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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15:29-39
성경본문내용 (29)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30)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31)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32)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33)제자들이 가로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의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34)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로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있나이다 하거늘(35)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36)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37)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38)먹은 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39)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에 가시니라
강설날짜 2007-05-06

2007년 5월 6일 설교


칠병이어 표적


말씀:마태복음 15:29-39
요절:마태복음 15:36-38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로 사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미 14:14-21절에서 이와 유사한 기적 곧,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공부했습니다. 우리가 언듯 보기에는 유사한 사건을 반복해서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저자 마태의 특별한 신학적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 기적 사건을 나란히 기록함으로써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드러내고자 한 것 같습니다. 만약 마태가 똑같은 메시지를 나타내고자 했다면 굳이 반복해서 비슷한 사건을 기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마태가 왜 비슷한 사건을 반복해서 기술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요? 오늘 우리가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신 표적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9-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축복하신 후 거기를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한 산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이때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고 고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고쳐 주매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게 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천국의 복이 베풀어지는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몰려온 큰 무리들은 천국의 복을 받기에 합당치 못했던 이방 백성들이었습니다. 마가복음 평행구인 마가복음 7: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로를 지나 시돈을 거쳐 데가볼리 지역 가운데로 지나 갈릴리 바다 가로 가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29절에서 언급되는 갈릴리 바닷가는 이방 지역인 북동쪽 해변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치유 기적 사건은 아마도 이방 지역에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일어난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이들은 가나안 여자가 얻은 놀라운 승리의 결과를 보고 용기를 얻어 믿음으로 나온 자들입니다. 이들은 가나안 여인이 복을 받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도 천국의 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전염병처럼 사람들 가운데로 퍼져나갔던 것 같습니다. 큰 무리들은 믿음을 가지고 이웃에 있던 많은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산으로 올라왔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나온 그들의 모든 요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서 믿음으로 나오는 자들을 축복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본 치유 기적 사건에서 언급되는 치유 자들 곧 앉은뱅이, 소경, 절뚝발이, 벙어리 등은 이사야 35:5-6절의 예언을 인상적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35:5-6절에 보면 메시아가 와서 이룰 역사를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며 저는 자가 회복되어 사슴처럼 뛰며 벙어리의 혀가 풀려 노래하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태는 이 기적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그 메시아이심을 나타내고자 한 것 같습니다. 특히 마태는 가나안 여인의 딸을 치유하신 사건과 더불어 이방인들에게 이루신 이 치유 기적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메시아이실 뿐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아도 되심을 명확히 들어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하여튼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믿음으로 나아온 이방인들에게도 치유의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치유의 기적을 본 무리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31b절에 보면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기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무리들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의 후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데가볼리 지역의 주민들로, 하나님의 약속에서 제외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저주 받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치유의 사역을 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이 이제 유대지역 뿐만 아니라 그 경계선을 넘어 두로와 시돈과 데가볼리까지 곧 이방 땅까지 흘러가게 된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제 가나안의 한 여인과 언약 밖에 거하던 많은 무리들에게까지 흘러들어갔습니다. 이로써 언약 밖에 거하던 백성들도 믿음으로 영적인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32-3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신 후 자신에게 몰려온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일곱 개의 떡과 두어 마리의 작은 물고기로 사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먼저 32절에 보면 큰 무리는 예수와 함께 광야에서 삼일 동안이나 함께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으로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 했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무리들의 상태가 어떠했는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과 삼일 동안 광야에 있었기 때문에 몹시 굶주려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몰려온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신 후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32). 14:15-16절에 보면 오천 명을 먹이실 때는 제자들이 먼저 예수님께 나아와 “이곳은 빈들이요 때가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합시다”라고 제안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 기적 사건에서는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 때와는 달리 예수님께서 먼저 무리를 먹이는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꺼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32).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사건의 발단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제자들의 반응은 매우 의외였습니다. 33절에 보면 “제자들이 가로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의 배부를 만큼 떡을 먹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이미 얼마 전에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경험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당연히 주님께서 능력으로 먹이실 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있는 떡과 물고기를 찾아 주님께 가져가 드리며 능력의 역사로 먹이시도록 환경을 예비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이기 때문에 먹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제자들의 지독한 불신앙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16:5-12절에 보면 더디 깨닫는 제자들을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더군다나 가나안 여인의 믿음과 이방인들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볼 때 참으로 제자들의 이러한 행동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무리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까? 34-38절에 보면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다고 하자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주님께서는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져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로 하여금 무리들에게 나누워 주게 하였습니다. 그 때 여자와 어린 아이들을 제외하고도 사천 명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가득 차게 거두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기적의 구체적인 과정을 살펴보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대체로 일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기적 이야기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에서는 떡이 다섯 개인데 반해 여기서는 떡이 일곱 개입니다. 물고기는 두 마리였는데 반해 여기서는 작은 물고기 두어 마리였습니다. 먹은 무리의 수도 오천 명이었는데 반해 여기서는 사천 명이었습니다.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둔 것도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에서는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차게 거둔 반면, 여기서는 일곱 광주리에 가득 차게 거두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에서는 축복기도(율로게오, ε?λο??ω)를 드린 반면, 여기서는 감사기도(유카리스테오, ε?χαριστ?ω)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차이들 중에 몇 가지는 우리가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열두 바구니와 일곱 광주리 사이의 차이는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우리가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에서 살펴봤듯이 열두 바구니의 열둘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한다면, 열두 바구니에 가득한 빵의 모습은 이스라엘을 위한 메시아 잔치의 풍요로움을 상징함을 배웠습니다. 그에 반해 오늘 기적 사건에서 사용되고 있는 일곱 광주리의 일곱은 아마도 충만 또는 완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경우 일곱 광주리에 가득한 빵의 모습은 모든 이방 민족을 위한 메시아 잔치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구니’(코피누스, κοφ?νου?)는 특별히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용기로서 정결한 음식을 나르는데 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광주리’(스퓌리다스, σπυρ?δα?)는 좀더 일반적인 용기로서 물고기와 음식물을 담는데 사용한 용기입니다. 따라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사건에서 ‘광주리’가 사용된 것은 이 기적 사건의 장소와 무리들이 비유대적이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신 이 기적 사건이 주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마태는 마가와 마찬가지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사건과 유사한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마태는 마가와 마찬가지로 본 단락에 바로 뒤이어 두 기적을 유사하지만 별개의 사건들로 언급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6:9-10절에 보면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고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평행구인 마가복음 8:19-20절에도 보면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 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마태와 마가 두 저자 모두 이들 두 이야기가 각각 별도의 기적 사건들을 기술한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와 마가는 왜 이처럼 유사한 사건을 두 차례에 걸쳐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의 열쇠를 그 기적의 대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유대 땅에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난번에 살펴 본 대로 이 기적 사건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메시아 잔치로서의 상징적 의미가 있음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본 단락의 기적은 아마도 이방 땅에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것이 분명합니다. 마가복음 7:24절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는 말씀과 31절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매”라는 말씀을 참조해 볼 때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사건은 이방 땅에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본 기적 사건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사건과는 달리 메시아의 잔치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열려 있는 잔치임을 보여 주고자 한 것 같습니다. 마태는 이러한 신학적 의도를 가지고 마가와 더불어 두 기적 사건을 나란히 기술한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유대인들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아도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남은 떡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가득 차게 거두었다는 것은 이방인을 위한 메시아의 잔치도 풍요로움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유전으로 논쟁을 벌이신 후 제자들을 데리시고 유대를 떠나 이방 땅으로 가신 것은 전통과 의식에 젖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자신이 보여 줄 수 없었던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방해 받음 없이 자유롭게 역사하는 믿음의 역사를 보여 주고자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증거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이끌어 내시고 축복하신 사건과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신 사건을 통해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방인들에게 축복을 베푸시는 역사와 함께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신적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저자 마태는 이런 예수님을 구약 성경에 약속된 메시아시며, 이 메시아가 유대인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아도 되심을 나타내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약속된 메시아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유대인의 메시아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아도 되십니다. 예수님은 민족을 떠나 믿음으로 나오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메시아의 풍요로운 잔치에 참여하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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