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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16:21-28
성경본문내용 (21)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22)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목숨을 바꾸겠느냐(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2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강설날짜 2007-05-27

2007년 5월 27일 설교


수난과 부활의 첫 번째 예고


말씀:마태복음 16:21-28
요절:마태복음 16: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이신 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부터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왕께서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세 번에 걸쳐서 예고하셨습니다(17:22-23; 20:17-19). 그만큼 제자들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왕의 수난과 부활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왕의 사역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수난과 부활의 첫 번째 예고를 통해 왕께서 이루실 구속역사의 비밀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기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제자의 길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6:21절 말씀은 왕의 사명이 새롭게 시작됨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대화를 마치신 후 즉시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받을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16:21절은 마태복음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 역할을 해 줍니다. 그러므로 21절 말씀은 마태복음의 마지막 부분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이제 더 이상 대중을 향한 사역이 아니었으며, 그의 제자들을 향한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주로 제자들에게 그의 수난과 부활을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데 전력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당당하고 영광스럽게 나아가셨습니다. 마침내 왕께서는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완전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 당하실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자 베드로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22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고 했습니다. 이 장면은 참으로 놀라운 장면입니다. 여기서 ‘간했다’는 말은 ‘꾸짖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완곡하게 되어 있는데 이 장면을 우리는 완곡하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 말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노골적인 의미를 지닌 말로 바꾸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아마도 예수님을 다른 제자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갔어 화를 내며 그에게 잔소리를 했습니다. ‘주께서 죽으시면 주의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께서 이루시기를 소원하는 일을 어떻게 이루려 하십니까?’라고 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베드로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23절에 보면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말을 듣고 베드로에게서 등을 돌려 제자들을 향하셨습니다. 주님은 다른 제자들을 보시면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볼 때 예수님을 사랑해도 하나님의 방법을 피하려 하는 자는 예수님에게 장애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조금 전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 고백했을 때 심히 기뻐하시면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님께서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는 말은 ‘너는 나를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바위다. 너는 여전히 바위이지만 그러나 나의 방해가 되는 바위이다. 너는 나의 갈 길을 가로막는 바위이다’라는 그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처럼 베드로에게 사단이라 책망하며,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을까요? 주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결정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열망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자신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그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오직 주님의 유일한 열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늘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고자 노심초사 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고 하니까 화를 내며 반발한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주님께서는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인자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신 후 제 삼일 만에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는 일입니다. 고난을 피하고 죽임을 피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사람의 일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여 그렇게 마옵소서. 그런 일은 결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과한 후 결국 부활의 승리에 이르는 방법이었으나, 사람의 일은 이기적으로 십자가를 피하지만 결국은 영원한 멸망에 빠지는 방법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예루살렘은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으로 약삭빠른 방법은 예루살렘에 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 가셔야 했습니다.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반드시 죽으셔야 했습니다. 제삼일 만에 반드시 부활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반드시 올라가서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셔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구속역사의 전체 과정 속에서 반드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당위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하나님의 당위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눈앞에 있는 것들 곧,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고 주님을 붙들고 책망한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만의 실수가 아니라 모든 제자들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현재의 고통과 현재의 고난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제자들이 생각한 사람의 일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꿈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리의 왕이 되셔서 다윗 왕국과 같은 메시아 왕국을 건설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관심은 ‘천국에서 누가 크냐’하는 문제였습니다(18:1). 20장에 보면 이 문제가 극에 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께 나아와 두 아들에게 좌우편 자리를 달라고 청탁하였습니다. 이 일로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 분히 여겼습니다(20:20-28). 이것은 다른 제자들도 다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들은 서로 주님의 나라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했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늘로 승천하기 직전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사도행전1:6절에 보면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들을 볼 때 베드로가 생각한 사람의 일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오직 이스라엘의 회복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베드로에게 있어서는 주님께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 삼일 만에 부활한다고 하자 강하게 반발하며 주님을 책망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며 반발하는 베드로에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제자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궁극적인 승리의 영광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왕으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있었으며, 여전히 자기 자신이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은 서로 상반된 이상을 내 세웁니다.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려면 사람의 일이 무너져야 합니다. 사람의 일이 이루어지려면 하나님의 일이 무너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장애물이 될 뿐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일 곧,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 했을 때 그것은 베드로에게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십자가가 유대인들에게는 장애물이다”고 쓰고 있듯이 사람의 일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의 눈에는 십자가가 항상 장애물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삼일 만에 부활해야 한다”고 하자 베드로가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못하리이다”고 주님을 책망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도리어 그리스도를 방해하는 걸림돌 역할을 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님의 걸림돌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베드로는 결코 자신이 주님의 걸림돌 역할을 한다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그는 주님을 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도리어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 걸림돌 역할을 한다고 책망하십니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방해하는 걸림돌 역할을 하는 경우는 사람이 하나님의 방법을 제쳐놓고 자기의 방법을 관철시키려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십자가 없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고난 없이 그의 나라를 세우려고 노력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당위를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 감히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보다 쉬운 방법을 써야 합니다’고 자기 주장을 할 때입니다. 승리를 얻게 해주시는 그리스도의 방법을 거부하고 보다 쉬운 인간적인 방법을 고집할 때입니다. 희생과 고통 없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려고 하기보다 인간적인 열심과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고자 할 때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실용적인 시대입니다. 합리적인 시대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에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고자 하기보다 보다 실용적인 방법을 좇고자 합니다. 부흥을 위해서 온갖 인간적인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걸림돌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주님께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섬겨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책망하신 후 제자들에게 제자의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24-25절을 보면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기를 원하는 제자들은 ‘자기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러면 ‘진정한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란 무엇일까요?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란 한마디로 한다면 주님께서 명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만일 어떤 사람이 주님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단지 자기 자신이 어떤 희생을 치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 희생을 치른다면 그것이 자기 부인일까요? 주님께서 명하시지도 않았는데 어떤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것을 했다면 그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일까요?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자기 부인도,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란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오로지 주인이 되시는 주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서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면 우리는 그것을 인하여 기뻐하면 됩니다. 자기를 부인한다고 일부러 우리 자신을 괴롭게 하는 일 따위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의 길과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시면 그것이 그가 정하신 길이므로 기꺼이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진다고 주님께서 명하시지도 않았는데 자기 열심으로 일을 만들어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주님께서 명하신 뜻을 행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것을 25절에서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말로 설명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습니까? 우리 생명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최후의 방책은 지금 우리가 주님을 따르며, 하나님의 일에 매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자기 생명을 위해 자기 뜻을 좇아 살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주님이 주시는 생명을 풍성히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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