 적용하는 구전 율법을 발전시켰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구전 율법을 성문 율법(모세 오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는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의 행동은 구약 율법 자체를 어긴 것이나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했을까요? 본문에서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라고 했는데, 이것을 볼 때 이들은 예루살렘 바리새파와 성경학자들에게서 파송된 어느 정도 공식적인 성격을 띤 대표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정결 규례와 관련된 자신들의 구전 율법에 관한 예수님의 입장에 대해 좀 더 확실한 정보를 확보하려고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은 것을 꼬투리 삼아 예수님께 물은 것입니다. 이들은 미리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이렇게 질문한 것 같습니다. 당시 선생이 제자들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이 통례였기 때문에 제자들의 행동에 대해 그의 선생인 예수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님의 입장을 물은 것은 단순히 배우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논쟁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곧, 흠을 잡으려는 비판적인 태도로 물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어떠하였습니까? 3절에 보면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장로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구체적인 예가 무엇입니까? 4-6절에 보면 ‘하나님께 드림 바 되었다’고 하는 ‘고르반’이라는 전통입니다. ‘고르반’이라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함부로 쓸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소유한 물질과 관련하여 ‘고르반’이라고 말하기만 하고 그 물질을 여전히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부모에 대한 물질적 공경의 의무를 회피하였습니다. 이는 바리새인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고르반’이라는 전통으로 도리어 사람들로 부모를 공경하도록 명하는 구약의 계명들 곧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 21:17)는 계명을 어기거나 무시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어떤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까? 7-9절을 보면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이 말씀은 이사야 29:13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이처럼 무효로 만드는 전통이란 아무런 권위가 없다는 사실을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심으로써 확고히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자들을 책망하신 후 무엇을 하셨습니까? 10절에 보면 예수님은 무리들을 불러 듣고 깨닫도록 교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대답을 하시면서 그 대답 대상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뿐만 아니라 ‘무리들’까지 포함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 진정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십니까? 11절을 보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15절에 보면 베드로가 그 의미를 몰라 예수님께 우리에게 그 의미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시면서 그 의미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17-18절을 보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으로 제시하신 이 격언은 다분히 혁명적입니다. 이 격언적 선언은 유대교의 상세한 정결 규례들 뿐 아니라 구약의 음식 전반을 뿌리째 뒤흔드는 새로운 원리를 제시해 줍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설명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오로지 육체에만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십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인간 본성의 원천인 ‘마음’(카르디아, καρδ?α)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우면 그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참조. 12:33-37). 마태복음 12:34-35절을 보면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란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진정 더럽게 합니다.

예수님은 입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히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십니다. 19절에 보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언급되는 것들은 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들입니다. 악한 생각,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 증거, 훼방 이런 것들은 다 우리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특히 여기서 ‘훼방’(블라스페미아이, βλασφημ?αι)이라는 말은 ‘참람하다’는 말로 하나님께 대한 불경스러운 태도를 뜻합니다. 주님께서 언급하시는 이런 요소들은 다 우리 마음에서 나옵니다. 우리 마음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선언합니다. 20절에 보면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합니다. 음식은 우리의 배 속으로 들어가서 뒤로 배설물로 버려집니다.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과 같은 우리 입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마음에서 나와서 입으로 나오는 이런 더러운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우리의 노력과 힘으로 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렘 17:9). 우리가 이런 더러운 것들을 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자연스럽게 이런 더러운 것들이 우리 마음에서 떠나가고 거룩하고 신령한 것들로 충만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에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온갖 더러운 것들을 내어버리고 거룩한 성령의 열매를 충만히 맺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거룩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12절에 보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걸림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유전이 멸시를 받는 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미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악한 생각을 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3-14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상태를 두 가지로 비유하셨습니다. 첫째, ‘아버지께서 심지 않은 식물’에 비유하셨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흔히 하나님께서 심으신 나무에 비유했습니다(참조. 사 60:21; 61:3; 렘 32:41). 이런 점에 비춰볼 때 ‘하나님께서 심지 않은 것은 뽑힌다’고 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지위 자체를 박탈당할 것임을 시사해 줍니다.

둘째, ‘소경으로 소경을 인도하는 자’에 비유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진리의 수호자로서 ‘소경을 인도하는 자들’이라고 자부하였습니다(참조. 롬 2:19-20).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도리어 이들이 소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어떤 점에서 소경입니까? 하나님의 뜻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습니다. 이들은 자신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까지 멸망으로 이끌어갑니다. 이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23:16절과 25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이런 자들에게 “화 있을 진저”라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선언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장로들의 유전 위에 세워진 외식적인 신앙이라는 나무는 하나님께서 심으신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것은 다 뽑혀 버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싸워 뽑아 버릴 대상을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아니라 그들이 옹호하는 외식적인 신앙체계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심지 아니하신 것들이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유전, 즉 전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들을 소경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속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순한 복음을 사람의 교훈인 전통으로 수없이 덮어 씌워 놓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전통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생활에 전해 내려오는 ‘새벽기도와 큐티’라는 좋은 전통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경건생활에 유익한 전통들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런 것들이 전통에 매여 습관적으로 지키는 것 외에 다른 뜻이 없다면 이러한 전통도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이런 것 외에도 금요철야 기도, 금식기도 등 많은 전통들이 있습니다. 이런 좋은 전통들이 외식으로 흘러갈 때 도리어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것들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기에 힘쓰기보다 이런 것을 외식으로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하나님과 바르게 교제를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합니다. 이처럼 전통이 외식과 형식으로 흘러 갈 때 우리로 하여금 소경이 되게 만듭니다. 우리 가운데 아무리 좋은 전통 이라 할지라도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제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우리는 이런 것들을 뽑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깨뜨리고 있지 않는지 자신을 잘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뽑히는 자가 되지 않고,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멸망으로 인도하는 영적 소경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왕 되신 우리 주님은 우리를 모든 사람들의 전통과 관습의 속박과 굴레로부터 구해 내어 하나님과 생생한 교제를 나누도록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진정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사람의 손을 통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참된 신앙 안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사람들이 만든 전통이나 유전은 우리들로 하여금 소경으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만든 전통과 유전을 스스로 조심하며, 그것들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잘 맺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참되게 경배하며 섬겨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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